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둘이 다음에 무엇을 가져올지 적은 목록.큰 소파.작은 냉장고.커피머신.그리고 서율이 마지막으로 적은 것.둘이 같이 있을 시간.태혁이 그 옆에 덧붙인 두 단어.이미 있음.서율은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다 웃었다.“이거 안 버릴 거야.”“목록인데?”“알아.”“소파 사면 지워야지.”“왜 지워.”서율은 종이를 책장 가운데 세웠다.“산 거는 체크하면 되지.”“체크?”“응. 하나씩.”서율이 손가락으로 짚었다.“소파 사고 체크. 냉장고 사고 체크. 커피머신 사고 체크.”마지막 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둘이 같이 있을 시간.“이건?”태혁이 물었다.서율이 그를 봤다.“이건 계속.”“체크 안 하고?”“응.”“왜.”“끝나는 게 아니잖아.”태혁이 잠깐 말이 없었다.서율이 괜히 민망해졌다.“왜 그렇게 봐.”“그냥.”“또 좋아?”“응.”“요즘 너무 쉽게 인정하는데.”“당신이 솔직하게 말하라며.”“그렇긴 한데.”서율은 빈 책장을 다시 바라봤다.아직 채워야 할 자리가 훨씬 많았다.그런데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처럼 차갑거나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사진 하나.유리병 하나.시계 하나.종이 한 장.고작 그 정도였는데.이상하게 이미 둘의 흔적이 많아진 것 같았다.“다음에는 뭐 가져오지.”서율이 혼잣말처럼 말했다.“벌써?”“응.”“오늘 가져온 거 정리도 다 안 했는데.”“생각하는 건 자유잖아.”“뭔데.”서율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비밀.”“또 숨기게?”“이번에는 진짜 못 찾는 데 숨길 거야.”“숨길 데 별로 없는데.”“그러니까 만들면 되지.”태혁이 바로 말했다.“안 돼.”“왜.”“내 방에 구멍 뚫을 것 같아서.”“우리 방.”“그래. 우리 방에.”서율이 만족스럽게 웃었다.“이제 바로 고치네.”“안 고치면 계속 말할 거잖아.”“응.”태혁은 고개를 저었다.서율이 가방을 챙겼다.“이제 갈까?”“잠깐.”“왜?”태혁이 책장으로 다가갔다.조금 전 작성한 목록을 다시 집었다.“
“그다음은.”서율이 조금 가까워졌다.“주인님이 정해.”태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서율의 손은 여전히 그의 셔츠를 잡고 있었다.손목에는 검은 머리끈.둘 사이에는 조금 전까지 함께 덮고 있던 작은 담요가 흘러내려 있었다.“확실해?”“응.”“오늘 여기서?”“또 물어.”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까부터 계속 확실하다고 했잖아.”“알아.”“그런데?”태혁이 소파 등받이에 팔을 올렸다.“당신이 어디까지 말하나 보고 싶어서.”“뭘.”“원하는 거.”서율이 헛웃음을 흘렸다.“주인님이 정하라니까.”“속도는.”“응?”“내가 정하는 거.”태혁이 말했다.“원하는 건 당신이 말하고.”서율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예전에 했던 말이었다.태혁이 정하는 건 속도.서율이 원하는 것까지 태혁이 정하는 건 아니었다.“기억하네.”“당연하지.”“그럼.”서율이 셔츠에서 손을 놓았다.“안아줘.”태혁의 팔이 바로 허리를 감쌌다.서율이 품 안으로 들어갔다.“또.”“키스.”이번에도 바로.다만 길지는 않았다.서율이 더 가까워지려는 순간.태혁이 먼저 떨어졌다.“왜.”“또.”서율이 그를 빤히 봤다.“이거 일부러 이러는 거지.”“응.”“내 입으로 계속 말하게 하려고?”“응.”“성격 진짜 나빠.”“알아.”서율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태혁도 기다렸다.재촉하지 않았다.그래서 오히려 서율이 먼저 견디지 못했다.“좀 더 해.”“뭘.”“알잖아.”“모르겠는데.”“주인님.”“말해.”서율이 한숨처럼 웃었다.“키스.”잠깐 멈췄다가.“아까보다 오래.”이번에는 서율이 원하는 만큼 이어졌다.음악 한 곡이 끝날 때까지.새로운 곡의 첫 음이 흘러나올 때까지.서율이 먼저 태혁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됐어?”태혁이 물었다.“아니.”대답이 빨랐다.태혁이 웃었다.“오늘 솔직하네.”“그게 좋다며.”“좋아.”“그럼 됐네.”서율이 다시 다가가려 했다.그런데 태혁이 일어났다.“뭐야.”“따라와.”“어디.”
태혁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서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대에 누워 있었다.휴대폰까지 보고 있었다.태혁이 머리를 닦으며 지나갔다.“안 자?”“응.”“뭐 해.”“그냥.”서율의 대답이 너무 빨랐다.태혁이 멈췄다.“왜.”“뭐가.”“수상한데.”“뭐가 수상해.”“당신.”서율은 휴대폰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아무것도 안 했거든.”“내가 뭐 했냐고 물었어?”“…….”태혁이 웃었다.“했네.”“안 했어.”“뭘 했는데.”“아무것도.”서율은 끝까지 잡아뗐다.태혁은 더 묻지 않았다.그게 오히려 이상했다.“왜 안 물어봐.”“말 안 할 거잖아.”“그건 그렇지.”“그럼 됐어.”태혁이 침대 반대편에 앉았다.서율은 힐끗 봤다.태혁의 손목.검은 머리끈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집에 와서도 빼지 않았다.“주인님.”“응.”“그거 안 빼?”태혁이 손목을 봤다.“왜.”“잘 때도 하고 있게?”“응.”“불편할 텐데.”“안 불편해.”“늘어나면?”“새로 받아야지.”서율이 피식 웃었다.“내가 준다고 한 적 없는데.”“받는다고 했잖아.”“진짜 뻔뻔해.”태혁이 침대에 누웠다.“자.”“벌써?”“내일 일어나야지.”서율은 조금 전 자신이 몰래 가져온 종이를 생각했다.오늘 처음으로 이 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은서율도 같은 생각이면 좋겠다.그리고 그 아래.자신이 적은 두 줄.나도.그러니까 다음엔 늦게 가자.다음에 몰래 가져다 놓으면 된다.태혁이 언제 발견할까.그 생각을 하자 괜히 웃음이 났다.“왜 웃어.”“안 웃었어.”“웃었는데.”“잘못 봤어.”태혁이 옆으로 돌아누웠다.서율을 봤다.“진짜 수상하네.”“자.”서율이 이불을 끌어올렸다.“주인님이 먼저 자자며.”“그래.”불이 꺼졌다.서율은 눈을 감았다.그런데 잠시 후.태혁의 목소리가 들렸다.“은서율.”“응.”“다음에 늦게 갈까?”서율의 눈이 번쩍 뜨였다.“……뭐?”“그 방.”“갑자기 왜?”“그냥.”“왜 갑자기 늦
다음번 이곳에서 찾게 될 것은.과거가 아니었다.둘이 지금부터 남기는 것.그리고 사흘 뒤.서율이 먼저 도착했다.찰칵.열쇠를 돌려 문을 열면서도 괜히 주변을 한번 확인했다.아무도 없었다.“좋아.”서율은 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태혁에게는 한 시간 뒤에 만나자고 했다.물론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먼저 가서 준비할 거 있어.태혁의 답은 간단했다.그래.그게 오히려 신경 쓰였다.한 번쯤은 뭔데, 왜, 뭘 준비하는데.물어볼 줄 알았는데.정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분명 뭔가 준비했어.”서율은 혼잣말하며 책장 앞으로 갔다.자신에게 생긴 빈 칸.가방을 열었다.가장 먼저 꺼낸 건 작은 액자였다.지난번 이곳에서 찍은 첫 번째 사진.카메라가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던 순간.서율은 액자를 가운데 세웠다.한 발 물러났다.“음.”너무 가운데인가.오른쪽으로 조금.다시 봤다.“아니야.”왼쪽으로.또 마음에 안 들었다.결국 다시 가운데.“됐어.”두 번째로 꺼낸 건 작은 유리병이었다.안에는 종이가 여러 장 접혀 있었다.아직 전부 비어 있었다.서율은 그중 하나를 꺼냈다.펜을 들었다.잠깐 고민.그리고 적었다.첫 번째.치킨 먹으면서 내 것까지 뺏어 먹었다고 우긴 사람 있음.서율이 혼자 웃었다.“이 정도면 되지.”종이를 접어 병에 넣었다.하나 더.여기서 처음 같이 찍은 사진.세 번째.조금 오래 고민했다.그러다 적었다.차태혁이 생각보다 훨씬 먼저 나를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된 곳.“이건 보면 또 뭐라고 하겠지.”그래도 넣었다.유리병을 액자 옆에 놨다.끝.……아니었다.서율은 가방을 다시 열었다.“이게 진짜지.”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작은 상자였다.그건 책장에 올리지 않았다.소파 아래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겉에서는 보이지 않았다.서율이 만족스럽게 일어났다.“찾아봐.”바로 그때.밖에서 문이 열렸다.서율이 화들짝 돌아봤다.“뭐야?”태혁이 들어왔다.“왜 놀라.”“왜 벌써 와!”“벌
“다음에 와서 봐.”서율은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태혁이 빈 책장 한 칸을 바라봤다.“진짜 비밀?”“응.”“힌트도 없어?”“없어.”“내 방인데.”서율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우리 방.”태혁이 잠깐 멈췄다.그리고 웃었다.“그래.”“벌써 까먹었어?”“아니.”“근데 왜 내 방이라고 해.”“습관.”“고쳐.”“알겠습니다.”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왜 갑자기 그렇게 순순해.”“고치라며.”“이럴 때 보면 더 수상해.”태혁이 소파에서 일어났다.“갈까?”“벌써?”“안 갈 거야?”서율은 시간을 확인했다.생각보다 오래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조금만 더.”태혁이 다시 앉았다.“왜.”“그냥.”“또 그냥?”“응.”서율은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처음 들어왔을 때는 낯설었다.태혁 혼자만 알고 있던 공간.자신이 몰랐던 시간들이 가득했던 곳.그런데 지금은.테이블 위에 두 사람의 휴대폰이 나란히 있었고.소파 한쪽에는 서율의 가방이 놓여 있었다.태혁의 손목에는 자신의 머리끈이 있었다.그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방처럼 보였다.“주인님.”“응.”“우리 여기서 처음 같이 먹는 것도 정하자.”“갑자기?”“배고파.”태혁이 웃었다.“결국 그거네.”“중요하거든.”“뭐 먹고 싶은데.”“치킨.”태혁이 서율을 봤다.“왜.”“이 분위기에?”“뭐 어때.”서율이 주변을 가리켰다.“와인 마셔야 될 것 같아?”“조금.”“싫어.”“왜.”“오늘부터 우리 방이라며.”“응.”“그럼 편하게 있어야지.”서율이 휴대폰을 집었다.“치킨 먹을 거야.”“냄새 밸 텐데.”“싫어?”태혁이 잠깐 고민하는 척하더니 말했다.“두 마리.”서율이 웃음을 터뜨렸다.“한 마리면 돼.”“당신 많이 먹잖아.”“누가?”“당신.”“나 별로 안 먹거든.”“그래?”“응.”“그럼 한 마리.”태혁이 태연하게 말했다.“당신 두 조각만.”“두 마리 시켜.”“봐.”“뭘.”“많이 먹잖아.”서율이
“오늘 첫날이네.”서율의 손끝이 태혁의 손목에 걸린 머리끈을 툭 건드렸다.“그러네.”태혁은 짧게 대답했다.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서율이 먼저 안쪽 방으로 들어왔는데도.문 앞에 기대선 채 바라보기만 했다.“왜 거기 있어.”“보려고.”“뭘.”“당신.”“아까부터 계속 봤잖아.”“여기서는 처음이니까.”서율이 주변을 둘러봤다.오래된 책상.의자 하나.벽에 남은 기록.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부 태혁의 과거처럼 보였던 것들.그런데 이제는 이상하게 달랐다.자신이 여기 서 있다는 것 하나 때문에.“그럼 계속 봐.”서율이 책상 끝에 기대었다.태혁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진짜 보기만 하게?”“당신이 먼저 뭐 하나 보려고.”“또 내가 먼저?”“싫어?”“아니.”서율은 잠깐 그를 보다가 손을 뒤로 뻗었다.책상 위에 있던 검은 노트를 집었다.태혁의 시선이 바로 움직였다.“그거 왜.”“아까 봤던 거.”“알아.”“더 봐도 돼?”태혁이 잠시 생각했다.“봐.”서율은 노트를 펼쳤다.몇 장을 넘겼다.짧은 문장.날짜.그날의 기분.혼자였던 시절의 기록.그러다.서율의 손이 멈췄다.은서율은 자꾸 내 예상 밖으로 움직인다.서율의 눈썹이 올라갔다.“주인님.”“응.”“이거 뭐야.”“뭐.”서율이 읽었다.“‘은서율은 자꾸 내 예상 밖으로 움직인다.’”태혁이 피식 웃었다.“사실이잖아.”“밑에 더 있는데?”“읽지 마.”“왜.”“읽어도 된다고 한 거 취소.”“늦었어.”서율이 노트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태혁이 움직였다.서율은 바로 뒤로 물러났다.“오지 마.”“내놔.”“싫어.”“은서율.”“잠깐만.”서율이 다음 줄을 읽었다.말을 안 듣는데.그 아래.그게 싫지 않다.서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와.”태혁이 다가왔다.“내놔.”서율이 노트를 등 뒤로 숨겼다.“싫어.”“아까부터 신났네.”“주인님 이런 것도 썼어?”“옛날 거야.”“근데 되게 솔직하다.”“내놓으라고.”“싫다니까.”태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