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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레몬과 향수
옥신각신하는 사이, 유씨 노부인이 소식을 듣자마자 대전으로 달려왔다. 송씨는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지영이는 다 좋은데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에요. 분명 마음속에 세자를 품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못해 세자에게 심통을 부리고 있지 뭐예요. 내일 혼사가 정해지지 않으면 우리 유씨 집안은 온 인주의 웃음거리가 될 텐데 말이에요.”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다.

유씨 노부인은 불쾌한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영아, 세자께 사죄드리거라.”

양모가 돌아가신 뒤, 유씨 노부인은 유지영을 슬하에 두고 보살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척 손녀를 총애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유씨 노부인은 담혜정이 남기고 간 거액의 지참금과 매년 담씨 가문에서 보내오는 풍성한 선물들 때문에 그녀를 떠맡았을 뿐이었다.

유지영이 말이 없자 유씨 노부인의 안색이 차갑게 바뀌었다.

“너는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느냐? 이제는 이 할미 말도 듣지 않겠다는 거니?”

말하는 사이 유씨 노부인은 손에 든 염주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표독스럽게 번뜩이는 눈에서 자비로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유지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조금 전, 배준형과 혼인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이들은 끝까지 강요하더니 이제는 불효의 죄명까지 씌우려는 듯했다.

“언니, 할머니 뜻대로 하세요.”

유선주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언니가 허락하지 않으면 저는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 것 같아요.”

유지영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배준형을 돌아보았다.

“세자는 저와 혼인할 마음이 없다고 하셨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보아하니 선주는 세자와의 혼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군요. 제게 자꾸만 혼사를 강요하는 걸 보면 말이죠. 제가 보기엔 유씨 가문과 정왕부는 사주가 맞지 않아 사돈이 될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그러니 세자도 더 이상 선주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그 말에 배준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영아, 그게 무슨 헛소리냐?”

조급해진 송씨의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었고,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지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유지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세자께서는 선주와의 혼인을 원한다고 하셨는데, 정작 선주는 계속 사양하면서 자꾸만 저를 끌어들이지 않습니까. 저도 이 혼인을 원치 않으니 혼약을 없던 일로 하자는데, 제가 뭘 잘못 말했나요?”

다시 삶을 살게 된 지금, 그녀는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다. 가식적인 그들의 가면을 하나씩 모조리 벗겨낼 생각이었다.

“너….”

송씨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배준형은 눈살을 찌푸리며 유선주에게 물었다.

“정녕 이 혼사를 원치 않는 것이냐?”

유선주는 눈시울을 붉히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언니, 저는 그저 언니를 위해 그런 건데 어찌 저에게….”

말을 마친 그녀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자리를 뜨려는 순간, 유지영이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세자께서는 오늘 예물까지 준비해 여기까지 오셨어. 내가 보기엔 두 사람이야말로 잘 어울리는 한쌍 같구나. 내일 내 성년례에서 어찌할지는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단다.”

모두의 시선이 유지영에게 쏠렸다.

“지영이가 왜 그렇게 한사코 거절하나 했더니 이미 마음에 둔 이가 있었구나. 누구니? 내가 아는 사람이니? 너도 참, 그런 사람이 있으면 진작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송씨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궁금한 얼굴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

반면 유씨 노부인은 비웃음을 머금은 채 호통쳤다.

“수치도 모르는 뻔뻔한 것! 너 때문에 집안 망신을 다 당하게 생겼구나!”

노부인은 연유도 묻지 않고 유지영을 단죄했다.

“언니, 어느 집 공자와 눈이 맞았나요?”

유선주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말만 하면 어머니께서 그 집안을 찾아가 혼약을 주선해 주실 거예요.”

송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넌 이미 결백을 잃었으니 좀 부끄럽긴 해도 내가 나서서 혼약을 청하러 가마.”

세 사람은 가벼운 말 몇 마디로 유지영을 파렴치한 죄인으로 몰아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유지영에게 쏠렸다.

유지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숙모님께서는 할머니가 저를 잘못 가르쳐서 제가 외간사내와 눈이 맞았다는 뜻인가요?”

송씨는 음침하게 변한 유씨 노부인의 안색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듯 다급히 말했다.

“허튼소리!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니? 네 입으로 내일 성년례 때 대비책이 있으니 그대로 진행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니? 정왕 세자께서 너와의 혼인을 원치 않는 마당에 혼약을 정할 상대가 따로 있다면 분명 외간사내와….”

그녀는 끝내 사통이라는 단어를 차마 입에 담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언니, 사람들 앞에서 언니가 직접 한 말이잖아요.”

유선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유지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난 분명 내일 성년례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혼약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 외간사내와 눈이 맞았다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송씨 모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유선주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 원래 계획이 틀어졌으니 저도 이제 마음에 없는 사람을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유씨 가문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내일 수구(양반가 규수가 공개적으로 신랑감을 간택하는 행사에서 예비신부가 사람들을 향해 던지는 비단 공)를 던져 현장에서 정혼자를 정하겠어요.”

유지영이 말했다.

“내일 저택에 적지 않은 사람이 몰릴 테니 수구를 받길 원하는 미혼의 사내들을 모두 참석시키도록 하죠. 수구를 받은 자가 누구든, 혼약이 없고 도박 같은 악취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그 사람에게 시집가겠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송씨를 돌아보았다.

“숙모님, 이래도 제가 외간사내와 눈이 맞은 건가요?”

송씨는 흠칫하더니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지.”

그 말에 유씨 노부인이 큰소리로 호통쳤다.

“무모한 짓을 하려는구나! 유씨 집안의 적장녀가 수구로 신랑감을 고르겠다니! 사람들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유씨 집안 딸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여길 것 아니냐!”

유지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누가 이런 선택을 하겠는가?

“지영아, 사실 내게 혼약이 없는 친정 조카가 한 명 있단다. 너와 나이도 비슷한데 네가 원한다면 숙모님이 주선해 주마. 송씨 가문으로 시집가면, 장차 내 얼굴을 봐서라도 그 집에서 너를 홀대하진 않을 것이다.”

송씨는 매우 신중한 어투로, 마치 다 너를 위한 일이라는 듯 말했다.

송씨가 말한 그 조카에 대해 유지영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어릴 적 낙마한 탓에 절름발이가 되었는데, 적출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죄 없는 시녀들을 괴롭혀 죽인 못된 인물이었다. 열여덟 살에 술에 취해 귀족가 규수를 희롱했다가 상대 집안에서 몽둥이로 그의 다리를 부러뜨렸을 때도, 송씨 집안에서는 감히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런 쓰레기를 감히 추천하다니!

“어머니, 지영이는 고집이 세서 너무 높은 집안에 시집가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선주는 태어날 때부터 복덩이로 불렸으니, 정왕부로 시집가면 장차 분명히 세자의 앞길에 도움이 될 거예요.”

송씨는 웃으며 유씨 노부인을 재촉했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겹경사로 치고 내일 둘이 동시에 혼약을 맺는 게 어떠신가요?”

유씨 노부인은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유지영을 훑어보다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 숙모님도 다 널 위해 한 말인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 혼사를 참 급하게 정한다는 느낌은 있지만, 작은어머님의 제안에 저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허나 저와 정왕부의 혼약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고, 이 일 역시 담씨 가문에서 주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약혼녀가 선주로 바뀌었으니, 그쪽에서 불쾌하게 생각해 숙모님이 욕심에 혼약을 바꾸었다고 여긴다면 유씨 가문의 명성과 작은아버지의 승진에 영향이 가지 않겠어요?”

유지영은 유씨 노부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노부인은 꿈에도 경성으로 돌아갈 날만 그리고 있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경성의 생활을 경험한 욕심 많은 늙은이가 어찌 인주의 삶에 만족하겠는가?

마침 담 대인은 이부상서로, 관원들의 승진을 관장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훼방을 놓는다면 유씨 가문이 경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역시나 노부인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럼 수구를 던졌는데 송가의 아들이 받는다면 어떡할 거냐?”

송씨가 포기하지 않고 재차 물었다.

“그럼 그것도 인연이니까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겠죠. 사람들이 선주와 정왕 세자의 사이를 의심하지도 않을 테고요.”

그 말을 들은 송씨는 노부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사실 지영이 말도 일리가 있네요. 유씨 가문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지영이가 하자는 대로 해요.”

유선주도 다급히 거들었다.

“할머니, 언니가 하자는 대로 해요.”

노부인은 두 사람이 졸라대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척하며 말했다.

“그럼 누가 되든 후회하지 말거라!”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그럴 일은 없어요.”

유지영은 단호한 얼굴로 답했다.

유씨 노부인은 한심한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보더니 사람을 시켜 무대를 만들게 하고, 내일 가문의 장녀가 수구로 정혼자를 택한다는 사실을 공표하게 했다.

곧이어 유씨 노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준형과 유선주는 사주단자를 교환했다. 유선주와 혼인하기 위해 배준형은 중매 어멈까지 데리고 왔다.

유지영은 그들이 뭘 하든 관심이 없었기에 조용히 자리를 떠 종령원으로 돌아왔다.

정원에 들어서니 조용히 마당을 쓸고 있는 홍주가 보였다. 전생에도 그녀에게 충성하던 아이였는데, 실족사로 죽었었다.

“홍주야!”

유지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홍주를 불렀다.

홍주는 제 귀를 의심하며 쭈뼛쭈뼛 다가왔다.

“아가씨, 소인을 부르셨나요?”

“외출할 테니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거라.”

홍주는 놀란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

“아가씨, 소인은 그저 허드렛일이나 하는 삼등 시녀일 뿐인데, 어찌 저를 데리고 외출하신단 말씀이신가요?”

주향이 입을 삐죽이며 경멸 섞인 어투로 말하자, 유지영이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내가 누굴 데리고 나가든 시녀인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은데?”

주향은 당황하더니 싸늘한 얼굴의 유지영을 보고 다급히 사죄했다.

“소, 소인은 그런 뜻이 아니오라….”

“꿇어라!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일어나지 말고 반성하고 있거라!”

유지영의 명령에 주향은 잔뜩 불만스러운 얼굴로 정원에 무릎을 꿇었다. 유지영과 홍주가 정원을 나서자, 그녀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저러니 정왕 세자께도 버림을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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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무슨 소리인가?"경왕비는 불쾌한 기색으로 받아쳤다."이들은 피가 섞인 가족이거늘….""지영이와 유리 아가씨가 무슨 피가 섞였단 말입니까?"조원금은 턱을 치켜들며 조롱 섞인 어조로 쏘아붙였다."애먼 짓만 하다가 체면을 다 구겨놓고는, 이제 와서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군요. 정 억울하거든 아까 궁에서는 왜 따져 묻지 못했습니까?"말문이 막힌 경왕비는 미간을 찌푸렸다."남에게 도움을 구하기 전에 본인 딸부터 똑바로 가르치십시오. 사람이 예의가 있어야지!"조원금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매섭게 호통쳤다.배유리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내 딸을 어찌 가르치든 그대가 신경 쓸 일이 아니네."경왕비는 손을 뻗어 배유리를 감싸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조원금을 쏘아보았다.조원금은 유지영의 손을 다정하게 다독였다."이모가 네게 어울릴 만한 장신구를 몇 개 골라두었단다. 이따가 한번 보거라."말을 마친 그녀는 시녀들을 이끌고 여유롭게 자리를 떴다."어머니."배유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했다.경왕비는 잔뜩 실망한 얼굴로 배유리를 밀어내고는 아무 말 없이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안채로 들어갔다. 오늘 사람들 앞에서 채찍 서른 대를 맞은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곱씹어 볼수록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배유리의 어리석음이었다."어머니."붉어진 눈시울로 뒤따라온 배유리는 경왕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소녀가 못난 탓에 어머니까지 벌을 받게 하였습니다. 허나, 저는 정말 당학 공자와 혼인하기 싫습니다."경왕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정 싫다면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거나, 그도 아니면 천으로 목을 매달아 죽는 편이 깔끔하겠지."싸늘한 말에 배유리는 겁에 질려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왕비 마마, 고정하십시오. 유리 아가씨도 한순간 판단이 흐려진 것뿐입니다."눈치를 보던 시녀가 조심스레 거들었다."한순간 판단이 흐려져?"경왕비는 돌연 언성을 높였다."유지영은 저 아이보다 고작 몇 달 먼저 태어났을

  • 피안을 거슬러   제375화

    경왕비는 애지중지 키운 적녀가 서장자와의 혼인을 반강제로 맺게 된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다."청란이는 제가 아우의 손에서 빼내어 제가 데리고 있습니다. 이따가 경왕부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아까는 사태가 급박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니, 부디 마마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당학은 머리를 숙이며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사죄했다.그제야 경왕비의 안색이 조금 누그러졌다.조령 장공주까지 나서서 두 사람을 이어주려 하니, 경왕비는 억울함을 꾹 삼키고 억지로 이 혼사를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연못가.몇몇 부인들은 아까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단박에 꿰뚫어 보고는 은밀히 코웃음을 쳤다."저 서장자란 놈, 참으로 대단한 위인이로군.""당 대인이 하도 감싸고 도니, 태후 마마 앞에서도 저리 간 큰 수작을 부리는 게지."아까는 굳이 나서서 들춰내는 이가 없었을 뿐이었다.이제 저 서장자의 맹랑한 야심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적모를 압박하여 사람들 앞에서 기어코 적자로 인정받았으니, 그 속내가 여간 검은 것이 아니었다.한편, 유지영과 곽운연은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매화를 감상했다. 단단히 화가 난 곽운연이 유지영을 향해 속마음을 토로했다."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재작년에 제 곁에 손버릇이 나쁜 시녀가 한 명 있어 물건을 제법 잃어버렸었지. 그 향낭도 그중 하나였다. 헌데 그 향낭이 당학의 손에 들어갔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어찌 그리 추악한 속셈을 품을 수 있단 말이냐!"곽운연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듯 진저리를 쳤다.옥패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옥패는 절에 갔을 때 잃어버린 것다. 은밀히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는데, 그걸 당윤 공자가 주웠을 줄이야.""그게 아닙니다."유지영은 고개를 저었다."그 옥패는 의용후가 저잣거리에서 돈을 주고 산 것입니다. 곽 낭자의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그저 지나가는 길에 사둔 것이지요."곽운연은 뜻밖이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똑같이 그녀의 물건이건만, 한

  • 피안을 거슬러   제10화

    동금은 원래 표사의 딸이었으나 부모를 잃은 뒤 전당포에 팔려간 데다가, 전생에서는 실족사로 죽기까지 했다.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생에 유지영을 배신하지는 않았다.매일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송씨에게서 문서를 기어코 받아낸 것을 보면 눈치도 빠르고 수완도 있는 듯했다.나머지는 아직 관찰 대상이었다.“오늘부터 종령각을 배신하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유지영은 근엄한 표정으로 엄명을 내렸다.나머지 사람들은 주향 일당이 내쳐지는 것을 보았기에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방으로

  • 피안을 거슬러   제9화

    “선주는 참 복도 많아요. 이 집안의 복덩이라니까요.”이내 셋째 부인이 아부를 떨기 시작하자, 송씨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지영아, 그동안 경왕 세자의 평판이 어떤지 너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혼인한 뒤에는 조용히 지낼 수 있도록 네가 잘 붙들어야 한다. 어차피 훗날 경왕부 작위를 잇게 되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을 테니, 제발 사고를 쳐서 우리 집안에 피해가 가는 일만은 없게 하거라.”유지영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당장 침소로 돌아가 한숨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다행히도 노부인이 이제 돌아가도 좋다는 뜻을

  • 피안을 거슬러   제8화

    “지영아,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느냐?”송씨는 못 말리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날은 오해가 좀 있었단다. 선주는 내가 따끔히 혼내 두었어.”유지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어찌 작은어머니와 선주에게 화를 내겠어요. 운부 비단은 참으로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들었어요. 일부 무늬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던데, 구하시느라 참 힘드셨겠어요. 감동이에요, 작은어머니.”그 말을 들은 송씨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역시 그 멍청함은 어디 안 가는구나!’유지영은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집안의 맏언니로서 당연히 동

  • 피안을 거슬러   제7화

    “언니, 설마 이미 경왕 세자와 혼약을 정한 건 아니죠?”그때 갑자기 다가온 유선주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어젯밤에 주향이 언니 침소에서 사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경왕 세자인가요?”말이 끝나자마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유선주는 재빨리 입을 틀어막으며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언니, 일부러 말한 건 아니에요. 실수였어요. 하지만 언니도 참 어리석네요. 어찌 홧김에 경왕 세자 같은 분과 그런….”짝!유지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유선주의 뺨을 때렸다.주변이 다시 고요해졌다.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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