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조묘는 장엄하고 위엄 있는 장소였지만, 현재는 반역자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놓으시오... 제발! 날 만지지 마시오!”한 후궁이 땅바닥에 눕혀진 채 발버둥치며 울부짖고 있었다.그녀가 필사적으로 저항할수록 반역자들의 태도는 더욱 오만해졌다.갇혀 있던 우리 안에서 장공주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그 여인을 건드리지 마라! 어서 나를 풀어주거라! 나는 장공주다!”장공주는 생각했다. 만약 맹 소장군이 여기에 있다면, 그도 반드시 자신을 희생해서 이들을 구했을 것이다.궁녀로서 살아가는 이들은 황제에게서 외면받으며 이미 충분히 불쌍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 이런 수모까지 당해야 하다니, 참으로 가증스러웠다.태후는 딸의 외침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급히 장공주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딸을 꼭 끌어안았다.한편으로는 옆에 있는 녕비도 품에 안으며,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다.마 대인은 음침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공주를 끌어내라!”장공주는 황제의 친누이였다.태후의 마음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안 돼!누구도 그녀의 딸을 건드릴 수 없다!태후는 죽을 각오를 다지려던 찰나,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그들을 전부 죽인다 해도, 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소욱의 반응은 극도로 냉정했다.그의 시선은 멀리, 먼 곳을 향해 있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너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내가 황위를 포기하기를 바란다면, 소환을 돌려줘야 할 것이다.”녕비는 놀란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들었느냐! 폐하께서 얼마나 무정한지!”“우리가 왜 폐하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느냐!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그녀의 외침이 있은 후, 조금 전까지 땅바닥에 억눌려 옷이 거의 벗겨질 뻔했던 후궁이 기운을 쥐어짜며 악을 질렀다.“맞아! 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냐!”“그들은 궁에 들어온 지 여러 해가 지났건만, 단 한 번도 황제의 총애를 받은 적이 없었다!”“폐하께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 대인이 날쌘 동작으로 발을 뻗어 그 진천뢰를 걷어차 버렸다. 덕분에 내시들이 진천뢰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그는 입을 벌린 채 소리쳤다.“다들 조묘 안으로 들어가십시오!”“죽고싶다고해서 마음대로 죽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그렇게 쉽게 죽일 줄 아셨습니까?”그야말로 모두 미쳐버렸다!황제를 포함한 모두가 조묘 내에 있는 방에 갇혔다.태황태후와 후궁들은 한 방에 갇혔고, 태황태후의 얼굴은 어두운 빛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나는 정말 몰랐다. 영비가 반역자들과 손을 잡을 줄이야…”그녀는 끊임없이 후회와 자책으로 중얼댔지만, 이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말은 녕비의 화를 돋구었다.녕비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태황태후를 향해 거칠게 소리쳤다.“태황태후마마! 그만 좀 하십시오!”“뭘 그렇게 무고한 척하십니까! 마마께서 나쁜 놈들을 도와주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되었겠어요? 병드신 지도 오래됐는데 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계신 것입니까!”태황태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평소 자신에게 공손하던 후궁이 이렇게까지 소리를 지르다니.“너, 감히… 무례하다!”태후는 녕비를 품에 안으며 그녀를 감싸안았다.“태황태후마마, 녕비도 너무 놀라셨기에 실언을 한 것뿐입니다.”“흐흑…” 방 구석에서 한 후궁이 엉엉 울면서 말했다.“나, 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출궁할걸… 궁궐의 경비가 철저하다더니, 어떻게 반역자들이 우릴 이렇게 끌고 갈 수 있는 건가요!”현비가 그녀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겁먹지 마세요. 이 일도 지나갈 겁니다. 폐하께서 방법을 찾아주실 거예요.”장공주는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죽어 마땅한 모용란! 천룡회와 손을 잡고 멩 소장군을 죽이다니!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일 것이야!”태후가 막으려 했지만, 장공주는 벌떡 일어나 태황태후에게 다가가 그녀의 옷깃을 움켜쥐고 분노하며 외쳤다.“당신은 알고 있었던 거죠! 그렇죠? 맹
조묘는 반란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고, 그들의 진영에는 수많은 진천뢰가 심겨져 있었다. 그 누구도 그 위험 구역을 넘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한편, 묘 안에 갇힌 왕족들은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내가 뭐라 했더라? 관여하지 말자고 했지! 그런데 굳이 나를 끌고 왔단 말이야!”“그래, 맞다! 애초에 태황태우께서 태자를 책봉하겠다길래 우리가 뭘 하러 왔냐고! 결국 지금처럼 반란군에게 갇히다니, 이게 무슨 치욕인가!”그들은 평소 황족으로서 호화로운 생활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한 방에 몰려 있으니 아주 우스운 꼴이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유일한 침대는 제일 고집이 센 숙왕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바닥에 눕는 수밖에 없었다.황제가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은 곧장 소문으로 퍼졌고, 당일에 이미 서왕도 소식을 접했다. 서왕은 즉시 명을 내려, 궁중에 남아 있는 내통자를 소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로써 이 노력을 지휘할 이 장군이 대군을 이끌고 구원에 나섰다.이 장군은 병력을 거느리고 조묘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는 급히 구출 작전을 개시하지 않고 적정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을 썼다.역시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엄밀히 따지면, 태황태후와 여러 왕들의 친위병 수가 반란군보다 훨씬 많았다. 평소 같았다면 이 정도의 난동은 금세 진압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반란군에게 제압당한 꼴이었다.“정찰대를 보내라!” 이 장군은 단호하게 명령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찰병이 돌아왔다.“장군! 조묘 안팎에 진천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이 장군의 표정이 즉각 무겁게 변했다.진천뢰라니... 그렇다면, 친위병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 이유도 납득이 갔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단을 내렸다.“좌우의 병력은 물러나라.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적을 자극하지 말라!”군대의 중심인 중군은 주력 병력이었으며, 병사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 장군은 정예로 이루어진 부대로 신중하게 접근하려 했다.조묘 안에서는 이미 날이 어두워
진동하는 천둥 같은 소리의 폭발음이 들리자, 왕자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갑자기 왜 폭발한 거야!”“폐하께서 동반 자결을 하려는 게 분명해! 우리를 함께 묻으려는 거라고!”“아니야! 누가 됐든 제발 나를 내보내라!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단 말이다!”궁중에 갇혀 있던 후궁들도 서로를 끌어안고, 불안하게 문 쪽을 응시했다.그때, 조묘 대문 밖에서는 마 대인이 숲을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나와라! 너희를 이미 다 봤다!”그러나 숲속에 숨어있던 병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마 대인은 위협적으로 소리쳤다.“방금 들은 폭발음, 너희도 들었겠지? 다시 나오지 않으면, 이 안의 모두를 죽여버릴 것이다!”마 대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장군이 앞으로 나섰다.“이 망할 환관 놈!”달빛 아래에서 마 대인은 미소를 머금은 채 교만하게 말했다.“오, 이게 누구십니까? 이 장군 아니십니까!”“여기서 큰절을 올립니다!”“장군님, 폐하께서 몇몇 왕자들과 국사를 논하고 계신 중이라, 저는 태황태후의 명으로 여길 지키고 있습니다.”“장군님께서 이렇게 군사를 이끌고 오시다니… 설마 반란이라도 일으키실 생각이십니까?”이 교활한 자가 도둑이 매를 들고 도둑 잡으라 외치는 모습에, 이 장군의 얼굴은 분노로 새빨개졌다.“퉤! 천하의 뻔뻔한 놈 같으니! 네놈들 같은 반역자들, 당장 물러서지 않으면 내 칼에 죽게 될 것이다!”마 대인은 태연하게 목소리를 길게 늘렸다.“장군님, 제가 분명히 말했지요? 태황태후의 명이라구요. 그런데도 이렇게 몰아붙이시다니, 과연 누가 반역자인지 궁금하군요!”이 장군은 주먹을 꽉 쥐고, 눈에 살기가 가득 찼다.옆에서 참모가 작은 목소리로 그를 말렸다.“장군님,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방금 터진 진천뢰는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일 겁니다.”이 장군은 참모의 조언을 받아들여 잠시 물러섰다.현재 이곳의 상황은 이미 서왕에게 보고한 상태였다.황제를 구출하기 위한 방법은 철저히 논의해야 했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새 황제를 마주하자, 마 대인은 모든 것을 내던진 채 정면으로 나섰다.더는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소욱 황제는 우리 손에 있습니다! 황제 폐하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당장 교서를 작성하여 진정한 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십시오!”그는 부하들에게 아이를 데려오게 했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서 외쳤다.“이 아이야말로 소욱 황제의 친아들입니다. 며칠 전, 이미 황제 폐하와 재회를 했습니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왕이 단호히 꾸짖었다.“건방지다! 황위 계승이 어찌 이런 어린아이 장난 같단 말이냐!”서왕의 호통에 이어 이 장군이 분노하며 꾸짖었다.“대담한 환관 놈! 아무 아이나 데려와 황실 자손이라니, 우리를 바보로 아느냐!”병사들 역시 웃음과 비아냥으로 덧붙였다.“환관 놈아, 저 아이는 네 양자가 아니냐!”마 대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게 변했다.“너희들 모두 믿지 않는구나! 좋아, 그렇다면 소욱 황제를 저 세상으로 보내겠다! 서왕 전하, 이 장군, 두 분께서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이 곳 조묘에는 제가 미리 진천뢰를 설치해두었습니다…”그 순간, 새 황제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사당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선황 폐하! 신은 폐하께서 맡기신 뜻을 잊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가 황위에 오르는 날이 폐하께서 소장군과 황천길을 떠나는 날이라 하셨지요. 소자, 이제 폐하를 정중히 배웅해드리겠습니다!”그는 당황하여 펄쩍 뛰며 긴 손가락을 흔들며 외쳤다.“애송이! 너! 잡것! 그 입 닫지 못하겠느냐! 어떻게 감히 황… 아니, 황제 폐하를 저주한단 말이냐! 서왕, 이 장군, 이런 불효한 새황제를 너희들이 인정한단 말이냐? 설마 너희들이 소욱 황제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냐!”서왕은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이 모든 것이 선황 폐하의 뜻이오. 나는 따를 수밖에 없다네.”마 대인은 얼굴이 자주빛으로 물들며 울부짖었다.“아아…!”도대체 이 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너희들, 누구냐!”모용란의 두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그녀의 눈에는 고통과 불굴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천으로 얼굴을 가린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소리쳤다.그 무리의 우두머리는 칼에 묻은 피를 천천히 닦아내며 말했다.“우리 주인의 성은 소씨이시다.”소...모용란은 그 순간 무엇인가를 떠올렸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너희들, 혹시 폐하의 은위병인 것이냐?”황제의 곁을 지키는 은밀한 경호대, 은위병.그래서, 황제가 이들을 보낸 것인가?아니, 그럴 리 없다.이들이 자신이 이곳으로 올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설마, 황제가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해둔 건가!그렇게 생각하자, 모용란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녀는 마 대인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했지만, 이미 손이 없어진 그녀에게는 그럴 방법이 없었다.사당.이 장군이 매일 식사를 준비해 사당에서 이리 떨어진 곳에 두면, 그 음식은 반란군이 가져갔다.황제가 갇힌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선성의 방어선은 붕괴되었고, 주국공은 비밀리에 선성으로 귀환했다.북연과 남제 사이에는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신방 안반란군의 감시를 받는 곳에서, 식사는 비빈들에게도 배급되었다.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태후가 직접 음식을 분배했는데, 원래라면 여기서 가장 신분이 높은 태황태후에게 우선적으로 배급되어야 했다.하지만, 태후가 음식을 건네자마자, 녕비가 그걸 낚아챘다.“고모님, 먼저 드세요! 남은 건 저와 언니가 나눠서 드리겠습니다!”태황태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태후는 태황태후를 잠시 바라보다가 길을 막으려는 장공주에게 말했다.“어머니, 이러다 정말 쓰러지십니다…”장공주와 녕비는 좌우에서 태후를 부축하며 한쪽으로 데려갔다.녕비는 돌아보며 태황태후를 힐끗 쏘아보았다.‘죽어버린 늙은 할망구! 왜 굶어 죽질 않는 거야!’“아무것도 하지도 않으면서, 맨날 불평만 해대고, 그래도 먼저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생사가 걸린 일 앞에는 본래 모두가
“구원하려면 저 진천뢰를 먼저 해결해야 해. 특히 그 죽화총까지도…”이를 생각하며 이 장군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조묘안.마 대인이 갑자기 방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폐하, 폐하께서 저희를 전부 속이셨군요! 무슨 새 황제라니, 사실은 조정에 있는 반란군들을 끌어내려 하셨던 거죠?”방금 그는 소식을 들었다. 성 안에서 이미 다수의 대신들이 체포되었는데, 모두 태자를 옹립하려 했던 자들이었다.그리고 천옥의 내부 첩자들 역시 체포되었다.심지어는 그날 바로 참수된 자도 있었다.소욱은 냉혹한 눈빛으로 먼 곳만 응시하고 있었다.마 대인은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너무 저희를 얕보셨습니다.”“폐하께서 죽인 자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곧 교주가 북연군을 이끌고 남제를 공격할 것입니다!”“오늘 밤, 폐하께 잊을 수 없는 하루를 선물해드릴 것입니다. 폐하의 형제들과 비빈들을 하나하나 죽여버릴 것입니다!”“저희를 속인 대가가 어떤지 곧 알게 되실 겁니다!”말을 마치며 그는 명령을 내렸다. 왕자들과 후궁들이 밖으로 끌려 나왔다.밤하늘 아래 칼날이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왕자들은 모두 필사적으로 외쳤다.“폐하! 저희를 구해 주십시오! 제발요!”조묘 밖.이 장군은 정병들과 함께 근처 풀숲에 숨어 있었다.그는 오늘 밤 습격을 준비하며 먼저 문을 지키는 반란군을 기습해 기절시키고, 그 후 몰래 잠입해 반란군을 일망타진하려 했다.위험이 따르지만, 이렇게 해야만 했다.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이 장군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반란군도 이미 정보를 입수해 서둘러 움직이려는 듯했다.이로 인해 문을 지키던 반란군들까지 경계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였다.이 장군이 고민하고 있을 때, 한 호위가 낮은 목소리로 알렸다.“장군, 저쪽에서 누군가 옵니다.”이 장군은 즉시 손짓하며 명령했다.“숨어라!”그들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자, 달빛 아래 우아한 자태의 여인들이 허리를 살랑이며 천천히
“구안아… 아직 살아있구나!”소욱은 손가락을 떨며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마치 꿈속에 있는 듯 몽롱했다.그동안 그는 마치 살아 있는 송장과도 같았다.비록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지만, 그는 자신이 뭘 지시했는지도 모를 때가 많았다.몸은 이곳에 있었으나, 마음은 이미 천지설산에 가 있었다.그런데 지금, 봉구안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그녀가 살아있다니!소욱은 갑작스런 감격에 등을 돌려 사람들에게서 눈물을 숨겼다. 눈가가 붉게 물들고 눈물이 차올랐다.역시 그의 소장군은 죽지 않았다!장공주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잘됐다! 소장군이 살아있다니!!”태황태후는 그동안 옥양산에 머물러 있었기에 사정을 몰랐다가 이제야 맹 소장군과 소환이 동일인임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녀가 예전에 보낸 자객이 소환을 암살하려 한 것은 결국 맹 소장군을 죽이려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그녀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그녀는 하마터면 천추의 죄인이 될 뻔한 것이다.만약 소환이 단지 강호의 여인에 불과했다면, 죽었다 한들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그녀가 맹성주였다니!북대영의 전신으로 불리며 전공을 쌓고 명성을 날린 맹 소장군이 바로 그녀였단 말인가!태황태후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러나 모용란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그녀는 기쁨이 아니라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그럴 리 없어! 그녀는 죽었다! 죽었다고! 너희는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소환, 곧 봉구안은 분명 눈사태에 휘말려 생매장을 당했을 텐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들은 모두 그녀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그녀는 믿지 않았다.아니, 믿을 수 없었다!소욱은 다른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직 봉구안을 만나기 위해 서둘렀다.직접 눈으로 그녀를 확인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었다.이번에는 결코 늦지 않으리라…소욱은 곧장 북대영의 여군들과 함께 동부 전장으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