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이연령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북명연을 향해 속삭였다."수구를 던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본래 세자비는 정군왕 세자와 혼인할 예정이었으나, 두 혼사가 얄궂게 엇갈리는 바람에 결국 세자비만 뜻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그 말을 들은 북명연의 눈에 즉각 경멸과 조소가 떠올랐다."당당한 국공부의 적녀가 어찌 그토록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남의 인연을 망치고 제 잇속만 챙긴단 말이야?"북명연의 시선이 유지영의 배를 향했다.유지영의 안색이 점차 차갑게 가라앉았다."세자비, 육공주 전하께선 워낙 성정이 솔직하시단다. 태후 마마의 명을 받아 전하를 모시며 경성의 일들을 묻기에 이것저것 말씀드렸을 뿐인데, 공주께서 세자비의 일에 유독 흥미를 보이실 줄은 나도 몰랐지. 내가 괜한 얘기를 꺼낸 건 아닌지 모르겠네.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는 마."이연령이 짐짓 미안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북명연이 코웃음을 쳤다."네 부군을 가로챈 자인데, 네가 왜 사과를 한단 말이야?"이연령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남이 방심한 틈을 타 지아비를 빼앗다니, 군자가 할 짓이 아니지."북명연이 경멸 가득한 얼굴로 계속해서 모욕을 주려던 찰나, 유지영이 말을 끊고 나섰다."연령 군주께서 언제 경세자와 혼약을 맺은 적이 있다 하십니까?"운청이 즉각 거들었다."선대 왕비 마마께서 구두로 세자 저하와 민씨 가문 규수의 혼사를 언급하신 적은 있으나, 연령 군주와 혼약을 맺으신 적은 결코 없습니다. 게다가 세자와 연령 군주께선 사적으로 교류하신 적조차 없습니다!"유지영은 짐짓 분노한 척 탁자를 내리치며 이연령을 향해 쏘아붙였다."만약 연령 군주께서 진정 경세자와 혼약한 사이였고 내가 그 인연을 가로챈 것이라면, 내 당장 폐하께 달려가 시시비비를 가려달라 청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자, 운청이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세자비 마마, 회임 중이시니 부디 고정하세요."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주변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사람들이 일제히 이쪽을 쳐다보았
안씨 가문에서 부모 속을 썩이는 건 안창준뿐이었다. 부모조차 그를 어찌할 방도가 없어 그저 제멋대로 굴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육공주가 입궁하는 길에 하필 안창준과 마주칠 줄이야."안씨 가문 셋째가 공주를 놀라게 한 게로구나?"서 태후가 걱정스레 물었다.북명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닙니다. 이깟 일로 태후 마마께서 나서신다면 도리어 제 속이 좁아 보일 것입니다."그녀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이었다. 그저 기분이 언짢았던 이유를 설명했을 뿐, 고자질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게다가 그녀 역시 배이수를 때려서 화를 풀었으니 비긴 셈이었다.서 태후는 북명연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대하며 푸짐한 하사품을 내렸다. 그녀에게 유독 관대한 태도를 보이며, 따로 머물 저택까지 마련해 주었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태후 마마."북명연이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북명연이 돌아가자 서 태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 상궁을 바라보았다."오늘 성문에서 육공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보거라. 그리고 내일 당장 안 부인과 셋째를 입궁시키라 전하고!""예, 마마."서 태후는 굳은 안색으로 배이수에게 거듭 당부했다."황상께서 이번 화친을 무척 중히 여기신다. 북신과의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맺는다면 네가 그 일등 공신이 되는 것이야. 한 나라의 공주이니 교만한 구석이 있겠지만, 네가 많이 참도록 해라."말이 이쯤 되니 배이수가 어찌 감히 북명연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그는 애써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할마마마, 염려 마십시오. 앞으로는 육공주의 비위를 잘 맞추겠습니다."그제야 안색이 누그러진 서 태후는 이연령에게도 북명연 곁을 자주 지켜주라 일렀다."예."이연령은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환영 연회장.유지영은 일찌감치 당도해 있었다. 어화원에는 이미 명문가의 부인들과 규수들이 여럿 모여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세자비 마마."누군가 그녀를 보고
튕겨 나간 채찍을 보며 북명연은 순간 멍해졌다.사방의 궁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태후 마마, 고정하시옵소서!"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회랑 아래 서 있는, 봉황 예복 차림의 위엄 있는 서 태후를 바라보았다. 헛기침을 한 번 한 북명연은 결국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추었다."북신의 육공주 북명연, 태후 마마를 뵈옵니다."서 태후는 굳은 표정으로 위압적인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북신의 육공주가 문무를 겸비하고 성품이 호탕하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건만, 오늘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서 태후가 미소 짓는 것을 보자 북명연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공주는 격식을 차릴 것 없다. 연일 길을 재촉하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서 태후는 손을 저어 다과를 내오게 하고는 전각 안을 가리켰다.허리를 편 북명연이 발걸음을 옮겨 내전으로 들어서자마자 배이수가 눈에 띄었다. 그녀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이런 우연이 있나. 군왕께서도 계셨군요."아직 무릎을 꿇고 있던 배이수는 뺨을 부여잡은 채 원망스러운 눈으로 북명연을 노려보았다. 화가 나면서도 상대를 이길 힘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억울한 얼굴로 서 태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서 태후는 웃으며 말했다."싸우면서 정이 드는 법이지. 이수야, 예의를 잃어서는 안 된다. 지난 수년간 북신과 양나라의 관계는 줄곧 긴장 상태였는데, 이리 평정심을 갖고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기회가 흔치 않으니 공주를 홀대해선 안 될 것이야."곁에 있던 이연령은 의아했다.태후께선 어찌 북명연에게 이리 자세를 낮추시는 걸까? 방금 전 북명연이 고의로 도발했음이 명백한데도, 태후는 그조차 문제 삼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배이수는 감히 태후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얌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공주,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거라."서 태후는 이연령을 향해 손짓했다. 그녀가 다가오자 태후는 당부의
적막한 밤.당학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조령 장공주부에 서신을 보냈다. 절절하고 비굴한 내용이었다.서신을 읽은 조령 장공주는 그날 밤 당장 서신을 경왕부로 보내라 명하며 호위에게 일렀다."앞으로 당씨 집안의 일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게 하거라.""예!"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당씨 가문은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채 세상과 단절되어 완벽한 정적에 휩싸였다.어느덧 유지영이 회임한 지 석 달이 되었다. 운청이 매일 진맥을 한 덕에 태아는 안정적이었고 모든 것이 평안했다.이날 조원금은 유지영을 찾아와 주변 시녀들을 물린 뒤 입을 열었다."지영아, 누군가 조씨 가문에 가서 내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구나."유지영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조씨 가문에는 애초에 조원금이라는 인물이 없었다."경왕부 사람인가요?"유지영이 물었다.조원금은 고개를 저었다."경왕부 사람들은 내 눈앞에 있으니 진작에 뒷조사를 마쳤지만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지. 그런데 이번 무리는 내 화상을 들고 조씨 가문이 유배된 영지로 가서 여러 사람에게 묻고 다녔다더구나. 지인이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조차 모를 뻔했어."유지영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조원금이 경왕부에 온 것은 그녀를 돌보며 경왕부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지금 경왕부 내에서는 아무도 조원금을 의심하지 않는데, 대체 누가 그녀를 물고 늘어지는 걸까?뇌리에 어렴풋이 이연령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당장 큰일이 벌어진 건 아니니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마음의 준비만 해두거라."조원금은 부드럽게 일러두더니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북신의 육공주가 예정보다 일찍 경성에 들어왔다는구나."북신의 육공주라는 말에 유지영은 흠칫 놀랐다. 어제 배현준에게서 스치듯 들은 이야기였다.그때 운청이 초대장을 들고 왔다."세자비 마마, 내일 밤 궁에서 북신 사신을 환영하는 연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자녕궁에서 보내온 초대장입니다."초대장을 보자 유지영은 가슴이 뛰면서도 한편으로는 긴장되었다.조원금은 걱정
당응성은 다급히 당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그 아이들을 다치게 해선 안 된다!"당윤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서둘러 몸을 돌려 빠져나갔다."학아, 학아…."방금 전 어미의 생사를 안중에 두지 않는 듯했던 당학의 태도에 류씨는 적잖이 경악해 있었다.당학은 허리를 굽혀 류씨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당윤을 속이려 그리 말한 것입니다. 괜찮으십니까?"류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아들이 자신을 내버린 것은 아니었다."아버지, 당윤이 절연하고 경성을 떠났으니 앞으로는 아버지 뜻대로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당학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당윤이 대체 뒤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두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오늘 짐을 챙기러 온 것은 핑계였고, 진정한 목적은 이혼과 절연이었던 것이다.당응성은 어둡게 굳은 얼굴로 내뱉었다."그 패륜아 놈은 제멋대로 살라지. 앞으론 내 앞에서 다시 입에 올리지 말아. 나가서 대체 무슨 재주를 부릴지 똑똑히 두고 볼 테니!"마차 안.우씨는 연신 휘장을 걷어 밖을 내다보며 불안해하다가, 당윤이 무사히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윤아, 그 인간들이 널 괴롭히진 않더냐? 정 안 되겠으면 내가 남으마. 넌 운연이만 데리고 떠나거라."당윤이 답했다."이혼서와 절연서를 받아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당씨 가문의 사람이 아닙니다."우씨는 그 말에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혼은 예전엔 감히 상상조차 못 하던 일이었다. 당윤이 설득했을 때 즉각 고개를 끄덕인 것도, 행여 아들의 앞길에 짐이 되느니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마음에서였다."그래, 그래. 참으로 잘됐다."우씨는 감격하여 뜨거운 눈물을 글썽였다.백작부.저택의 짐 정리는 이미 얼추 끝나 있었다. 당윤은 곽운연에게 말했다."지체할 것 없이 오늘 밤에 바로 떠나야겠소."곽운연은 시어머니인 우씨와 시선을 교환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늦은 밤.배현준과 유지영이 배웅을 나왔다. 성
"너는 차라리 앞길을 망칠지언정….""아버지, 오해하셨습니다. 아우는 앞길을 망친 게 아닙니다."당학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십 년간 출사 금지는 당학에게 파멸이나 다름없는 타격이었다.그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비릿한 피 맛을 억지로 삼키며 회랑 아래 서서 당윤을 향해 말했다."아우가 대의를 위해 친아비를 고발한 대가로 얻어낸 앞날이구나. 영주는 곽 장군의 고향이 아니냐. 산세 좋고 물 맑은 참으로 좋은 곳이지."당윤은 당학이 눈치 빠른 자라는 걸 알면서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이 지경이 되어서도 이간질할 궁리를 하다니, 참으로 눈물겹군.""아우야, 배현준은 황위를 노리고 있지? 네가 영주로 가는 것도 그가 병권을 쥐도록 돕기 위함 아니더냐?"당학은 당윤의 표정을 뚫어지게 살폈다.그 말에 당응성은 코방귀를 뀌었다."저 무능한 놈이? 영주로 간 건 그저 우연일 뿐이다. 학아, 저놈은 망나니인데 대체 무슨 재주를 부린단 말이냐."그의 말투에는 조롱과 경멸이 가득했다.하지만 당학의 생각은 달랐다.아우는 늘 자신의 감시망 안에 있었다. 온종일 투계나 개싸움에 미쳐 노름과 여색을 일삼던 놈이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후작 자리에 오르더니 곽운연과 혼인까지 했다.그리고 지금은 당씨 가문을 벗어나 영주로 가려 하고 있다.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아버지, 할머니께선 영주에 가보신 적이 없습니다. 차라리 아우가 할머니를 모시고 가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경성에 남아 계시면 상심만 크실 테니, 영주로 가시면 명색이 백작부의 노부인으로서 존경받으며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당학이 제안했다.당응성은 단칼에 거절하려다 당학이 눈짓을 보내자 말을 바꿨다."그래, 할머니를 모시고 가거라. 손자로서 마땅히 효도를 다해야지."마침 우씨의 짐이 모두 정리되어, 호위들이 커다란 상자 몇 개를 밖으로 나르고 있었다."아버지."당학이 당응성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넌지시 말했다."부부는 떨어져 살아
측문으로 나와 마차에 오른 둘은 거리를 따라 서북쪽으로 향하다가 골목을 지나 취선루에 도착했다.홍주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문앞에서 잘록한 허리를 씰룩이며 호객하는 여인들을 바라보았다.“아… 아가씨, 저희가 올 곳이… 아닌 것 같은데요.”유지영은 이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었다. 이틀 전에 그가 왔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 들었다. 전생에 그녀가 배준형과 혼약을 정한 뒤, 그는 찾아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커다란 야명주만 선물로 보내고는 홀연히 사라졌다.만약 배현준이 도와준다면 앞으로 반드시 그 은혜를 갚을 생각이었다.유지영은 품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 유씨 노부인이 소식을 듣자마자 대전으로 달려왔다. 송씨는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주었다.“지영이는 다 좋은데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에요. 분명 마음속에 세자를 품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못해 세자에게 심통을 부리고 있지 뭐예요. 내일 혼사가 정해지지 않으면 우리 유씨 집안은 온 인주의 웃음거리가 될 텐데 말이에요.”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다.유씨 노부인은 불쾌한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지영아, 세자께 사죄드리거라.”양모가 돌아가신 뒤, 유씨 노부인은 유지영을 슬하에 두고 보살
종령각 이층 누각.유지영은 부스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유난히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회랑 아래에서는 하인들이 정원을 단장하며 내일 있을 성년례가 떠들썩할 거라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아픔이 몰려왔고, 곧바로 이 모든 게 꿈이 아님을 직감했다.그녀는 죽임을 당한 뒤 성년례 하루 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이때 밖에서 고씨 어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부인께서 대전으로 들라 하십니다. 경성에서 사람이 온 듯합니다.”전생의 배준형도 성년
7월의 장안 거리는 굉장히 시끌벅적했다.마차 한 대가 성문 입구에서 멈추었다.털썩!유지영은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마대에 담겨 바닥에 내던져졌다. 온몸으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특히 하반신에서는 찢어질 듯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다.“읍….”지나가던 백성들이 소리를 듣고 마대를 풀어주었다.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사내의 옷가지를 걸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하얗고 가는 목덜미 아래에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이 사람은 정왕 세자비 아닌가?”누군가가 유지영을 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옷매무새가 이 모양인 것을 보아 불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