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안과 그 벙어리 호위무사는 힘을 합쳐 수많은 반란군을 막아냈다.앞다투어 달려드는 반란군들은 그 둘의 빠르고 강력한 공격에 의해 날아가거나 쓰러졌다. 두 사람은 피로한 기색조차 없었다.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왕수인은 점점 초조해졌다.‘안 되겠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간 큰일이 나겠군!’그는 마음을 다잡고, 권속이 내린 명령을 이루기 위해 황제를 제거하려 결심했다.왕수인은 활을 들어 황제를 겨냥하며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분명 정확히 발사된 화살이 황제의 몸에 닿기 3척도 채 남지 않은 거리에서 이상하게도 멈춰 섰다.왕수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그 순간, 동방세는 그 화살을 손으로 가볍게 붙잡아낸 후, 한 손짓으로 화살을 떨어뜨렸다. 그는 이 모든 일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여전히 기계식 자물쇠를 푸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왕수인은 이를 갈며 몇 차례 더 화살을 날렸지만 결과는 동일했다.‘이럴 수가! 황제의 내공이 이토록 깊다니!’초조해진 그의 손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왔다.왕수인은 칼을 뽑아 들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모두 돌격하라! 저들을 죽여라!”이에 맞서던 봉구안은 땅에 떨어져 있던 칼을 주워 들고 병사들에게 나직이 경고했다.“너희는 남제의 군사다. 조정의 병사이며 황제의 군사니라. 감히 역모를 저지르겠다는 것이냐?”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머뭇거렸다.지금까지 봉구안은 맨손으로 그들을 제압했을 뿐, 중상을 입힐지언정 생명을 앗아가지는 않았다.그러나 이번에 그녀가 무기를 들었다는 것은, 더 이상 그들의 생명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그녀의 눈빛은 결연했고, 칼날은 그녀의 냉혹한 시선을 반사하며 번뜩였다.그 옆의 벙어리 호위무사 또한 위압적이었다. 그의 발치에는 셀 수 없는 시체가 쌓여 있었으며, 그의 차가운 눈빛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병사들이 주춤거리자, 왕수인은 폭언을 퍼부었다.“역모가 대수냐! 지금
성문 밖, 서왕이 말 위에서 장군의 풍모로 우뚝 서 있었다. 평소 온화한 눈매에도 강렬한 전투 의지가 담겼다."공격하라!"철벽이 사라진 성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게다가 방어에 나선 병사들이 부족했기에, 성문은 순식간에 공성추의 충격에 무너지고 말았다.서왕의 군대가 성내로 진입하자, 말발굽 아래로 먼지가 소용돌이쳤다.반란군들은 이미 대열이 흐트러졌고, 본래의 방어력을 상실한 채 그저 도륙당할 처지였다.무엇보다 조정에서 보낸 군대는 무려 수만 병력이었다…한편, 그 벙어리 호위무사는 가벼운 몸짓으로 반란군의 수장 왕수인을 말에서 내던졌다.하지만, 왕수인이 장군 자리까지 오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허울뿐인 인물이 아니었다.말에서 떨어지자마자 일어나 적의 검을 뽑아 들고 맞섰다.그러나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벙어리 호위무사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십여 합을 넘기지 못한 채, 결국 갈비뼈가 부러지는 강력한 일격을 당했고, 검을 들고 있던 팔마저 비틀려 부러졌다.비명과 함께 왕수인은 제압당했다.서왕은 말 위에서 모든 상황을 관망하다, 병사들과 반란군들에게 선언했다."나는 성난 반란을 평정하라는 성명을 받들었다.""허나 이 반란은 너희 아래 병사들 때문이 아니라, 위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다.""너희가 단지 군봉을 요구한 것이라면, 조정은 결코 너희를 어렵게 하지 않을 것이다.""지금 무기를 내려놓는다면, 너희의 목숨을 보전해 주겠다.""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너희는 역적이 되고, 모조리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이 말을 들은 반란군들은 서로를 살폈다.여럿이 이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때, 장군 항천이 높은 곳에 올라 목소리를 높였다."폐하! 서왕 전하! 신은 이미 죄가 크다는 것을 잘 압니다.""다만, 이 병사들은 모두 응당 받아야 할 군봉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이 죄인은 목숨으로 속죄하겠사옵니다!"항천은 말을 마치자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그러나 그 순간, 봉구안이 돌멩이를 던져 그의 손목을 강타했다.그
직접 눈앞에서 동생의 죽음을 목도한 왕수인은 목이 터져라 절규하였다.“아니야! 수의야, 수의야!!”그는 핏발 선 눈으로 벙어리 호위무사를 노려보며 외쳤다.“네 놈이야! 네 놈이 우리 수의를 죽였어! 내 반드시 너를 죽이고야 말겠다!”벙어리 호위무사는 활을 내려놓고 냉정하고도 무정한 눈빛으로 왕수인을 바라볼 뿐이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봉구안은 어느새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백성들을 인질로 붙잡고 있던 반군들도 왕수의의 죽음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때, 왕수인은 그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저들을 죽여라! 황제와 조정은 선성의 백성 목숨 따위에 관심조차 없다고! 그럼 모두를 죽이고 말겠다! 우리 수의의 명복을 위해 함께 무덤에 묻어라!”그러나 그의 병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주저할 뿐,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왕수인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선성의 백성들이여! 잘 들어라! 황제는 가짜다! 조정은 지금 선성을 도륙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반군을 죽이려 할 뿐만 아니라, 너희 또한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빨리 도망가거라!”“성문이 열려 있으니 어서 빨리 달아나라!”왕수인의 외침은 도시에 숨어 있던 백성들의 귀에까지 들려왔다.그들 중 일부는 집 안에 남아 끝까지 버티기로 했고, 다른 이들은 그의 말에 현혹되어 가족들을 데리고 성문 쪽으로 몰려갔다.하지만 성문에는 이미 관군들이 막고 있었다.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 혼란에 빠졌다.“아악! 살려주세요!”“내 예감이 맞았어. 황제는 우리를 버린 거야!”“죽을 바에야, 함께 싸우자!”백성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며 관군들에게 달려들었다.그 모습을 본 서왕은 외쳤다.“모두 멈추어라! 조정은 너희를 버리지 않았다!”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아우성에 묻혀버렸다.점점 더 많은 백성들이 성문 쪽으로 몰려들었고, 관군들은 서왕의 명령 없이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어떤 병사는 백성들의 맨손 공격에 맞아 고꾸라졌고, 또 어떤 이는 백성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헬멧이 벗겨졌다.
모든 반란군은 저항을 포기했고, 백성들은 고분고분 무릎을 꿇고 있었다.소욱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다.“짐이 선성에 온 것은 진상을 밝히기 위함이다.”“이제 진상이 드러났구나. 반란군 대부분은 왕수인의 계략에 이용당한 것이다.”“그의 목적은 군량미가 아니라, 선성의 보물을 약탈하는 것이었으며, 황제를 시해하려고까지 하였다. 왕수인, 네 죄는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왕수인의 상처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렀다. 그의 눈빛엔 패자의 낙담 대신 끝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더 하면 내가 성공할 수 있었는데! 네가 내 동생을 죽였으니, 네 폭정은 누구나 응징할 수 있는 것이다!”서왕이 나서서 물었다.“폐하, 이처럼 반역을 꾀한 자는 죄증이 확실하니 즉시 처형하겠습니까?”소욱은 냉정하게 명령했다.“공모자가 더 있다. 끌고 가 철저히 심문하라. 나머지 사람들도 우선 가두고 차례로 심문하라.”“예, 폐하!”반란군이 모두 수감된 뒤, 동방세가 앞으로 나섰다.“폐하, 전에 폐하의 신분을 알지 못하고 실례를 범했습니다.”이 말은 소환을 대신해 한 것이었다.결국 지난 며칠 동안 소환과 황제가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소욱은 봉구안을 바라보며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짐과 부맹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느니라. 이번 며칠 동안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구나.”봉구안은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예를 표했다.“과찬이십니다.”그의 시선은 봉구안에게 고정되었다.“선성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느니라. 두 사람은 며칠 더 머물며 짐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아울러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도록 하마.”봉구안은 거절하려 했지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말을 타고 떠났다.그리고 그녀 옆의 동방세는, 연회 이야기를 듣자마자 발길을 멈췄다.“소환, 우리가 괜히 고생한 것은 아니었군.”‘정말 한심하군. 연회 한 끼에 마음이 풀리다니.’봉구안은 그런 그를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선성의 모든 백성들은 황제가 대군을
소군주는 화려한 옷을 입고, 예쁜 큰 눈에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무심히 소욱에게 예를 갖추더니, 곧바로 봉구안과 함께 긴 의자에 앉았다.“오라버니! 아버님께서 깨어나셨어요! 어의가 말하길, 아버님은 무사하시대요. 약만 제때 드시면 곧 건강을 회복하실 거래요!”소군주는 원래부터 천진난만한 나이에 위험까지 사라지니, 그 미소는 더욱 화사해져 마치 밝게 빛나는 태양 같았다.하지만 소욱은 무표정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소소야, 남녀유별을 잊은 것이냐.”소군주는 마치 메추리 새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알아요...”서왕은 온화한 표정으로 타일렀다.“폐하, 소군주께서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주국공께서 깨어나신 기쁨에 한순간 실수를 한 것이니, 그 또한 인지상정입니다.”소욱은 호위병에게 명령했다.“자리를 내어오거라.”그렇게 네 명의 남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있고, 소군주 혼자 다른 테이블에 외롭게 앉아 있었다.이는 자리가 추가된 것이 아닌, 책상이 추가된 것이 아닌가!역시 황제 오라버니는 정말 무정하다!식사가 끝난 후, 소욱은 주국공부로 가는 길에 소군주를 데려다주기로 했다.소군주는 갑자기 봉구안의 소매를 꽉 잡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라버니, 우리 집으로 같이 가줄래요? 제가 아버님께 말했어요. 오라버니가 저를 구해줬다고요. 아버님께서 오라버니를 직접 만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 하세요.”봉구안은 완곡하게 거절했다.“군주께서 대신 잘 전해주세요. 그리 대단한 은혜도 아니니...”“오라버니, 가요. 아버님께서 오라버니에게 후한 선물을 준비하셨다니까요!”동방세가 나서서 봉구안을 가마에 태웠다.“후한 초대를 마다하지 마시오.”결국 봉구안은 어쩔 수 없이 가마에 탔다.그런데 숨 막히는 상황이 벌어졌다.남녀유별 때문에 봉구안이 탄 가마는 소욱의 가마였다.소군주는 가마 창문에 기대어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마치 오라버니가 사라질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했다.가마 안.봉구안은 조용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소
“소환이 여인이라고?”주국공은 얼굴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띠며 순진한 얼굴의 딸을 바라보았다.그럴 리가! 그 소환이 아무리 그래도, 여자라니 너무 황당했다.소욱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진지하게 물었다.“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소소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냥 알아요. 오라버니가 안 믿어도 상관없어요!”소욱이 더 물으려 했지만, 소소는 이미 화가 나서 훌쩍 뛰쳐나갔다.그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사실, 소환이 여인이라 해도 그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하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충동이 그를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게 했다.그날 밤, 목욕탕에서 소환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 입술과 입술 모양은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졌다.그가 입맞췄던… 그녀와 너무 닮아 있었다.그땐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이 세상에는 닮은 얼굴도 많고, 비슷한 입술 모양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아마 자신이 아직 그 여자를 잊지 못해서일 거라고 여겼다.그런데 지금, 소소가 말하기를 소환이 여인이라고 했다.주국공은 황제의 멍한 표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혼잣말처럼 말했다.“그 아이가 헛소리를 한 것이 분명합니다.”하지만 돌아보니 황제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폐하, 이보시오…”소욱은 주국공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세 걸음을 두 걸음처럼 빠르게 걸어 소소를 따라잡았다.“소소, 잠시만 멈춰 보거라!”소군주는 깜짝 놀라 멈춰 섰다.“어서 말해보거라, 소환이 여인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소욱이 그녀 앞에 서서 마치 커다란 벽처럼 가로막았다.소군주는 마치 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만져봤으니까요. 소환 오라버니 몸에서 아주 좋은 향기가 나고, 부드러웠어요. 유모보다 더 부드러웠다니까요! 전 오라버니랑 같이 자는 게 제일 좋았는데, 오라버니가 허락하지 않더라고요.”“오라버니는 모두를 속였어요. 어쨌든 저는 알아요. 오라버니가 저랑 유모랑 똑같다는 걸요. 하지만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비
방 안은 고요했다.오직 바둑알 놓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황제는 자줏빛 비단 옷을 입고, 눈빛은 깊고 날카로웠다.그저 바둑을 둘 뿐인데도 살기가 느껴졌다.“부맹주는 매우 신중한 것 같소.”그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 사람을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은근히 떠보았다.봉구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폐하의 바둑 실력이 워낙 뛰어나니, 제가 신중하게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녀는 소욱과 바둑을 둔 적이 있기에 바둑 스타일이 같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됐다.소욱은 냉소하며 날카로운 눈길을 보냈다.“신중해야겠지만, 너무 많이 생각하면 오히려 더 많은 실수를 드러내게 되지.”봉구안은 바둑알을 놓던 손길이 잠시 멈췄다.왠지 모르게 오늘의 황제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그녀의 바둑 흐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그날 밤, 소욱은 그녀와 바둑만 두었다.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하지만 봉구안이 알지 못했던 사실은, 바둑을 두는 동안 소욱의 시선이 그녀의 손을 꿰뚫을 듯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이다.소욱은 개인적으로 변장술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다.뛰어난 변장술사는 눈매를 바꾸거나 손에 상처를 만드는 등의 변화를 줄 수 있지만, 뼈를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즉, 손 모양은 바꾸기 어렵다.소환의 손에도 옅은 상처가 있었다.이것이 과연 그의 과도한 의심일까, 아니면 그녀가 감추려 했던 흔적일까...소욱은 속으로 이미 답을 내리고 있었다.…이튿날, 서왕은 먼저 선성을 떠났다.동방세는 창가에 서서 중얼거렸다.“서왕께서도 떠났는데, 폐하는 왜 우리를 계속 여기 머물게 하는 걸까…”봉구안은 그의 뒤에서 책상에 앉아 검을 닦으며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날 그 밥 욕심만 내지 않았어도, 우린 벌써 폐하에게 작별 인사를 드렸을 것이오.”동방세는 팔짱을 낀 채 머리를 날리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마치 무림맹의 맹주 같았다.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도 알고 싶소. 선성의 혼란은 대체 누구의 소행인지 말이오.”봉구안
식탁 위의 쟁반에는, 무려 잘린 머리들이 담겨 있었다!!!간이 작은 관리들은 자리에서 떨어지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소욱은 태연히 이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한껏 즐기는 듯했다.“대체 내가 엄중히 조사하라 했는데, 왜 이렇게들 긴장하는 것이냐?”“폐, 폐하… 이, 이것은 대체…”곁에 서 있던 진한길이 대신 대답했다.“모두가 선성 군비를 횡령한 죄인들입니다. 제각기 한번 살펴보시죠. 혹시 아는 얼굴이 있을지도 모르니.”관리들은 겁에 질려 급히 무릎을 꿇었다.“폐하께서는 실로 총명하십니다! 부패한 관리들을 처단하여 선성의 평화를 되찾으셨습니다!”“탐관오리는 죽어 마땅합니다!”동방세는 피투성이 머리들을 보며 눈앞에 놓인 닭 머리가 갑자기 메스껍게 느껴졌다.이때, 소욱의 시선이 자리한 몇몇 관리들을 향해 겨눠졌고,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맞다.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들만으로는 부족하다.”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쿵’하고 닫혔다.관리들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곧이어, 몇 명의 호위들이 각자의 목표를 향해 칼을 뽑아 목에 겨누었다.관리들은 더욱 겁에 질렸다.“폐, 폐하… 이건…”진한길이 황제 옆에서 이름을 읊기 시작했다.“유현의 서용, 남주의 왕문걸, 초현의 왕우…”이름이 불린 자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창백해지며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진한길이 이름을 모두 부르고 나서, 호위들은 일제히 외쳤다.“폐하, 모두 모였습니다!”곧바로 소욱은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손에 든 술잔을 느긋하게 흔들며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참수.”그 순간, 관리들은 변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머리가 단칼에 베여 바닥에 굴러떨어졌다.잘린 머리들은 여기저기로 굴러다녔고, 그 참혹한 광경에 남은 관리들은 혼이 나간 듯 얼어붙었다.동방세는 조용히 비웃듯 말했다.“닭 잡아 원숭이를 경계하게 한다더니, 오늘 제대로 보네.”봉구안은 태연히 술 한 잔을 들이켰다.“먹던 닭이나 마저 먹으시오.”말이 많은 걸 보니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