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주인님.”“응.”“주머니에서 꺼내요.”태혁은 소파에 앉아 서율을 올려다봤다.“뭘.”“카드.”“안 돼.”“왜!”“아직 때가 아니니까.”서율은 팔짱을 꼈다.“내가 세 개 다 했으면 주인님도 바로 보여줘야지.”“누가 정했는데.”“나.”“그럼 난?”“…….”태혁이 웃었다.“내 카드잖아.”서율은 입술을 삐죽였다.“진짜 치사해.”“알아.”“인정은 빠르네.”“당신한테 배웠거든.”서율은 결국 태혁 옆에 털썩 앉았다.그런데 태혁이 갑자기 카드를 꺼냈다.“보고 싶어?”서율이 벌떡 일어났다.“응!”“그럼 하나만 대답해.”“뭔데.”“내가 고른 걸 당신이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율은 잠깐 생각했다.“안 하면 되지.”“그래.”“근데 왜?”태혁이 카드를 펼쳤다.첫 번째 줄.1. 은서율이 나한테 한 번도 부탁하지 않은 걸 대신 골라주기.서율이 고개를 갸웃했다.“뭘 골라준다는 건데?”“오늘 당신 일정.”“……뭐?”“내가 정해볼까 해서.”서율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주인님이 내 하루를?”“응.”“나 바쁜 사람인데.”“알아.”“글도 써야 하고.”“알아.”“할 일도 많고.”“그래서 물어보는 거야.”태혁은 카드를 내려놓았다.“당신이 맨날 혼자 정하던 거. 오늘 하루만 나한테 맡겨볼래?”서율이 그를 바라봤다.“전부?”“아니. 당신 일은 당신이 정하고.”“그럼?”“일 끝나고 남는 시간.”서율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그걸 왜?”“당신은 나한테 뭘 하고 싶은지 자주 말하잖아.”“응.”“그런데 내가 당신한테 뭘 해주고 싶은지는 별로 안 물어봤지.”서율이 입을 다물었다.517화에서 읽었던 태혁의 카드가 떠올랐다.내가 원하는 것도 당신이 궁금해했으면 좋겠다.“그거 아직 기억하고 있었어?”“당연하지.”“……좋아.”“진짜?”“응. 오늘은 주인님이 골라.”태혁이 시계를 확인했다.“그럼 일단 옷 갈아입어.”“뭘로?”“편한 거.”“어디 가는데?”“나가.”“어디!”“따라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태혁은 세 번이나 물었다.“세 번째 뭐야.”서율은 세 번 다 똑같이 대답했다.“안 알려줘.”“힌트.”“없어.”“주말에 한다며.”“그것도 취소.”태혁이 걸음을 멈췄다.“뭐?”서율도 멈췄다.“생각해보니까 별로야.”“뭐가.”“세 번째.”“뭔데 별로라는 건데.”“그냥.”서율이 가방을 두드렸다.“다른 거 할래.”태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카드 쓰고 마음대로 바꿔도 되는 거야?”“내 카드잖아.”“그건 맞지.”“그리고.”서율이 태혁을 올려다봤다.“지금 생각난 게 더 하고 싶어.”“뭔데.”“집 가면 알려줄게.”“또 집.”“5분만 참아.”태혁이 고개를 저었다.“요즘 사람 진짜 잘 기다리게 하네.”“효과 있어?”“많이.”서율이 만족스럽게 웃었다.—집에 도착한 뒤.서율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실로 들어갔다.태혁이 뒤따라왔다.“뭐 찾는데.”“잠깐.”옷장 문이 열렸다.서율은 한참 안쪽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주인님.”“응.”“내 옷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거 뭐야?”태혁의 눈썹이 올라갔다.“갑자기?”“응.”“왜.”“말해봐.”태혁은 옷장 안을 한번 봤다.원피스.셔츠.니트.재킷.여러 옷이 섞여 있었다.“입고 있는 것도 포함?”“전부.”“하나만?”“응.”태혁은 생각보다 오래 고민했다.서율이 기다리다 물었다.“없어?”“고르는 중.”“그렇게 오래 걸려?”“하나만 고르라며.”잠시 후.태혁이 옷장 안쪽에서 옷 하나를 꺼냈다.서율의 표정이 묘해졌다.“이거?”“응.”화려한 옷이 아니었다.평범한 니트였다.서율이 집에서도 여러 번 입었던 것.“왜 이거야?”“좋으니까.”“그러니까 뭐가.”“당신 같아서.”서율이 옷을 내려다봤다.“이게?”“응.”“예쁜 원피스도 많은데.”“알아.”“주인님이 골라준 것도 있고.”“응.”“근데 이거?”“응.”서율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태혁이 말했다.“당신 이거 입으면.”“응.”“대부분 집에
“해.”태혁의 대답은 짧았다.오히려 서율이 멈칫했다.“진짜?”“응.”“뭔지 제대로 읽었지?”태혁의 시선이 카드로 내려갔다.2. 주인님이 못 움직이는 동안,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기.“읽었어.”“나중에 뭐라고 하면 안 돼.”“안 해.”“주인님이 하라고 한 거야.”“알았으니까.”태혁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해봐.”그 한마디가 문제였다.서율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왜.”“…….”“아까는 잘하더니.”“말 걸지 마.”“긴장했어?”“아니.”“했네.”서율이 태혁의 무릎을 툭 쳤다.“지금 누가 유리한지 모르지?”“알아.”“누군데.”“당신.”대답이 너무 빨랐다.서율은 괜히 더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잘 아네.”태혁의 양손은 여전히 뒤로 묶여 있었다.부드러운 천.너무 조이지 않게 묶은 매듭.서율은 먼저 손목 상태부터 확인했다.“안 아프지?”“응.”“저리면 바로 말해.”“알았어.”확인하고 나자 긴장이 조금 사라졌다.서율은 태혁 앞에 섰다.셔츠.자신이 선물한 커프링크.S . 반대편에는T . 서율이 손가락으로S 를 한번 건드렸다. “이거.”“응.”“내가 준 거.”“알아.”“하고 묶여 있으니까 이상하다.”“뭐가.”“진짜 내 것 같잖아.”태혁의 눈이 가늘어졌다.“은서율.”“왜.”“계속해봐.”“뭘.”“그 말.”서율은 잠깐 생각하다가 웃었다.“내 거.”“그래.”“차태혁.”“응.”“내 거.”이번에는 태혁이 웃었다.서율은 그 표정을 보고 더 가까이 갔다.“기분 좋아?”“응.”“묶여 있는데?”“그거 말고.”“그럼.”“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거.”서율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잠시 풀렸다.하지만 금방 다시 돌아왔다.“그러면 더 해줄게.”“뭐라고.”“내 남편.”태혁의 시선이 멈췄다.“내 주인님.”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둘 다 내 거.”“욕심 많네.”“응.”서율이 웃었다.“오늘은 인정.”태혁은 손을 쓰지 못했다.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시선
아침.서율이 눈을 뜨자마자 한 일은 베개 밑을 확인하는 것이었다.없었다.“……어?”분명 어젯밤.카드를 뒤집고 그 위에 베개까지 올려놨다.서율이 벌떡 일어났다.옆자리는 비어 있었다.“차태혁.”대답이 없었다.침실 밖으로 나가자 주방에서 커피 향이 났다.태혁은 이미 씻고 셔츠까지 입은 상태였다.그리고.손에는.“야!”태혁이 고개를 들었다.“왜.”“그거!”검은 카드.서율이 빠르게 다가갔다.“봤어?”“뭘.”“카드!”“봤으면?”“차태혁!”서율이 빼앗으려 했지만 태혁이 손을 위로 들었다.“잠깐.”“내놔.”“안 봤어.”서율의 움직임이 멈췄다.“진짜?”“응.”“그럼 왜 가지고 있어.”“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아.”“침대 옆.”서율이 카드를 낚아챘다.바로 가슴에 붙였다.“진짜 안 봤지?”“응.”“첫 번째 줄도?”“안 봤어.”“거짓말하면.”“뭐.”서율은 할 말을 찾다가 입을 다물었다.태혁이 웃었다.“왜 그렇게 숨겨.”“아직 완성 안 했으니까.”“하나는 썼잖아.”서율이 멈칫했다.“어떻게 알아?”“어젯밤에 당신이 직접 말했잖아.”“내가?”“‘이건 좀 센데.’”서율의 얼굴이 굳었다.기억났다.“아.”“뭘 썼는데.”“안 알려줘.”“궁금한데.”“기다린다며.”태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그래서 안 봤잖아.”그 말에 서율은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다.몰래 볼 수도 있었는데.정말 안 봤다.서율은 카드를 뒤집어 다시 확인했다.다음에 둘이 같이 해보고 싶은 것.1. 내가 먼저 주인님을 묶어보기.글씨는 그대로였다.서율은 얼른 카드를 접었다.“오늘 저녁에 갈까?”태혁이 물었다.“어디.”“우리 방.”서율이 그를 바라봤다.“왜.”“카드 완성하면 보여준다며.”“오늘이라고는 안 했는데.”“그럼 언제.”“생각 좀 해보고.”“세 개 다 채우려고?”“응.”“하나는 그렇게 고민 안 한 것 같은데.”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진짜 안 봤지?”“안 봤다니까
다음 날 오전.서율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갈 거야.”태혁이 커피를 마시다 고개를 들었다.“어디.”“우리 방.”“지금?”“응.”“아침부터?”서율이 가방을 들었다.“누가 어제 카드 내일 읽으라며.”“그게 그렇게 궁금했어?”“응.”태혁이 컵을 내려놓았다.오늘도 커프링크를 하고 있었다.서율이 바로 발견했다.“어.”“왜.”“했네.”태혁이 손목을 내려다봤다.S .반대쪽에는T .“하라며.”“진짜 했네.”서율의 표정이 금세 좋아졌다.“회사 갈 때도 이대로?”“응.”“좋다.”태혁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서율의 목으로 향했다.어제 준 목걸이.그것도 그대로였다.“당신도 했네.”“나도 하라고 했잖아.”“잘했어.”“칭찬하지 마.”“왜.”“기분 좋아지니까.”태혁이 웃었다.“그럼 더 해야겠네.”“됐고.”서율이 현관문을 열었다.“빨리 와.”“카드 하나 때문에?”“세 개잖아.”“그러네.”둘은 함께 집을 나섰다.—5분 뒤.익숙한 건물.옆 골목으로 돌아 작은 문을 열고 내려갔다.이제 서율에게도 익숙한 길이었다.예전처럼 낯설지도 않았다.문을 열자.자기 실내화부터 보였다.책장에는 둘의 사진.작은 시계.유리병.두 개의 머그컵.서율이 방 안을 둘러보다 말했다.“진짜 많이 바뀌었다.”“뭐가.”“처음 왔을 때랑.”“당신 물건이 많아져서?”“응.”서율이 웃었다.“좋지?”“많이.”“나중에 더 많아질 건데.”“채워.”“후회하지 마.”“안 해.”서율은 곧장 유리병으로 갔다.“자.”“뭐.”“어제 못 읽은 거.”유리병을 열었다.안에는 여러 장의 메모가 섞여 있었다.첫날 아침.치킨 먹던 날.늦게 가자고 했던 날.그리고.접혀 있는 검은 카드.“찾았다.”서율이 꺼냈다.태혁은 막지 않았다.“진짜 읽는다?”“읽으라고 썼는데.”“어제는 안 보여줬잖아.”“여기서 읽으라고.”“이상하게 이런 건 고집 있어.”서율은 카드를 펼쳤다.앞면에는 자신이 썼던 세
집에 들어오자마자 서율이 말했다.“옷 갈아입지 마.”재킷을 벗던 태혁의 손이 멈췄다.“왜.”“커프링크.”“아.”서율은 가방에서 검은 케이스를 꺼냈다.“아까 못 했잖아.”“지금 하려고?”“응.”“집인데?”“그래서.”서율은 케이스를 열었다.한쪽에는S .다른 한쪽에는T .태혁이 자기 셔츠 소매를 한번 내려다봤다.“이걸 하려면 갈아입어야 되는데.”서율의 표정이 굳었다.“……아.”“까먹었어?”“응.”너무 솔직해서 태혁이 웃었다.“기다려.”“어디 가.”“셔츠 갈아입게.”태혁이 침실로 들어갔다.서율은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그리고 잠시 뒤.흰색 커프스 셔츠를 입고 나온 태혁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리 와.”“명령이야?”“오늘은.”태혁이 순순히 앞에 섰다.서율이 먼저S 가 새겨진 커프링크를 집었다.왼쪽 소매에 채웠다.찰칵.반대편에는T .서율은 한 발 물러났다.“봐봐.”태혁이 양쪽 손목을 확인했다.“어때.”“좋아.”“그게 끝?”“마음에 들어.”“얼마나.”태혁이 서율을 봤다.“내일 하고 갈 만큼.”서율의 표정이 바로 밝아졌다.“진짜?”“응.”“회사에?”“응.”“평소에도 해.”“가능하면?”서율이 웃었다.어제 태혁이 목걸이를 주면서 했던 말과 똑같았다.“응. 가능하면.”태혁이 한쪽 손목을 들어 보였다.“누가 물어보면?”“뭐라고 할 건데.”“아내가 줬다고.”“진짜 그렇게 말할 거야?”“그럼.”태혁이 오히려 물었다.“숨겨?”“아니.”서율이 고개를 저었다.“말해.”그리고 자기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나도 물어보면 남편이 줬다고 할 거니까.”태혁의 시선이 목걸이에 머물렀다.“오늘도 계속 하고 있었네.”“응.”“마음에 들어?”“많이.”“다행이네.”서율은 휴대폰을 가져왔다.“사진 찍자.”“지금?”“응.”“셔츠만 갈아입었는데?”“상관없어.”둘은 소파에 붙어 앉았다.서율이 카메라를 켰다.“손 여기.”태혁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