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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Author: 일설연우
화살에 맞은 뒤, 교먹은 자신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녀는 이렇게 죽어버리는 것도 차라리 속 시원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통이 그녀를 깨워내었다.

눈을 뜬 교먹은 자신이 낯선 산속 동굴에 누워 있음을 알았다.

사방이 돌벽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그녀는 허술한 나무판자 침대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때, 귀가에 노쇠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맹 소장군, 깨어났군…”

교먹은 뒤통수 너머에 누군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얼굴은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온통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웃음 띤 얼굴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교먹은 본능적으로 물었다.

“당신이 저를 구했나요?”

그렇겠지, 언니는 원래 많은 사람을 구해왔던 사람 아닌가!

이 사람 역시 그 장 공주처럼 그녀를 맹 소장군으로 착각하고, 기어코 살려내려 한 것이리라.

그때, 그 남자의 손이 교먹의 가슴에 닿았다.

그녀는 싸늘한 한기를 느꼈다.

이어지는 것은 섬뜩한 웃음소리.

“과연 수많은 전장을 헤쳐 나온 맹 소장군답소. 이 몸뚱이, 마치 쇠로 만들어진 것 같구려.”

“치명적인 화살에 맞고도 이렇게 살아남다니 말이오.”

그날 밤, 그가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이미 숨이 끊어지고 맥박도 멈춘 상태였다.

그는 그녀의 몸과 머리를 갈라내 이 비범한 생존력을 탐구하려 했는데, 뜻밖에도 그녀가 갑자기 살아난 것이었다.

살아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는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희귀한 보물을 발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교먹은 그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불안을 느꼈다.

“당신은… 누구죠?”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소.”

남자는 주름진 손으로 교먹의 턱을 들어 올리며, 기괴한 자세로 그녀를 올려다보게 했다.

“중요한 건 맹 소장군, 드디어 당신이 내 손에 떨어졌다는 것이오.”

“하하… 당신이 죽인 우리 양 나라 사람들의 원한, 이제 당신이 갚아야 할 차례요!”

“당신은 나에게 고통받다 죽을 운명이오!”

그는 이성을 잃은 듯 미친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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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궐 밖 어느 저택.봉장미는 그곳에서 그리운 언니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안으려던 순간, 언니의 불러진 배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언니, 이게 무슨...?" 봉장미는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봉구안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임했어."봉장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정말?!"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자매는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만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할 말이 정말 많았다.옆방.소욱과 송려가 함께 있었다. 송려의 안색이 예전 같지 않았고, 눈 밑에는 검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근심이 얼굴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소욱이 눈치 없이 물었다. "황후의 지아비 역할은 어떠하냐?"송려는 고개를 떨구며 슬픈 표정으로 자조했다. "신은 재주가 없어 그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소욱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저렇게 우울해 하지? 혹시 봉장미가 변심해서 새 남자를 들였나?’송려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욱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폐하,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이번에 황후마마께서 오신 이유가 황제의 자리를 맡기 위함입니까?"소욱은 부정하지 않았다. 송려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렇게 된다면 좋았다. 그러면 장미가 그와 함께 남제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황제가 생각나 조심스레 물었다."폐하, 어찌하여 서여국까지 오셨습니까?"나라는 하루도 군주 없이 지낼 수 없는데, 황제께서 서여국에 오시면 남제에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어찌할지 걱정됐다.소욱은 눈빛이 깊어지며 말했다. "부부는 한 몸이니까."국사와 관련된 일, 예컨대 그가 소주와 정국의 반란을 해결하러 왔다는 등의 이야기는 굳이 송려에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송려는 망설이다 결국 조언을 건넸다. "폐하, 이 황부의 역할은 확실히 쉽지 않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권합니다."소욱의 칼 같은 눈썹이 찌푸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49화

    봉장미는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눈앞의 두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와 지아비였다.누구보다 그녀의 편이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믿지 않으니 그녀는 더욱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군주란 정치에 힘쓰는 자이니, 두통쯤이야 대수로운 일인가요?""고모님이 이 자리에 계셨을 때를 기억해보세요.""수많은 상처를 입으시고,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하셨어도 단 한 번도 이 자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왜 저더러 포기하라 하시나요?""언니가 대역을 준비했다는 건 알지만, 전 대역보다 더 잘할 수 있단 말이에요.""왜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요?""두 분은 정말 제 마음을 모르세요…""언니는 멀리 계시니 지금 서여국이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 모르시죠.""소주와 정국은 현재 많은 세작들을 보내고 있어요. 궁중은 이미 그들의 침투를 받았고, 또한 그들은 이미 수만 군대를 주둔시켜 서여국을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어요.""서여국의 흠이 있다면 바로 제가 황제의 자리에 앉은 것이겠죠.""만약 그들이 제가 가짜라는 것을… 제가 남제의 황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즉시 군대를 보낼 거예요! 대역만으로는 절대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그녀는 원래 성격이 온화하고 순종적이라 보통은 남이 무슨 말을 해도 반박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번만큼은 황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특별히 고집을 부렸다.송려는 왜인지 그녀가 낯설게만 느껴졌다.분명 황후를 모방해야 했기에 장미의 성격이 변한 것이라 생각하였다.송려는 그런 봉장미의 모습에 실망감이 들었다."그럼 나는? 송가는? 이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 거야?"그는 이 서여국에서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원래 자신은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으니 어디서든 자신의 큰 뜻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의술로 세상을 구제하고, 병을 치료해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그의 꿈이자 삶의 목표였다.하지만 이 서여국에 온 후에야 그는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한편으로는 황후의 지아비로서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48화

    5월 초, 차가운 겨울이 가시고 꽃이 피는 계절이 다가왔다.봉구안과 소욱은 서여국으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가볍게 채비하여 가는 길에 각 성읍을 순시했다. 열무신은 동산국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탈옥한 손추를 체포하고 약쟁이단을 뿌리째 뽑기 위해서였다. ...... 서여국. 봉장미는 이미 언니의 편지를 받았다. 대역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서여국의 국사를 대역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해, 여전히 국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첫째는 대역이 실수하여 화를 부를까 걱정되었고, 둘째로는 서여국의 일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서여국 황실의 혈통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이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송려는 여러 번 그녀를 설득하며 함께 남제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진실을 밝히지는 못했다.그녀의 옛 병이 재발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날 조회를 마친 후, 봉장미는 갑자기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그녀는 손에 든 상소문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폐하!" 그녀 곁에 있던 송려는 상황을 보자마자 즉시 앞으로 나와 그녀를 부축했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궁녀가 즉시 태의를 부르려 했지만, 그가 저지했다. "태의는 부를 필요 없다! 폐하의 몸 상태는 내가 가장 잘 알아." 말하면서 그는 봉장미를 침상으로 안아 눕히고, 곧바로 침을 놓기 시작했다. 봉장미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당신... 왜, 제 머리가... 이렇게 아픈 거죠.""마치 폭발할 것 같아요... 정말 너무 아파요..." 그녀의 몸이 아프면, 송려의 마음도 아팠다. 은침을 잡은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마... 괜찮을 거야. 나를 봐,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는 그녀를 위로하였다. 잠시 후 온 머리에 땀이 흘렀다. 봉 부인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딸이 이토록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분노와 급한 마음이 섞였다. 당시 그 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47화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46화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45화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44화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43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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