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형님은 원래 천룡회의 사람이었던 거야...”봉구안의 기억 속에서, 단회욱은 언제나 선량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그는 모든 사람을 그렇게 대했으며, 그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단가는 일찍이 반역죄로 멸문되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단회욱의 조부 세대가 저지른 일일 뿐이라 여기고, 단회욱은 당시 어렸기에 죄가 없다고 믿어왔다.그래서 그녀 마음속 단회욱은 완벽한 사람이었다.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결점을 보지 못한다고들 하지 않던가.더구나, 단회욱은 그녀가 그를 가장 사랑할 때 죽음을 맞이하였다.그의 죽음, 그리고 그의 존재 자체가 모두 음모였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단회욱이 천룡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모든 것이 설명되기 시작했다.과거 그녀가 천룡회 교주의 아들을 죽였을 때, 천룡회는 복수를 위해 그녀의 행적을 조사했고, 그때 단회욱이 그녀 곁에 배치된 것이었다.단정은 그녀의 눈에 피어오르는 의심을 읽고는, 다급히 형님을 변호했다.“너 지금 뭘 의심하는 거야?”“내가 말해줄게. 형님이 천룡회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너를 사랑한 것은 진심이었다고!”“그때 흑룡왕이 독을 쓰기 전에, 먼저 형님의 손힘줄을 끊어버렸어.”“그들은 형님이 널 구할 걸 알았기 때문이야.”“그들조차 형님의 감정을 알고 있었다고! 넌 아직도 의심하는 거야?”봉구안의 마음은 쓰라렸다.그녀는 단회욱을 믿었다.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의 신중함이 이해되기 시작했다.그가 왜 그녀를 데리고 은거하려 했는지도 말이다.그는 천룡회가 그들을 찾아올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그가 늘 자신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단정은 그녀가 믿지 않을까 두려운 듯 더욱 격렬하게 외쳤다.“봉구안! 네가 형님을 의심해선 안 돼!”“형님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바로 네가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거였어.”“넌 몰라, 그가 널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황실이 단가를 멸문시켰을 때, 교주가 형님을 거둬들였고, 형님은 교주에
깊은 밤, 오양산.쾅!굉음과 함께 산비탈의 바위가 산산조각 나며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완벽했던 절벽에는 갑작스레 커다란 틈이 생겼다.흙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밖에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즉시 무릎을 꿇으며 일제히 외쳤다.“교주님의 출관을 환영합니다!”난장판이 된 돌무더기 사이에서, 천룡회 교주가 보랏빛 비단 옷을 입고 나타났다. 나이는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으며, 세월이 새겨놓은 주름과 단단한 눈빛이 동시에 존재하는 얼굴이었다.검은 머리칼 사이로 몇 가닥의 은발이 섞여 있었고, 도드라진 광대뼈와 얇은 입술은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일어나라.”무리 속에서, 얼굴을 가린 염 낭자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그 틈새 안쪽을 향했다.‘회욱 오라버니, 분명 그 안에 계실 거야…’그때, 법사가 앞으로 나섰다.“교주님, 황백 대군이 이미 귀순하였습니다. 교주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즉시 황성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교주는 면사포를 쓴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아염아, 네가 계산해 보았느냐?”염 낭자는 공손히 답했다.“이미 계산해 보았습니다. 사흘 후 청,황,백 삼기가 어우러지고, 천관이 복을 내리는 날로,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교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하늘의 뜻은 거역할 수 없는 법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한 손을 들어 보였고, 그의 강력한 내공으로 인해 옆에 있던 나무 몇 그루가 순식간에 뿌리째 뽑혀 넘어갔다.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외쳤다.“교주님의 신공은 세상을 압도합니다!”한편, 구석에 숨어 있던 단정의 눈빛은 서늘한 살기로 번뜩였다.황성을 공격할 준비가 완료되자, 천룡회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염 낭자는 단정을 붙잡고 다가갔다.“지금 황성을 공격하는 일이 가장 중요해요. 소환과 동방세 쪽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그러나 단정은 냉랭한
연단로가 밤새도록 타오르고 있었다. 천룡회 사람들은 둘러앉아 신비한 약환이 완성되길 기다리고 있었다.단정은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냉소를 보냈다.‘내일이면 황성을 공격할 날이다. 그리고 봉구안과 약속한 날이기도 하지... 오늘은 반드시 산을 내려가야만 해.’하지만 산 아래로 가는 길목에서 면사포를 쓴 여자가 그의 길을 막아섰다.“단정, 어디로 가려는 거야? 우리는 네가 몰래 회욱 오라버니를 구하기로 약속했잖아!”단정은 냉랭한 표정으로 답했다.“염추, 형님을 구하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네가 형님을 걱정하는 것보다 내가 형님을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잊은 거야?”염추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그렇게만 하면 돼. 이번에는 물러설 길이 없어.”내일 밤, 모든 천룡회 사람들이 황성을 공격하러 떠날 때가 바로 그들의 행동을 개시할 절호의 기회였다.염추는 생각했다.‘내 사랑하는 회욱 오라버니가 마침내 빛을 다시 보게 될 거야.’그녀의 눈에는 흥분의 눈물이 고였다.…단회욱을 구하기 위해 봉구안은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그녀의 몸에는 은밀한 암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똑똑!문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누구십니까?”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소욱이었다.그의 뜻밖의 등장에 봉구안은 놀라며 물었다.“어인 일이십니까?”소욱은 그녀의 옷차림을 보고 그녀가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는 이를 드러내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남성용 비녀를 건넸다.그 비녀는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친구로서 아직 너에게 아무것도 선물하지 못했구나. 이 비녀는 머리를 묶을 수도 있고, 너를 지킬 수도 있다.”그는 비녀를 한 번 분리하더니, 그것이 날카로운 얇은 칼로 변했다.봉구안이 이를 거절하려 하자, 소욱은 말했다.“천룡회의 자객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네가 또 무슨 사고를 당하면 폐비가 걱정하지 않겠느냐? 이 무기를 받지 않겠다면 내가 더 많은 사람을 보내 널 보호하도록 하겠다.”이
반란군이 습격하자, 황성은 즉각 공포와 혼란에 휩싸였다.백성들은 놀라 두려워하면서도, 황성이 함락될 리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이번에 나타난 반란군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성벽 아래서 반란군의 수장 황백이 소리치며 외쳤다.“폭군이 무도하니, 우리들은 하늘의 뜻에 따를 뿐이다! 성 안의 백성들이여, 만약 폭군의 무도함에 반기를 들고자 한다면, 모두 일어나 이 장군과 함께 싸워라!”성문을 지키던 장수들이 크게 꾸짖었다.“황백이여! 난신적자 주제에 감히 이런 그럴듯한 핑계를 댈 셈인가! 너는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어서 항복하고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오늘이 네 제삿 날이 될 것이다!”황백이 뒤로 물러서자, 수문장들은 그가 두려워하는 줄 알았다.하지만 이내, 은빛 갑옷을 입고 위엄 있는 기운을 내뿜는 한 남자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섰다.“나는 폐태자 소탁이다. 선황이 어리석고 간신배들이 나라를 어지럽혔기에, 나를 무고하게 모함해 동궁의 자리를 빼앗았다.”“현 황제는 더욱 어리석어 나라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고, 황후를 버리는 바람에 풍속까지 어지럽혔다.”“그리하여 우리는 하늘의 명을 받아 폭군을 폐하고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지금 나는 많은 강호의 의사들의 협력을 얻어, 천명이 나에게 돌아왔으니, 그대들은 내 말을 믿고 무기를 내려놓는다면, 생명을 보장할 것을 약속하겠다!”성문을 지키던 장수들은 그가 폐태자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황백은 그 말을 덧붙이며 거들었다.“소탁 태자는 어질고 선량하다는 것이 만인의 공인된 사실이다!”“이런 인군을 얻게 되는 것이 어찌 우리 같은 자들의 축복이 아니겠는가?”“어서 성문을 열어라! 그렇지 않으면 피바다가 펼쳐질 것이다!”성문 앞은 이미 병력이 몰려와 위태로웠다.황궁에서는 소욱 황제도 이 소식을 들었다.이 특별한 밤에 그는 본래부터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성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즉각 말을 준비하라고 명했다.궁문 밖, 서왕이
오양산.봉구안은 청룡왕과 수십 차례 교전을 벌이며 거의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단정은 청룡왕의 부하들을 묶어두는 역할을 맡았다.산바람은 매섭게 휘몰아치며 울부짖었다.봉구안은 장검을 손에 들고, 검기는 무지개처럼 찬란하며, 검법은 맹렬하고 빠르게 휘몰아쳤다.청룡왕은 나뭇잎을 무기로 삼아, 그의 앞에는 나뭇잎들로 이루어진 법진이 펼쳐졌다.그는 내력을 다루며 나뭇잎을 겹겹이 중첩하여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냈다.곧이어, 그는 두 손으로 내력을 밀어내며 그 나뭇잎들이 얇은 칼날처럼 변해 봉구안에게 일제히 날아들었다.봉구안은 재빨리 검을 휘둘러 방어막을 형성했으나, 이 방어막은 일부의 나뭇잎만을 막아낼 수 있었다.남은 나뭇잎들이 방어막을 뚫고 지나가 그녀의 옷에 가늘고 섬세한 균열을 만들어냈다.심지어 그녀의 관자놀이를 스치는 잔머리까지 나뭇잎에 잘려 떨어지며 발아래로 흩날렸다.얼굴은 은제 가면으로 가려져 있어 다행히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상황은 긴박했다.청룡왕은 다시 내력을 자극하자 나뭇가지들이 거칠게 흔들렸다.가지에 달린 나뭇잎들은 그의 강력한 내력에 빨려 들어가며, 그의 주위를 감싸며 생명력을 지닌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나뭇잎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청룡왕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지만, 살의는 가득 차 있었다.청룡왕의 진법이 또 한 번 완성되어 그의 앞에 나뭇잎으로 된 고리가 형성되자, 봉구안은 곧바로 검을 들고 돌진했다.검끝으로 고리를 가로로 휩쓸어 진법을 두 동강 내버렸다.진법이 파괴되자 나뭇잎들은 마치 영혼을 잃은 육체처럼 허공에서 흩어져 버렸다.그 순간, 청룡왕은 손에 쇠사슬을 꺼내 들었고, 봉구안이 그의 얼굴을 향해 돌진하자 그의 검을 순식간에 쇠사슬로 감아버렸다.그는 힘을 주어 검을 빼앗아냈고, 봉구안의 손에 쥐어진 무기는 사라졌다.단정은 이 모습을 보고 봉구안을 걱정하며 외쳤다.“조심하세요!”청룡왕은 쇠사슬을 풀어내 검을 던져버린 후, 곧장 봉구안의 목에 쇠사슬을 감아올렸다.그가 힘만 준다면 봉구안을 질식시켜
암문 뒤에는 거대한 약재 탕이 눈앞에 펼쳐졌다.그 안에는 각종 독물과 신체의 잔해들이 떠다니고 있었으며,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이곳에 갇힌 이들이 죽기 전에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주변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끔찍하고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었다.봉구안은 그 벽화 속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그것은 ‘접생…이라는 제목의 벽화였다.접생은 하나의 신약으로, 죽었으나 혼이 떠나지 않은 자에게 사용하는 약이었다.대부분 심한 부상으로 인해 의식이 끊겼지만 미약하게 숨이 붙어 있는 자에게 접생으로 생명을 되살릴 수 있었다.이 약을 완성하려면 살아 있는 사람을 약재로 삼아야 했는데, 그 사람의 피는 죽음에 가까운 자의 혈액과 융합되어 매달 혈액을 교체하는 데 사용되었다.가장 잔인한 점은, 이 약재로 쓰일 사람의 몸에 수많은 상처를 내고, 그 틈으로 수백, 수천 마리의 독충이 들어가 피를 빨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쾅!단정은 무엇인가를 부딪쳐 넘어뜨렸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방 한쪽 구석에 놓인 책상으로 다가가 손을 떨며 약쟁이에 관한 손기록을 한 권씩 뒤적였다.그리고 곧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자, 그는 크게 소리쳤다.“죽일 놈들…!”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형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봉구안은 손기록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을 보자 그녀 역시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10월 초사흗날, 첫 시험 투약. 오직 단회욱만 생존. 한 시간 동안 네 번 의식을 잃었고, 독충의 반작용으로 한쪽 팔이 절단됨.][10월 스무날, 단회욱은 몇 번이나 살고 싶지 않은 고통을 겪었으나, 다행히 독충이 몸에 모두 자리 잡아 피를 얻을 수 있었음.][11월 초하루, 정식으로 혈액 교체를 시도하였으나, 도중에 죽을 뻔함. 입으로 ‘정이…와‘안이…이라는 두 이름을 불렀으니, 이는 단회욱의 의식 속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일지도…]봉구안은 더 이상
차장에서, 천룡회의 교주는 느긋하게 웃으며 오히려 자애로운 표정으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소공자, 오래간만이군. 그동안 잘 지냈나?”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명의 암살자가 봉구안의 뒤에 나타났다.그들은 쌍둥이 형제로, 한 명은 수비에, 다른 한 명은 공격에 치중하여 날카로운 솜씨를 뽐냈다.얼마 지나지 않아 봉구안을 밀어내고 차장을 방어했다.차장에 앉아 있던 교주는 봉구안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보다도 그는 성문을 돌파했다는 상황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었다.황백의 군대가 배신해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하지만 그는 이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둔 듯 보였다.그가 손을 살짝 들자 옆에 있던 사람이 즉시 알아챘다.곧이어 휘파람 소리가 울리자, 밤하늘에는 수많은 거대 새들이 날아들었다.그 새들의 날카로운 발톱은 매우 위험해 보였고, 강력한 날갯짓으로 성벽 위의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다시 한 번 휘파람 소리가 울리자, 이번에는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멀리서 거대한 야수가 모습을 드러냈다.그 야수는 뿔이 달렸고, 갑옷처럼 단단한 피부에 잔인한 눈빛을 띠며, 강력한 네 발로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야수가 성문을 한 번 들이받을 때마다 성문은 점점 더 흔들렸다.이 거대한 야수는 이전에 누구도 본 적 없는 생물이었고, 병사들의 칼과 창으로는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죽화총으로 간신히 상처를 입힐 수 있었지만, 죽화총조차 야수를 죽이지는 못했다.오히려 야수를 더욱 광포하게 만들어 성문을 들이받는 힘이 더 강해졌다.성벽 위에서, 서왕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폐하, 부디 철수하시지요!”소욱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검을 내게 주어라.”서왕이 반응하기도 전에 소욱은 그의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그리고는 성벽 아래로 단숨에 뛰어내려 거대한 야수를 향해 달려갔다.“폐하!”서왕은 크게 놀라 평소 침착하고 온화했던 얼굴에 당황과 걱정이 가득했다.그는 진한길에게 즉시 명령을 내렸다.“너희
목이 졸리는 감각은 정말로 견디기 어려웠다.그 답답한 느낌은 본능적으로 몸부림치게 만들지만, 봉구안은 그러지 않았다.그녀는 갑자기 팔을 뻗어 소매 속에 숨겨둔 암기를 꺼내들었다.이 정도 가까운 거리에서라면, 교주는 틀림없이 죽었어야 했다.그런데 갑자기...쾅!남자의 몸에서 진기가 폭발하며 봉구안과 함께 그 암기가 모두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퍽!봉구안은 등을 아래로 한 채 땅에 떨어졌다.고개를 들어 올리자 마차의 천막이 무너져 내려 마치 연꽃이 피어나듯 드러났고, 그 안에 있던 남자가 모든 이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이 남자가 바로 천룡회의 교주, 늘 뒤에 숨어있던 사건의 주범이었다.그는 봉구안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게 거스르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을 내뻗자 강력한 내력이 다시 한번 쏟아져 나와 봉구안에게 몰아쳤다.봉구안은 냉정하게 눈을 반짝이며 즉시 강렬한 ‘항마퇴도식'으로 근처에 있는 한 시체를 차 날렸다.그 시체를 방패 삼아 내력을 막는 동시에 몸을 숙여 땅에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발끝을 세워 가볍게 뛰어오르며 검날을 번개같이 휘둘러 교주의 손바닥을 정통으로 찔렀다.“교주님!”천룡회 무리들이 놀라 외쳤다.피가 흐르며 남자의 손바닥을 붉게 물들였고, 그는 재빨리 힘을 주어 검과 봉구안을 함께 쳐냈다.그와 동시에 단정이 등에 맨 활과 화살을 뽑아들어 빠르게 쏘아냈지만, 그 화살은 남자의 내력에 의해 공중에 멈춰 섰다.이어 그는 손을 휘둘러 그 화살을 다시 단정을 향해 되돌려 쏘았다.화살은 단정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고, 그를 나무에 고정시켰다.살갗이 찢기는 고통에 단정은 이를 악물었지만, 여전히 봉구안에게 외쳤다.“뒤를 조심하세요!”봉구안의 뒤에서 초록색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그는 손에 악비자를 들고 있었으며, 그 공격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단정의 경고섞인 외침 덕분에 봉구안은 재빨리 몸을 비켜 그 공격을 피하였다.악비자가 그녀의 눈앞을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