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사각, 사각. 적막한 화실 안, 캔버스 위로 나이프와 붓이 스치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미호는 제 몫의 이젤 앞에 앉아 팔레트에 물감을 개다 말고, 고개를 돌려 하윤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빠르고 거침없는 손놀림.‘왜 이렇게 낯이 익을까.’분명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가 붓을 쥐는 태도나 뒷목의 선 같은 자잘한 파편들이 기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내가 알 리가 없는데…….’미호의 시선이 하윤의 넓은 등을 타고 내려와, 그의 낡고 보풀이 인 맨투맨 소매에 머물렀다.‘그러고 보니… 신발도 꽤 낡았던데.’비싼 커피를 사 오면서 정작 제 신발은 낡아빠진 걸 신고 다니는 이질적인 모습. 미호의 속에서 아주 얕은 연민이 일었다.‘커피 살 돈 모아서 운동화나 새로 사지.’미호가 속으로 작게 혀를 차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그렇게 잘생겼어요?”캔버스에 시선을 고정한 하윤이 불쑥 입술만 달싹였다.순간 상념을 들킨 듯 화들짝 놀란 미호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뭐가?”“제 얼굴요.”그제야 붓질을 멈춘 하윤이 고개를 돌려 미호를 바라보았다. 나른하게 휘어진 까만 눈동자가 미호를 곧장 꿰뚫었다.“너무 빤히 보시길래.”“…….”“저 꽤 잘생기지 않았어요?”당돌하다 못해 뻔뻔한 질문에 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문이 막혔다. 미호의 굳은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윤이 생긋 웃으며 덧붙였다.“아, 하긴. 차 작가님도 꽤 잘생기신 편이긴 하죠.”순간 하윤의 입에서 나온 남편의 호칭에 미호의 미간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걸 놓칠 리 없는 하윤이 느릿하게 붓을 내려놓으며 결정타를 날렸다.“그래도, 키는 제가 더 커요.”“그,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하던 거나 마저 해.”하윤의 도발에 당황한 미호가 흠칫 물러서며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하윤은 붓을 툭 내려놓으며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다 했는데요.” “……벌써?”미호의 눈이 커졌다. 캔버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빈틈없이 깔끔하게 메워진 밑색이
“아줌마.”“아줌마?”“네, 아줌마.”거대한 저택 거실 한가운데. 푹신한 소파에 깊숙이 파묻힌 하윤이 턱을 괸 채 나른한 목소리로 같은 단어를 수십 번째 굴려보고 있었다. 높낮이를 달리해가며 울리는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달뜬 열기가 묻어났다.그 뒤에 선 사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하아, 씨발. 저놈의 아줌마 소리 때문에 고막에서 피 나겠네.’참다못한 사혁이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 글쎄요. 제 귀에는 다 비슷하게 들립니다만……. 그런데 아줌마는 왜 자꾸 찾으시는 겁니까?”“그냥.”하윤이 나른하게 휘어진 눈매로 허공을 응시하며 속삭였다.“나 아줌마가 좋아졌어.”사혁은 기가 찬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이 일을 시작할 때 회장이 은밀히 당부했던 말이 귓가를 스쳤다.[내 아들이 가끔 기행을 저지를 때가 있어.]‘하, 회장님이 말씀하신 그 기행이 미친 여자 취향을 말하는 거였나?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아줌마길래 저러지?’사혁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소파에 기대어 있던 하윤이 불쑥 몸을 일으키더니, 입고 있던 캐시미어 니트의 밑단을 잡아 단숨에 위로 벗어 던졌다.하윤의 앳된 얼굴과 대비되는, 탄탄하게 벌어진 어깨와 잔근육이 도드라진 상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사혁이 당황해 주춤거리는 사이, 반라 상태의 하윤이 성큼성큼 다가와 나직하게 명령했다.“벗어.”“……네?”사혁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허, 설마 남자도 취향인가?’사혁은 반사적으로 제 옷깃을 꽉 움켜쥐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저, 저…… 아무리 돈을 많이 주셔도 몸은 안 팝니다! 한 걸음만 더 오시면 무력으로 제압할 수밖에 없…….”“미쳤어? 옷 바꿔 입자고.”하윤이 실소를 터트리며, 잔뜩 쫄아붙은 사혁의 옷깃을 매만졌다.“오늘 네 옷 마음에 들어.”그제야 사혁이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쥐고 있던 옷깃을 느슨하게 풀었다.“아…… 하하하. 다행이네요. 제가 또 은근히 패션
미호는, 한참 동안이나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다.‘하아…….’쓴웃음을 삼킨 그녀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진 얇은 속옷을 주워 입고, 뜯어진 셔츠를 주섬주섬 여미는 동작에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묻어나지 않았다.‘……틀린 말도 아니지.’어차피 애도 못 가지는 몸.뼛속까지 후벼 파이는 폭언이었지만, 미호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잔인한 말이 연호의 손길을 멈춰주었으니까.상처받은 비참함보다, 그의 몸무게와 체온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이 안도감이 미호를 더욱 처참하게 옭아맸다. 남편과 몸을 섞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여자라니.미호가 실밥이 터진 셔츠 깃을 움켜쥐며 헛숨을 삼켰다.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어디서부터 이 지옥이 시작된 걸까.우리를 감싸던 공기가 이토록 역겹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옷깃이, 아주 찰나의 손끝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듯 뛰고 귓바퀴가 터질 듯 달아오르던 때가 분명 있었다.쏴아아―.집안의 정적 위로, 열린 창문 너머로 쏟아지던 매미 울음소리가 아스라이 겹쳐 들었다.복도를 울리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음.낡은 선풍기가 삐걱이며 돌아가던 여름날의 냄새.옅은 물감 냄새.그리고, 텅 빈 미술실.“너, 이거 어디에도 내지 마.”캔버스에 시선을 박은 채 숨을 죽이고 있던 열여덟의 미호가 흠칫 어깨를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미술실 뒷문.그곳에 차연호가 서 있었다.미호가 그리던 수행평가용 풍경화를 내려다보는 연호의 눈빛은 기묘했다.“어, 그게… 이상해? 지울까?”“이상한 건 아닌데, 좀 거칠고 특이하네. 너 따로 그림 배운 적 있어?”미호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연호의 입가에 아주 옅은, 그러나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수행 평가 제출용이면 내가 다시 그리는 거 도와줄게. 대신에…… 이 그림은 나한테 줄 수 있어?”“어? 난 상관없는데……. 왜?”의아하다는 듯 되묻는 미호에게, 연호가 눈을 맞추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투둑, 툭.단추가 뜯겨 나갈 듯한 거친 손길에 미호의 얇은 실크 셔츠가 속절없이 벌어졌다.“하아…….”연호의 뜨겁고 탁한 숨결이 훤히 드러난 미호의 목덜미와 쇄골 위로 쏟아졌다. 등 뒤로 감겨든 그의 커다란 손이 브래지어 후크를 신경질적으로 비틀어 풀었다.스르륵, 얇은 속옷이 바닥으로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다. 창백할 만큼 희고 풍만한 가슴이 공기 중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읏, 당신… 잠깐……!”미호가 다급하게 연호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이미 달아오른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연호는 미호를 거실의 넓은 가죽 소파 위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푹신한 소파 위로 상체가 무너지자마자, 연호가 그녀의 가슴에 입술을 파묻었다.츕, 츄읍.거실의 정적을 찢고 타액이 얽히는 질척하고 노골적인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그가 붉게 달아오른 유두를 혀로 집요하게 핥아 올리고, 날카로운 치열로 살짝 깨물며 자극했다. 다른 여자들이었다면 쾌락에 허덕이며 신음을 내뱉었을 짙고 농염한 애무였다.하지만 미호의 몸은 차가운 대리석처럼 굳어 있었다.“보통 이러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신음소리 하나가 없어.”미호의 무감한 반응에 연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그래도 여전히 봐줄만 해.”그는 제 커다란 손을 미호의 바지 버클 사이로 밀어 넣었다.스윽.속옷 안쪽으로 파고든 연호의 손가락이 미호의 여린 살결을 갈라내며 깊숙한 곳을 꾹 눌렀다.“아……!”순간 미호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바싹 메말라 있었다.연호의 농밀한 애무에도 불구하고, 미호의 내벽은 단 한 방울의 애액도 흘려보내지 않은 지독하게 건조했다.연호는 그 완강한 거부에 오기가 생겼는지, 손가락으로 작은 음핵을 짓이기듯 강하게 문지르기 시작했다.“아, 앗…! 아파……!”윤활유 하나 없는 메마른 살점 위로 가해지는 거친 마찰. 미호의 눈가에 고통으로 인한 생리적인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가 허리를 뒤틀며 연호의 팔뚝을 긁어내리듯 꽉 쥐었
단독 저택의 높은 담벼락을 끼고 도는 길.조금 전까지 한껏 움츠러들었던 순진한 조수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윤의 까만 눈동자에는 선명한 희열이 맺혀 있었다.‘여전하네. 그래서 더…… 좋아졌어.’기분 좋은 콧노래가 하윤의 입술 사이로 흘러 나왔다.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그의 발걸음은 묘하게 경쾌했다.“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적막을 깨고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사혁.날카롭게 찢어진 눈매에, 투블럭으로 밀어 올린 뒷머리 위로 긴 머리칼을 살짝 묶어 내린 사내. 그는 하윤의 곁에 나란히 서는 대신, 그림자처럼 정확히 한 발짝 뒤로 거리를 둔 채 따라붙고 있었다.“응. 선생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하윤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여유롭게 말을 이어갔다.“칭찬도 받았어. 노력한 보람이 있네.”“……노, 노력이요? 누가요? 제가요?”사혁의 황당하다는 반문에, 하윤이 픽 비실거리는 웃음을 흘렸다.“응. 그런데 다음엔 조금 더 잘했으면 좋겠어. 하마터면 한 번에 들킬 뻔했잖아.”“…….”“아니다. 그건 내 선생님의 안목이 탁월해서일까.”사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켰다. 도련님의 그 빌어먹을 노력을 돕느라, 사혁의 손끝에는 아직도 뻑뻑한 젯소의 감촉이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사혁, 빨리 그림을 좀 그려야겠어.”“네? 제 업무는 경호…….”“아니지. 네 진짜 업무는, 내가 숨만 쉬고 하는 짓거리들을 낱낱이 회장님께 보고하는 거잖아.”정곡을 찔린 그가 입을 다물자, 하윤이 나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아무 보고 없는 것도 이상하게 여기실 걸? 차라리 그림이나 그리고 자빠져 있다고 하면, 오히려 수긍하실 거야.”그럴듯한 논리였다.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이내 사혁은 난감한 얼굴로 제 크고 투박한 손을 내려다보았다.“그런데 제가 그림은 좀…….”“그러니까 시키는 거야. 내 재능이 워낙 출중해서 말이야. 그걸 좀 숨겨야겠거든.”‘저런 게 재벌들의 오만인가. 어린 새끼가 가끔 재수가 없단
저벅, 저벅.거친 구둣발 소리와 함께 연호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아앗……!”다짜고짜 미호의 손목을 낚아챈 연호가 그녀를 제 품으로 난폭하게 끌어당겼다. 억센 손아귀가 붉게 달아오른 맥박 위를 부서져라 짓눌렀다.“당신, 갑자기…….”“읏, 읍!”미호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연호가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 키스라기보다는 마치 제 영역을 표시하는 듯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탐닉이었다.미호를 우악스럽게 껴안은 연호의 오른손이 그녀의 얇은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흉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손목 너머로, 그의 길고 억센 손가락이 미호의 목통을 틀어쥔 채 턱을 억지로 꺾어 올렸다.츕, 츄으읍―.조용한 화실 안으로 혀가 노골적으로 얽히고 타액이 질척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미호는 숨이 막혀 헐떡이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두려움이나 쾌락 따위는 섞여 있지 않은, 그저 굳어버린 두 눈.그녀의 반사적인 시선이 연호의 어깨너머를 향했다.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하윤과 오롯이 시선이 얽혔다.‘보고 있어?’하윤이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서, 남편에게 목이 졸린 채 입술을 유린당하는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피해야 하는 건 외부인인 하윤 쪽이어야 했다. 그러나 하윤의 까만 눈동자에는 일말의 당혹감조차 없었다. 마치 유리관 너머의 전시를 관람하는 듯한 집요한 관찰자의 시선이었다.그 노골적인 시선 아래 완벽히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을 느끼며, 미호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하아…….”이내 연호가 끈적하게 얽혀있던 입술을 떼어냈다. 미호의 입술은 거친 마찰에 짓눌려 붉게 부어올랐다.숨을 몰아쉬는 미호의 젖은 입술을 엄지로 거칠게 문지르며, 연호가 하윤을 향해 고개만 비스듬히 돌렸다. 그의 눈빛은 승자의 여유로움과 오만함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마음에 안 들어.”연호가 미호의 목덜미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싸늘하게 툭 내뱉었다.“새로 뽑아.”그의 일방적인 통보에, 미호가 억눌린 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