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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Author: 레몬과 향수
"나는 머지않아 이 저택을 나가 따로 살림을 차릴 터이니, 이 집안의 모든 일은 나와 무관하지요. 그러니 굳이 내 앞에서 얕은 수를 부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말을 마친 당윤은 시종에게 손을 저어 의자를 밀라 지시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당학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아우 네 말이 맞다. 운연 낭자가 하혈을 하고 죽었으니, 마땅히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어야지."

말을 마친 그는 호위무사들에게 춘향의 시신을 내보내라 지시했다.

"학아, 정신 차리거라! 저 계집은 보는 눈이 그토록 많은 데서 이 집으로 들어왔다. 헌데 그리 허망하게 죽어 나간다면, 네가 어떤 오명을 뒤집어쓸지 몰라서 그러느냐?"

당 대인은 속이 타들어가 미칠 지경이었다.

"너는 과거도 치러야 하고, 아직 혼처도 정해지지 않았다!"

당학은 흥분한 당 대인을 가로막았다.

억울해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춘향의 시신은 초저녁에 밖으로 들려 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은밀히 춘향을 빼돌렸고, 결국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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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656화

    대청 안에서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일족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누구 하나 감히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오랜 적막 끝에 족장이 무겁게 입을 뗐다. "어쩌면 이 방법뿐일지도 모른다. 폐하께서는 인자하시고 효심이 깊으시나 대의를 먼저 살피실 것이다. 기껏해야 우리 서씨 가문 사람 몇몇을 벌하실 뿐, 무고한 이들까지 엮지는 않으실 테지. 최악의 경우, 이 늙은이가 나서서 죄를 청하면 될 일 아니겠느냐!"가문의 후대들에게 앞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면, 매를 맞든 목이 날아나든 기꺼이 감수할 참이었다."태후는 서씨 가문의 핏줄이면서 가문을 일으켜 세우지는 못할망정, 묵은 옛일로 사사건건 본가를 옥죄고 있지 않소. 내가 체면을 버리고 폐하께 찾아가 고자질한다 한들 이는 다 태후가 자초한 일이지!""이 세상천지에 그 패악질을 막을 수 있는 분이 딱 한 분 계시지 않소!""천자의 위엄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법이오!"서씨 노부인이 자진해서 나서자, 다른 어르신들도 앞다투어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서씨 노부인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입궁을 청하는 서신을 올렸다.허나 궁문 밖에서 장장 두 시진이나 기다려도 부름은 없었다.참다못한 서씨 노부인은 아예 신문고를 울려버렸다. 북소리가 둥둥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녀는 기어코 황제를 뵙겠다며 고집을 부렸다.*자녕궁.소 상궁은 서씨 노부인이 신문고를 쳤다는 소식을 고하며, 틈틈이 서 태후의 안색을 살폈다.허나 서 태후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덤덤하게 고개만 끄덕였다.그 모습에 소 상궁은 묵묵히 입을 다물고 태후를 도와 자수 도안을 정리했다. 진 도련님에게 지어줄 옷가지들을 준비하는 중이었다.서 태후는 서너 가지 도안을 골라 소 상궁에게 건넸다. "수방에 일러 가장 부드러운 천을 고르라 하거라. 바느질도 실수하지 말고 꼼꼼하게 서둘러 지어 올리라 이르고."소 상궁은 공손히 명을 받들었다.어느덧 두 시진이 흐른 뒤, 궁인이 들어와 황제가 서씨 노부인을

  • 피안을 거슬러   제655화

    서씨 노부인은 서유천을 바라보며 불만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 늦은 밤에 일족을 다 불러 모아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대청 안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지만, 분위기는 숨이 막힐 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서유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십칠 년 전의 과거를 입에 올렸다."그리 까마득한 옛날 일을 이제 와서 꺼낼 필요가 뭐가 있다고." 서씨 노부인은 불편한 얼굴로 말을 싹둑 잘르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방 안의 화로가 너무 뜨겁게 타오르는 탓에 등줄기에 끈적한 땀이 배어 불쾌하기 그지 없었다.서유천이 입을 뗐다. "십칠 년 전 우리 서씨 가문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여 저는 가주로서 과거의 죄를 낱낱이 고하고, 여 공자를 위한 사당을 지어 우리 가문이 삼 대에 걸쳐 모시도록 할 생각입니다."쨍그랑!서씨 노부인이 들고 있던 찻잔을 놓쳤다.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그녀는 경악한 얼굴로 서유천을 쳐다보았다.다른 어르신들 역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주목했다."제 결심은 이미 확고합니다!" 서유천은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서씨 노부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노려보다가 서 부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오늘 입궁하여 태후 마마를 뵈었습니다. 이것은 태후 마마의 뜻입니다!" 서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히 설명했다. "태후 마마께서는 우리 가문의 죄를 만천하에 까발리라 명하셨습니다."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들고일어났다."자신을 낳고 길러준 본가가 아닌가!""태후께서 정녕 노망이라도 나신 게냐?"일족들이 격분하여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가운데, 방금 전까지 가장 펄쩍 뛰던 서씨 노부인만이 오히려 차갑게 이성을 되찾았다.그녀는 서 부인을 쏘아보았다. "정녕 그것이 태후의 뜻이란 말이냐. 그리하면 어찌 될지 뻔히 알면서도, 고작 서생 하나 때문에 가문 전체를 위험에 빠뜨려야 했다는 게야?"서씨 노부인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 피안을 거슬러   제654화

    서 태후가 혼처를 빼앗긴 일에는 딱히 관심이 없고, 여윤의 죽음에 한을 품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서 부인은 기가 막힌다는 듯 서 태후를 쳐다보았다."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 때문에 이토록 오랜 시간 가문을 원망하시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입니까? 태후 마마, 아무리 그래도 서씨 가문은 마마를 낳고 길러준 곳입니다. 일말의 정이라도 남아있지 않으십니까?"그때 소 상궁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조차 죽음을 불사하며 마마의 결백을 증명했거늘, 핏줄이라 자부하는 인간들은 마마께서 잘되는 꼴을 못 봐 온갖 수작으로 모함하고 헐뜯었지. 그래 놓고 무슨 낯짝으로 감히 가족을 입에 올린단 말이오!"소 상궁의 매서운 질타에 서 부인은 입만 벙긋거리다가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부인은 그저 서소현이 적장녀로 총애받는 것을 보고 그 요망한 짓거리에 놀아나 태후 마마를 모함한 것 아닙니까! 오늘날 이 꼴을 당한 것도 다 자업자득이지요!"소 상궁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서 부인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악독한 속내를 생각하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울화가 치밀었다.정곡을 찔린 서 부인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서 태후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어차피 벌어진 일... 태후 마마께서는 어찌해야 노여움을 푸시겠습니까?"목숨을 내놓으라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참이었다.허나 서 태후의 입가에는 서늘한 비웃음만 걸려 있었다.그 모습에 서 부인은 속이 타들어가며 무릎을 꿇은 채 서 태후 쪽으로 기어갔다."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잠시 돈에 눈이 멀어 서소현에게 속고 이용만 당했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명주만은 살려주십시오."곡소리가 점점 커지자, 듣기 거북해진 서 태후는 소매를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는 고요하고도 싸늘한 눈빛으로 서 부인을 내려다보았다."정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면, 그 증거를 내게 가져오거라."서 부인은 순간 흠칫하면서도 내심 희색이 돌았다.허

  • 피안을 거슬러   제653화

    적막하고 엄숙한 전각 안. 차가운 바닥에 꿇어앉은 서 부인은 무릎을 타고 한기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잔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서 부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더는 어물쩍 넘어갈 수 없음을 깨달은 그녀는 체념한 듯 이를 악물고 서 태후를 향해 이마를 조아렸다."그렇습니다. 십칠 년 전, 저희 때문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자가 있었습니다."과거를 떠올리는 서 부인의 얼굴에 짙은 회한과 괴로움이 스쳤다.당시 서소현은 인물이 준수한 영정을 마음에 품었다. 게다가 영씨 가문이 회북에 있었기에, 멀리 시집가기 싫었던 그녀는 몰래 영정과 내통했다.결국 사달이 나자, 그녀는 서씨 가문을 압박하여 억지로 혼처를 바꿔치기하게 만들었다.그것도 모자라 서소현은 서 태후가 혼례를 올리기 직전, 한 사람의 정체를 세상에 까발렸다.여윤이라는 이름의 서생이었다.그는 과거 서 태후의 후원을 받았던 자로, 타고난 머리가 영특하여 당시 회북 지역에서 수석을 차지할 정도였다. 무사히 과거를 치렀더라면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을 인재였다.허나 지독한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곁에는 중병에 걸려 사람 손길이 꼭 필요한 누이동생까지 있었다.여윤은 학업을 이어가는 동시에 생계를 꾸리며 누이동생까지 돌봐야 했다.그러던 어느 날, 여씨 남매의 어린 여동생이 약방에서 쓰러진 것을 당시 처녀였던 서 태후가 우연히 구해주었다.서 태후는 의원을 불러 아이를 치료해주고, 여윤에게도 적지 않은 은자를 쥐여주었다.여씨 남매는 그녀의 은혜에 깊이 감격했다.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소현이 여윤과 서 태후가 지저분하게 얽혀 있다는 추문을 날조한 것이다.혼례를 하루 앞둔 날, 육씨 가문에 서신 한 통이 날아갔다.여윤은 서소현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지만, 온갖 형벌 속에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결국 서소현은 어린 여동생까지 잡아들였다. 남매는 땔감 창고에 갇혀 끔찍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서 태후에 대한 말을 털어놓지 않았다.꽃가마가 집을 나설 무렵, 헛소

  • 피안을 거슬러   제652화

    서 부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며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소 상궁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도 굳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서 부인이 한 걸음마다 절을 올리며 다가오는 꼴을 냉랭하게 지켜볼 뿐이었다."태후 마마! 죄인이 잘못했습니다!"쿵!바닥에 짓찧는 머리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자녕궁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서 부인의 이마는 이미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문앞에 도달한 서 부인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꿇어앉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삐걱거리며 문이 열렸고, 소 상궁이 서 부인을 전각 안으로 안내했다.전각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냄새가 코끝을 맴돌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서 부인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으나, 전각 안에 태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다행히 머지않아 발소리가 들려왔다.서 태후는 한 손에 서책을 쥔 채 여유롭게 걸어 나와 상석에 앉았다. 그녀는 서 부인이 방금 밖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몹시 무심하고 서늘한 눈빛이었다."태후 마마, 죄인이 마마를 뵈옵니다."서 부인은 바닥에 머리를 무겁게 찧었다. "십칠 년 전의 일은 모두 이 죄인의 탓이옵니다! 부디 저를 엄벌에 처하시고 무고한 어린것만은 용서해 주시옵소서!"서명주에게 사혼이 내려진 날부터, 서 부인은 단 하루도 두 다리를 뻗고 자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왕년에 자신이 저질렀던 악행뿐이었다.더 이상 헛된 요행을 바랄 수는 없었다.서 태후가 그 일들을 파헤치지 못했을 리 만무했다.최근 서씨 가문을 옥죄어오는 모양새를 보면 꼭 무딘 칼로 살점을 천천히 도려내는 것과 같았다.서 태후는 들고 있던 서책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찻잔을 들어 두어 모금 축였다. 발밑에서 서 부인이 애원하든 말든 무심한 안색이었다.눈물 콧물을 쏟으며 오열하는 서 부인의 꼴을 보자 서 태후의 미간에 혐오감이 스쳤다."십 년도 한참 지난 일을 갑자

  • 피안을 거슬러   제651화

    삼군에 수현의 군량이 더해지자, 황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통이 터졌다.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군왕이 감히 그의 코앞에서 군량을 사재기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황제는 온종일 전각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미간을 주무르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인삼차만 몇 번이 들어갔는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이를 지켜보던 상 내관이 조심스레 만류했다."폐하, 진한 차는 옥체에 해롭습니다."황제가 고개를 들어 궁밖에 있는 각 가문들의 동태를 물었다.상 내관은 상황을 고하다가 황제의 얼굴에 여전히 은은한 짜증이 서려 있는 것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서 부인이 태후 마마를 뵙고자 여러 가문을 찾아다니며 연줄을 대고 있다 합니다. 허나 태후 마마께서는 이를 아시고도 철저히 수수방관하시며 일절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최씨 가문에 사혼을 내린 것만으로도 최씨 가문은 무려 이백만 냥이 넘는 은표를 바쳤고, 이는 고스란히 국고로 환수되었다.황제는 내심 서명주를 첩으로 들이는 것이 서씨 가문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허나 서 태후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내게 다 생각이 있다."그 한마디에 황제도 더는 토를 달 수 없었다.황제는 찌푸렸던 미간을 펴고 상 내관을 바라보았다."태후께서는 어찌하여 서씨 가문의 큰딸을 기어코 최호의 첩으로 보내려 하시는 것이냐?"그 물음에 상 내관이 옅게 웃었다."서씨 가문은 그저 태후 마마께서 최씨 가문을 압박하기 위해 쓰시는 장기말일 뿐입니다. 태후 마마의 지금 지위라면 얄팍한 명예나 잇속 따위는 진작에 초월하셨지 않습니까."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녕궁의 소 상궁이 비단 상자를 들고 찾아왔다."폐하를 뵈옵니다." 소 상궁이 비단 상자를 들어 올렸다. "방금 최 부인께서 입궁하여 바친 물건입니다. 태후 마마께서 폐하께 전하라 명하셨습니다."황제는 의아한 얼굴로 상 내관에게 눈짓을 했다.상 내관이 잰걸음으로 다가가 상자를 건네받았다. 뚜껑을 열어 안을 확인한 그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그는

  • 피안을 거슬러   제7화

    “언니, 설마 이미 경왕 세자와 혼약을 정한 건 아니죠?”그때 갑자기 다가온 유선주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어젯밤에 주향이 언니 침소에서 사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경왕 세자인가요?”말이 끝나자마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유선주는 재빨리 입을 틀어막으며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언니, 일부러 말한 건 아니에요. 실수였어요. 하지만 언니도 참 어리석네요. 어찌 홧김에 경왕 세자 같은 분과 그런….”짝!유지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유선주의 뺨을 때렸다.주변이 다시 고요해졌다.이내

  • 피안을 거슬러   제8화

    “지영아,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느냐?”송씨는 못 말리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날은 오해가 좀 있었단다. 선주는 내가 따끔히 혼내 두었어.”유지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어찌 작은어머니와 선주에게 화를 내겠어요. 운부 비단은 참으로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들었어요. 일부 무늬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던데, 구하시느라 참 힘드셨겠어요. 감동이에요, 작은어머니.”그 말을 들은 송씨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역시 그 멍청함은 어디 안 가는구나!’유지영은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집안의 맏언니로서 당연히 동

  • 피안을 거슬러   제6화

    수구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유지영을 바라보았다. 나무 그늘 아래 서서 예식을 구경하던 배준형도 말이다. 유지영은 담담히 붉은 수구를 한 손에 쥔 채로 무대 위에 섰다.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훤히 보였다.그저 구경만 할 생각으로 몰려온 어중이떠중이들도 적지 않았기에, 이를 본 외숙모 한씨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꾸짖었다.“혼약이 있거나 신분에 맞지 않는 자가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오!”말을 마친 한씨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지영아, 지금 후회해도 늦지 않아.”

  • 피안을 거슬러   제5화

    주향은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나머지 셋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당황한 채 무릎을 꿇고 빌었다.“부관, 저들의 입을 틀어막고 모조리 끌어내세요!”유지영은 저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혔다.‘배은망덕한 것들 같으니!’장 부관은 하는 수 없이 하인들을 불러 넷을 모두 끌어내게 하고 중개 어멈을 부르라고 일렀다.유지영은 그것마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중개인은 필요 없으니 이만 나가 보세요.”게다가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 성년례가 끝난 뒤 차차 처리할 생각이었다.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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