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욱이 비응군을 봉구안에게 맡기겠다고 처음 언급한 것은 그녀가 서녀국에서 사신 임무를 마친 직후였다. 그러나 대전쟁이 발발하며 이 일이 잠시 보류되었었다.그런데도 소욱이 다시 이 문제를 꺼내며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것은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진심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봉구안은 조금 염려가 됐다.“이 일이 조정에 알려졌습니까?”소욱은 그녀를 뒤에서 안으며 태연히 말했다.“이미 몇몇 중신들에게 언질을 주었다. 그들도 나의 뜻에 동의했지.”“오늘 조정에서는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대신들에게 밝히고, 반대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지금 남제가 제국들을 공격하려 하는데, 반대하는 자는 직접 전장으로 가라고… 그랬더니 더 이상 반대하는 사람은 없더군.”그가 쉽게 이야기했지만, 봉구안은 알고 있었다. 소욱이 이 병부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말이다.특히 나이가 지긋한 대신들은 말 한마디로 쉽게 움직이지 않을 사람들이다.봉구안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그 대신들이 폐하를 욕하며 폭군이라 하지 않던가요?”소욱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녀 앞에서 부드러워졌다.“욕하더군. 나를 혼군이라 부르며, 미색에 빠져 나라를 망칠 거라고 하였다.”“심지어 선황께서 무덤에서 뛰쳐나올 거라 말하더군. 그러니 황후, 나를 더 아껴주면 안되겠느냐.”봉구안은 병부를 꼭 쥐고 천천히 몸을 숙여 그를 아래로 눕혔다.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제국 사신들이 저희를 찾아온 상황이죠. 조금 더 기다리게 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그러면서 그녀는 허리띠를 풀며 그의 눈을 가렸다.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속삭였다.“폐하…”7월의 날씨는 6월만큼 덥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후덥지근했다.대전에서는 제국의 사신들이 이미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남제의 대신들은 의자에 앉아 있는 반면, 사신들은 서서 기다리며 더 초라한 모습이었다.게다가 일부 사신들은 이미 매질을 당한 터라, 얼굴이 부어 있어 더욱 곤란한 상황이었다.
동산국의 사신들은 비단과 말들을 가지고 와 예를 다했다.“동산국은 어느 나라의 분쟁에도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 제국들이 남제를 공격한 일도, 우리 황제 폐하께서 들으신 소문에 따르면, 모두 동산국의 중상모략에서 비롯되었다 하셨습니다.”다른 나라의 사신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속으로 생각했다.'도대체 이 동산국 사신들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자기들만 깨끗하다는 건가?'당초, 남제를 나눠 가지자고 다른 나라를 설득한 것이 바로 동산국 아니었던가!동산국 사신인 이령이 말을 이었다.“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모든 문제의 발단은 바로 담대연에게 있었습니다.”“그 자는 황제 폐하의 신임을 얻어 국사로 추대되고 동산국에서 귀빈으로 대우 받았습니다.”“하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저희 폐하를 꾀어 남제를 공격하고 패권을 이루려 했습니다.”“폐하께서는 그 꾀임에 넘어가지 않으셨지만, 그 자는 포기하지 않고 몰래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남제를 공격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심지어는 동산국의 이름을 빌려 이 일을 꾸민 것이었습니다.”이 말을 듣자 대하의 사신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이게 무슨 소리인가! 남제를 공격하자는 게 동산국의 뜻이 아니었단 말이오?”이령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물론이네. 제국들이 남제를 공격한 건 우리 동산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소. 당신들은 모두 담대연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오.”다른 나라의 사신들이 즉각 반박했다.“어떻게 담대연 한 사람이 이런 거대한 일을 꾸밀 수 있단 말이오? 누굴 속이려는 거요?”“당초 그는 동산국의 국서를 가지고 왔었소!”“이건 명백히 동산국이 발뺌하는 거요. 남제를 두려워해서 책임을 피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오?”“폐하, 저자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남제를 공격하자는 주범은 바로 동산국입니다!”“맞습니다! 폐하, 저희는 모두 동산국에게 이용당했을 뿐입니다!”제국의 사신들은 일제히 동산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동산국의 사신은 차분한 태도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폐하,
동산국의 사신은 두 명이었다.이령이 말실수를 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할 뻔하자, 그는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렸다.그는 옆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사신, 원담을 바라보았다.왜소한 체격의 소년이었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며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마침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신이 듣기로, 남제가 제국들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동방가에서 개량한 '거미줄' 덕분이라고 하며, 이를 찾아내는 데 담대연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따라서 소신은 담대연이 제국들을 자극한 이유가, 제국의 군대를 남제로 끌어들여 남제가 제국들을 손쉽게 무너뜨리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됩니다.”“그렇지 않고서야, 상식적으로 담대연에게 분노해야 할 귀국이 왜 단순히 그를 감금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겠습니까?”“이로 미루어 볼 때, 귀국이 담대연을 내놓지 않는 것은 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옵니다.”남제 대신들은 일제히 분노하며 외쳤다.“터무니없는 소리! 적반하장도 유분수지!”“아까는 담대연이 동산국 사람이라고 해놓고, 이제는 남제와 결탁했다고 하니,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지 않소!”원담은 남제 대신들의 질책에도 개의치 않고, 직접 소욱에게 물었다.“폐하께서 담대연을 보호하신다면, 온 세상과 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겁니까?”소욱은 냉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내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겠느냐? 이미 제국들과 싸우고 있는 처지 아니더냐.”소욱은 아래에 앉아 있는 사신들을 둘러보며 이어 말했다.“제국들이 우리 남제에 맞섰다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똑똑히 보라. 그런 뒤에 나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는지 다시 물어보거라.”사신들은 고개를 떨구며 땀을 흘렸다.‘이럴 줄이야! 동산국이 이런 무리수를 둘 줄 몰랐군. 남제가 두려워할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건만….’동산국의 사신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봉구안은 냉랭한 시선으로 그들을 훑어보았다.동산국이 담대연을 데려가려는 이유는 그를 처벌하기 위
사신 이령은 순간 말을 잃었다.통상이라니?이건 너무 무리한 요구였다.동산국은 지금까지 어느 나라와도 통상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하지만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 소욱이 동산국에 영토 할양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결국, 자신의 실언이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이었다.이령은 속으로 깊이 후회하며 옆에 있던 원담을 바라보았다.원담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령은 그제야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통상은 양국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니, 이 뜻을 반드시 저희 폐하께 전하겠습니다.”봉구안은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폐하, 좋은 일이 이루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지만, 너무 늦추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즉시 문서를 작성해 사신들에게 서명하게 하고, 이를 동산국으로 가져가 정식 국서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사신은 황제를 대표하는 존재이므로, 한 번 서명하면 번복할 수 없는 일이었다.소욱은 미소를 머금으며 봉구안의 손을 잡고 말했다.“역시 황후의 생각이 깊구나. 여봐라, 문서를 준비하라!”……밤이 깊어지고, 궁문이 열리자 사신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그들의 얼굴은 창백했고, 걸음걸이조차 무거웠다.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몰골이었다.궁문 앞에서는 대하 사신이 흥분한 채 동산국 사신 이령의 멱살을 잡아챘다.“동산국, 너희 정말 교묘하구나! 담대연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빠져나가더니, 결국 우리를 남제에 팔아넘겼어!”“남제가 비열하다지만, 너희 동산국은 더더욱 파렴치하구나!”이령은 태연하게 반박했다.“이보시오, 우리 동산국은 그저 억울할 뿐이오.”“담대연이 동산국 소속이 아니라는 건 폐하와 황후께서 직접 말씀하신 일이오.”“당신이 그 자리에서 반박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 나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오?”그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덧붙였다.“대하는 여전히 강자에게는 비굴하면서 약자에게만 큰소리를 치는군.”“이 자식이…!”“무슨 짓이냐!” 궁문 앞을 지키던 호위가 날
봉구안이 다시 담대연을 마주했을 때, 그의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이전처럼 생기 없는 절망이 깃들어 있지는 않았다.“담대연, 동산국에서 사신을 보내 너를 데려가 처분하려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느냐?”담대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럴 줄 알고 있었습니다.”“그들이 원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담대가의 ‘거미줄’이지요.”봉구안의 표정이 단호해졌다.“너는 모든 사람을 이용했어. 동산국마저도.”담대연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지요. 그들에게 가면 결국 도살될 운명이니까요.”그는 동산국에 돌아가더라도 온전한 결말을 맞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한 태도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봉구안은 직설적으로 물었다.“결정을 내렸느냐?”담대연의 선이 고운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스쳤다.그가 결심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녀를 찾아올 이유도 없었을 터였다.“소신, 남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공손히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마른 몸이 반쯤 굽혀지며 깊은 어둠이 깃든 눈동자가 바닥을 향했다.봉구안은 이 결과가 놀랍지 않았다.야망이 가득한 인물에게는 강한 나라만이 그의 터전이 될 수 있었다.자신을 구할 힘도 없는 동산국은 이미 그의 선택지에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봉구안은 그의 예를 받고 똑같이 손을 모아 답례했다.겸허한 자세였으나, 목소리는 단호했다.“네 재능은 충분히 중용할 만하다. 다만...”그녀는 말을 멈추고 분위기를 잠시 가라앉혔다.“이번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네가 만들어낸 것이다.”“그런데 그냥 너를 풀어준다면, 백성들과 신하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니 당분간 천옥에 머물며 무학당의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하거라.”“내가 폐하께 주청을 올려 너에게 조용한 감옥을 배정하도록 하겠다.”이 말을 들은 담대연은 미묘하게 눈빛을 떨구었다.그러나 이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백성들을
붙잡힌 간수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황후마마, 소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씀이십니까?”봉구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천옥의 간수가 뇌물을 받고 외부와 내통했으니, 이는 곧 반역죄다.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이다.”간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말도 안 돼! 황후마마께서 내가 몰래 저지른 일을 다 알고 계셨다고?’‘대체 누가 나를 밀고한 거지?’그는 당황하여 급히 땅에 머리를 찧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제발 살려주십시오, 황후마마!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그러나 봉구안은 그의 애원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그녀는 천옥의 관리에게 명령을 내렸다.“삼일 안에 네 수하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보고하라.”“명 받들겠습니다!”관리관은 머리를 깊이 숙이며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봉구안은 이어서 주위를 둘러보며 긴장한 표정의 간수들에게 경고했다.“삼일 안에 스스로 자백하는 자에게는 참작할 것이다. 하지만 조사로 밝혀진다면, 가차 없이 처벌할 것이다!”천옥은 중요 범죄자들이 수감되는 곳이었다.여기서 간수들이 뇌물을 받아 죄수와 외부인이 몰래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이런 부패를 방치하면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반드시 뿌리 뽑아야 했다.……어전.궁으로 돌아온 봉구안은 담대연의 결정을 소욱에게 알리고, 천옥 내부의 부패 문제까지 보고했다.소욱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천옥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이냐?”봉구안은 차분히 차를 건네며 말했다.“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이미 사람을 보내 철저히 조사하도록 했습니다.”소욱은 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한 듯했다.“이런 자들은 모조리 처형해야 마땅하다!”그러나 봉구안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담대연이 동산국 사신을 만나기를 요청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소욱은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느냐?”봉구안은 솔직하
쾅!담대연이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강력한 내공이 폭발하며 원담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원담은 재빨리 자세를 고쳐 중심을 잡으려 했으나, 결국 등 뒤 감옥 철창에 부딪히고 말았다.눈을 들어 보니, 담대연이 이미 감옥 자물쇠를 부수고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원담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경계의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이 자의 무공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그렇게 생각할 틈도 없이, 담대연은 이미 그의 앞에 서 있었다.그가 공격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담대연은 뜻밖에도 그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줄 뿐이었다.마치 예전의 다정했던 스승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이어 그는 원담의 소매 주름까지 매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러나 그 말 속에는 차가운 경고가 담겨 있었다.“내가 왜 너를 만나자 했는지 아느냐?”“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원담아, 네 목숨은 내가 구해준 것이다. 그런 네가 어찌 감히 나를 거역하고 불경을 저지르느냐.”“남제에서 문제를 일으키려거든 각오해라.”“내 손으로 네 목을 꺾어버릴 테니.”원담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분노가 치밀었으나, 그 순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천옥 밖.이령은 천옥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원담이 무사히 나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원 장군, 괜찮소? 남제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니겠지요?”천옥, 이곳은 결코 예사로운 곳이 아니었다.원담은 싸늘한 표정으로 이령을 밀쳐내며 앞으로 걸어갔다.이령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천옥의 엄숙한 대문을 쳐다보았다.그의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밀려왔다.‘이곳에 더 머물러선 안 된다. 이곳은 결코 우리에게 유리한 곳이 아니야.’……천옥 안.담대연은 감옥 문을 부수고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다시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부서진 자물쇠를 집어 들어 다시 문을 잠갔다.모든 행동이 차분하고 여유로웠으며, 그의 표정은 어떤 흔
강림은 약간의 불안을 감추며 말했다.“그 암시장 경로는 강가에서도 가끔 이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약쟁이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봉구안은 술잔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문지르며 말했다.“그래, 계속 말해 보거라.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강림은 마음을 다잡고 진심 어린 태도로 답했다.“혹시 오해하실까 봐 여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사실 그 암시장 경로는 수십 년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우리 강가 사업도 때로는 그 경로를 사용해왔죠.”“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약거래가 크게 성행했을 뿐입니다.”“최근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래가 거의 끊긴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을 보내 지켜보고 있으니, 약과 관련된 움직임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현재로선 별다른 진척은 없습니다.”봉구안은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그가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동산국과 남제 사이에 약거래가 실제로 있었다는 점이다.……남제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위로는 군주부터 아래로는 지방 관리까지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백성들의 집을 재건하고, 제국들로부터 할양받은 영토를 재분배하며, 남제의 새 지도를 그리는 작업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지도 작업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관료들이 직접 현장을 조사하고 자료를 모아야 했다.제국들 또한 현실을 받아들였고, 보상을 대가로 향후 1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며 재기를 준비하고 있었다.사신들이 휴전 조약에 서명한 뒤 소욱은 그들의 포로를 돌려보냈다.그 중 대하의 사신이 단춘을 만났을 때 그는 이미 뼈만 앙상히 남아 비참한 모습이었다.단식은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교수형이나 투신보다 더 고통스럽고 지속적인 선택이었다.단춘은 처음에는 견디고자 했지만, 결국 생존 본능에 굴복해 남제가 제공한 음식을 먹게 되었다.그러나 마음속 죄책감에 매번 음식을 폭식한 뒤 손가락을 넣어 구토를 했다.그 결과 그는 지금의 비참한 상태에 이르렀다.결국 자신이 귀국할 수 있게 된 것
아침 조회.조정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신료들은 하나같이 모용가를 엄하게 조사하겠다며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폐하 모용가 사당에서 이상한 점이 드러났고, 모용욱의 저택에서는 약쟁이 소굴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드시 모용 일가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신도 동의합니다! 모용욱 혼자만의 짓일 리 없으며, 모용가의 다른 이들도 직접 연루되진 않았더라도 방조하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조묘 사건 이후, 모용가는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하였다.이번 약쟁이 사건은 수많은 무고한 관리까지 연루되며 사람들의 불신과 공포를 증폭시켰고,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민심을 수습하려면, 이참에 반드시 철저히 죄를 묻고 엄벌해야 했다.결국 모용 일가는 또다시 전원 구금되었다.이전엔 모용선의 아버지, 모용렴이 자신을 희생해 가문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틈조차 없었다.옥양산.태황태후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동요했다.더 이상 모용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던 그녀였지만, 이번 일은 너무나도 중대했다.“약쟁이라니... 어떻게 모용가가 그런 일에 휘말릴 수 있단 말이냐…”수십 년을 모신 상궁이 다급히 물었다.“태황태후마마, 이제 어찌해야 할지…”태황태후는 부처상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구었다.“모용가가 정말 죄를 지었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구하겠느냐. 죄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제 황제 얼굴조차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말을 전하겠느냐.”“이건… 하늘이 우리 모용가를 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태황태후는 그날로 병석에 눕고 말았다.황궁, 자녕궁.태후는 태황태후의 병세를 전해 듣고 즉시 태의를 보냈다.곁에 있던 계 상궁이 조심스레 속삭였다.“태후마마, 태황태후께서는 예전에 천룡회와 손잡고 폐하를 몰아내려 하셨고, 이번엔 모용가가 약쟁이 일로 큰 소란을 일으켰으니 굳이 정성을 들이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그 말에 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나직이 꾸짖었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입을 조심하지 못하겠느냐. 말 그
어전.“폐하, 서왕 전하와 왕비마마께서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서왕 전하께서 지금 궁문 밖에 대기 중이며, 아뢸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이 말을 들은 소욱은 지체 없이 명하였다.“어서 들라.”얼마 지나지 않아, 서왕은 발걸음을 옮겨 어전으로 들어섰다.그는 문턱을 넘자마자 곧장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신, 폐하를 뵙나이다!”소욱은 그 기색을 살피고, 정신이 온전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음을 놓았다.“무사하다니 다행이로구나.”헌데, 서왕의 안색은 심상치 않았다.“폐하, 신이 납치당한 이유는… 그들이 신의 피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신의 부친께서 돌아가시던 때가 떠올랐습니다.”소욱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그는 눈빛을 가라앉히고 그를 바라보았다.“너의 피를 왜 필요로 한단 말이냐? 그자들이 정말 피를 취하였느냐?”서왕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취하지는 못하였사오나, 그들의 목적이 분명 피에 있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부친께서 돌아가신 그 사건 역시,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소욱의 미간이 좁게 모아졌다.그는 전대의 왕부, 곧 서왕의 아버지에 관한 억울한 일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 일로 선황은 오랫동안 후회하며 침식을 잊고 괴로워했었다.그래서 소욱 또한, 이후 누구에 대해 반역 운운하는 소문이 돌 때마다 쉽게 믿지 않았다.선왕이 저지른 실책을 그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허나 지금 와서 다시금 드러나는 의혹은 그 죽음이 단순한 누명이나 정치적 숙청이 아닌, 무언가 깊은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소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자세히 말해 보아라.”……황성 서쪽.봉구안의 행차가 한적한 관로에 이르렀을 때, 한 일행이 그녀를 막아세웠다.오백이 곧장 검을 뽑아 방어 태세를 취했으나, 막아선 이들이 익숙한 인물임을 곧 알아보았다.바로 자재각을 지키던 소욱의 친위 호위병들이었다.그들은 마차를 둘러싸며 호위 진형을 갖추었다.“마마, 저희는 폐하의 명을 받아 마마를 궁으로 모
소욱은 한참을 고심한 끝에, 어느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천명을 믿지는 않았으나, 담대연이 말한 ‘인성’은 부정할 수 없었다.봉구안은 언제나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과거 그녀가 이미 단회욱을 마음에서 지웠음에도, 그를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죽음을 택했던 일은 지금도 눈에 선했다.서여국은 외환보다 내우가 깊은 나라였다.아무리 소주와 정국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안으로는 여전히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이번에 봉구안이 직접 서여국에 가게 되면, 그 혼란 속에서 국주로 추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녀의 성정상 그 책임을 외면하진 못할 터였다.결국엔 남제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소욱의 가슴을 옥죄었다.담대연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천하통일. 그러나 그보다 무서운 건, 그 길목에서 아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진한길.”“신, 여기 있습니다!”“황후를 몰래 다시 데려오거라. 사람을 붙여, 은밀히.”진한길은 순간 의아함을 품었다.폐하께서 왜 이리도 갈팡질팡하시는 걸까………한편, 황성 서쪽 교외.담대연이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지하궁의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그가 손을 쓰자 거대한 암석이 옆으로 밀려나며, 숨겨진 지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담대연은 호위들에게 엄중히 이르렀다.“이곳은 함정과 기계장치가 많습니다. 제 발을 따라오십시오. 절대 멋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명심하겠습니다!”……지하궁 내.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서왕과 완부옥은 이미 허기와 피로로 맥을 잃고 있었다.그때, 누군가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그 인물은 이전에 죽은 자의 시체를 발견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시체를 끌고 나갈 뿐이었다. 마치 이곳에서 죽음은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시체를 처리한 뒤, 그자는 곧장 서왕을 데리고 가려 했다.완부옥은 그를 향해 소리쳤다.“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대답은 없었다. 그저 서왕을 밀어내듯 이끌 뿐이었다.하지만, 그들은 이미 내공
그 뱀은 영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슥, 하고 순식간에 주실 안으로 기어들어가더니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뱀을 잡기 위해선 황후의 물건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반드시 폐하께 고해야 할 사안이었다.때마침 소욱은 밤이 깊어도 봉구안이 그리워져 자유각을 찾았다.호위들은 이 일을 곧장 아뢰었다.소욱의 눈썹이 짙게 찌푸려졌다.그는 친히 방으로 들어가 사방을 뒤적이다, 마침내 침상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뱀을 발견하였다.그 순간, 그는 뱀의 눈과 마주쳤다.소욱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이놈을 당장 잡아내라…”막 명하려던 찰나, 그는 그 뱀이 어딘가 익숙하단 걸 느꼈다.이 뱀은… 분명 완부옥이 기르던 그 뱀과 닮아 있었다.완부옥과 서왕이 함께 실종된 걸 떠올린 소욱은 곧 심중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그는 즉시 명하여 뱀을 그물망에 넣게 한 뒤, 서왕부로 보내어 확인하게 하였다.서왕부의 호위, 유화가 그 뱀을 확인하였다.그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억누르며 가까이 다가갔고, 잠시 후 단호하게 말했다.“왕비마마께서 기르던 뱀입니다.”자유각.소욱은 전갈을 받은 후, 이 일에 더없이 의아해졌다.완부옥의 뱀이 어찌 자유각까지 온단 말인가?설령 이 뱀이 길을 안다 하여도, 돌아간다면 당연히 서왕부로 가야 할 터였다.그는 곧 봉구안에게 전령 비둘기를 날렸다.그 시각, 봉구안은 황성을 갓 벗어난 참이었다.편지를 받아든 그녀는 곧장 완부옥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예전에 완부옥이 똑같은 짓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곧장 회신을 써서 다시 소욱에게 전했다.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봉구안은 잠시 고심한 끝에, 두 번째 편지를 써 보냈다.그 안엔 한 마디 당부가 적혀 있었다.[폐하, 부디 경솔한 행동은 삼가 주시옵고, 무엇보다 폐하의 안전을 우선으로 삼으소서.]소욱은 첫 번째 편지를 받고 곧장 진한길을 불렀다.“서왕의 흔적을 찾을 실마리를 얻었다. 몇 사람을 데려가 뱀을 풀고, 그 자취를 따라가 보아라.”“예, 폐
지하궁은 온통 어둠뿐이었다.완부옥과 서왕은 감금되어 있던 방을 빠져나왔으나, 사방이 캄캄하여 동서남북조차 분간할 수 없었고, 출구를 찾는 것조차 막막하였다.서로 떨어질까 염려된 완부옥은 명령조로 말했다.“제 옷소매를 붙잡아요. 바짝 따라와요.”“알겠다.” 서왕은 그녀의 뒤를 따르는 수행자처럼 움직였다.그가 조심스레 속삭였다.“조심하거라. 혹시 저들이…”“쉿. 소리 들리십니까?”완부옥이 숨을 죽이며 물었다.그 순간, 어둠 속에서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려왔다.누군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둘은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인 채, 벽에 몸을 바짝 붙여 섰다.다행히도 어둠이 그들의 몸을 감추었고, 다가오던 자는 그들을 발견치 못한 채 멀어져갔다.발소리가 사라지자, 완부옥은 서왕의 귀가에 바싹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벽을 더듬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출구가 보일 겁니다.”서왕이 대답하였다.“네가 앞장서거라. 나는 네 옷자락을 붙잡으마.”“……”‘참, 한 손가락도 까딱 안 하려 드는군.’예전 소환과 함께 위기에 빠졌을 때는 달랐다.그저 조금 투정만 부리면, 소환은 그녀를 안고서 척척 길을 찾아주곤 했다.‘하… 또 소환이 그리운 하루네.’완부옥은 ‘짐짝’ 하나를 등에 지고서 벽을 더듬으며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한 걸음마다 온몸이 긴장되었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적들의 기척에 늘 귀를 곤두세워야 했다.지나치게 어두운 환경에 눈이 점점 아파왔고, 이윽고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걸음을 멈췄다.서왕은 그녀가 지친 줄 알고 말했다.“내가 앞장서마. 넌 내 옷자락을 붙잡거라.”완부옥은 비웃듯 말했다.“이제야 남자였던 게 기억난 겁니까?”“……”그녀의 말은 확실히 가시가 있었다.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모든 위기는 결국 그녀가 그를 구하려다 엮인 결과였다.명색만 아내인 그녀가 이토록 의리를 지닌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그리하여 둘은 번갈아가며 벽을 더듬었고,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게 돌고 돌다가 결국, 처음 그 시체가
완부옥은 지금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자만했던 탓에 전부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서왕은 그저 이름만 걸친 지아비일 뿐, 생사 여부는 그녀와 무관한 일이었다.허나 그를 구하겠답시고 나섰다가 결국 본인까지 덩달아 갇혀버린 셈이었다.“정말이지, 손해도 이런 손해가 또 있을까.”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지금 가장 급한 일은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완부옥은 숨을 죽이고 목소리를 낮추어 서왕에게 말했다.“제가 폐하보다 먼저 깨어났습니다.”“이놈의 곳은 온통 함정투성이인데다, 한밤중이면 어딘가에서 귀신 울음소리 같은 것까지 들려옵니다.”“도망치려면 단번에 노려야 합니다.”“그러니 우선 생각해보세요. 대체 어떤 자가 폐하를 납치했겠습니까? 목적을 알아야 그것을 역이용할 수 있습니다.”서왕은 긴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딱히 떠오르는 자가 없다.”그는 평소 온화하고 무던한 성격이었기에 원한을 살 일이 별로 없었다.완부옥은 그런 그를 보며 속이 터졌다.“정말 생각 안 나십니까?”“어찌 되었건 노린 건 폐하였고, 전 구하러 따라왔다가 덤으로 잡힌 겁니다!”서왕은 머리를 부여잡았다.“미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안 되는구나…”완부옥은 이를 갈았다.“그럼 지금 움직일 수는 있습니까? 무기는 있습니까?”서왕은 한숨을 내쉬었다.“전신에 기운이 없구나”“게다가 발엔 쇠사슬까지 채워져 있지. 무기라니, 입궐할 때 무기를 지니는 건 금지 아닌가.”완부옥은 말문이 막혀 한동안 침묵했다.서왕이 조심스레 물었다.“그쪽은 어떠한가. 몸을 움직일 수는 있겠느냐?”“내가 움직일 수 있었으면 진작 나갔다!”완부옥은 못마땅하다는 듯 쏘아붙였다.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혹시 약쟁이 무리의 짓이 아닐까요?”최근 조정에서 집중적으로 수사 중인 사건이었고, 서왕이 맡았던 설가 조사도 결국 그 사건과 맞닿아 있었다.서왕은 반박하지 않고 침묵에 잠겼다.그때였다.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하지만 바깥에서조차 한 줄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서왕이 누군가에게 노려질 줄은 말이다.소욱은 곧바로 도성의 모든 성문을 봉쇄하도록 지시하고, 서왕의 행방을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색을 명했다.아울러 도성 안에 방을 붙여 백성들에게 제보를 구하게 하였다.서왕부의 호위들 또한 사태 발생 직후 각지로 흩어져 수색과 감시를 병행했다.이튿날, 성 외곽에서 한 무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유화를 발견했다.유화는 서왕의 호위무사로, 전날 서왕이 꾀임에 빠져 마차에 올라탔을 때도 곁에 있었다.그가 정신을 차리자 곧 일행에게 상황을 설명했다.“마차가 중간쯤 갔을 때, 방향이 이상하단 걸 눈치채셨습니다. 제가 마차를 세우려 하자, 마부놈이 제게 발길질을 해 마차 밖으로 떨어졌지요.”“그때 왕비께서 뒤따라 오셨습니다. 마마께서는 놀랄 만큼 민첩하게 마차 위로 뛰어올랐고… 그다음은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마차가 서쪽으로 향한 것은 분명히 기억납니다.”이윽고 유화는 다급히 물었다.“전하께서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은 폐하께서 알고 계십니까? 구하러 가신 분은 있습니까?”……황궁, 어전.소욱의 얼굴은 짙게 드리워진 먹구름처럼 어두웠다.서왕을 납치한 자가 누구인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약쟁이 무리의 소행일 가능성이 가장 컸지만, 그들의 본거리는 이미 파괴되었고 대부분이 체포된 상황이었다.남은 잔당들이 있다 해도, 서왕 같은 인물을 일부러 노리고 데려갈 이유는 부족해 보였다.만약 도망이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짐이 되는 인물을 굳이 데려갈 리가 없었다.무언가, 납득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그날 밤, 자유각.소욱은 발걸음을 옮겨 봉구안이 있는 자유각을 찾았다.하루가 멀다 하고 가까운 인물들이 위험에 처하는 이 시국에, 그의 마음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었다.“구안아, 오늘 밤은 나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자.”“이렇게 궁 밖에 두는 건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하지만 봉구안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 눈빛이 깊어졌고,
궁 밖, 자유각.소욱은 드물게 여유를 낼 수 있는 날이었다.곧장 자유각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는 오늘만큼은 봉구안과 함께 저녁상을 나누고자 했다.헌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여러 권의 책을 펼쳐놓고 있었다.고개도 들지 않고 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소욱이 조용히 다가서자, 그제야 봉구안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폐하,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소욱은 그녀의 말에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내가 오는 게 싫은 것이냐?”그 말과 함께 그는 주저 없이 그녀를 안아 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직접 의자에 앉은 그는 그녀의 허리를 품에 안고, 손으로 봉구안의 배를 부드럽게 쓸며 아이에게 말하는 척 투정을 부렸다.“들었느냐, 너희 어미는 참 정이 없는 여자다.”“부디 보러 온 아비를 반가워해 줘야 할 텐데 말이다.”봉구안은 그 손을 떼어내며 어이없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싫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폐하께서 상주서를 다 보시지 못하실까 염려되어서입니다.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으시잖습니까.”그녀의 속뜻을 알게 된 소욱은 그녀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입술을 가져가 살며시 입을 맞췄다.그의 눈빛에는 은근한 정과 깊은 감정이 서려 있었다.“내 걱정은 할 줄도 아는구나.”그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책상 위 책들을 훑었다.“이번엔 또 뭘 보고 있느냐.”“궁에서 은육에게 부탁하여 가져오게 하였습니다.”“혹시라도 모용가 선조들에 대해 알아두면 약쟁이 사건에 도움이 될까 해서요.”소욱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몸을 살짝 기댔다.“그럴 필요 없다. 그냥 내게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봉구안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폐하께서… 알고 계십니까?”소욱은 웃으며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모용가라면 나도 잘 아는 편이지.”그리고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모용가의 시조는 남산왕과 서왕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태조 황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한 공신이었다.”“하지
황성 동쪽 교외.약쟁이 무리의 본거지가 발각되어 관군의 손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었다.그곳에 몸 담고 있던 무리 또한 하나하나 사로잡혀 옥에 갇혔다.이어진 엄한 문초 끝에, 그들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약쟁이 무리는 수년간 약쟁이를 만들어 여기저기 팔아넘겨왔다고 했다.그 대상에는 반란을 꾀하던 천룡회는 물론, 동산국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문초하던 관리가 다시 물었다.“이 일에 설가가 어떤 연관이 있느냐. 설 대인을 죽인 것도 너희냐.”“예… 저희가 했습니다. 현비마마께서 두 번째로 잡혀가신 이후, 주인어른께서 직접 명을 내리셨습니다. 설가를 제거하라 하셨지요.”“그날 설 대인께서 댁을 나서자마자 손을 썼습니다.”“그가 너희를 고발하려 했던 것이냐.”문초자는 낮게 목소리를 눌렀다.“그렇습니다. 하지만… 설 대인께서 무언가를 알아내신다 하여도 주인어른께서 직접 엮일 일은 없었습니다.”“그분이 아신 건 기껏해야 홍련초와 관련된 일 정도였습니다.”“딸을 살리기 위해서였지요. 그래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으셨습니다.”“설 대인이 알던 건 무엇이더냐.” 관리의 어조가 더욱 날카로워졌다.잡힌 자는 낮게 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그해, 영비마마께서 현비마마를 제거하고자 하셨습니다.”“허나 궁 안의 약물은 태의원이 일일이 기록하여, 함부로 쓸 수 없었습니다.”“영비마마께선 귀가하시는 날을 틈타 독약을 구하려 하셨고, 어디서 들으셨는지 저희 주인어른께서 독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손을 내미셨습니다.”“주인어른께선 처음엔 약을 지어드렸지만, 영비마마께서 제멋대로 약창고에 들었다가 엉뚱한 약을 들고 나왔습니다.”“그 탓에 약쟁이의 독이 세상에 드러날까 주인어른께선 설 대인을 찾아가 경고하셨습니다.”“‘딸을 살리고 싶다면 입을 다물라’는 뜻이었지요. 대신 해독약을 주셨고, 홍련초를 심게 하여 해독제를 만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동시에 저희도 독을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지요.”“설 대인께서는 저희를 몰래 추적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