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남의 남자한테 내 입맛 시험 볼 시간에 네 남자부터 챙겨요.”세령의 말에 서윤의 웃음이 뚝 끊겼다.“제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까지 말씀하세요?”“아까부터 태겸이한테 관심 많아 보이길래요.”“어머, 오해하셨나 봐요.”“그럼 잘됐네요. 오해 풀렸으니까 이제 가세요.”서윤은 유건을 돌아봤다. 도와달라는 눈치였지만 유건은 물잔만 만지작거렸다.태겸이 세령의 메뉴판을 덮었다.“다른 걸로 주문할래?”“왜?”“그거 먹으면 배 아팠잖아.”“7년 전 얘기지. 지금은 잘 먹어.”“그래?”“응. 당신 없는 동안 나도 별걸 다 배웠거든.”태겸의 손이 멈췄다. 세령은 그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농담이야. 그렇게 불쌍한 얼굴 하지 마.”“순간 좀 아팠어.”“그럼 앞으로 잘해.”“노력할게.”두 사람이 웃자 서윤이 끼어들었다.“그런데 세령 씨, 예전에는 매운 음식도 못 드셨다면서요?”세령의 고개가 돌아갔다.“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어요?”“유건 씨요.”“야, 문유건.”유건은 이미 체념한 얼굴이었다.“왜.”“너 연애하면서 내 사용설명서라도 넘겼냐?”“그냥 지나가다 얘기했어.”“지나가다 무슨 얘기를 하면 전처 입맛까지 나와?”“세령아, 제발.”“왜? 듣기 싫어? 나도 내 얘기 듣기 싫거든.”서윤이 웃으며 유건의 팔짱을 꼈다.“그래도 그만큼 세령 씨를 잘 알았다는 뜻이잖아요.”세령은 그 손을 내려다봤다.“그렇게 잘 알아서 바람까지 피웠나 보죠?”유건이 사레들린 사람처럼 기침했다.태겸은 아예 얼굴을 돌렸다.“형, 웃지 마.”“안 웃었어.”“어깨가 흔들리잖아!”“그럼 보지 마.”세령이 태겸의 팔을 붙잡았다.“당신도 그만 놀려. 우리 밥 먹자.”서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던지는 말마다 세령이 받아쳤고, 유건마저 제대로 편들어주지 않았다.“저도 사실 세령 씨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질문 많으시네. 면접 보러 오셨어요?”“유건 씨랑 결혼하셨을 때 행복하셨어요?”유건이 벌떡 일어났다.“서윤 씨!”
“그 드레스 입고 내 결혼생활까지 물려받을 생각이에요?”세령의 말에 서윤이 휴대전화를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무슨 도둑 같잖아요.”“남의 결혼사진 들고 와서 똑같이 꾸며놓고 도둑 소리 듣기는 싫어요?”“유건 씨가 권한 거예요.”“그럼 권한 놈도 미쳤고, 좋다고 입은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네요.”유건이 급히 손을 뻗었다.“서윤 씨, 휴대전화 줘요.”“왜요? 세령 씨가 보시면 안 되는 사진이에요?”“지금 그럴 때 아니잖아요.”“아까는 예쁘다고 하셨으면서.”세령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첫 데이트를 하러 왔더니 전남편이 새 여자에게 자신의 결혼식 드레스를 입힌 사진을 구경하게 생겼다.“야, 문유건.”“세령아, 설명할게.”“너 혹시 이혼한 거 까먹었어?”“무슨 소리야?”“새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그런데 왜 내 사진 붙들고 인형 옷 갈아입히듯 지랄이냐고.”유건의 얼굴이 붉어졌다.“그냥 비슷한 디자인이야.”“그럼 네가 입지 그랬어. 아주 잘 어울렸겠네.”태겸이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으려는 게 뻔히 보여 세령은 그의 팔꿈치를 툭 쳤다.“당신은 왜 웃어?”“미안. 유건이 드레스 입은 걸 상상했어.”“형!”유건이 버럭 소리쳤고, 맞은편 손님이 놀라 포크를 떨어뜨렸다.서윤은 그 틈에 사진을 넘기려 했지만 세령이 손을 들어 막았다.“잠깐. 아까 그 사진, 언제 찍었어요?”“왜요?”“날짜 물었어요.”“지난주요.”세령은 유건을 돌아봤다.“너 지난주에 나한테 뭐라고 했지?”“뭘?”“이제 과거 정리했고, 누구한테도 나를 들먹이지 않겠다고.”유건의 입술이 굳었다.“그건 맞아.”“맞긴 뭐가 맞아. 지난주에 새 여자한테 내 결혼식 재현시키고 있었으면서.”서윤이 끼어들었다.“재현이라니요. 제가 마음에 들어서 입은 거예요.”“아까는 유건이가 입어보라 했다면서요.”“둘 다 맞는 말인데요?”“그럼 말 바꾸지 말고 똑바로 설명해요.”서윤의 웃음이 사라졌다.태겸이 자리에서
“내 결혼기념일을 당신이 왜 알고 있어?”세령의 질문에 차서윤이 웃었다.“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에요?”“내가 물었잖아요. 누구한테 들었냐고.”“유건 씨한테요. 설마 전처 얘기 좀 했다고 질투하시는 건 아니죠?”세령은 헛웃음을 터뜨렸다.“미쳤어요? 내가 저 인간을 왜 질투해?”유건이 급히 끼어들었다.“서윤 씨, 그만해요.”“왜요? 제가 못 할 말이라도 했어요?”“그 날짜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잖아요.”서윤은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었다.“어머, 그럼 비밀이었어요?”세령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한쪽은 안절부절못했고, 다른 한쪽은 그 모습을 즐기는 듯했다.“두 분, 나 데리고 무슨 장난해요?”“세령아, 오해야.”유건이 손을 뻗자 세령은 한 걸음 물러났다.“건드리지 마. 손버릇 못 고쳤어?”태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유건아. 네 자리로 돌아가.”“형까지 왜 이래?”“세령이 싫다고 하잖아.”서윤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저기요. 제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데, 이렇게 몰아세우시면 좀 곤란해요.”세령은 서윤을 바라봤다.“지금 누가 누굴 몰아세워요?”“저는 그냥 유건 씨가 알려준 날짜를 말했을 뿐인데요.”“그래서요?”“세령 씨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시니까.”세령이 웃었다.“남의 결혼기념일 외워 와서 떠들어놓고, 들킨 사람한테 예민하다고 하는 게 정상이에요?”서윤의 입술이 굳었다.“말씀이 지나치시네요.”“그쪽은 행동이 지나치고.”태겸이 세령의 외투를 집어 들었다.“세령아. 다른 데 가자.”“잠깐만.”세령은 움직이지 않았다.“차서윤 씨. 하나만 확인할게요. 유건이가 내 결혼기념일을 언제 알려줬어요?”서윤이 눈을 깜빡였다.“그걸 왜요?”“날짜가 궁금해서요.”“처음 만났을 때였나?”유건이 서윤을 돌아봤다.“뭐라고요?”서윤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아, 맞다. 두 번째 만났을 때였어요. 유건 씨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날이라고 해서.”세령의 시선이 유건에게 향했다.“너, 새 여자 만나서 우리
“형수님, 아니지. 이제는 큰형 애인이라고 불러야 하나?”문유건이 세령을 보자마자 지껄인 말이었다.세령은 식당 안으로 들어서던 발을 멈췄다. 유건의 옆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긴 머리에 단정한 원피스, 누가 봐도 작정하고 꾸민 차림이었다.“유건아.”태겸이 이름을 부르자 유건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왜? 틀린 말 했어?”“입 조심해.”“형은 이제 형수랑 연애하면서 그런 소리도 해?”세령이 태겸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놔둬. 입에서 나오는 대로 사는 애한테 뭘 바라.”유건의 웃음이 멎었다.그때 옆에 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안녕하세요. 차서윤이에요.”여자는 세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세령은 손을 잡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한세령이에요.”“많이 들었어요.”“누구한테요?”서윤이 유건을 힐끗 봤다.“유건 씨한테요. 전처분이 굉장히 아름다우시다고.”“그런 얘길 해?”세령이 유건을 돌아봤다.“새 여자 만나면서 전처 외모 평가까지 해? 취미 한번 고약하네.”“그냥 좋은 뜻으로 한 말이야.”“좋은 뜻이면 네 여자한테나 잘해. 남의 얼굴 팔아먹지 말고.”태겸이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서윤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두 분 사이가 생각보다 편하시네요.”“안 편한데요.”세령의 대답에 서윤이 눈을 깜빡였다.“네?”“제가 전남편하고 편하게 지낼 이유가 있나요?”유건이 물잔을 내려놓았다.“세령아, 사람 앞에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네가 먼저 불렀잖아.”“우연히 만난 거잖아.”“그래?”세령이 식당 안을 둘러봤다. 예약석은 여섯 개뿐이었고, 그중 두 개를 자신들과 유건이 차지하고 있었다.“서울에 식당이 여기 하나야?”유건이 어깨를 으쓱했다.“내가 형 데이트 장소까지 어떻게 알아.”“모르면 그냥 밥이나 먹어. 아는 척하지 말고.”태겸이 세령의 의자를 빼주자 서윤이 웃으며 끼어들었다.“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드실래요?”“싫어요.”세령은 의자에 앉지도 않고 대답했다.서윤의 손이
“그거 지금 당장 치워.”세령이 태겸의 휴대전화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식당 예약 목록이었다. 문제는 식당이 아니었다. 화면 맨 위에 적힌 문구가 기가 막혔다.특별한 날을 위한 가족 전용 식사실.“우리 둘이 밥 먹는데 왜 가족이 끼어?”“예약 담당자가 잘못 이해했어.”“당신이 뭐라고 했길래?”“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사람과 가고 싶다고.”“그래서 가족 상봉으로 알아들은 거야?”태겸이 입술을 누르자 세령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어젯밤 자신이 먼저 손을 잡은 뒤로 이 남자는 지나치게 진지해졌다. 집 앞에서 헤어질 때도 내일 전화해도 되느냐고 묻더니, 아침에는 식당 후보만 여섯 곳을 보냈다.“문태겸 씨. 연애 처음 해?”“너랑 다시 하는 건 처음이지.”“말은 또 잘해.”“실전은 자신 없어.”세령이 웃음을 참지 못하자 태겸은 예약 화면을 닫았다. 어제 돌려받은 낡은 편지가 그의 외투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세령은 알아봤지만 묻지 않았다. 이미 끝낸 이야기를 오늘 식탁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내가 고를게. 사람 적고 음식 괜찮은 곳이면 돼.”“알겠어.”“그리고 꽃다발 금지. 지난번 것까지 합치면 작업실에서 꽃 장사해도 되겠어.”“그럼 뭘 가져갈까?”“빈손.”“그게 더 어렵네.”그때 세령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시 현장의 설치 일정이 앞당겨졌다는 연락이었다. 세령이 통화하는 동안 태겸은 조용히 기다렸다. 전화를 끊자 그가 물었다.“오늘 저녁도 바빠?”“아니. 정리하면 여섯 시에는 끝나.”“그때 데리러 가도 돼?”“일터까지 오진 마. 나 아직 사람들한테 연애한다고 발표할 생각 없어.”“알겠어. 근처에서 기다릴게.”“당신 차는 멀리서도 알아본다고.”“그럼 걸어갈게.”세령은 고개를 들었다. 예전의 태겸은 늘 상황을 먼저 정리하고 자기 결론을 건넸다. 지금은 서툴 정도로 묻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들면서도 약간 얄미웠다.“그렇게 다 맞춰주면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싫은 건 싫다고 해도 돼.”“그럼 하나만.”“뭔
“내 이름.”이도의 질문에 세령이 답하자 식탁 위 공기가 아주 조금 풀렸다.이도는 입안으로 몇 번 굴리듯 중얼거렸다.“세령 씨.”“응.”“이상하네.”“익숙해져.”유건이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나도 처음엔 그랬어.”이도가 바로 쳐다봤다.“형은 언제부터 자연스러웠는데.”“너보다 먼저.”“그게 자랑이야?”태겸은 두 사람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고, 혜란도 더는 굳은 얼굴로 있지 않았다.세령은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봤다.과거가 없어진 건 아니었다.유건과 결혼했던 4년도, 이도가 자신을 형수라 불렀던 시간도, 태겸과 헤어져 있던 7년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다만 이제 그 과거가 오늘의 호칭까지 결정하지는 못했다.식사가 끝난 뒤 세령과 태겸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혜란이 현관까지 나왔지만 붙잡지는 않았다.“조심해서 가.”“네.”정혁도 거실에서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유건은 소파 옆에 서 있었다.“잘 가, 세령.”“응.”이도는 잠깐 입을 열었다가 일부러 고쳐 말했다.“잘 가요, 세령 씨.”세령은 웃었다.“그래.”태겸은 세령보다 반걸음 뒤에서 현관을 나왔다.대문을 지나자 밤공기가 서늘했다.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태겸이 먼저 물었다.“괜찮았어?”세령은 잠깐 생각했다.“생각보다.”“힘들면 다음부터 안 와도 돼.”세령이 옆을 봤다.태겸이 바로 말을 고쳤다.“아니. 다음에 갈지는 네가 정해.”“이제 빨리 배우네.”“살려고.”세령이 웃었다.둘은 천천히 걸었다.태겸은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결혼 얘기도 없었고, 다시 가족이 되자는 말도 없었다.세령은 오히려 그 침묵이 좋았다.예전 같으면 미래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우리가 어디까지 갈 건지.언제 결혼할 건지.이번에는 정말 끝까지 함께할 건지.지금은 아니었다.내일의 선택까지 오늘 미리 묶어놓을 필요는 없었다.오늘 같이 걷고 싶은지.다음 주에도 만나고 싶은지.그때마다 다시 고르면 됐다.대문에서 조금 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