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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Author: 레몬과 향수
유지영이 부탁을 거절하자 정왕부 일가 모두 분을 참지 못했다.

정왕비는 저런 화상을 며느리로 들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앉은 노태비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문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곧 연회의 계절이 오니, 가서 그 계집애가 오만방자하고 피도 눈물도 없다는 소문을 퍼뜨리거라. 누가 감히 그 계집을 연회에 초대하는지 내 똑똑히 지켜보겠다!”

배준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영이 오늘 노태비의 치료를 거절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경성에서 감히 그녀를 집으로 초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매운맛을 좀 보여줄 때가 되었지요.”

배준형은 정왕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유지영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정왕은 미간을 찌푸렸고, 노태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내가 이러고 지낸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리 급할 것 없다. 오히려 경성의 시국이 언제 변할지 모르니 너는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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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548화

    다음 날 아침.유지영은 만수절 연회에서 일어난 소동을 전해 들었다. 홍주는 신이 나서 생생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오늘 아침 거리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어제 전하께서 또 승전보를 올리셨다지 뭡니까."귀를 기울여 듣던 유지영은 건양제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는 대목에서 미간을 찌푸렸다.전장 상황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아버지 대신 할머니의 상을 지킨다는 핑계를 대고 변방으로 내려가 배현준을 돕고 있었고, 안창준도 힘을 보태고 있으니 승산은 충분했다.다만 건양제의 병세가 마음에 걸렸다.상념에 잠겨 있을 때, 밖에서 남이국 오공주가 뵙기를 청한다는 전갈이 왔다."오공주가 나를 웬일로 찾아온 거지?"유지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영문을 몰라 고심하는데, 유영 현주도 함께 왔다는 보고가 이어졌다.유지영은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을 안으로 모시게 하고 차를 내오라 일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하고 당돌한 인상의 남궁연과 유영 현주가 나란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남궁연은 유지영을 보자마자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현왕비의 미모가 가히 경국지색이라 칭할 만큼 뛰어나다더니,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군."유영 현주가 다가와 웃으며 소개했다."지영아, 이분이 바로 남이국에서 오신 오공주셔. 어제 연회에서 선보인 춤사위가 어찌나 요염하고 아름답던지, 네가 그 광경을 보지 못한 게 아쉽구나."갑작스러운 남궁연의 방문에 유지영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전생에도 그녀와는 접점이 없었다.유지영은 유영 현주의 말에 호응하며 차분하게 대답했다."저도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훌륭한 춤을 직접 보지 못해 참으로 아쉽습니다."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남궁연은 유지영을 빤히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했다."그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 그대와 이연령이 서로 기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태후의 분노를 샀고, 그 탓에 이연령이 화친으로 내몰리게 되었다면서.""오공주께서는 연령 공주를 아십니까?"유지영은 차분히 되물었다.갑작스러운 질문에 남궁연은

  • 피안을 거슬러   제547화

    소 상궁은 즉시 궁인들을 거느리고 대전을 빠져나갔다.이윽고 텅 빈 전각에 발소리가 울렸다.등 뒤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용연향이 느껴지자 서 태후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폐하, 옥체는 좀 어떠하십니까.""어마마마께서 심려하실 일이 아닙니다. 짐은 괜찮습니다."건양제는 서 태후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선선한 밤바람이 불어와 부드럽게 뺨을 스쳤다."어마마마의 안목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군요."건양제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그 말에 숨은 뜻을 알아챈 서 태후는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황제를 마주 보았다."황상께서는 내가 배현준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차가워진 말투를 듣고 건양제는 자신이 태후의 심기를 건드렸음을 깨닫고 황급히 말했다."현준이는 짐이 친자식처럼 지켜봐온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황위를 이어받는다면…….""황상!"서 태후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현왕이 뛰어난 재목인 것은 맞으나, 폐하께서는 이제 겨우 서른이십니다. 후사는 생각지 마시고, 옥체만 생각하세요. 훗날 현왕이 황위에 오르는 날이 오더라도, 내 바람은 그게 앞으로 삼십 년 뒤의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달빛 아래 비친 서 태후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고, 눈동자에는 황제를 향한 걱정이 가득했다.건양제는 헛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짐이 실언을 하였습니다. 고정하십시오, 어마마마."밤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자 서 태후는 건양제의 앙상한 몸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바람이 차갑습니다. 이만 침전으로 돌아가 쉬시지요."건양제는 말없이 옅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서 태후가 자녕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야심한 시각이었다.소 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처소에 든 서 태후는 궁녀가 끓여 온 해장탕을 반 그릇쯤 비우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황상의 옥체가 씻은 듯이 낫는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마, 폐하께서는 성군이시니 하늘이 돌봐 주실 것입니다."

  • 피안을 거슬러   제546화

    사방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자 남궁연은 얼굴을 붉히며 남이 삼황자를 바라보았다."오, 오라버니.""연아, 오늘은 우리가 경솔했다. 먼 길을 떠나 남의 나라에 왔으니 응당 양나라의 법도를 따라야지."남이 삼황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남궁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다시 면사포를 뒤집어쓴 채 대전을 빠져나갔다."누이에게 악의는 없었으니, 부디 태후 마마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남이 삼황자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서 태후는 즉답을 피한 채 창밖의 하늘만 묵묵히 응시했다. 그때 태후의 시선을 받은 대신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남희 대사께서는 양나라 만인이 우러러보는 덕망 높은 분이십니다. 대사께서는 진작에 폐하와 상극인 띠를 점쳐 경고하셨건만, 남이국 사절단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그 오만함 탓에 폐하의 옥체가 상하셨는데, 어찌 사죄 한마디로 가볍게 넘기려 하십니까!"그제야 서 태후의 굳었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또 다른 대신이 가세하여 목소리를 높였다."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남이 오공주가 폐하의 옥체를 상하게 한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나, 화친을 위해 온 신분을 감안하여 참는 것일 뿐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엄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대신들은 앞다투어 나서서 남궁연의 무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서 태후의 눈치를 살피며 공주가 경박하고 처신이 가볍다며 노골적으로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었다.온 연회장이 남이 오공주를 성토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방금 전까지 무희의 춤사위에 넋을 잃고 감탄하던 자들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태세 전환이었다.남이 삼황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서 태후는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정리했다."경들은 말을 삼가게. 삼황자는 대의를 아는 사리에 밝은 자이고, 공주 역시 축하하려는 좋은 마음으로 나선 것이 아니겠는가. 그저 의욕이 앞서 실수를 범한 것뿐인데, 명색이 주인 된 도리로 어찌 손님의 허물을 물고 늘어져서야 되겠는가."서 태후가 나서서 체면을 세워주자, 그제야 남이 삼황

  • 피안을 거슬러   제545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정하던 황제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니, 사람들도 혼란스러웠다.곧바로 태의가 당도했다. 건양제의 맥을 짚어본 태의는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태후 마마, 폐하의 옥체가 갑작스레 까닭 없이 쇠해지셨습니다. 사악한 기운이 깃든 듯합니다."사악한 기운이라는 말에 남궁연의 표정은 어둡게 가라앉았다.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황제는 그녀가 축하무를 올린 직후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남이 오공주의 띠가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는가?"서 태후는 남궁연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물었다.남궁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역시나 그녀를 겨냥한 소란이었다.그녀는 서러운 표정으로 남이 삼황자를 바라보았다.침묵을 지키고 있던 삼황자가 입을 열었다."제 누이는 토끼띠입니다.""토끼띠라니!"서 태후가 헛숨을 들이켰다."며칠 전 흠천감과 남희 대사께서 황상의 운세를 보시고는, 이번 만수절에 네 가지 띠와는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네. 오공주는 어찌 그걸 알면서도 연회장에 불길한 기운을 끌어들인단 말이오!"서 태후의 얼굴에는 원망의 기색이 가득했다.남궁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남이 삼황자는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저희는 화친을 맺기 위해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이런 황당한 핑계로 저희를 홀대하려 한다면, 참으로 무례한 처사라 생각됩니다."서 태후는 묵묵히 궁인들을 시켜 건양제를 편전으로 모시게 했다. 사악한 기운을 피해야 한다는 명목이었다.황제가 자리를 뜨자, 서 태후는 남이 삼황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남희 대사는 우리 양나라에서 명성이 자자한 분이오. 대사의 점괘는 매번 신통하게 맞아떨어져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지. 정 못 믿겠다면 삼황자가 직접 시험해 보시게."그 말을 들은 남이 삼황자는 코웃음을 치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이때, 남궁연이 끼어들었다."오라버니, 저도 그 남희 대사라는 분을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그 말에 삼황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얼마 지나지

  • 피안을 거슬러   제544화

    상 내관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했다."모두 이 늙은 것이 눈이 먼 탓이옵니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상 내관은 양손을 번갈아 들어 올리며 스스로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짝, 짝! 아찔한 파열음이 관현악 소리마저 집어삼킬 만큼 대전을 쩌렁쩌렁 울렸고, 순식간에 연회장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건양제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없이 술잔을 들어 천천히 목을 축일 뿐, 제지할 기미가 없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도는 사이, 서 태후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황상, 오늘은 만수절인 데다 현왕이 변방에서 첫 승전보를 가져온 경사스러운 날이 아닙니까. 겹경사가 난 마당에 굳이 불필요한 자 때문에 흥을 깰 필요가 있겠습니까."서 태후는 곧바로 상 내관을 향해 가볍게 턱을 까닥였다."그만하거라. 앞으로는 눈치껏 처신하도록 해."벌벌 떨던 상 내관은 그제야 겁에 질린 얼굴로 손을 멈추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망극하옵니다, 태후 마마!"건양제는 본래 서 태후의 말이라면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사람을 칠 듯 굳어 있던 황제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풀렸다."태후께서 친히 선처를 구하시니, 이번 한 번만은 네놈의 목숨을 살려주마."모친과 아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눈치 빠른 이들은 단박에 상황을 간파했다. 상 내관을 벌하는 척했지만, 실은 호성 이황자를 향한 경고였다. 자칫 잘못하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역시나 호성 이황자의 안색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방금 이황자는 무슨 말을 하려던 참이었지?"건양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서 호성 2황자를 바라보며 물었다.수많은 시선이 쏠린 가운데, 호성의 황제를 위해 태후를 화친으로 모셔가겠다는 오만방자한 청은 이미 목구멍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황제의 위압감에 짓눌린 호성 이황자는 황급히 꼬리를 내리고 말을 주워 담았다."이 야명주는…… 태후 마

  • 피안을 거슬러   제543화

    "민경주가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예의 주시하거라. 아울러 왕부 내 하인들의 동태도 샅샅이 살펴라. 솎아낼 자들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치워버려야겠다."유지영은 차분하게 지시를 내렸다.운청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받들었다.유지영은 입술을 꾹 깩물었다. 전생의 기억이 맞다면, 곧 변방에 석 달 내내 폭설이 쏟아져 양나라 장병들이 극심한 고초를 겪게 될 것이다."동금!"동금이 황급히 다가왔다."예, 마마. 부르셨습니까.""현재 인주 쪽 표국의 벌이는 어떠하냐?""한 달에 대략 십여 건 정도 의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동금이 사실대로 고했다.유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인주로 내려가 표국 사람들에게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라 이르거라. 사방을 돌며 식량과 건초, 의복 지을 옷감을 사들이라 해. 나는 양주 일대에 장원을 하나 매입할 계획이다. 사들인 식량과 옷감, 그리고 땔감은 모조리 그곳에 비축해 두거라. 남들의 이목을 끌어선 아니 되며, 물자는 다다익선이다. 일이 잘 성사되면 그들에게 매달이 은자 삼십 냥을 챙겨주겠다고 이르거라."동금은 상황의 중대함을 깨닫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하겠습니다, 마마."지시를 마친 뒤에야 유지영 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미약한 힘이나마 변방의 비극을 막는 데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로부터 이틀 뒤는 건양제의 탄신일인 만수절이었다. 마침 전장에서 승전을 거두었다는 경사까지 겹쳤기에 건양제는 크게 기뻐하며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각지의 번왕들은 일찌감치 전갈을 받고 축하인사를 올리기 위해 입궁했다.건양제는 연회장 상석에 자리했다.전각 안에는 화려한 가무가 펼쳐지고 경쾌한 관현악 소리가 귓가를 즐겁게 하는 가운데, 축하의 술잔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이윽고 서 태후가 행차했다. 짙은 자줏빛 장포 차림의 서 태후는 이마에 커다란 옥장식을 두르고, 화려한 금비녀를 머리에 꽂았다.머리부터 발끝까지 황실의 묵직한 귀티가 철철

  • 피안을 거슬러   제10화

    동금은 원래 표사의 딸이었으나 부모를 잃은 뒤 전당포에 팔려간 데다가, 전생에서는 실족사로 죽기까지 했다.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생에 유지영을 배신하지는 않았다.매일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송씨에게서 문서를 기어코 받아낸 것을 보면 눈치도 빠르고 수완도 있는 듯했다.나머지는 아직 관찰 대상이었다.“오늘부터 종령각을 배신하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유지영은 근엄한 표정으로 엄명을 내렸다.나머지 사람들은 주향 일당이 내쳐지는 것을 보았기에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방으로

  • 피안을 거슬러   제9화

    “선주는 참 복도 많아요. 이 집안의 복덩이라니까요.”이내 셋째 부인이 아부를 떨기 시작하자, 송씨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지영아, 그동안 경왕 세자의 평판이 어떤지 너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혼인한 뒤에는 조용히 지낼 수 있도록 네가 잘 붙들어야 한다. 어차피 훗날 경왕부 작위를 잇게 되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을 테니, 제발 사고를 쳐서 우리 집안에 피해가 가는 일만은 없게 하거라.”유지영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당장 침소로 돌아가 한숨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다행히도 노부인이 이제 돌아가도 좋다는 뜻을

  • 피안을 거슬러   제8화

    “지영아,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느냐?”송씨는 못 말리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날은 오해가 좀 있었단다. 선주는 내가 따끔히 혼내 두었어.”유지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어찌 작은어머니와 선주에게 화를 내겠어요. 운부 비단은 참으로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들었어요. 일부 무늬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던데, 구하시느라 참 힘드셨겠어요. 감동이에요, 작은어머니.”그 말을 들은 송씨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역시 그 멍청함은 어디 안 가는구나!’유지영은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집안의 맏언니로서 당연히 동

  • 피안을 거슬러   제7화

    “언니, 설마 이미 경왕 세자와 혼약을 정한 건 아니죠?”그때 갑자기 다가온 유선주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어젯밤에 주향이 언니 침소에서 사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경왕 세자인가요?”말이 끝나자마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유선주는 재빨리 입을 틀어막으며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언니, 일부러 말한 건 아니에요. 실수였어요. 하지만 언니도 참 어리석네요. 어찌 홧김에 경왕 세자 같은 분과 그런….”짝!유지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유선주의 뺨을 때렸다.주변이 다시 고요해졌다.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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