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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2화

Author: 풍월
전통 가옥 안.

송씨 집안 어른들은 한동안 허경빈을 화제로 삼아 송지아를 놀렸다.

웃음이 잦아들고 나서야 송씨 할아버지가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씨 집안에서 인맥을 동원해 설도윤을 밖으로 빼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냐?”

요즘 송지아는 남자 친구조차 제대로 만나지 못할 만큼 바빴다. 그러니 설도윤이 어떻게 지내는지까지 관심을 둘 여유는 없었다.

송현근이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

“설도윤은 허페파에게 한 차례 두들겨 맞고 저한테도 맞았습니다. 설씨 집안에서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어요. 전에는 타지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다쳤던 부위를 수술해야 한다며 경성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설씨 집안 회사도 요즘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누군가 작정하고 손을 쓴 것 같더군요.”

“그 집안이 얌전히만 있는다면 나도 끝까지 몰아붙일 생각은 없어.”

궁지에 몰린 적은 끝까지 쫓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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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 탐정은 망설이지 않고 의뢰를 받아들였다.그러나 송지아의 일상은 너무나 단순했다. 오히려 지켜보는 사람이 따분함을 느낄 정도로 특별한 일이 없었다.그러던 중 사립 탐정의 눈길을 사로잡는 일이 벌어졌다.전통 가옥을 나온 송지아가 곧장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육아용품 매장으로 들어간 것이다.그녀가 고른 물건은 전부 갓난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하지만 송씨 집안에는 어린아이가 없었다.설마 송지아가 임신이라도 한 건가?아무리 그래도 아직 너무 젊지 않은가.그러나 부유층 자제들의 사생활은 본래 복잡하고 문란했다. 툭하면 혼외자가 나타나는 일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육씨 집안 둘째의 딸도 태어난 뒤에야 집으로 데려온 것 아니었던가?사립 탐정은 송지아가 육아용품을 고르고 계산하는 모습을 빠짐없이 사진으로 남겼다. 드디어 엄청난 특종을 잡았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그러나 기쁨도 잠시, 방심한 사이 송씨 집안의 차를 놓치고 말았다.결국 그는 라비엘 레지던스로 돌아가 다시 잠복하기로 했다.*같은 시각, 송지아는 선물을 들고 육씨 집안을 방문했다.지난번 모임이 끝난 뒤 서은주가 두 차례나 만나자고 연락했지만, 송지아는 일이 너무 바빠 모두 거절해야 했다. 마침 오늘은 시간이 난 덕분에 일부러 육씨 집안을 찾아온 것이다.박명숙은 송지아를 가까이 불러 찬찬히 살펴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찌나 좋은 말을 많이 하던지, 송지아는 쑥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얼마 뒤에 내 생일잔치를 열기로 했단다. 시간 괜찮으면 경빈이와 함께 오렴.”박명숙이 다정하게 초대했다.“네, 꼭 올게요.”송지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송지아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육민찬도 곧장 달려왔다. 그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민정이는 같이 안 왔어요?”그 말을 들은 육수린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하게 구겨졌다.“오빠는 이제 민정이 언니밖에 안 보여? 나는 안 보여?”금방이라도 눈물을 글썽일 듯 가련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안쓰러웠다.“너랑 민정이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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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헌아, 네가 멍청한 게 아니었어. 내가 멍청한 놈이야.]갑작스럽게 메시지를 받은 방주헌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이 녀석, 송씨 집안 공주님에게 계속 외면당하더니 결국 정신이 나간 건가?발작이라도 일으켰는지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욕까지 하고 있었다.한편 라비엘 레지던스 밖에서 기다리던 송씨 집안의 운전기사와 경호원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였다.운전기사가 건물을 올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어떻게 하죠? 아가씨가 오늘 밤은 돌아오실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요.”경호원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대답했다.“대표님께서 얼마나 오랫동안 아가씨의 간택을 기다렸습니까. 냉궁에서 겨우 풀려난 후궁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든 아가씨를 붙잡아 두려고 하겠죠.”*늦게 잠든 허경빈은 아침이 한참 지난 뒤에야 눈을 떴다.그는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옆으로 팔을 뻗었다.그러나 손끝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송지아가 사라졌다.텅 빈 자리에는 희미한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 옆 협탁 위에 작은 메모지만 놓여 있었다.[아빠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뵈러 가자고 전화했어. 먼저 갈게.]메모를 읽은 허경빈의 마음속에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왜 꼭 자신과 자고 나서 도망간 것 같지?어젯밤 자신은 정말 간택을 기다리는 후궁이나 다름없었다. 송지아는 마침내 그를 간택해 놓고, 아침이 되자 볼일이 끝났다는 듯 옷을 챙겨 입고 훌쩍 떠나 버렸다.이제 자신은 다음번 성은이 내려질 때까지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신세였다.그래도 허경빈의 기분은 무척 좋았다.그는 곧바로 송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때 송지아는 경성 외곽에 자리한 전통 가옥에 도착해 뜰에서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었다.송현근은 장인어른과 장기를 두고 있었고, 송씨 집안 할아버지는 곁에서 느긋하게 차를 우리고 있었다.송지아가 통화를 마치자 송현근이 못마땅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또 어느 집 돼지한테 전화가 온 거냐?”“아빠, 경빈이는 돼지가 아니라니까요.”송지아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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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지아가 최근 바쁜 일정 탓에 자신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허경빈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송지아의 부모님이 오늘 밤 집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을 듣자 아예 뻔뻔하게 선택지를 들이밀었다.“오늘은 둘 중 하나야. 네가 여기서 자고 가든가, 아니면 내가 너희 집으로 따라가든가.”고집을 부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황소고집이었다.결국 송지아가 남겠다고 하자 허경빈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금세 눈가가 환해지고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나는 오늘 손님방에서 잘게.”송지아가 말하자 허경빈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침대는 하나밖에 안 샀는데?”그 말은 곧 이 집에서 잘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뿐이라는 뜻이었다.“나 씻고 올게.”송지아는 어색하게 헛기침하며 욕실로 들어갔다.“얼른 다녀와. 나는 다 씻었으니까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을게.”허경빈은 참으로 못 하는 말이 없었다.하지만 정작 홀로 침대에 앉고 나니 그 역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슴이 괜히 들뜨고 손끝에도 힘이 들어갔다.그는 두 손으로 제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허경빈, 진정하자.연애 한 번 못 해 본 모태 솔로라 해도, 직접 경험하지 않았을 뿐 보고 들은 것은 있지 않은가.갈아입을 옷을 가져오지 않은 송지아는 허경빈의 잠옷을 빌려 입었다.잠시 뒤 두 사람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허경빈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송지아도 모르지 않았다.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고 싶은 게 당연했다. 송지아 역시 그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이 아주 싫지는 않았다.다만 처음에는 서로 침대 양 끝에 누워 거리를 두었다.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던 허경빈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조금씩 송지아 쪽으로 다가온 그는 그녀의 반응을 살핀 뒤, 마침내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이불 속은 따뜻했다.하지만 맞닿은 두 사람의 몸은 그보다 훨씬 뜨거웠다.허경빈은 처음에는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가까워지면 된다고.그러나 송지아의

  •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제1189화

    송지아는 허리를 숙여 세세를 품에 안았다.“네 아빠는 어디 있어?”“야옹.”설마 아직 육씨 집안에 있는 걸까?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뒤로 허경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먼저 알려 주곤 했다. 오늘도 육씨 집안에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집에 돌아왔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송지아는 일부러 찾아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깜짝 방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녀는 하랑이를 품에 안은 채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허경빈이 이곳을 신혼집처럼 꾸며 놓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경호원에게 들었다. 직접 와서 보니 과장이 아니었다.장식품부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찻잔까지 모든 물건이 다정하게 한 쌍씩 놓여 있었다. 집 안 곳곳에 마치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갈 날을 기다리는 듯한 흔적이 묻어났다.그 모습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안방 앞에 도착해 있었다.닫힌 문 아래의 가느다란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송지아는 의아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집에 있었던 건가?그렇다면 왜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까.똑똑.그녀는 가볍게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송씨 집안에는 나이 든 어른이 많았다. 평소 집안 어른들의 건강을 염려하던 습관 탓인지, 송지아의 머릿속에는 가장 먼저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혹시 집 안에서 쓰러진 건 아닐까?송지아는 문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런데 마침 안쪽에서도 누군가 문을 열었다. 손잡이를 쥔 채 갑작스럽게 앞으로 끌려간 그녀는 중심을 잃고 방 안으로 휘청거렸다.“어…!”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가 싶더니, 마주 나오던 사람의 품에 정면으로 부딪쳤다.허경빈은 샤워하던 중 바깥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급히 물을 끄고 나왔다. 몸을 대충 헹군 뒤 가운만 걸친 상태였다.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 제 품으로 뛰어들 줄은 몰랐다.느슨하게 여며진 가운 사이로 가슴께의 맨살이 드러나 있었다. 공교롭게도 송지아의 얼굴은 정확히 그곳에 닿

  •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제1188화

    허경빈이 라비엘 레지던스로 이사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송지아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송씨 집안은 이제 막 경성에 돌아와 사업 기반을 넓혀 가는 중요한 시기였다. 송지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두 사람은 그동안 겨우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허경빈은 이따금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 별일도 없으면서 괜히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다.친구들은 이유를 훤히 알고 있었다.송씨 집안의 공주님에게 외면당해 외로운 게 분명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주헌이 단체 채팅방 이름을 바꿨다.[오늘 경빈이는 간택받았나?]화가 난 허경빈은 당장이라도 방주헌을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는 곧바로 반격했다.[희진이는 오늘도 야근하나?]방주헌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여성의 날이 다가오면서 보석을 구매하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 강희진은 열흘 중 아홉 날을 야근할 만큼 바빴다.그녀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다.“연애보다 돈 버는 게 더 즐거워요.”자신이 완전히 뒷전으로 밀렸다고 생각한 방주헌은 혼자 삐쳐 강희진에게 냉전을 걸었다.친구들 앞에서는 제법 비장한 표정으로 선언하기도 했다.강희진이 먼저 달래 주러 오지 않는 이상 자신도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고.그러나 강희진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어느 사설 요릿집의 게살 새우 요리가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방주헌은 언제 삐쳤냐는 듯 쪼르르 달려가 음식을 사다 그녀 앞에 바쳤다.그 모습을 본 육강민 일행은 배를 잡고 웃었다.그 뒤로 친구들은 틈만 나면 그 일을 꺼내 방주헌을 놀려 댔다.*그날은 주말이었다.허경빈은 본가에 들러 부모님과 식사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 육씨 집안으로 놀러 갔다.얼마 후면 육씨 집안의 어른 박명숙이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았다. 가족들은 어떻게 잔치를 열어 드릴지 한창 상의 중이었다.정작 박명숙은 괜한 낭비라며 크게 치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육진국 부부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녀도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허경빈이 도착했을 때, 육수린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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