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욱과 장공주는 점점 더 대립하는 관계가 되었다.장공주는 봉구안 앞에서 소욱을 이렇게 깎아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림을 그렸다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가? 기억도 나지 않았다!그런데도 장공주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오라버니들과 밖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 옷은 멀쩡했는데 유독 폐하만 항상 엉덩이 부분이 찢어져 있었어요.”“겨울에는 꽃무늬 속옷이 드러나서 혼날까 봐 뒷걸음질로 걸어 다녔지요. 좀 더 크고 나서는 작은 궁녀들과 노는 걸 좋아하더군요…”“터무니없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누님! 제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단 말입니까!” 소욱은 강하게 부정하며 곧바로 진한길을 불러 장공주를 영화궁에서 강제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그러나 장공주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끌려가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작은 궁녀들이 폐하와 놀아주지 않으니까 땅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썼었습니다! 황후마마, 폐하께서 뒹굴기를 얼마나 잘 하셨는지 보셨습니까!”소욱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 입을 당장 막아라!”남녀 간의 예의를 생각한 진한길은 어찌할 줄 몰라 하다 결국 그녀를 기절시키는 수를 썼다.장공주는 기절하면서도 눈을 부라리며 넘어갔다.전각 안으로 돌아온 소욱은 봉구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그는 봉구안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웃음을 참으려 애쓰는 듯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봉구안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폐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들을수록 흥미롭군요.”소욱은 장공주의 말에 격분해 있었다.그는 그녀 옆에 앉아 기분 나쁜 듯 말했다.“누님의 헛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거라! 그저 질투심에 날 헐뜯는 것일 뿐이니.”봉구안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듣고 보니 그럴 법도 합니다. 어린 시절 작은 궁녀들과 놀겠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썼다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되지 않습니다.”소욱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내가 그런 짓을 했을 리 없지 않느냐. 오히려 누님이 잘생긴 호위병을 보고 집요하게 따
소욱이 비응군을 봉구안에게 맡기겠다고 처음 언급한 것은 그녀가 서녀국에서 사신 임무를 마친 직후였다. 그러나 대전쟁이 발발하며 이 일이 잠시 보류되었었다.그런데도 소욱이 다시 이 문제를 꺼내며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것은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진심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봉구안은 조금 염려가 됐다.“이 일이 조정에 알려졌습니까?”소욱은 그녀를 뒤에서 안으며 태연히 말했다.“이미 몇몇 중신들에게 언질을 주었다. 그들도 나의 뜻에 동의했지.”“오늘 조정에서는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대신들에게 밝히고, 반대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지금 남제가 제국들을 공격하려 하는데, 반대하는 자는 직접 전장으로 가라고… 그랬더니 더 이상 반대하는 사람은 없더군.”그가 쉽게 이야기했지만, 봉구안은 알고 있었다. 소욱이 이 병부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말이다.특히 나이가 지긋한 대신들은 말 한마디로 쉽게 움직이지 않을 사람들이다.봉구안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그 대신들이 폐하를 욕하며 폭군이라 하지 않던가요?”소욱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녀 앞에서 부드러워졌다.“욕하더군. 나를 혼군이라 부르며, 미색에 빠져 나라를 망칠 거라고 하였다.”“심지어 선황께서 무덤에서 뛰쳐나올 거라 말하더군. 그러니 황후, 나를 더 아껴주면 안되겠느냐.”봉구안은 병부를 꼭 쥐고 천천히 몸을 숙여 그를 아래로 눕혔다.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제국 사신들이 저희를 찾아온 상황이죠. 조금 더 기다리게 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그러면서 그녀는 허리띠를 풀며 그의 눈을 가렸다.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속삭였다.“폐하…”7월의 날씨는 6월만큼 덥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후덥지근했다.대전에서는 제국의 사신들이 이미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남제의 대신들은 의자에 앉아 있는 반면, 사신들은 서서 기다리며 더 초라한 모습이었다.게다가 일부 사신들은 이미 매질을 당한 터라, 얼굴이 부어 있어 더욱 곤란한 상황이었다.
동산국의 사신들은 비단과 말들을 가지고 와 예를 다했다.“동산국은 어느 나라의 분쟁에도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 제국들이 남제를 공격한 일도, 우리 황제 폐하께서 들으신 소문에 따르면, 모두 동산국의 중상모략에서 비롯되었다 하셨습니다.”다른 나라의 사신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속으로 생각했다.'도대체 이 동산국 사신들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자기들만 깨끗하다는 건가?'당초, 남제를 나눠 가지자고 다른 나라를 설득한 것이 바로 동산국 아니었던가!동산국 사신인 이령이 말을 이었다.“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모든 문제의 발단은 바로 담대연에게 있었습니다.”“그 자는 황제 폐하의 신임을 얻어 국사로 추대되고 동산국에서 귀빈으로 대우 받았습니다.”“하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저희 폐하를 꾀어 남제를 공격하고 패권을 이루려 했습니다.”“폐하께서는 그 꾀임에 넘어가지 않으셨지만, 그 자는 포기하지 않고 몰래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남제를 공격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심지어는 동산국의 이름을 빌려 이 일을 꾸민 것이었습니다.”이 말을 듣자 대하의 사신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이게 무슨 소리인가! 남제를 공격하자는 게 동산국의 뜻이 아니었단 말이오?”이령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물론이네. 제국들이 남제를 공격한 건 우리 동산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소. 당신들은 모두 담대연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오.”다른 나라의 사신들이 즉각 반박했다.“어떻게 담대연 한 사람이 이런 거대한 일을 꾸밀 수 있단 말이오? 누굴 속이려는 거요?”“당초 그는 동산국의 국서를 가지고 왔었소!”“이건 명백히 동산국이 발뺌하는 거요. 남제를 두려워해서 책임을 피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오?”“폐하, 저자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남제를 공격하자는 주범은 바로 동산국입니다!”“맞습니다! 폐하, 저희는 모두 동산국에게 이용당했을 뿐입니다!”제국의 사신들은 일제히 동산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동산국의 사신은 차분한 태도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폐하,
동산국의 사신은 두 명이었다.이령이 말실수를 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할 뻔하자, 그는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렸다.그는 옆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사신, 원담을 바라보았다.왜소한 체격의 소년이었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며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마침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신이 듣기로, 남제가 제국들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동방가에서 개량한 '거미줄' 덕분이라고 하며, 이를 찾아내는 데 담대연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따라서 소신은 담대연이 제국들을 자극한 이유가, 제국의 군대를 남제로 끌어들여 남제가 제국들을 손쉽게 무너뜨리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됩니다.”“그렇지 않고서야, 상식적으로 담대연에게 분노해야 할 귀국이 왜 단순히 그를 감금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겠습니까?”“이로 미루어 볼 때, 귀국이 담대연을 내놓지 않는 것은 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옵니다.”남제 대신들은 일제히 분노하며 외쳤다.“터무니없는 소리! 적반하장도 유분수지!”“아까는 담대연이 동산국 사람이라고 해놓고, 이제는 남제와 결탁했다고 하니,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지 않소!”원담은 남제 대신들의 질책에도 개의치 않고, 직접 소욱에게 물었다.“폐하께서 담대연을 보호하신다면, 온 세상과 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겁니까?”소욱은 냉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내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겠느냐? 이미 제국들과 싸우고 있는 처지 아니더냐.”소욱은 아래에 앉아 있는 사신들을 둘러보며 이어 말했다.“제국들이 우리 남제에 맞섰다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똑똑히 보라. 그런 뒤에 나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는지 다시 물어보거라.”사신들은 고개를 떨구며 땀을 흘렸다.‘이럴 줄이야! 동산국이 이런 무리수를 둘 줄 몰랐군. 남제가 두려워할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건만….’동산국의 사신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봉구안은 냉랭한 시선으로 그들을 훑어보았다.동산국이 담대연을 데려가려는 이유는 그를 처벌하기 위
사신 이령은 순간 말을 잃었다.통상이라니?이건 너무 무리한 요구였다.동산국은 지금까지 어느 나라와도 통상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하지만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 소욱이 동산국에 영토 할양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결국, 자신의 실언이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이었다.이령은 속으로 깊이 후회하며 옆에 있던 원담을 바라보았다.원담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령은 그제야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통상은 양국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니, 이 뜻을 반드시 저희 폐하께 전하겠습니다.”봉구안은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폐하, 좋은 일이 이루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지만, 너무 늦추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즉시 문서를 작성해 사신들에게 서명하게 하고, 이를 동산국으로 가져가 정식 국서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사신은 황제를 대표하는 존재이므로, 한 번 서명하면 번복할 수 없는 일이었다.소욱은 미소를 머금으며 봉구안의 손을 잡고 말했다.“역시 황후의 생각이 깊구나. 여봐라, 문서를 준비하라!”……밤이 깊어지고, 궁문이 열리자 사신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그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걸음걸이조차 무거웠다.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몰골이었다.궁문 앞에서는 대하 사신이 흥분한 채 동산국 사신 이령의 멱살을 잡아챘다.“동산국, 너희 정말 교묘하구나! 담대연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빠져나가더니, 결국 우리를 남제에 팔아넘겼어!”“남제가 비열하다지만, 너희 동산국은 더더욱 파렴치하구나!”이령은 태연하게 반박했다.“이보시오, 우리 동산국은 그저 억울할 뿐이오.”“담대연이 동산국 소속이 아니라는 건 폐하와 황후께서 직접 말씀하신 일이오.”“당신이 그 자리에서 반박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 나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오?”그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덧붙였다.“대하는 여전히 강자에게는 비굴하면서 약자에게만 큰소리를 치는군.”“이 자식이…!”“무슨 짓이냐!” 궁문 앞을 지키던 호위가 날
봉구안이 다시 담대연을 마주했을 때, 그의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이전처럼 생기 없는 절망이 깃들어 있지는 않았다.“담대연, 동산국에서 사신을 보내 너를 데려가 처분하려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느냐?”담대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럴 줄 알고 있었습니다.”“그들이 원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담대가의 ‘거미줄’이지요.”봉구안의 표정이 단호해졌다.“너는 모든 사람을 이용했어. 동산국마저도.”담대연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지요. 그들에게 가면 결국 도살될 운명이니까요.”그는 동산국에 돌아가더라도 온전한 결말을 맞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한 태도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봉구안은 직설적으로 물었다.“결정을 내렸느냐?”담대연의 선이 고운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스쳤다.그가 결심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녀를 찾아올 이유도 없었을 터였다.“소신, 남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공손히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마른 몸이 반쯤 굽혀지며 깊은 어둠이 깃든 눈동자가 바닥을 향했다.봉구안은 이 결과가 놀랍지 않았다.야망이 가득한 인물에게는 강한 나라만이 그의 터전이 될 수 있었다.자신을 구할 힘도 없는 동산국은 이미 그의 선택지에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봉구안은 그의 예를 받고 똑같이 손을 모아 답례했다.겸허한 자세였으나, 목소리는 단호했다.“네 재능은 충분히 중용할 만하다. 다만...”그녀는 말을 멈추고 분위기를 잠시 가라앉혔다.“이번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네가 만들어낸 것이다.”“그런데 그냥 너를 풀어준다면, 백성들과 신하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니 당분간 천옥에 머물며 무학당의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하거라.”“내가 폐하께 주청을 올려 너에게 조용한 감옥을 배정하도록 하겠다.”이 말을 들은 담대연은 미묘하게 눈빛을 떨구었다.그러나 이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백성들을
붙잡힌 간수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황후마마, 소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씀이십니까?”봉구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천옥의 간수가 뇌물을 받고 외부와 내통했으니, 이는 곧 반역죄다.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이다.”간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말도 안 돼! 황후마마께서 내가 몰래 저지른 일을 다 알고 계셨다고?’‘대체 누가 나를 밀고한 거지?’그는 당황하여 급히 땅에 머리를 찧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제발 살려주십시오, 황후마마!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그러나 봉구안은 그의 애원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그녀는 천옥의 관리에게 명령을 내렸다.“삼일 안에 네 수하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보고하라.”“명 받들겠습니다!”관리관은 머리를 깊이 숙이며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봉구안은 이어서 주위를 둘러보며 긴장한 표정의 간수들에게 경고했다.“삼일 안에 스스로 자백하는 자에게는 참작할 것이다. 하지만 조사로 밝혀진다면, 가차 없이 처벌할 것이다!”천옥은 중요 범죄자들이 수감되는 곳이었다.여기서 간수들이 뇌물을 받아 죄수와 외부인이 몰래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이런 부패를 방치하면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반드시 뿌리 뽑아야 했다.……어전.궁으로 돌아온 봉구안은 담대연의 결정을 소욱에게 알리고, 천옥 내부의 부패 문제까지 보고했다.소욱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천옥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이냐?”봉구안은 차분히 차를 건네며 말했다.“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이미 사람을 보내 철저히 조사하도록 했습니다.”소욱은 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한 듯했다.“이런 자들은 모조리 처형해야 마땅하다!”그러나 봉구안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담대연이 동산국 사신을 만나기를 요청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소욱은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느냐?”봉구안은 솔직하
쾅!담대연이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강력한 내공이 폭발하며 원담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원담은 재빨리 자세를 고쳐 중심을 잡으려 했으나, 결국 등 뒤 감옥 철창에 부딪히고 말았다.눈을 들어 보니, 담대연이 이미 감옥 자물쇠를 부수고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원담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경계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이 자의 무공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그렇게 생각할 틈도 없이, 담대연은 이미 그의 앞에 서 있었다.그가 공격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담대연은 뜻밖에도 그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줄 뿐이었다.마치 예전의 다정했던 스승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이어 그는 원담의 소매 주름까지 매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러나 그 말 속에는 차가운 경고가 담겨 있었다.“내가 왜 너를 만나자 했는지 아느냐?”“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원담아, 네 목숨은 내가 구해준 것이다. 그런 네가 어찌 감히 나를 거역하고 불경을 저지르느냐.”“남제에서 문제를 일으키려거든 각오해라.”“내 손으로 네 목을 꺾어버릴 테니.”원담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분노가 치밀었으나, 그 순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천옥 밖.이령은 천옥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원담이 무사히 나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원 장군, 괜찮소? 남제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니겠지요?”천옥, 이곳은 결코 예사로운 곳이 아니었다.원담은 싸늘한 표정으로 이령을 밀쳐내며 앞으로 걸어갔다.이령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천옥의 엄숙한 대문을 쳐다보았다.그의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밀려왔다.‘이곳에 더 머물러선 안 된다. 이곳은 결코 우리에게 유리한 곳이 아니야.’……천옥 안.담대연은 감옥 문을 부수고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다시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부서진 자물쇠를 집어 들어 다시 문을 잠갔다.모든 행동이 차분하고 여유로웠으며, 그의 표정은 어떤 흔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
소욱은 봉구안의 생각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었다.방금 전까진 분명 모용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태조 황제 묘까지 들먹이는 것일까?그래도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답해 주었다.“태조께서는 동릉에 묻혔다.”도굴을 막기 위해 태조의 능은 총 열세 곳에 분산되어 있었고, 각각의 무덤엔 무거운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허나 그 열세 곳 모두가 가짜였다.진짜 묘는 오직 역대 황제만이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봉구안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단호하게 말했다.“폐하, 능을… 잠시 열어볼 수 있겠습니까?”소욱의 눈썹이 즉시 찌푸려졌다.“안 된다.”태조 황제는 이미 서세를 마친 성조였다.그분의 안식을 함부로 깨뜨릴 순 없었다.봉구안도 그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일은 약쟁이 사건의 진상에 직결되는 문제였다.그녀는 침착히 입을 열었다.“진정 불로장생을 원한 사람은 모용길이 아니라 태조 황제였을 수도 있습니다.”소욱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구안아, 지금 네 말은… 너무 황당하구나.”“설마 이 모든 약쟁이 사건의 배후가 태조 황제라는 것이냐?”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동방세가 그린 그 인물은 모용길과 닮았을 뿐, 자신들의 소씨 가문과는 단 한 점도 닮은 데가 없었다.봉구안도 이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라 단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직감은 이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모용길이 연막을 치고 모용욱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뒤, 모용가 전체를 끌어들인 것만 봐도… 그 자는 모용가의 존망 따윈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그렇다면 그 자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한 건, 다른 무엇일지도 모릅니다.”그녀의 눈빛이 깊어졌다.“폐하, 이백 년 전의 일은 저희가 직접 본 게 아닙니다.”“하지만 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 황제께서는 남산왕, 서왕, 그리고 모용길과는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이였다고 합니다.”“남산왕은 태조의 명을 따라 세세손손 봉맥을 지켜왔고, 서왕가는 동부를
봉구안은 이전에 모용가의 선조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들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다.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태조 황제가 천하를 개척할 당시,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군량과 보급을 아낌없이 헌납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승상에 올랐지만 불과 세 해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향년, 마흔.그런데 지금 동방세가 그려낸 배후 인물의 얼굴이 그 모용길과 너무도 흡사했다.소욱 역시 그림을 비교해보았다.한 손엔 방금 받은 초상화, 다른 한 손엔 책에 실린 옛 그림이 들려있었다.똑같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십중팔구 정도 닮은 듯했다!그는 봉구안과 눈을 마주쳤다.“얼굴이 닮은 거겠지. 아니면 모용가 어딘가에 숨어 있던 서자일지도 몰라.”소욱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그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봉구안은 강호를 누비며 별의별 기이한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충북에는 삼백 살 넘은 노인이 있다 들었습니다.”“신무파 장문도 이백십칠 년을 살았다죠.”“남제가 건국된 지 이제 겨우 이백 년 남짓입니다.”“만일 정말 불로장생이 가능하다면, 모용길이 살아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봉구안은 담담히 말했다.게다가, 그녀를 더욱 확신에 가까운 의심으로 이끄는 단서가 하나 더 있었다.“폐하, 서왕께선 납치 당시에 그들이 피를 원했다고 했습니다.”“그 피를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요.”“이건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소욱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서왕 말로는, 그 자가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하던데... 횡설수설하는 미치광이였다고.”봉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들을 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오히려 모용길이 이번 일의 진짜 배후라 생각합니다.”“모용가의 조상사당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독초를 재배하려면 내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지요.”“그리고 모용욱의 검거도 너무 순조로웠습니다.”“모든 것이… 너무 ‘그럴듯’했어요.”“어쩌면, 모든 건 모용길이 준
봉구안은 소욱이 자신을 다시 궁으로 데려온 진짜 이유가, 자신이 서여국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욱은 조심스레 사과할 말을 고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문득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소욱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봉구안은 다시금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그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그 동작엔 위로와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번 일은 폐하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저를 의심하신 건 제가 드린 믿음이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겠지요.”“담대연은 말재주가 뛰어납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흔들릴 만합니다.”그녀는 시선을 마주하고 또박또박 말했다.“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제 마음속에서 가족이 있는 곳이, 진짜 ‘집’입니다.”“폐하께서는 저의 지아비이십니다. 혈육은 아니지만, 저의 여생을 함께할 유일한 사람이지요.”“서여국이 아무리 좋아도, 폐하만큼 소중하진 않습니다.”소욱의 손끝이 떨렸다.“너… 그 말이 진심이냐?”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내가 정말 네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봉구안은 오히려 되물었다.“폐하가 아니면 누가 있겠습니까?”그러자 소욱은 손가락을 접으며 셈을 하기 시작했다.“사부랑 사모, 그리고 봉장미, 게다가… 네 뱃속에 있는 이 녀석.”“세상 사람들 다 그러더라. 자식은 어미의 인생 그 자체라고… 지금도 내 순위가 그리 높진 않은데, 아이가 태어나면 내 자리는 더 밀려나겠지.”봉구안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그녀는 진지하게 설명했다.“사부님과 사모님은 저에게 산처럼 큰 은혜를 주신 분들이지만, 그분들도 장미와 마찬가지로 ‘혈육’일 뿐입니다.”“저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요.”“아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폐하를 마음에 두었기에 생긴 아이인데, 어떻게 그 아버지를 제쳐둘 수 있겠습니까?”“폐하야말로 제가 앞으로 비바람을 함께할 사람,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유
아침 조회.조정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신료들은 하나같이 모용가를 엄하게 조사하겠다며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폐하 모용가 사당에서 이상한 점이 드러났고, 모용욱의 저택에서는 약쟁이 소굴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드시 모용 일가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신도 동의합니다! 모용욱 혼자만의 짓일 리 없으며, 모용가의 다른 이들도 직접 연루되진 않았더라도 방조하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조묘 사건 이후, 모용가는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하였다.이번 약쟁이 사건은 수많은 무고한 관리까지 연루되며 사람들의 불신과 공포를 증폭시켰고,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민심을 수습하려면, 이참에 반드시 철저히 죄를 묻고 엄벌해야 했다.결국 모용 일가는 또다시 전원 구금되었다.이전엔 모용선의 아버지, 모용렴이 자신을 희생해 가문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틈조차 없었다.옥양산.태황태후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동요했다.더 이상 모용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던 그녀였지만, 이번 일은 너무나도 중대했다.“약쟁이라니... 어떻게 모용가가 그런 일에 휘말릴 수 있단 말이냐…”수십 년을 모신 상궁이 다급히 물었다.“태황태후마마, 이제 어찌해야 할지…”태황태후는 부처상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구었다.“모용가가 정말 죄를 지었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구하겠느냐. 죄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제 황제 얼굴조차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말을 전하겠느냐.”“이건… 하늘이 우리 모용가를 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태황태후는 그날로 병석에 눕고 말았다.황궁, 자녕궁.태후는 태황태후의 병세를 전해 듣고 즉시 태의를 보냈다.곁에 있던 계 상궁이 조심스레 속삭였다.“태후마마, 태황태후께서는 예전에 천룡회와 손잡고 폐하를 몰아내려 하셨고, 이번엔 모용가가 약쟁이 일로 큰 소란을 일으켰으니 굳이 정성을 들이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그 말에 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나직이 꾸짖었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입을 조심하지 못하겠느냐. 말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