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중궁전의 주인인 황후가 바다 너머 여민국 땅으로 떠나간 지.어느덧 두 달이라는 잔인한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하루하루 날짜가 넘어갈수록.천황의 초조함과 분리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그녀의 부재는 그의 영혼을 황폐하게 괴롭혔다.그에 반해, 황궁은 짙은 값비싼 향내와 화려한 비단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눈치 볼 것 없이, 천황을 사로잡으려는 여인네들의 소리없는 암투가 시작됐다.황제가 황후를 향한 불만과 불안이 커질 대로 커진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그들에게는 천황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그리고……그 틈을 노린 또 다른 세력인, 사츠마의 귀족들도 권력의 세력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최고 상궁인 혜선과 후궁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계략이 스며들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들의 계산과는 달리.황후가 떠난 그날 이후, 사츠마의 대전은 차가운 정적만이 감돌았다.천황은 후궁들의 교태에도 단 한 명의 계집조차 침상에 들이지 않았다.시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광기 어린 폐인 그 자체였다.마침내 여민국의 선왕의 사십구재(四十九齋)가 끝났다.그 무렵, 천황에게 유진의 친필 서신이 전달됐다.‘선왕의 승하로 인해 감정이 골이 깊어 기력이 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여민국 땅에 더 체류하며 몸을 보하겠습니다.’탁—!서신을 내려놓는 순간.쇼의 검은 안광은 기괴하게 뒤틀려 버렸다.자신을 보내 달라던 그녀의 싸늘했던 음성이 환청처럼 귓가를 사정없이 들이쳤다.그는 확신했다.자신에게 렌 황세자가 있음에도.그녀가 자신에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즉시 그는 유진의 가장 가깝게 지키고 있을 타카오를 향해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소환령을 내렸다.같은 시각, 여민국의 별궁 내실.“본국으로의 소환 명령이 당도하였사오나, 폐하께 상소를 올려 재가(裁可)를 요청드리려 합니다.”본국의 명령을 하달 받은 타카오는 처음으로 주군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겠다는 결기를 내비쳤다.하지만 유진은 단호하게 그의 고집을 단칼에 꺾어놓았다.“아니요,
바칸 여각의 얇은 문틈으로 처절한 비명과 서글픈 신음이 새어 나왔다.여인의 고결한 살결을 짓이기듯 달려드는 사내의 짐승 같은 숨소리가 그녀의 나직한 흐느낌마저 집어삼켰다.여각의 어두운 마당에 우뚝 선 채, 타카오는 그 소리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매 순간 전신이 바르르 떨렸다.손가락 뼈마디가 하얗게 바래도록 검자루를 움켜쥐었다.당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천황의 등에 검을 꽂아 넣는 상상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그러나 그는 밤새도록 그 핏빛 분노를 홀로 삼켜야 했다.마침내 차가운 새벽을 뚫고 아침이 밝아왔다.여각을 질식할 듯 메우던 소리가 잦아들었다.천황이 경호대와 함께 황궁으로 떠난 뒤.타카오는 장막을 걷고 내실로 들어섰다.핏기가 가신 얼굴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서 있는 유진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그리고……옷깃 사이로 드러난 손자국과 붉은 낙인들.짐승이 밤새 그녀를 짓누르고 유린한 흔적들을 보며, 영혼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분노와 아픔에 입술을 깨물었다.그의 떨리는 시선이 이내 자신의 쇄골과 목덜미에 닿았다.유진은 황급히 옷깃을 여몄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밤새 유린당한 몰골을 하고도.자신을 걱정하는 그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단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치부를 들키고도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고집 앞에서, 타카오는 차마 더 이상 그녀를 무안하게 할 수 없었다.피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이윽고 바칸 항구에 정박해 있던 거대한 배가 정각에 맞추어 닻을 올렸다.배는 그들을 싣고 여민국을 향해 물살을 갈랐다.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갑판 위.유진은 우두커니 서서 멀어져 가는 사츠마의 검푸른 항구를 바라보고 있었다.그 뒷모습이 너무도 처연했다.그림자처럼 다가온 타카오가 조용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황세자 마마는 걱정하실 필요 없사옵니다. 폐하께서도…… 유일한 정통성인 황세자 마마만큼은 온 목숨 다해 아끼고 귀히 여기고 계십니다.""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두 사람은 한동안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홀로 엉망이 되어 황궁에 버려졌다.그때 내관의 보고가 들어왔다.황후가 렌을 데리고 바칸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갈이었다.순간 머릿속 불길한 예감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황후가 황세자를…… 데려갔단 말이냐.”그의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턱 막혀왔다.그녀가 이대로 바다 건너로 영영 도망쳐 버릴 것 같았다.그 치명적인 공포가 그를 단숨에 무너뜨렸다.난…… 널, 정녕 죽도록 미워하고 원망한다고 해도 잃을 수 없다.난 널 절대로 포기못한다.다시는 널 내 생에서 잃을 수 없단 말이다…!!!그는 급히 경호대를 이끌고 밤새 바칸의 항구로 말을 달렸다. 그리고 황세자 렌을 볼모로 삼기 위해 강제로 그녀 곁에서 떼어놓았다.황세자가 이 땅에 볼모로 있는 한, 그녀는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그녀를 붙잡기 위해 자신의 핏줄까지 볼모로 잡는 자신의 행태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도 비겁하고 한심해 미칠 것만 같았다.다른 여인을 취하면서도 오직 유진의 불 꺼진 창만을 바라보며 산송장처럼 야위어갔던 자신의 비천한 영혼을 알아주지 않는 그녀가 너무도 미웠다.서슬퍼런 증오가 끓어올랐다.그는 그녀의 옥색 치맛자락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며 그녀를 가장 잔인하게 취했다.그녀를 부셔버리고 망가트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자신을 빽빽하게 빨아들이듯 조여 안는 유진의 그 좁고 고결한 내궁이 주는 무시무시한 쾌락 앞에.그녀의 살결에서 나는 미치도록 그리웠지만 너무도 달콤해서 시리도록 아픈 그 살구꽃 향기에.그의 뒤틀린 육체는 미칠 듯이 요동치며 오직 그녀만을 갈구했다.다른 살결을 탐할수록 뼈마디를 조여들던 지독한 갈증과 허기가……유진의 나신과 결착하는 순간, 비로소 가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바칸 항구의 거친 파도 소리 사이로.잔인하고도 농밀한 극락의 사정을 남김없이 터뜨려 내고 말았다.마침내.검은 바다를 집어삼키던 잔인한 어둠이 가시고, 시리도록 붉은 새벽빛이 몰려왔다.그제야 그는 자신의 짐승 같은 품에서 그녀를 거칠게 놓아주었다.그때 여
시마즈 황궁을 떠나 바다로 향하는 길목은 시리도록 가혹했다.다음 날 아침.유진과 렌 황세자는 여민국으로 향하는 도선을 탈 예정이었다.적막과 어둠이 무겁게 가라앉은 바칸 항구의 외딴 여각.칠흑 같은 어둠이 항구의 검은 바다를 집어삼키고.간간이 몰아치는 파도 소리만이 여각의 문짝을 흔드는 거친 새벽녘이었다.온 천하가 깊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사라진 바로 그 한밤중.유진은 황세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겨우 눈을 붙였다.그때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여각의 문이 가차 없이 열렸다.다름 아닌 밤새도록 말을 달려온 천황이었다.그의 몸에서 밤이슬과 말의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오직 유진을 향해 타오르는 핏빛 살기가 화염의 열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감히…… 누구 맘대로 나의 황세자를 여민국 땅으로 데려가겠다는 거냐.”그의 서슬 퍼런 호통 소리가 사방을 얼려버렸다.그의 예고 없는 등장에 유진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만 쇼는 이미 눈이 뒤집힌 마귀의 몰골로 유진의 가녀린 어깨를 바닥 위로 무자비하게 밀쳐내 버렸다.유진이 거칠게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잠에서 채 깨지도 못해 웅크린 채 영문도 모르고 겁에 떠는 황세자 렌,자신의 주군이자 아비의 광포한 모습에 아이가 숨을 죽였다.쇼는 문밖에 대기 중이던 자신의 경호대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당장 황세자를 황궁으로 압송해라! 그리고 내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황후라 할지라도 이 아이에게 단 한 자락의 손길도 대지 못한다.”그는 렌을 억세게 움켜잡아 일으켜 세웠다.순식간에 목숨보다 소중한 핏줄을 빼앗겨 버린 유진이 비명을 지르며 매달렸다.쇼는 바닥에 주저앉은 유진의 가느다란 팔목을 우악스러운 악력으로 움켜잡아 끌어올렸다.“황세자까지 내 품에서 빼내어 감히 여민국 땅으로 영영 도망칠 생각이었던 것이냐.”그의 황실을 위해 그리고 다른 여인을 품는 그의 자책을 덜어주려 일부러 그의 시선 안에서 사라져 주었다.그렇게 지독하게 외로웠던 독수공방의 세월을 원망하지도 않고 버텼다.그런데 그
여민국의 비보가 황궁에 내리꽂힌 그날 오후.유진은 황세자 렌의 손을 잡고 지체 없이 조국 여민국으로 향하는 행차 채비를 서둘러 꾸리기 시작했다.언제나 변함없이, 그녀의 그림자인 부사령관 타카오가 묵묵히 동행에 나섰다.타카오는 창백한 표정의 유진의 곁으로 다가가 나직하게 고개를 숙였다.“괜찮으십니까, 마마. 삼가 고인(故人)의 명복을 비나이다.”“전…… 선왕 폐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이고, 배은망덕한 불효자입니다.”유진은 핏기 가신 입술로 서글픈 탄식을 뱉어내었다.지난 팔 년.사츠마의 왕권을 지키고 자식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매달리느라, 바다 너머 홀로 병들어 가던 아바마마께 안부 편지 한 장 전하지 못했다.그 세월이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짓이겨왔다.“이리도 빨리 허망하게 돌아가실 줄은 정녕 꿈에도 알지 못해, 그동안 자식으로서 안부조차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 임종(臨終)마저 제 손으로 지켜내지 못했네요.”“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가장 빠른 도선을 징발하여 최대한 빨리 여민국으로 모시겠나이다. 국장 의례에는 절대 늦지 않으시도록 최선을 다할 터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마소서.”언제나처럼 그는 시린 연민과 걱정 가득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따뜻하고 헌신적인 위로가 유진의 멍든 가슴 깊숙한 곳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순간, 유진의 커다란 눈망울에 참아왔던 눈물이 처연하게 맺혀 흘러내렸다.그 아름다운 눈에 지독한 슬픔이 서려 들자, 오히려 도드라지게 피어났다.그의 아름다운 미간에 깊게 주름이 잡혔다.홀로 이 잔인한 이국의 황궁을 견뎌온 그녀.그 가녀리고 외로운 어깨를 당장이라도 품에 안아 숨겨주고 싶었다.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제 몫이 아니었다.그녀가 자신을 원하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목구멍으로 치솟는 뜨거운 정념을 힘겹게 삼켜냈다. 그리고 조용히 중궁전으로 빠져나왔다.지금 그녀를 위로하고 마땅히 품에 안아주어야 할 사내.그녀에게 조국을 등지게 만들고 가혹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이 다시금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그 계절의 길목에서.바다 너머 여민국으로부터 비보(悲報) 한 자락이 전해졌다.“……여민국의 선왕(先王) 폐하께서 끝내 붕어(崩御)하셨다고 하옵니다.”조정 대신의 입술을 뚫고 나온 그 소식을 접한 순간.천황의 심장이 사정없이 떨려오기 시작했다.사내의 뇌리 위로 오직 단 한 사람, 유진의 모습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국장을 가고 싶겠지.조국을 그토록 사랑하는 공주였으니, 필시 아바마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바다를 건너고 싶어 미칠 터이다.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그 잔인한 삼 년의 침묵을 깨고 내게 찾아와 나와의 동행(同行)을 원치 않을까.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쇼의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내가 직접 천황의 권세를 이끌고 그녀와 함께 여민국 땅을 밟아 조의를 성대하게 행한다면.그것은 이 사츠마에 화친의 대가로 팔려온 유진에게는 가장 큰 체면치레가 될 것이요, 먼저 간 선왕에게 마지막으로 행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이자 예우가 될 터이니.마침내 대전의 문턱을 밟고 자신을 찾아올 유진과의 재회를 생각하며, 그는 정무를 보면서도 안절부절 할만큼 어린아이처럼 들뜨고 설레어 버렸다.그토록 갈구했던 연인을 향한 원초적인 정념이 다시금 가쁘게 끓어올랐다.한편, 궁 밖 히닌고야(혜민서)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중 선왕의 타계 소식을 접한 유진은 곧바로 황궁의 대전으로 향했다.그리고 삼 년 만에.유진은 처음으로 절대 군주이자 자신의 지아비인 천황을 정식으로 알현했다.마침내 두 사람의 시선이 대전의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부딪쳤다.유진은 사내의 핏발 선 안광을 마주하며 가늘게 떨리는 음성을 간신히 내뱉었다.“여민국 선왕 혜조왕의 국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디 허락해 주세요, 폐하.”사내의 넓은 흉판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삼 년 만에 마침내 눈앞에 앉아있는 유진의 자태.미치도록 기대했던 모습과는 달리.사츠마의 최고 지존인 황후의 차림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소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