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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상한 인사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08:04:16

며칠 뒤, 마을회관 앞은 아침부터 부산했다.

처마 밑에 매달린 낡은 풍경이 바람에 가볍게 울렸고, 마당 한쪽에서는 막 걷어온 고추 냄새가 알싸하게 퍼졌다.

평소 같으면 마루에 둘러앉아 바둑을 두거나 고추 꼭지를 따던 어르신들이 오늘은 하나같이 계단 아래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에 햇살이 서 있었다.

회관 앞에는 붉은 시루떡을 담은 상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햇살은 배꼽이 살짝 드러나는 짧은 상의에 허벅지 중간까지 올라오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진한 향수 냄새가 흙냄새와 섞여 낯설게 퍼졌다.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저 햇살이에요. 이번에 다시 들어왔어요. 떡 좀 드세요.”

햇살은 아무렇지도 않게 떡 봉지를 하나씩 건넸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아이고, 햇살이라고? 빛나네 딸래미 맞제?”

한 할머니가 떡을 받아 들고 햇살을 위아래로 살폈다.

“근디 옷을 워째 그라고 얇게 입고 댕긴다냐. 배때지 시리겄다.”

햇살이 입꼬리를 올렸다.

“제 배인데요, 뭐. 많이 드세요.”

그 말에 몇몇 할머니가 피식 웃었다.

그때 회관 담벼락 쪽에서 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노진태였다.

“야, 오햇살.”

건들거리며 다가온 진태가 대놓고 햇살을 훑었다.

“서울 가서 아주 제대로 놀다 왔나 보다? 어르신들 눈 둘 데도 없게 차려입고.”

햇살의 표정이 식었다.

“눈 있으면 알아서 둘 데 찾겠지.”

“성질은 여전하네.”

진태가 비웃으며 한 걸음 붙었다.

“서울에서 뭘 하고 살았길래 더 까칠해졌냐?”

손이 햇살의 어깨 쪽으로 올라왔다.

햇살은 피하지 않았다.

둥글고 큰 두 눈이 차갑게 진태를 올려다봤다.

“손 치워, 진태야.”

“이게 진짜.”

진태의 손이 이번에는 팔을 향했다.

탁.

짧은 소리와 함께 손목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햇살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들어섰다.

우식이었다.

진태가 손목을 움켜쥐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 씨. 소우식. 넌 또 뭐야?”

우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구리빛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길게 찢어진 눈이 진태를 한 번 내려다봤다.

그뿐인데 진태의 턱이 굳었다.

어릴 적부터 저 눈을 보고 덤볐다가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다.

“또 잘난 척이냐?”

진태가 이를 갈았다.

“우리 아버지도 맨날 너 같은 놈 좀 닮으라고 지랄이더니.”

우식이 짧게 말했다.

“가.”

“재수 없는 새끼.”

진태는 한동안 버티는 척하다가 결국 뒤로 물러섰다.

“오햇살. 너 다음에 보자.”

“보긴 뭘 봐. 그냥 가.”

햇살이 심드렁하게 받아쳤다.

진태가 욕을 씹어 삼키며 돌아서자 회관 앞에 다시 조용한 웅성거림이 돌았다.

우식은 그제야 햇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짧은 치마에도, 드러난 허리에도 눈길은 가지 않았다.

얼굴만 봤다.

햇살이 먼저 픽 웃었다.

“왜. 또 구멍 나겠어?”

우식은 말없이 서 있었다.

햇살은 떡 봉지 하나를 집어 그의 가슴팍에 내밀었다.

“먹어. 이사 떡.”

우식이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햇살의 손바닥 위로 작은 약 상자 하나와 연고가 툭 떨어졌다.

햇살이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야?”

“가지고 있어.”

“갑자기 약을 왜 줘?”

우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침에 정류장 앞을 지나며 본 게 전부였다.

햇살이 담배를 피우다 두어 번 작게 재채기하던 모습.

그리고 떡 상자를 옮기다 손등을 긁힌 것도 봤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우식은 떡 봉지를 든 채 돌아섰다.

“야, 소우식.”

걸음이 잠깐 멈췄다.

햇살이 손바닥 위의 약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너 원래 아무한테나 이래?”

우식이 고개만 반쯤 돌렸다.

“아니.”

그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걸어갔다.

햇살의 손끝이 아주 조금 굳었다.

짙은 향수도, 화려한 옷도, 아무렇지 않은 척 올려둔 웃음도 그 순간만큼은 소용이 없었다.

햇살은 멀어지는 넓은 등을 한참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여전하네, 소우식.”

가을볕 아래, 손바닥 위 작은 약 상자가 유난히 오래 따뜻했다.

햇살은 한참 뒤에야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도 손끝에 남은 감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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