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전 8시 43분.은서율은 식탁에 앉아 달력을 넘기고 있었다.11월 6일.제작발표회 날짜에는 붉은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최태혁이 그녀의 앞에 따뜻한 우유를 내려놓았다.“또 일정 확인해?”“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어요.”“긴장돼?”“조금요. 그런데 이번에는 기대도 돼요.”태혁은 맞은편에 앉았다.“유리 배우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궁금하고?”“맞아요.”서율은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촬영 마지막 날에는 못 했던 말이라니까 자꾸 생각나요.”“좋은 이야기겠지.”“그랬으면 좋겠어요.”태혁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그날은 네가 즐겼으면 좋겠어.”“제작발표회를요?”“응. 네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잖아.”서율은 웃었다.“그럼 주인님이 끝나고 맛있는 거 사주세요.”“뭐든.”“방금 뭐든이라고 하셨어요?”“응.”서율의 눈이 반짝였다.“녹음해둘걸.”오전 11시 26분.서율은 작업실에서 정이현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작가님, 제작발표회 때 공개할 하이라이트 영상도 최종 승인됐대요.”“결말 부분은요?”“걱정 마세요. 역에서 나가는 장면은 전부 제외됐어요.”서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네요.”이현이 화면 너머에서 웃었다.“그리고 저희 공동 인터뷰 질문도 조금 바뀌었어요.”“어떻게요?”“작품의 미스터리보다 두 작가가 어떻게 협업했는지에 관한 질문이 늘었대요.”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오히려 좋네요.”“그렇죠? 저희가 의견 달랐던 이야기도 해도 될까요?”“어떤 거요?”“마지막 장면이요.”서율은 잠시 생각했다.“결말을 밝히지 않는 선에서는 괜찮을 것 같아요.”“그럼 제가 작가님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게 있었다고 이야기할게요.”서율은 미소 지었다.“저도 작가님 덕분에 장면이 더 좋아졌다고 이야기할게요.”“서로 칭찬만 하는 인터뷰 되는 거 아니에요?”“그럼 중간에 한 번씩 폭로할까요?”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오후 2시 14분.태혁은 서율과 함께 가구 매장을 찾았
오전 9시 17분.은서율은 식탁에 앉아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었다.최태혁이 그녀 앞에 아침 식사를 내려놓았다.“어제 댓글 그만 보기로 하지 않았어?”“댓글 아니에요.”“그럼?”“제작사에서 메일이 왔어요.”서율은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공식 예고편 공개 이후 시청자 사전 질문 접수 안내》“제작발표회에서 사용할 질문을 미리 받는대요.”태혁이 의자에 앉았다.“벌써 질문이 들어왔어?”“네. 생각보다 많대요.”“어떤 질문인데?”서율은 메일을 내려 읽었다.“0번 보관함의 의미, 주인공이 역에 간 이유, 그리고…….”그녀의 손가락이 멈췄다.“왜요?”“조금 특별한 질문이 하나 있어요.”태혁은 그녀가 보여주는 화면을 바라봤다.《누군가가 내 기억을 부정할 때,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서율은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주인님, 이건 단순히 드라마 내용이 궁금해서 보낸 질문 같지 않아요.”태혁이 조용히 대답했다.“그럴 수도 있겠네.”“어떤 마음으로 보냈을까요?”“그건 우리가 알 수 없지. 대신 네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할 수 있잖아.”서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오전 11시 06분.서율은 작업실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적고 있었다.처음에는 길게 설명했다.그러다 문장을 모두 지웠다.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보다 내가 직접 겪고 느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서율은 펜을 멈췄다.조금 부족했다.그때 태혁이 차를 가져왔다.“아직 고민 중이야?”“네. 너무 쉽게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꼭 정답을 말할 필요는 없잖아.”“그렇겠죠?”“네 작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아니니까.”서율은 잠시 생각했다.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덧붙였다.윤해온 역시 처음부터 자신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끝내 자신의 판단으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서율은 만족스럽게 웃었다.“이제 됐어요.”오후 1시 42분.두 사람은 작은 도서관에 놓을 조명을 고르
오전 9시 23분.은서율은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최태혁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벌써 반응 확인해?”“아직 공개도 안 됐는데요.”“그런데 왜 계속 보고 있어?”“혹시 시간이 빨리 가나 싶어서요.”태혁이 웃었다.“휴대전화 본다고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아.”“알아요. 그래도 자꾸 보게 돼요.”서율은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주인님, 오늘 오후 6시까지 저 좀 바쁘게 해주세요.”“어떻게?”“시간 가는 줄 모르게요.”태혁은 잠시 생각했다.“그럼 같이 장 보러 갈까?”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주인님, 설마 무거운 짐 들게 하시려고요?”“짐은 내가 들게.”“그럼 좋아요.”오전 11시 46분.마트에 도착한 서율은 카트를 밀며 과일 코너를 구경했다.태혁이 물었다.“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파스타요.”“그럼 재료 사자.”서율은 토마토를 고르다가 태혁을 돌아봤다.“주인님, 오늘 예고편 반응 좋으면 축하 파티 해요.”“안 좋으면?”“그때는 위로 파티요.”태혁이 웃었다.“결국 파티네.”“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요.”서율은 카트에 치즈를 넣었다.“그리고 디저트도 사요.”“어떤 거?”“초콜릿 케이크요.”“큰 걸로?”서율은 잠시 고민했다.“작은 걸로요. 둘이 먹을 거니까.”태혁은 그녀가 집어 든 케이크를 카트에 넣었다.“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오후 3시 18분.집에 돌아온 서율은 작업실에 앉았다.예고편 공개까지 3시간도 남지 않았다.그녀는 만년필을 꺼내 새 소설을 이어 썼다.여자는 남편이 잠든 뒤 돌아온 편지를 다시 꺼냈다.별 모양의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던 순간, 종이 뒷면에서 희미한 글씨가 드러났다.《그날 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서율은 문장을 읽고 잠시 생각했다.그날 밤.편지를 처음 보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정하지 않은 부분이었다.그녀는 노트 한쪽에 적었다.여주인공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17분.“17분…….”서율은 숫자에 동그라미를 쳤
오전 9시 16분.은서율은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최태혁이 침실로 들어오며 물었다.“아직도 고민 중이야?”“주인님, 제작발표회가 얼마 안 남았잖아요.”“응.”“작가도 배우들처럼 차려입어야 할까요?”태혁은 옷장에 걸린 옷들을 살펴봤다.“너한테 잘 어울리는 걸 입으면 되지.”“그게 제일 어려워요.”서율은 검은색 원피스를 꺼냈다가 다시 걸었다.“너무 딱딱한가?”이번에는 연한 베이지색 정장을 꺼냈다.“이건 너무 회사원 같고요.”태혁이 베이지색 재킷을 받아 들었다.“이거 입어봐.”“괜찮을까요?”“응. 네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서율은 옷을 받아 들고 웃었다.“주인님이 골라주셨으니까 이걸로 할래요.”“입어보고 결정해.”“마음에 안 들면요?”“다른 거 고르면 되지.”서율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그럼 주인님이 끝까지 책임지세요.”오전 11시 38분.서율은 거울 앞에서 재킷 단추를 잠갔다.태혁은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주인님.”그가 고개를 들었다.“어때요?”태혁은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서율이 눈썹을 찌푸렸다.“왜 아무 말씀 안 하세요?”“예뻐서.”“정말요?”“응.”서율은 거울을 다시 바라봤다.“너무 꾸민 것 같지는 않아요?”태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오늘은 네 작품을 소개하러 가는 날이잖아. 조금 특별하게 입어도 돼.”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걸로 확정.”태혁은 그녀의 재킷 깃을 정리해주었다.“긴장돼?”“조금요.”“아직 며칠 남았는데?”“그러니까 더 긴장되죠.”태혁은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오후 1시 24분.정이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작가님, 제작발표회 진행 순서가 나왔어요.”“네. 말씀하세요.”“처음에는 배우들 포토타임이 있고, 그다음에 작품 소개와 질의응답이 진행된대요.”“저희는요?”“작가 인터뷰는 별도로 촬영하고, 무대에서는 짧게 인사만 하면 된다고 해요.”서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네
오전 9시 24분.은서율은 작은 도서관 바닥에 앉아 있었다.손에는 어제 미술관에서 가져온 사진이 들려 있었다.최태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서율아, 여기 있었어?”“주인님, 저 고민이 생겼어요.”“무슨 고민?”“책장에 사진을 놓을 칸을 만들기로 했잖아요.”“응.”“그런데 우리 사진이 너무 많아요.”태혁은 바닥에 펼쳐진 사진들을 내려다봤다.신혼 시절 사진부터 최근 바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까지.“다 놓을 필요는 없잖아.”“그래도 하나씩 고르려니까 아쉬워요.”태혁은 그녀 옆에 앉았다.“그럼 사진첩은 책장에 꽂고, 마음에 드는 것만 전시하자.”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대신 주인님도 고르셔야 해요.”“몇 장?”“각자 5장씩요.”“10장이나?”“우리 결혼 10주년이잖아요.”태혁은 웃으며 사진을 집어 들었다.오전 11시 08분.가구 제작 업체의 실측 담당자가 도착했다.두 사람은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담당자는 벽과 창문의 위치를 확인한 뒤 설계도를 펼쳤다.“요청하신 대로 낮은 원목 책장을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창가 쪽에는 두 분이 앉으실 공간을 남겨뒀고요.”서율은 설계도를 자세히 살폈다.“여기 가운데 칸은 높이를 조금 더 늘릴 수 있을까요?”“어떤 물건을 놓으실 예정인가요?”“사진이랑 편지 상자요.”태혁이 덧붙였다.“사진첩도 여러 권 들어가야 합니다.”담당자는 치수를 확인했다.“그럼 가운데 칸만 높이를 조정하고, 나머지는 책 크기에 맞춰 제작하겠습니다.”서율은 만족스럽게 웃었다.“그리고 한 가지 더요.”“말씀하세요.”“맨 아래에는 문이 달린 수납공간을 만들고 싶어요.”태혁이 그녀를 돌아봤다.“왜?”“주인님한테 비밀로 보관할 것들이 있거든요.”담당자가 웃음을 참았다.태혁은 팔짱을 꼈다.“내가 모르는 비밀이 그렇게 많아?”“앞으로 생길 예정이에요.”오후 1시 37분.실측을 마친 뒤 두 사람은 늦은 점심을 먹었다.서율은 설계도 사진을 확대해 보고 있었다.“주인님, 완성되면 정말
오전 9시 12분.은서율은 침대 위에 옷을 세 벌이나 펼쳐놓고 있었다.최태혁이 침실 문을 열었다.“서율아, 아침 먹자.”“잠깐만요!”서율은 황급히 옷들을 가렸다.태혁이 웃었다.“뭘 숨겨?”“오늘 데이트 옷이요.”“내가 보면 안 돼?”“안 돼요. 오늘은 처음 만나는 사이잖아요.”“아직 데이트도 시작 안 했는데?”“그러니까 미리 보면 안 되죠.”태혁은 문틀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그럼 아침은 같이 먹어도 됩니까, 은서율 씨?”서율은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그 정도는 허락해드릴게요.”“아이고 영광입니다.”오후 1시 47분.서율은 약속 장소인 작은 미술관 앞에 도착했다.오늘만큼은 각자 따로 출발하기로 했다.크림색 원피스에 얇은 카디건을 걸친 서율은 입구 근처에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최태혁 : 3분 뒤 도착합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서율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처음부터 늦으시면 감점이에요.》정확히 3분 뒤.짙은 회색 재킷을 입은 태혁이 나타났다.그는 서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은서율 씨?”“네.”“최태혁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태혁이 손을 내밀었다.서율은 그의 손을 잡았다.“저도 반가워요.”태혁은 그녀를 잠시 바라봤다.“사진보다 훨씬 아름다우시네요.”서율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그런 말씀 자주 하세요?”“마음에 드는 사람한테만 합니다.”“처음 만났는데 벌써 마음에 드세요?”태혁은 망설이지 않았다.“네.”서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주인…….”말이 튀어나오려던 순간 그녀가 입을 막았다.태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뭐라고 하셨습니까?”“아무것도 아니에요!”오후 2시 23분.미술관에는 일상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서율은 오래된 버스 정류장을 찍은 사진 앞에 멈췄다.태혁이 물었다.“이 사진이 마음에 드세요?”“네. 특별한 장면도 아닌데 자꾸 보게 돼요.”“왜 그런 것 같습니까?”“누군가를 기다리는 장소라서요.”태혁은 사진을 바라봤다.“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