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 순간, 바닥에 엎드려 있던 하채린의 온몸이 갑자기 경련하기 시작했다.억누르려 해도 참지 못한 고통스러운 신음이 연이어 새어 나왔다. 인기척 하나 없는 텅 빈 방에서 그 소리는 처절하고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누군가 뼈를 한 마디씩 몸에서 뽑아내는 듯한 고통이었다.하채린은 뼛속 깊은 곳에서 파고드는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 미친 듯이 제 몸을 할퀴었다.허경빈은 절망과 무력감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구경하는 방관자처럼 침착하고 무정했다.그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철저히 구경꾼으로 남아 있었다.십여 분이 지나서야 발작이 조금씩 가라앉았다.하채린은 바닥에 엎드린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고, 피부에는 피와 식은땀이 뒤섞여 흘렀다.이미 사람이라고도, 귀신이라고도 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정말 나를 평생 여기에 가둬 둘 생각이야?”몸은 여전히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있었다.“너 미쳤어. 우리 오빠랑 똑같아. 둘 다 미친 인간들이라고! 허경빈, 차라리 한 번에 죽여 줘. 왜 이렇게까지 날 고문하는 건데? 시키는 건 뭐든 할게. 그러니까 제발…”장례식장에서 위세를 부리던 하채린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지금의 그녀는 꼬리를 흔들며 자비를 구하는 개와 다를 바 없었다.“내가 원래 마음이 좀 약하거든.”허경빈은 혀를 차며 말했다.“솔직히 네가 이렇게 된 모습을 보니까 나도 마음이 꽤 아프네…….”하채린은 이를 악물었다.저 개자식이 갑자기 저런 말을 꺼내는 걸 보니, 또 무슨 악독한 짓을 꾸미는 게 분명했다.마음이 약하다고?정말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강제로 약물을 주입해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겪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채린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면, 허경빈이 이토록 미쳐 버릴 줄 알았다면, 결코 송지아를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허경빈이 천천히 다가왔다.하채린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몰골이었다.이미 가장 깊은 고통은 골수까지 파고들어 가슴과 폐를 찢어 놓는 듯했다.지난 며칠 동안 하채린은 살아 있는 시체처럼 버텼다. 약효가 몇 번이고 발작할 때마다 고문과도 같은 통증에 시달리고, 숨이 막혀 죽어 갔다.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없는 어둠만 이어졌다.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뼈를 깎는 고통이 쉴 새 없이 몸을 관통했다.목이 완전히 쉬어 소리조차 내지 못하자, 허경빈은 부하에게 물을 조금 먹이라고 지시했다.겨우 목을 축인 하채린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허경빈… 우리 오빠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네 오빠?”허경빈이 가볍게 비웃었다.“난 정말 너희가 친남매가 맞는지 의심스럽던데. 네가 사라진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왜 찾으러 오지 않을까?”“거짓말하지 마! 오빠는 분명 나를 찾고 있어!”지금 하채린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친오빠뿐이었다.“네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허경빈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그가 평소 널 어떻게 대했는지도 알 테고. 정말 널 구하러 올 것 같아?”“그래도 네 오빠는 한국에 있으니까, 아직 네가 실종됐다는 걸 모르는 걸 수도 있지. 조금 더 기다려 봐.”하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쪽 다리는 절게 되었고 한쪽 눈은 멀었다. 지금은 약효가 발작하지 않았지만, 온몸에는 여전히 지독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입술은 피가 흐르도록 물어뜯긴 상태였다.하채린은 허경빈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흔적을 찾아내려는 듯 그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그러나 끝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오빠가 정말 이토록 무정하고 냉혹하단 말인가?“허경빈,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하채린은 갑자기 무너져 내리며 목 놓아 울부짖었다.“먼저 시작한 건 너야.”허경빈은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너도 들었겠지만, 나 예전에는 꽤 개차반이었어. 지아를 괴롭혔다가 아빠에게 호되게 혼난 적도 있지. 그때 아빠가 그러시더라. 먼저
지난 며칠 동안 하채린의 상태는 빠짐없이 허경빈에게 보고되었다.하채린과 설도윤의 어머니는 한 방에서 먹고 자며 용변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곳에서 설도윤 어머니가 맡은 가장 중요한 일은 하채린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을 때마다 다시 깨우는 것이었다.설도윤이 아직 허경빈의 손에 붙잡혀 있었기에 그녀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이어 갔다.허경빈은 하채린이 이대로 쉽게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그런데 뜻밖인 것은 따로 있었다.하채린이 실종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하이준은 사람을 보내 동생을 찾지 않았다.오히려 그녀가 공급하는 마약에 의존해 살던 중독자들이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그동안 허경빈은 숙소에 머물며 송지아와 통화하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육강민은 허경빈이 무모한 짓을 벌이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그의 시선은 줄곧 권총을 향해 있었다.육강민은 분노로 눈이 뒤집힌 허경빈이 직접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는 군 복무 시절 여러 작전에 투입된 경험이 있었다.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전우가 다음 순간 싸늘한 시신으로 변하는 광경도 목격했다.육강민의 손에도 피가 묻은 적이 있었다.상대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해도, 자신의 손으로 한 사람의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기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허경빈이 직접 사람을 죽이는 순간, 그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육강민은 허경빈만큼은 끝까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를 바랐다.그러나 다행히도 권총은 처음 놓인 자리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그사이 서은주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적이 있었다.육강민은 그저 출장 중이라고만 말했지만, 눈치가 빠른 서은주는 어느 정도 사정을 짐작한 듯했다.“며칠 전에 지아 씨가 우리 집에 왔었어요. 민정이를 데리고 민찬이와 놀러 왔더라고요.”“그래?”육강민의 담담한 목소리에서는 별다른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경빈 씨와는 요즘
그는 정말 소년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몸에 잘 맞는 얇은 흰색 셔츠를 입고, 단추를 몇 개 풀어 둔 모습은 더없이 깨끗하고 산뜻해 보였다.그러나 창백한 조명이 새카만 눈동자에 스며드는 순간, 그 빛은 사람을 베어 낼 듯 날카롭고 서늘한 칼날로 변했다.“허, 허…”하채린의 입안에는 비릿하고 달착지근한 피 맛이 가득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피 때문에 허경빈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왜 그래?”허경빈이 눈부시게 웃었다.그러나 눈에는 조금도 웃음기가 없었다.“며칠 전 장례식장에서는 먼저 아는 척까지 하더니, 벌써 내가 누군지 잊었어? 아직 젊은데 기억력이 왜 이렇게 나빠?”사악하고도 위태로운 미소였다.하채린은 이런 모습의 허경빈을 본 적이 없었다.분명 웃고 있는데도 지독하게 위험해 보였다.“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하채린은 아직도 피가 흐르는 다리를 붙잡았다.허경빈은 쓰레기라도 내려다보듯 그녀를 싸늘하게 훑어보았다.“네가 한번 맞혀 봐.”그가 웃으며 말했다.하채린의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쳤다.설도윤의 어머니가 이곳에 나타난 것도 전부 허경빈 때문이었다.그가 자신을 쫓아 외국까지 온 것이다.뒤에서는 설도윤 어머니의 처절하고 기괴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하채린은 달아날 틈을 찾으며 허경빈과 함께 온 사람들을 빠르게 살펴보았다.현지 폭력 조직에 속한 자들처럼 보였다. 돈만 받으면 살인이나 강도질도 서슴지 않을 부류였다.그들 가운데에는 하채린도 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육강민이었다.“육, 육 대표님.”육강민이 무심하게 그녀를 흘겨보았다.본래도 사람을 압도하는 기세가 강한 남자였다. 그가 그저 눈길 한 번 주었을 뿐인데도 숨 막히는 압박감이 덮쳐 왔다.하채린은 간이 떨릴 만큼 두려웠다.그 순간, 설도윤의 어머니가 다가왔다.하채린은 도망치려 했지만 허경빈의 뒤에 서 있던 건장한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다.설도윤의 어머니는 하채린의 팔을 붙잡고 또다시 몸싸움을 벌였다.젊은 하채린이라면 본래 나이 든
설도윤의 어머니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한동안 하채린의 뺨을 후려치던 그녀는 금세 숨이 차올랐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머리카락을 몇 번이나 사납게 잡아당겼다.하채린은 머리를 감싸 쥐고 아프다며 비명을 질렀다.“미쳤어요?”마침내 반격에 나선 하채린이 그녀를 힘껏 밀쳐 냈다.“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 꼴이 됐겠어?”설도윤의 어머니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미친 여자 같으니라고!”하채린은 맞은 뺨을 만졌다가 아픔에 연신 신음을 흘렸다.“네가 송지아를 해쳤고, 나를 협박해서 온유란까지 죽이려 했잖아! 전부 네가 시킨 일이야. 아니라고 잡아뗄 셈이야?”설도윤의 어머니는 두 눈이 핏발로 붉게 물든 채 등을 잔뜩 구부리고 있었다.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 같았다.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한번 상대를 물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을 짐승처럼 보였다.하채린이 차갑게 비웃었다.“증거는 있어요?”“없어.”“그럼 함부로 지껄이지 마세요.”하채린은 몸을 일으켰다.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새하얀 벽과 창문 하나, 침대 하나가 놓인 단출한 방이었다. 한쪽에는 의료용 기구를 실은 이동식 카트도 있었다.아무리 보아도 병원 같았다.“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너는 외국에 숨어서 호의호식해?”설도윤의 어머니는 눈이 찢어질 듯 부릅뜨며 분노했다.“잘 들어요. 우리 오빠는 힘 있는 사람이에요. 또 감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어내면, 오빠에게 말해서 당신을 바다에 던져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릴 거예요.”하채린은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밀어냈다.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하채린은 미처 보지 못했다.뒤에 남겨진 설도윤의 어머니가 의료용 카트 위에 놓인 봉합사 제거용 가위를 움켜쥐었다는 것을.“여기는 대체 어디야? 왜 아무도 없는 거야?”하채린이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기척을 느낀 하채린이 반사적으로 돌아보는 순간, 설도윤의 어머니가 가위를 치켜든 채 달려들었다.
허경빈은 육강민의 손에서 권총을 건네받아 무게를 가늠하듯 손바닥 위에서 몇 번 움직여 보았다.그러고는 육강민을 향해 웃었다.“역시 사격장에서 쓰던 것과는 다르네. 손에 잡히는 느낌부터 완전히 달라. 정말 그 여자를 죽일 생각이야?”육강민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형수님이 지아처럼 됐다면 너는 어떻게 했을 것 같아…?”육강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난 그저 지아와 평범하게 연애하고 싶었어.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함께 밥을 먹고 영화도 보면서 다른 연인들처럼 살고 싶었을 뿐이야.”허경빈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난 하채린을 먼저 건드린 적도 없어. 그 여자가 그런 꼴이 된 것도 전부 자업자득이잖아. 그런데 왜 굳이 지아까지 노린 거야?”허경빈도 한때는 그 이유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다.그러나 이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파렴치한 인간들의 생각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허경빈은 손에 든 권총을 천천히 쓸어내렸다.“우린 서로 건드리지 않고 살 수도 있었어. 먼저 손을 댄 건 그 여자야. 이 나라에서는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는 일이 흔하다던데. 워낙 치안이 엉망이니까.”*육강민은 말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차가 도심으로 들어섰을 때, 이 도시의 화려하고 떠들썩한 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허경빈은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휴대전화를 뒤적이더니, 운전사에게 유명한 관광 명소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배고프지? 우리 먼저 뭐라도 먹자.”“난 안 배고파.”육강민에게는 한가롭게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먹기 싫으면 내가 먹는 거라도 구경해.”육강민은 할 말을 잃었다.허경빈이라면 정말 자신을 옆에 앉혀 놓고 혼자 태연하게 밥을 먹을 인간이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허경빈은 육강민에게 자신의 사진까지 몇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이후에는 야시장을 몇 바퀴나 돌아다니며 송지아에게 줄 선물을 사겠다고 했다.“송지아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