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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Author: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5 09:49:47

같은 시각,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호텔.

고급스러운 우디 계열의 디퓨저 향기가 은은하게 감도는 객실 안에서 연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을 감싼 거위 털 이불은 구름처럼 폭신했고, 빳빳하게 풀을 먹여 다림질된 순백의 베딩은 한 치의 구김도 없이 깔끔했다. 하지만 밤새 뒤척인 탓인지 목덜미와 어깨가 납작한 돌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뻐근했다. 완벽하게 세팅된 특급 호텔의 침대였으나, 어쩐지 제 몸에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듯 낯설고 불편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래.’

연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협탁 위에 놓인 미지근한 생수를 들이켜자, 속이 쓰라리게 헛헛했다. 평소 같았으면 눈을 뜨자마자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국물 냄새가 안방 문틈으로 스며들 시간이었다.

먹지 않아도 늘 차려지던 아침상.

그저 그 냄새가 사라졌을 뿐인데 기이하게도 입안이 까끌까끌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하, 차연호 나이 들더니 왜 이렇게 촌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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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혹   54화

    쾅, 쾅. 바닥을 울리는 묵직한 클럽의 베이스 비트 위로 살갗이 거칠게 맞부딪치는 파열음과 질척한 마찰음이 끈적하게 엉겨 붙었다.“아앗, 흣…… 오빠, 아응……!”룸 안을 어지럽게 훑고 지나가는 붉은 조명 아래, 대리석 테이블 끝에 걸터누운 여자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하준의 거친 몸짓에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화려한 양주병과 크리스탈 글라스가 밀려나며 바닥으로 요란하게 굴러떨어졌다. 카펫 위로 독한 위스키가 쏟아져 내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하준은 테이블 위에 여자를 아무렇게나 눕혀 놓고 짐승처럼 거칠게 허리를 쳐올리는 중이었다. 제대로 옷을 벗을 인내심조차 없었는지, 화려한 실크 셔츠는 그대로 걸친 채 명품 슬랙스의 버클만 끌러 내리고 급하게 하반신을 꿰뚫은 적나라한 자세였다. 여자의 타이트한 원피스는 허리춤을 넘어 명치까지 흉하게 말려 올라가 있었고, 두 다리는 하준의 골반 양옆으로 위태롭게 벌어져 있었다.퍽, 퍽. 둔탁하게 살이 부딪힐 때마다 여자의 뽀얀 가슴이 눈앞에서 어지럽게 출렁거렸다.그 모양을 노골적인 눈으로 내려다보던 하준이 큼지막한 손을 뻗어 봉긋한 유방을 한 손에 거칠게 움켜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탄력 있는 살덩이가 비집고 나올 만큼 인정사정없는 악력이었다.“어디 병원 작품이야?”“아흥, 살살해애. 그러다가 터지면 큰일 나.”여자가 콧소리를 흘리며 하준의 팔뚝을 손톱으로 살짝 할퀴었다. 하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안에 가득 차는 유방을 과일이라도 고르듯 주물럭거렸다. 엄지손가락으로 빳빳하게 선 유두를 짓누르자 여자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다.“요즘 기술 너무 좋아. 이렇게 직접 만져봐도 판별하기가 어려울 정도라니까.”여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매끈한 두 다리로 하준의 허리를 휘감아 당겼다. 땀에 젖은 몸을 밀착시키며 요염하게 눈을 흘겼다.“흐응…… 진짜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해? 오빠 눈에만 예쁘면 됐지.”그 말에 하준이 피식, 비릿한 바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붉은 조명이 스쳐 지나가는 그의 눈동자에 순간

  • 현혹   53화

    인천공항 제2터미널 VIP 입국장.자동문이 열리고, 화려한 패턴의 실크 셔츠 앞섶을 풀어 헤친 남자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목덜미를 덮을 만큼 기른 머리카락은 굵은 웨이브가 들어가 멋스럽게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의 반을 가리는 명품 선글라스를 벗어 올릴 때마다 귓불부터 귓바퀴를 따라 촘촘히 박힌 은빛 피어싱과 귀걸이가 조명 아래 번뜩였다.백하준이 허공을 향해 과장되게 숨을 들이마셨다.“하아……. 씨발, 역시 한국 물이 최고야.”그의 입술 사이로 질 나쁜 감탄사가 툭 튀어나왔다. 입국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 비서가 다급히 달려와 허리를 90도로 꺾었다.“오랜만에 뵙습니다, 도련님.”“어, 최 비서 오랜만.”하준은 제 짐 카트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대기 중이던 검은색 마이바흐 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구겨 넣은 그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조수석에 올라탄 최 비서가 룸미러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회장님께 먼저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본가로 바로 들어갈까요?”하준이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저었다.“내가 오늘 오는지 내일 오는지 관심도 없는 양반 눈치를 뭐하러 봐. 엄마한테는 비행기 안에서 체해서 내일 뵙는다고 해. 강남으로 가.”“강남…… 말씀이십니까?”최 비서의 물음에 하준은 대꾸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야, 형님 들어왔다.”[오, 백 도련! 얼른 와, 널 위한 파티가 기다리고 있다. 큭큭큭. 미국 물 좀 먹고 오더니 기분은 좀 어떠냐?]“말도 마라. 할 것도 없는 동네에서 지루해 뒤지는 줄 알았으니까. 야, 오늘 수질은 확실하지? 비쩍 마르기만 한 막대기 같은 애들 말고, 만질 곳 좀 있고 살집 있는 애들로 초이스 해라.” [나만큼 네 취향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걱정 붙들어 매고 오기나 해. 대신 오늘 술값은 네가 시원하게 쏘는 거지?] “돈 걱정을 왜 해, 엄마 카드 한도 무제한인데. 마약이니 뭐니 뒤탈 나는 시끄러

  • 현혹   52화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달콤하고 독한 니치 향수 냄새가 훅 끼쳐왔다.하연의 집은 널찍한 평수가 무색할 만큼 온갖 화려한 물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반짝였고, 거실 한쪽에는 사람 키만 한 한정판 아트 토이들과 명품 주얼리 박스들이 어지럽게 탑을 이루고 있었다.천만 원을 호가할 법한 화이트 부클레 소파 위에는 미처 정리하지 않은 옷가지와 파스텔톤 쿠션들이 뒤엉켜 있었고, 대리석 테이블 위에도 먹다 남은 디저트 상자와 잡동사니가 굴러다녔다.비싼 것들은 잔뜩 모아두었지만 정작 사람의 손길은 닿지 않은 공간. 연호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살짝 구겨졌다.‘집이 이렇게 넓은데도 정신이 없네. 미호는 단칸방에 살 때도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정리해 뒀었는데.’연호의 속내를 알 리 없는 하연은 마냥 신이 나서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소파 위에 던져져 있던 명품 쇼핑백들을 옆으로 쓱 밀어낸 그녀가 연호를 앉히며 눈을 반짝였다.“어때요, 교수님? 우리 집 마음에 들어요?”기대감에 부푼 얼굴을 마주한 연호는 찰나간 망설이다가, 이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응, 예쁘네. 화려한 게 딱 너랑 어울리는 분위기야.”“그쵸? 아, 진짜 너무 좋아요. 이제 매일매일 교수님이랑 같이 눈뜨고 같이 잠들 수 있다니! 와, 우리 이제 학교도 같이 갈 수 있겠다!”하연이 연호의 팔짱을 덥석 끼며 어깨에 뺨을 부볐다. 학교에 같이 간다는 말에 연호는 반사적으로 거리를 두듯 어색하게 웃었다.“글쎄, 난 오전 강의 준비 때문에 너보다 훨씬 일찍 가야 할걸?”“치, 저도 일찍 일어나서 같이 가면 돼요. 카페에서 기다리지 뭐.”하연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정을 부리는 순간, 정적 속에서 연호의 배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꼬르륵. 민망할 정도로 선명한 소리에 연호의 얼굴이 굳어지자, 하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 맞다, 아침. 제가 너무 신나서 식사 생각을 미처 못 했어요.”그 말에 연호의 눈길이 자연스레 거실 너머 주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모델하우스

  • 현혹   51화

    하연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최근 청담동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주상복합 이었다.압도적으로 높은 층고와 눈이 부신 대리석 로비 한가운데 선 연호는,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도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아르떼 119……? 청담에서 가장 비싸다는 곳이잖아.’새삼스러운 눈으로 앞서 걷는 하연을 힐끗 쳐다본 연호의 머릿속으로 기민한 계산기가 돌아갔다. 어린 줄만 알았더니,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동아줄일지도 몰랐다.하연이 익숙하게 연호의 손을 이끌며 우측 복도로 향했다.“이쪽이에요. 우리 집은 고층부라서 오른쪽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거든요.”연호는 걸음을 옮기며 무심코 로비 반대편을 슬쩍 훑었다. 보안 게이트로 완전히 분리된 왼쪽 구역에, 다른 것들보다 유난히 크고 화려한 엘리베이터 한 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저쪽 엘리베이터는 뭐야?”연호의 물음에 하연이 걷던 걸음을 딱 멈췄다.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향해 팔짱을 낀 그녀의 얼굴에 묘하게 샐쭉한 승부욕이 스쳤다.“저건…… 최상층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예요. 물론 제가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간 건 아니고요. 건물 올리기도 전에 누가 이미 낙점을 해버렸더라고요. 아예 분양 시장에 나오지도 않았어요. 도대체 누가 사는지 모르겠지만…….”못내 자존심이 상한 듯 입술을 비죽이던 하연이, 이내 연호를 향해 몸을 휙 돌렸다. 그녀가 깍쟁이처럼 생긋 웃으며 연호의 팔에 찰싹 매달렸다.“우리 결혼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저기서 살아요. 알았죠? 자, 빨리 타요, 교수님.”기다리고 있던 우측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연이 층수 버튼을 누르자, 매끄러운 금속성 문이 스르륵 닫히며 넓은 로비의 전경이 점차 좁아졌다.덜컹, 하고 연호와 하연을 태운 기체가 위를 향해 솟구쳐 오르는 바로 그 찰나.띵-.연호의 시야가 완벽하게 차단됨과 동시에, 로비 반대편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 구역에서 경쾌한 도착음이 울려 퍼졌다.스르륵. 방금 전 연호의 문이 닫힌 것과 완벽히 대칭을 이루

  • 현혹   50화

    같은 시각,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호텔.고급스러운 우디 계열의 디퓨저 향기가 은은하게 감도는 객실 안에서 연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몸을 감싼 거위 털 이불은 구름처럼 폭신했고, 빳빳하게 풀을 먹여 다림질된 순백의 베딩은 한 치의 구김도 없이 깔끔했다. 하지만 밤새 뒤척인 탓인지 목덜미와 어깨가 납작한 돌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뻐근했다. 완벽하게 세팅된 특급 호텔의 침대였으나, 어쩐지 제 몸에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듯 낯설고 불편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래.’연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협탁 위에 놓인 미지근한 생수를 들이켜자, 속이 쓰라리게 헛헛했다. 평소 같았으면 눈을 뜨자마자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국물 냄새가 안방 문틈으로 스며들 시간이었다.먹지 않아도 늘 차려지던 아침상.그저 그 냄새가 사라졌을 뿐인데 기이하게도 입안이 까끌까끌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하, 차연호 나이 들더니 왜 이렇게 촌스러워졌냐. 국 타령이나 하고. 내려가서 커피나 마시자."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대충 씻고 옷을 챙겨 입은 그는 1층 라운지로 내려갔다. 통창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 자리에 앉아 갓 추출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하지만 밤새 꺼두지도 않은 액정은 고요하기만 했다.‘바보 같은 게. 그새 겁을 집어먹고 매달리지도 못하네.’자신이 캐리어까지 끌고 나왔으니, 밤새 눈물로 지새우며 잘못했다고 빌 줄 알았는데 전화 한 통이 없었다. 얄미운 마음에 혀를 찼지만, 연호는 그것조차 미호가 제 눈치를 보느라 감히 연락하지 못하는 것이라 멋대로 해석했다.그는 보란 듯이 테이블 위에 놓인 호텔 로고가 선명한 커피잔과 창밖의 풍경을 구도 맞춰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SNS 계정에 사진을 업로드하며 짧은 문구를 덧붙였다.[당분간은 모든 걸 내려놓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누가 봐도 사연

  • 현혹   49화

    다음 날 오전, 일반적인 가정집이라기보다는 마치 귀빈 접견실처럼 서늘하고 적막한 거실에 사혁과 미호, 하윤이 함께 하고 있었다.몸이 푹 꺼질 듯 깊고 매끄러운 짙은 회색빛 가죽 소파의 끄트머리에, 미호는 엉덩이만 겨우 걸친 채 바짝 긴장해 앉아 있었다.그녀의 맞은편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서류철을 든 채 미호를 위아래로 서늘하게 훑어보고 있었다. 하윤이 말했던 깐깐한 관리인, 사혁이었다.미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빈틈없이 올린 머리카락 아래로 뻗은 매서운 눈매와 꽉 다문 입매가 숨이 턱 막힐 만큼 위압적이었다. 핏이 딱 떨어지는 검은 정장 위로 근육질의 단단한 체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셔츠 소매나 목덜미 어딘가에 시퍼런 문신이라도 하나 비친다면 당장 암흑가의 조폭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살벌한 분위기였다.‘세상에, 저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이 관리인이라니…… 하윤이 그동안 이 집에서 지내느라 정말 힘들었겠다. 역시 내가 오길 잘했어.’미호가 남몰래 안쓰러움을 삼키는 사이, 이력서를 내려다보던 사혁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경력이…… 전문적인 식당이나 다른 저택에서 일하신 적은 없군요.” “네, 계속 가정에서만…….”기어들어 가는 미호의 대답에 사혁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이 미친 도련님이 기어코 유부녀를 집안까지 끌어들이는군. 그나저나…… 가사 도우미라니, 취향이 메이드 플레이 쪽이었나? 겉보기엔 멀쩡해 가지고는 은근히 변태 같은 구석이 있단 말이야.’사혁은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밖에서 유부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불장난을 치는 것 정도야 한철 치기라 여겨 눈감아 주었지만, 아예 거처로 불러들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원래대로라면 당장 회장님께 보고해야 할 사안이지만…… 그래, 명목상 위치는 가사 도우미니까. 일단은 입맛 까다로운 도련님 식사를 챙길 도우미를 새로 고용했다는 정도로만 보고해 두자.’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가 저 통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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