FAZER LOGIN“…다음은.”창고 관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공녀님이라고.”정적.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단테의 표정에서 모든 온기가 사라졌다.그리고.아주 천천히.위험한 웃음이 떠올랐다.엘라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예지에서.수없이 보았던 얼굴.모든 것을 잃고.더 이상 아무도 믿지 않게 된 남자의 얼굴.“…전하.”엘라가 조용히 불렀다.단테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약속했죠.”“…”“혼자 움직이지 않기로.”“…”“지금.”엘라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그 얼굴 하고 혼자 나가시면.”“…”“벌칙입니다.”단테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이 상황에서도.벌칙.엘라는 일부러 평소처럼 말했다.일부러.조금 웃었다.단테가 다시 예지 속 남자가 되지 않도록.“…그래.”단테가 낮게 대답했다.그제야 엘라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좋아요.”하지만.안심하기에는 빨랐다.단테가 곧바로 휴고를 돌아봤다.“오늘부터.”“…예, 전하.”“엘라에게 경호를 붙인다.”엘라의 표정이 굳었다.“…뭐라고요?”단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최소 여섯.”“잠깐만요.”“교대는 네 시간.”“전하.”“침실 앞에도.”“단테.”우뚝.단테가 멈췄다.주변 기사들의 눈이 커졌다.엘라도 멈췄다.아.방금.무의식적으로.이름을 불렀다.그것도.사람들 앞에서.“…”“…”단테가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엘라가 헛기침했다.“…전하.”“방금은.”“실수였습니다.”“…”“계속하세요.”단테의 눈이 아주 조금 가늘어졌다.하지만.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었다.“경호는 붙인다.”엘라의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싫어요.”“네 의견을 묻지 않았다.”“제 몸인데요?”“표적이다.”“저 검 잘 써요.”“안다.”“마법도 쓸 줄 알고요.”“안다.”“도망도 잘 갑니다.”“그건 봤다.”“…”엘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그 수첩 사건.아직 기억하고 있네.그녀는 다시 팔짱을 꼈다.“그러니까.”“…”“경호 필요 없어요.”
콰아아앙―!또 한 번.성 전체가 흔들렸다.창문이 덜컹거리고.복도 천장의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엘라와 단테의 표정이 동시에 바뀌었다.“동부 창고라고 했지.”단테가 몸을 돌렸다.“네.”엘라도 바로 뒤를 따랐다.그 순간.단테가 멈췄다.엘라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왜요?”단테가 그녀를 바라봤다.조금 전.복도에서 했던 약속.다음부터는 같이해요.조사도.위험한 것도.같이.잠시 침묵.그리고.단테가 말했다.“…같이 간다.”엘라의 눈이 조금 커졌다.“네.”입꼬리가 올라갔다.“좋아요.”그 한마디면 충분했다.⸻대공성 동부.창고 쪽으로 갈수록 연기 냄새가 짙어졌다.기사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물!”“동쪽부터 막아!”“의약품 창고는 아직 불이 안 붙었습니다!”“사람부터 빼!”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첫 번째 폭발이 일어난 곳은.조금 전 엘라와 단테, 테오도르가 조사했던 바로 그 창고였다.“…완전히 노렸네.”엘라가 낮게 중얼거렸다.단테는 대답 대신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휴고.”“예, 전하!”“인원부터 확인.”“이미 하고 있습니다.”“사망자는.”“현재까지 없습니다.”단테의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아주 조금 풀렸다.하지만.휴고의 다음 말에 다시 굳었다.“다만 창고 관리인 한 명이 보이지 않습니다.”엘라가 고개를 들었다.“…관리인?”“회의에 있던 그 사람?”“예.”아까.창백한 얼굴로.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던 남자.엘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도망친 걸까요.”단테가 낮게 말했다.“아니면.”“…”“잡혀 갔거나.”둘의 시선이 마주쳤다.같은 생각이었다.아직.누구도 범인으로 확정하면 안 된다.⸻“전하!”한 기사가 다급히 달려왔다.“뭐지.”“이상한 게 있습니다.”단테와 엘라가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폭발 지점 안쪽에서.”기사가 숨을 골랐다.“마법진이 발견됐습니다.”“…마법진?”엘라의 표정이 굳었다.단테가 곧바로 말했다.“안내해.”⸻창
"...황실 사람이에요."엘라의 말이 떨어진 순간.창고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단테의 시선이 그녀의 손바닥 위에 놓인 은색 장식으로 향했다.작은 원형 문장.중앙에는 날개를 펼친 매와 세 개의 별.테오도르도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바라봤다.황실 직속 비밀 정보부.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황제의 눈.황제의 귀.그리고 필요하다면.황제의 칼까지 되는 자들.단테가 낮게 물었다."...확실한가."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췄다.그리고 은색 장식을 다시 살폈다."...문양 자체는 확실해요.""그런데."테오도르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이걸 떨어뜨린 사람이 정보부 소속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단테의 눈빛이 그에게 향했다."무슨 뜻이지."테오도르는 손을 내밀었다.엘라가 장식을 건넸다.그는 손가락 끝으로 표면을 천천히 훑었다."정보부의 인장은.""...""신분 그 자체입니다.""...""임무 중 이렇게 눈에 띄는 형태로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엘라가 눈썹을 찌푸렸다."맞아."그녀 역시 기억났다.정보부 사람들이 쓰는 신분 장식은 대부분 옷 안쪽에 숨겼다.심지어 위급한 상황에서는 흔적이 남지 않도록 부술 수 있게 만들어졌다.그런데 이것은.너무 멀쩡했다.너무 정확했고.너무 쉽게 발견됐다."...일부러?"엘라가 중얼거렸다.테오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가능성이 높습니다."단테의 표정이 싸늘해졌다."...황실을 의심하게 만들기 위해.""혹은."테오도르가 덧붙였다."정말 황실 내부 사람이 보내 놓고, 우리가 미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죠.""..."엘라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아.""...""벌써 귀찮아."두 남자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엘라는 진심이었다."이런 거 싫어요.""상대가 누군지 딱 나오고.""...""가서 잡고.""...""끝."그녀는 손바닥을 탁 마주쳤다."얼마나 좋아요."테오도르가 헛웃음을 흘렸다."스승님.""네.""정치와 음모는 원래 그렇게
엘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아침 식당에 들어섰다.“좋은 아침입니다!”기사들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 줬다.“좋은 아침입니다, 공녀님!”“오늘은 안 늦으셨네요.”“전하께서 먼저 찾으시기 전에 오셨군요.”“…”엘라의 걸음이 잠깐 멈췄다.“마지막 말 한 사람.”기사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엘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명 한 명 훑어봤다.“못 들은 척하겠습니다.”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 모습을 보던 휴고가 웃음을 참으며 의자를 빼 주었다.“차 준비해 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엘라는 자연스럽게 단테의 옆자리에 앉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단테 옆자리에 앉는 것만으로 식당 전체가 얼어붙었다.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오히려.엘라의 자리가 정해진 것처럼 비어 있었다.그 사실을.엘라는 조금 늦게 깨달렸다.‘…언제부터.’자연스러워졌지.그녀는 슬쩍 옆을 봤다.단테는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있었다.검은 머리카락.무표정한 얼굴.아침인데도 지나치게 완벽하게 갖춰 입은 제복.그리고.여전히 잘생겼다.‘집중.’엘라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지금은 얼굴 감상할 때가 아니었다.머릿속에는 어제 본 문장이 계속 떠돌고 있었다.미래를 바꾸지 마라.흑막은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누가.왜.단테가 흑막이 되기를 원하는가.그리고.어떻게 엘라가 미래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생각할수록 이상했다.“엘라.”“…”“엘라.”“…”“공녀님.”“…네?”엘라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단테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세 번 불렀다.”“…그래요?”“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지.”“…아무것도요.”단테의 눈이 가늘어졌다.“…거짓말.”엘라는 빵을 하나 집었다.“빵 생각.”“빵을 들기 전부터 멍하니 있었는데.”“…그럼 잼.”“접시에도 없었다.”“…”엘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요즘.이 남자 눈치가 너무 빨라졌다.‘교육을 너무 잘했나.’엘라는 잼을 듬뿍 발라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별일 아
“…스승님.”테오도르는 검은 종이를 바라봤다.미래를 바꾸지 마라.그리고.흑막은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선명했던 붉은 글씨가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마치.처음부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던 것처럼.테오도르는 즉시 책상 위에 놓인 종이와 펜을 집었다.사각.사각.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문장.글씨의 모양.등장한 순서.그리고.종이를 만졌을 때 느껴졌던 이상한 냉기까지.모두.“전하.”문밖에서 수행원의 목소리가 들렸다.“괜찮으십니까?”테오도르는 검을 내려다봤다.“…괜찮다.”“방금 소리가.”“아무것도 아니다.”그는 천천히 창문을 닫았다.철컥.하지만.아무것도 아닐 리 없었다.누군가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아니.더 정확히 말하면.누군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황태자가 묵는 방에.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북부 내부 사람인가.’아니면.‘처음부터 나를 따라온 건가.’테오도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상대는.엘라가 미래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테오도르는 검은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스승님께.’말해야 한다.당장.그렇게 생각한 순간.손이 멈췄다.엘라라면 어떻게 할까.분명.위험하다고 말려도 뛰어들 것이다.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겠다며.그리고 지금.단테를 지키려는 데 누구보다 진심이었다.‘아니.’그래서 더더욱.조심해야 한다.테오도르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내일.”그가 낮게 중얼거렸다.“확인부터 한다.”누가.어떻게.이 종이를 넣었는지.그 전에.괜한 불안만 만들어서는 안 됐다.⸻같은 밤.엘라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천장을 바라봤다.한 번.옆으로 돌아누웠다.두 번.다시 반대편.세 번.“…아.”결국.벌떡.일어났다.“잠 안 와.”오늘 있었던 일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중간 평가.테오도르의 질문.단테의 대답.그리고.신탁.북부대공 단테 아르젠트로 인해 제국은
“…맞는 것 같은데.”단테는 심각했다.아주 심각했다.전쟁을 앞두고 작전 회의를 할 때보다.마수 수백 마리가 성벽으로 몰려왔을 때보다.어쩌면.황제에게 반역 혐의를 받았을 때보다도.지금이 더 심각했다.‘좋아한다.’테오도르가 던진 단어 하나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엘라를?자신이?단테는 미간을 좁혔다.‘말이 안 된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귀찮았다.허락도 없이 북부에 찾아왔고.자신을 교육하겠다고 선언했고.밥을 먹으라고 쫓아다니고.기사들의 이름을 외우게 하고.차를 마시게 하고.문제를 내면서.“하나, 둘, 넷, 다섯.”따위의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셌다.그리고.시도 때도 없이 가까이 왔다.뺨을 만지고.이마를 찌르고.손을 잡고.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잘생겼다고 했다.“…”단테는 생각을 멈췄다.이상했다.싫었던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는데.왜.전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전하?”“…”바로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단테가 고개를 들었다.엘라였다.“…왜.”“그건 제가 물어볼 말인데요.”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아까부터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내가?”“네.”“…”단테는 즉시 시선을 돌렸다.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수상한데.”“아니다.”“뭔가 숨기고 있죠?”“없다.”“전하.”엘라가 검지를 세웠다.“문제.”단테의 표정이 굳었다.“지금 무슨 생각했어요?”“…”“5초.”“…”“하나.”단테는 그녀를 바라봤다.“둘.”“…”엘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넷.”그리고.단테가 말했다.“너.”“…”엘라가 멈췄다.“…네?”“네 생각.”“…”“했다.”엘라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단테도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왜.’‘그걸 솔직하게 말했지.’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엘라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제 생각을.”“…”“왜요?”단테는 대답하지 않았다.대답할 수 없었다.자신도 그 이유를 알아내는 중이었으니까.그 순간.짝짝짝.박수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