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혜궁.정비는 평소의 온화하고 단정한 모습과 달리,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꽃봉오리를 쥐어 부숴버렸다.“알아냈느냐.”추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아래로 깔았다.주인의 분노를 느낀 그녀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백성들이 등문고를 울리며 황후 폐위를 청했지만, 폐하께서는…”그녀는 몰래 정비의 얼굴을 흘끗 보고, 빠르게 시선을 내렸다.“폐하께서는 여론을 무릅쓰시고 민심에 따르지 않으셨사옵니다.”정비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그녀의 웃음은 지극히 온화했다.“폐하께서는 정말 황후를 감싸시는구나.”“마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정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금오가 이미 지고, 날이 저물고 있었다.“폐하가 황후를 지키고 싶으셔도, 수많은 백성과 장병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구나.”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맹 소장군의 죽음은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적어도 북방 지역과 북대영에는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터였다.거기 있는 병사들은 전부 맹교먹의 부하였다.그들이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한다면, 북방은 위태로워질 것이 분명했다.그 소식이 만약 북방에 닿기라도 한다면… 폐하께서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못할 것이다.…영화궁.밤 자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봉구안은 궁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온몸에 밤행복을 걸치고 내전으로 들어섰는데, 침상에 앉아 있는 소욱을 발견했다.그는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돌아올 줄 알았느냐?”입으로는 엄하게 꾸짖었지만, 그의 눈빛은 은연중에 그녀가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봉구안은 그에게 가볍게 예를 표했다.“확인할 일이 많아 시간이 늦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아직 쉬지 않으셨사옵니까?”소욱은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황후가 이렇게 늦게까지 안 돌아오는데, 내가 어찌 잠들 수 있겠느냐?”봉구안은 공손하게 대답했다.“겸사겸사 최근 소문을 조사했는데, 모용가와 관련이 있는 듯 하옵니다.”소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모용가가?”그는 눈을 들어
오후.내시가 황제의 명을 받고 흥혜궁으로 가서 교지를 전했다.추홍은 정비와 함께 교지를 들을 준비를 하며 좋은 일이 있을 거라 기대했다.그러나 곧 두 사람의 얼굴은 경악과 당혹감으로 물들었다.“...그러므로 정비의 봉호를 박탈하고, 육궁을 협조하는 권한을 거두며, 귀인으로 강등한다. 즉시 주전에서 이거하도록 하라!”“그럴 리가 없사옵니다!”추홍은 무의식적으로 소리쳤다.“폐하께서 마마를 이렇게 대하실 리가 없습니다!”마마께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폐위당하실 수 있단 말인가!정비는 명문가의 자손답게 품위를 유지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 교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황제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절을 올렸다.그러나 교지를 전한 내시가 떠나자 그녀는 갑자기 옆의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닥을 응시했다. 손은 성지를 꽉 쥔 채로 떨렸다.추홍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마마,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폐하께서는 분명 마마를 각별히 아끼셨는데... 어떻게 마마의 빈위를 폐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주인과 하인의 운명은 하나로 연결된 법. 추홍은 정비보다 더 조급하고 불안했다.정비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그녀의 눈에는 쓰라림과 함께 희미한 쓸쓸함이 비쳤다.빈에서 귀인으로 강등되는 것은 지극히 간단한 일.하지만... 적어도 이유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추홍은 평소의 마마와 다른 모습에 당황하며 금세 눈물이 맺혔다.“마마, 제가 지금 만수궁으로 가서 태황태후께 알려드리겠사옵니다!”“태황태후께서는 마마를 그토록 아끼시니, 폐하께서 마마를 폐위시키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으실 것이옵니다!”…만수궁.태황태후는 자리에 앉아 얼굴에 분노와 실망을 띠고 있었다.소욱은 그녀의 왼편에 앉아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주변의 궁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태황태후는 소욱을 향해 분노하며 말했다.“나는 동의할 수 없다! 네가 꼭 정비를 폐하려 한다면, 차라리 나도
“마마…”연상이 돌아왔다.그녀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했다.봉구안의 지시대로 도망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누를 끼칠까 두려웠다.하지만 봉구안의 곁에서 시중을 들며 함께 고난을 겪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마마, 폐하께서…”연상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말하려 했지만, 봉구안은 차갑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이미 알고 있다.”소욱이 그녀의 신분을 숨긴 일로 연상을 탓하지 않을 것이기에, 연상이 궁에 머무르는 것도 무방했다.하지만 연상은 여전히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조금만 더 빨리 도망쳤더라면…”“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봉구안이 담담히 말하며, 문밖에 서 있는 호위병을 바라보았다.그는 소욱의 사람이었고, 연상은 그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왔다.최 상궁은 연상이 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불편했다.저 아이가 돌아오면 자신이 봉구안의 신임을 잃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최 상궁은 더욱 서둘러 봉구안의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마마, 이틀 후가 화신제를 여는 날이옵니다. 제가 준비한 것들을 한 번 보시겠사옵니까?”연상이 호기심에 물었다.“화신제요? 마마, 그게 무엇인가요?”봉구안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사월 초, 민간에서는 꽃의 신을 기리는 풍습이 있다.”“이번 폐하께서 백성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크게 준비하셨지…”연상은 신기하다고 느꼈지만, 화신제보다 더 궁금한 것은 봉구안이 과연 궁에 머물기로 결심한 것인지였다.…소욱은 모용선을 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모용 가문에도 벌을 내렸다.그녀의 부친 모용회는 관직이 강등되어 변명할 기회조차 없이 황성을 떠나야 했다.만수궁.모용선은 태황태후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글썽였다.태황태후는 그녀를 때릴 수도 없고, 애가 타며 나무랐다.“애당초 너는 총명한 아이라고 여겼는데…”“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너 스스로를 망치고, 가문까지 연루시켰다!”“선아, 정말이지 실망스럽구나!”“네 사
형방 안에서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폐하! 신은… 신은 결코 적국에 투항하거나 나라를 팔아넘기지 않았사옵니다! 신은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았으며, 단지 남제의 강산과 사직을 위해… 아! 신은 진심으로 맹 소장군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했사옵니다!”“폐하, 신도 억울합니다…”나무틀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맹교먹이 죽은 후 몰래 사건을 조장했던 몇몇 인물들이었다.공공연히 조정에서 황제를 비난하며 충신을 해친다고 주장했던 이들은 단지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숨어서 이간질하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린 이들은 진정한 악인이었다.이미 이들을 잡아들였으니, 쉽게 놓아줄 리 없었다.남제의 조정과 민심을 어지럽힌 자들은 틀림없이 불충의 마음을 품었으며,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이익을 챙겼을 가능성도 높았다.하지만 며칠 동안 문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오늘, 소욱이 직접 형방을 찾았다.진한길은 공손히 절하며 보고했다.“폐하, 이미 혹독한 형벌을 가했으나 그들은 끝까지 자백하지 않고 있사옵니다.”소욱의 날카롭고 깊은 시선이 그 상처투성이의 억울함을 외치는 자들을 스쳐 지나갔다.그들은 황제를 알현하는 기회를 얻어 입을 모아 변명하기 시작했다.“폐하, 신의 충심은 하늘이 알고 있사옵니다… 신은 단지 폐하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길 바랐을 뿐입니다. 맹 소장군은 충신이었사옵니다…”“폐하, 신이 폐하가 충신을 해쳤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은 단지 폐하가 천하인에게 해명을 하길 바랐을 뿐입니다… 신은 결코 반역할 마음이 없었사옵니다…”“폐하, 만약 신을 믿지 않으신다면,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하지만 신은 죽더라도 떳떳하게 죽고 싶사옵니다!”소욱의 잘생긴 얼굴은 한층 더 냉혹해졌다.그는 천천히 불가마 옆으로 걸어가 뜨겁게 달궈진 인두를 들어 올리며 평온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너희가 스스로 결백과 충심을 자처한다면, 짐은 너희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친 그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미소를 지었다.그들 모두
만수궁.어의들은 머리 위에 칼이 매달린 듯 조심스레 아뢰었다.“폐하, 태황태후께서 뇌졸증으로 인해 갑자기 쓰러지셨사옵니다. 상황이 매우 위중하옵니다!”소욱은 이 말을 듣고 급히 내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의 얼굴은 유난히 어두웠다.세상에 남은 혈육이 많지 않은 그였다.내전에서는 태황태후가 허약한 몸으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그녀의 눈빛은 슬픔과 미련으로 가득 차 있었다.“황상…”소욱은 곧장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할마마마.”그는 참으려 해도 억누르기 힘든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태황태후는 갑작스러운 병환 탓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한 마디를 꺼내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그녀는 온 힘을 짜내듯 목에 핏줄을 세우며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말했다.“나는… 늙었고, 쓸모없어졌구나.”“넌 어릴 적부터 참 고생이 많았다… 나는 그저, 네 곁에 진심으로 널 아껴주는 이가 있길 바랄 뿐이야. 그리고… 아이도 있길…바랐…”“황상도 사람인데, 가정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황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단다…”소욱의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갔다.“할마마마, 더는 말씀 마십시오.”그는 손에 힘을 주며, 마치 이렇게 하면 염라대왕의 손아귀에서 그녀를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처럼 애써 보였다.“아니… 나는 꼭 말해야겠다. 나는 이후로 너와 말할 시간이 없을까 봐 두렵구나…“황상, 선이의 일은 나도 알고 있다.”“허나 너는 나를… 속이면 안 됐었어!”소욱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의 눈에는 서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태황태후는 이어 말했다.“나의 생도 이제 끝에 다다랐구나… 황상, 아니 소욱… 나의 착한 손자야.”“나에게 딱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다. 나를 봐서라도 선이의 뜻을 이뤄주렴. 안 되겠니?”소욱은 천천히 눈을 들어 태황태후를 응시했다.“할마마마께서는 분명 오래도록 장수하실 것입니다.”그의 얼굴은 깊은 연못처럼 평온해 보였지만, 그 안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었다.그가 이 말을 한 지 얼
“시침이라 하였느냐? 내게 잘못 전한 게 아니고?”“태황태후께서 이렇게 위중하신데, 폐하께서 어찌…”유사양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귀인께서 잘못 들으신 것이 아니옵니다. 노비가 잘못 전한 것도 아니옵니다. 이제 돌아가 준비하시옵소서.”모용선은 한껏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전각의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태황태후께서는 지금 어떠신가? 지금 뵙지 못하면, 돌아가서 마음이 놓이지 않을 듯하네. 한번만 폐하께 말씀 좀 전해줄 수는 없겠느냐.”그녀는 마치 시침 명령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태황태후의 병환에 대해서만은 마음이 온통 쏠려 있는 듯했다.유사양은 차갑게 대답했다.“폐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으니 귀인께서도 잠시 기다리시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제가 더 말해봐야 무의미하옵니다.”모용선은 그제야 물러섰다.만수궁 밖, 궁녀 추홍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귀인, 폐하께서 잠시 후에 귀인을 총애하시겠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옵니까!”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지금 태황태후께서 병환으로 누워 계시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귀인이 총애를 받는다면, 다시 빈으로 봉해지는 날도 멀지 않았을 터였다!“귀인마마, 그 유사양은 정말 개눈으로 사람을 보는 자이옵니다! 예전에 마마께서 정비셨을 때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첨하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건방지게 굴 수 있단 말입니까! 빈의 호봉을 다시 되찾으시면, 그들은 분명 후회할 것이옵니다.”하지만 모용선은 의외로 조용했다.추홍은 몰랐다. 그녀는 한 번도 진짜로 시침을 한 적이 없었다.오늘이 그녀의 첫 시침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그녀는 이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이번 기회에 황실의 자손을 임신해야 했다.그렇지 않다면 태황태후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될 터였다…모용선은 빈의 신분으로 강등된 후에도 여전히 흥혜궁에 머물렀지만,주전이 아닌 서쪽
소탁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우선 봉구안을 데리고 한 주점으로 향했다.봉구안은 의아했다. 사람을 이렇게 경계하지 않다니?“이 정도면 충분히 먹을 수 있겠습니까?”소탁은 그녀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그녀가 왜 그 집에 들어가려 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친구처럼 함께 식사를 나누려는 듯했다.심지어 그녀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봉구안은 그를 대충 훑어보았다.그는 평범한 옷차림에, 옷에는 군데군데 헝겊 조각이 덧대어져 있었다.그를 보고 누가 그가 과거 남제의 황태자였을 거라 상상할 수 있었을까?소탁과 소욱은 외모가 약간 닮았지만, 성격은 전혀 달랐다.소욱은 위엄 있고 강압적이며 폭력적인 기질이 강했다.반면 소탁은 온화하고 부드러워 사람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인상이었다.이 점은 오히려 서왕과 더 비슷했다.봉구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공자님은 아까 그 집안 사람들과 아는 사이인가요?”소탁은 그녀에게 직접 술을 따라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부정하지 않았기에, 뭔가 숨기는 게 분명했다.그녀는 문득, 과거 연상이 궁에 팔려 갔던 때를 떠올렸다. 연상은 소탁의 시녀였다.소탁이 연상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봉구안은 즉시 연상의 초상화를 꺼내 보였다.“이 사람, 알고 계신가요?”그녀는 그의 정체를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소탁은 술잔을 다 따라 그녀 앞에 놓으며, 테이블 위의 초상화를 흘깃 보았다.그는 오히려 이렇게 물었다.“소 공자께서는 왜 이 여인을 찾으시는지요?”그는 그녀를 ‘소 공자’라고 불렀다.봉구안은 가면 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소탁은 손을 올려 가볍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대명소문한 소환 공자를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뵙자마자 알아보았습니다.”봉구안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지만, 그 순간 소탁이 초상화를 집어 들어 그녀 앞에서 찢어버렸다.“소문에 따르면 소 공자는 정의로운 분이라 들었습니다. 당신이 하려는 일이라면, 제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봉구안은 담담하
소욱이 이미 전각 문까지 거의 다가갔을 무렵, 봉구안의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군주로서 냉정심을 잃지 않아야 할 텐데, 지금 대체 뭘 하시는 것이옵니까?”소욱이 돌아섰다.그는 봉구안이 넘어뜨린 병풍을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렇게 무거운 병풍을 그녀는 손쉽게 제압했다.소욱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냉정심을 잃은 것도 다 네 냉정함 때문이다.”그는 그녀의 그 차가운 태도에 질려 있었다.봉구안은 침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제가 거짓말을 하면, 폐하께서는 기뻐하시겠사옵니까?”소욱은 다소 유치하게 받아쳤다.“그래, 솔직한 너의 심정을 듣는 것 보단 네 거짓말을 듣는 게 더 나을 듯 하구나!”“좋사옵니다. 그렇다면 저는 폐하께서 모용선을 총애하셨다면 정말 상처받고 괴로웠을 것이옵니다.”봉구안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하였다.그녀는 처음부터 거짓말이 꼭 듣기 좋지는 않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궁극적으로는 그가 진정해 함께 정사를 논의하고, 독을 쓴 범인을 하루빨리 잡고자 했다.소욱은 잠시 멍해졌고, 곧이어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녀를 비꼬았다.“그런 허접한 거짓말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구나.”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그 자신이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이 생각에 이르자, 소욱은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은 나를 믿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했어야지.”봉구안은 숨을 고르며, 마치 다루기 힘든 큰 아이를 달랜 듯한 표정을 지었다.단회욱과 함께 있을 때는 이렇게 애쓰지 않았었다.그는 감정을 늘 평정심으로 유지했으며, 대개 달래져야 할 사람은 그녀 자신이었다.“그럼 이제 폐하,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소욱은 즉시 진지한 태도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네가 알아낸 것들을 모두 말해보거라.”봉구안은 자잘한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연상은 이미 고인이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