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가장 웃긴 건 그다음이었다.앞차 운전자는 뒤에서 들이받혔으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려 상태를 살펴본 그는 하이석의 차창을 두드리며 연신 내리라고 손짓했다."안에서 죽은 척하지 말고 나오세요! 이미 경찰도 불렀습니다. 좋은 차 타시잖아요. 보험도 있으실 테니까 내려서 이야기 좀 하시죠.""아니, 말이라도 해 보세요. 설마 음주운전이라도 한 겁니까?"잔뜩 흥분해 소리를 질렀지만 차 안은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그때서야 문이 열리고 하이석이 내렸다.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아이가 생겼다. 그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앞차 운전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아니... 내 차를 박아 놓고 웃는다고?'순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얼굴을 제대로 확인한 순간, 그 기세는 순식간에 꺾였다.하이준 사건 이후 하이석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그제야 앞차 운전자는 식은땀을 흘렸다.방금 전, 차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겁쟁이. 찌질한 놈.'온갖 욕은 다 해 버렸던 것이다.하이석은 차분히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제 과실이 맞습니다. 피해는 모두, 아니 그 이상으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시간까지 빼앗아 정말 죄송합니다."예상 밖으로 공손한 태도에 앞차 운전자는 오히려 당황했다.하이석은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한 뒤 다시 말했다."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합니다. 곧 사고 처리를 맡을 사람이 올 겁니다. 혹시 처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언제든 제게 연락 주십시오."그는 명함 한 장을 건넸다.앞차 운전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이석은 길가에서 택시를 붙잡아 그대로 회관으로 향했다.택시에 올라탄 뒤에도 머릿속은 여전히 멍했다.아버지가 된다.처음 겪는 일이라 경험도 없었다.답답한 마음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헤쳤다.아이가 생기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지?기저귀와 젖병, 그리고 온유란이 먹을 영양제도 사야 하고.늘 침착하던 하이석도 그날만큼은 완
"정말 임신한 거예요?"연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온유란을 바라봤다.온유란도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유란 이모 배에 아기가 생긴 거예요?"연우진은 신기하다는 듯 온유란의 배를 빤히 바라봤다.아직은 납작한 배라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방주헌이 장난스럽게 웃었다."그래, 네 신부가 오는 거지. 좋냐?"평소에도 이런 농담을 자주 하던 탓에, 연우진은 귀까지 새빨개진 채 콧방귀를 뀌었다."나쁜 삼촌!"연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육남혁을 바라봤다."신부요?"육남혁이 안경을 고쳐 쓰며 웃었다."연우진이 유란 씨를 엄청 좋아하잖아요. 예전에 농담으로, 하이석이 딸을 낳으면 연우진이랑 약혼시키자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냥 농담이긴 하지만."하이석은 겉보기에는 신사 같지만 상대하기는 꽤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워낙 가까운 사이라 사돈까지 된다면 육남혁은 정말 수명이 줄어들 것 같았다.요즘 세상에 누가 정혼을 시킨단 말인가. 아이들도 아직 어린데. 그저 웃고 넘길 농담일 뿐이었다.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뒤, 모두의 시선이 다시 온유란에게 향했다.방주헌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이 일, 아직 하이석한테는 말 안 했죠?"온유란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이요.""그럼 지금 당장 전화해요!"방주헌은 들뜬 얼굴로 재촉했다."빨리 오라고 해요. 굼뜨게 뭐 하는 건지."그러더니 온유란에게 눈짓을 했다.임신 사실을 직접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분위기가 여기까지 온 이상, 온유란도 더 미룰 수는 없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하이석에게 전화를 걸고 스피커폰으로 바꿨다.몇 번 신호음이 울리자 곧 전화가 연결됐다."유란아."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하이석의 목소리는 다정하고도 애틋했다.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후, 두 사람의 사이는 부쩍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호칭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그 한마디만으로도 방 안 사람들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연위성은 고개를 숙인 채 피식 웃었다.정말 닭살 돋는 사람이었다.온
서은주는 검사 결과지를 한 번 훑어본 뒤, 다시 온유란을 한참 바라봤다.그 시선이 어딘가 묘했다.온유란은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저... 설마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아이가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그녀는 모든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서은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내일 아침 하이석 씨랑 같이 병원에 오세요. 공복으로 오셔야 하고, 소변도 참으셔야 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온유란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게 한마디를 덧붙였다.*회관.서은주가 온유란을 데리고 혈액검사를 받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된 탓에, 두 사람이 룸에 도착했을 때는 하이석을 제외한 모두가 이미 자리에 나와 있었다.연위성과 강정한도 와 있었는데, 육강민 일행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한편 방주헌은 늑대 흉내를 내며 육수린을 쫓아다니는 중이었다."잡으러 간다!"깔깔 웃음을 터뜨린 육수린은 방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서은주를 발견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갔다."엄마!"서은주의 뒤로 쏙 숨은 아이는 이번엔 온유란을 보더니 두 팔을 활짝 벌렸다.안아 달라는 뜻이었다."이모 괴롭히지 마. 엄마가 안아 줄게."서은주가 딸을 안아 들려 했지만 육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끝까지 온유란만 찾았다.서은주가 웃으며 말했다."이모 몸이 좀 안 좋아."그 한마디에 방 안의 시선이 일제히 온유란에게 쏠렸다.연주가 먼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어디 아픈 거예요?"온유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그녀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물었다."하이석 씨는 아직 안 왔어요?"방주헌이 대답했다."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늦는대요. 다리 다친 뒤로 회사에 거의 못 나갔잖아요. 그 사이 하백규 그 인간이 회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놔서, 다시 정상 궤도에 올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그러면서 손뼉을 쳤다."우리 먼저 주문해요. 하이석이 오면 바로 먹으면 되잖아요."모두 자리에 앉자, 연우진이 곧장 온유란 곁
두 사람은 현관에서부터 입을 맞추기 시작해 그대로 침실까지 이어졌다.가는 길마다 옷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졌다.오랜만에 서로를 품에 안아서였을까.하이석은 평소보다 훨씬 조급했고, 손길도 거칠 만큼 적극적이었다."조금만 살살..."온유란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하이석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쥔 손끝은 끝내 힘을 늦추지 못했다.그녀의 하얀 피부 위로 붉은 흔적이 하나둘 남았다.온유란은 작은 목소리로 몇 번이고 그만하라며 애원했지만 하이석은 끝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아직 해도 채 지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이미 몇 번이나 서로를 끌어안은 뒤였다.하이석의 체력은 끝이 없는 듯했다.그나마 온유란을 배려해 자제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뜨거운 열기는 밤이 새도록 이어졌을지도 몰랐다.목이 마르다며 물을 찾는 온유란에게 하이석이 컵을 건넸다.물을 머금은 입술은 촉촉하게 젖어 은은한 윤기를 띠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머금었다.입맞춤이 이어지고 다정한 손길이 스쳐 갔다.목덜미와 귓가를 스치는 그의 뜨거운 숨결만으로도 몸은 다시금 쉽게 달아올랐다.구겨진 침대 시트는 또 한 번 두 사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었다.감정이 깊어질수록 숨은 점점 가빠졌고, 온유란은 거센 물살에 휩쓸린 나뭇잎처럼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그 모든 흐름은 오직 하이석을 따라 흘러갔다.*육씨 저택.연위성은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있었다.연우진은 삼촌을 보자마자 달려와 안아 달라고 조르며 매달렸고 모든 것이 예전의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다.하지만 연주는 오빠를 바라보다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이번 작전으로 경찰은 큰 성과를 거뒀고 연위성은 모두가 인정하는 공로자가 되었다.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다.그러나 둘만 남았을 때 연주는 조용히 물었다."오빠... 그때 많이 아팠어?"연위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안 아팠어."그 한마디에 연주의 눈물이 왈
하이석이 단체 대화방에 답장을 남겼다.[좋아. 날짜는 나중에 맞추자.]방주헌: [근데 내 연기 어땠냐?]하이석: [내 묘지까지 미리 사뒀다면서?]순간 방주헌이 얼어붙었다.애초에 전부 연극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하이석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난 쓸 일 없으니까, 그 묘지는 네가 써.]허경빈: [우리 방방이, 잘 간직했다가 나중에 너 써.]방주헌은 그대로 폭발했다.단체 대화방에는 순식간에 온갖 분노 이모티콘이 도배되기 시작했다.*집에 도착한 하이석은 부모님과 온유란뿐 아니라 유주만과 도정숙까지 모두 와 있는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무사히 돌아온 그를 본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실종 소식을 들었을 당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 흔적은 아직도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이제야 얼굴을 들고 들어오냐."하정현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너 때문에 네 엄마는 쓰러지기까지 했고, 유란이는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사람 꼴이 아니게 말랐다."그는 이를 악물었다."그런데 넌 죽은 척이나 하고 있었어? 누가 그런 짓을 하래?"하이석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연위성 아이디어였습니다."하정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연위성에게는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하이석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저에게 협조해 달라고 하길래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에 연위성을 집으로 불러 드릴 테니까 직접 따지시죠.""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하정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내가 걔한테 어떻게 따져!"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다 네 잘못이지, 남 탓하지 마!"회초리가 그대로 하이석을 향해 날아갔다."네가 사라진 동안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기나 해? 이 늙은 몸 끌고 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평소 같았으면 하이석은 가볍게 피했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퍽.회초리가 그대로 그의 몸에 떨어졌다."하정현!"현정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이준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애초에 그는 연위성을 단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경찰이었던 남자. 죽이지도, 그렇다고 살려 두지도 않은 채 끝없이 고통만 안겨 준 이유는 하나였다.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한 사람, 그것도 경찰의 생사를 손안에 쥐고 흔든다는 우월감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감이었다.그 긴 세월 동안 연위성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그를 다시 국내로 불러들인 것도 치밀한 계산 끝이었다.연위성을 이용해 육씨 집안과 하씨 집안을 이간질할 생각이었다.오랫동안 자신이 길들여 온 사람인 데다, 손에는 이미 지울 수 없는 피까지 묻어 있었다.설령 경찰로 복귀한다 해도 누가 그를 믿겠는가.수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경찰이었는데.그래서 하이준은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연위성은 끝까지 자신의 손안에 있는 말이라고 믿었다.하지만 그것은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낸 것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다.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살가죽이 벗겨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쇄골마저 꿰뚫리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경찰이라는 신념만큼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도대체 무엇을 위해?가족이 모두 무너져도,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져도, 그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단 말인가?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 갈등도, 죽음을 가장한 연극도. 모든 것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한 미끼였다.자신을 어둠 속에서 끌어내기 위한 것.결국 그는 가장 충직한 부하를 잃었고 하백규도 잃었다. 회사 곳곳에 심어 둔 자신의 사람들도 모두 걷어내졌다.심지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자금까지 동결됐다.정말 완벽한 한 편의 연극이었다.하이준은 언제나 믿어 왔다.이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고.친구도, 연인도. 결국은 모두 배신할 존재라고.하지만 저 사람들은 달랐다.질투가 날 만큼 운이 좋았다.이제 더 이상 그는 그림자 속에 숨어 움직일 수 없었다.모든 것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 이상, 자신이 쥐고 있던 가장 큰 무기는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