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한별 방 맞은편에 있는 저 여자, 누구예요?’
해경은 댓글 위로 영상을 다시 돌렸다. 안경을 쓴 자기 얼굴이 선명했다. 한별의 문이 열리자 카메라가 돌아갔고, 화면 가장자리에는 해경의 방 번호까지 잡혔다.
홍보팀 막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찍지 말라고 손든 거 보셨죠?”
“네. 그래서 그 부분 잘랐는데 원본이 올라갔어요. 지금 삭제 요청했어요.”
“요청 말고 바로 내리세요. 방 번호도 나왔어요.”
그가 연거푸 사과했다. 통화가 끝나기 전에 맞은편 문이 열렸다. 캐리어를 세워두고 나온 한별이었다.
“그 영상 봤어요?”
“네. 제가 처리하고 있어요.”
“나도 연락했는데.”
“누구한테요?”
“기범 형한테. 제 방도 찍혔잖아요.”
해경은 휴대폰을 내렸다. 한별이 도와줬다는 말을 하려는 줄 알았는데, 역시 자기 얘기였다. 그런데 그쪽이 오히려 편했다. 감사해야 할 일처럼 만들지 않으니까.
“그래요. 각자 자기 방 지킵시다.”
“그 말은 좀 웃긴데.”
“뭐가요?”
“문도 마주 보는데 각자라니.”
해경이 문을 닫으려 하자 한별이 한 발 물러났다. 붙잡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 순간 영상이 내려갔다는 알림이 왔다.
“내려갔네요.”
“빠르네요.”
해경은 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문을 닫았다.
다음 날 아침, 내려간 영상은 캡처로 남아 있었다. 댓글에는 ‘매니저 아님?’ ‘같은 층이면 스태프겠지’ 같은 추측이 붙었다. 해경은 휴대폰을 뒤집어놓고 파운데이션 뚜껑을 열었다. 어젯밤 사진 옆에는 해외 촬영 때 한별과 말싸움하던 영상의 캡처도 붙어 있었다. 같은 사람이냐는 댓글을 읽다가 손을 멈췄다. 설명하면 ‘화장발’이라고 웃을 테고, 가만히 있으면 남의 방에서 나온 여자가 된다. 어느 쪽도 해경이 고른 말은 아니었다.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게 잘못인가. 남의 눈치 때문에 화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일하러 가는 얼굴을 자기가 정했다.
준비실에 들어서자 소담이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실장님, 그 영상 제가 올린 건 아니에요.”
“알아. 홍보팀이 실수한 거야.”
“댓글도 제가 보고 있어요. 신고할까요?”
“댓글은 보지 마. 너 오늘 세린 씨 준비 맡았잖아.”
소담이 알겠다고 했다. 해경은 다른 사람까지 종일 그 화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별은 늦지 않게 들어왔다. 거울 앞에 앉더니 해경이 건넨 니트의 소매부터 확인했다.
“이건 어제보다 덜 걸리네요.”
“접는 위치 바꿨어요.”
평소 같으면 그쯤에서 끝날 대화였다. 그런데 한별이 거울 속 해경을 봤다.
“영상은 지웠고요. 누가 다시 올리면 승재한테 보내요.”
“제가 직접 신고할 수 있어요.”
“그럼 직접 하시고.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건 따로 할게요.”
해경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가 자기 일을 빼앗지 않고 자기 몫을 말하는 건 처음 같았다.
“제 방 위치는 더 퍼지면 안 돼요.”
“제 방도요.”
“알고 있습니다.”
한별은 대꾸 대신 소매를 한 번 더 접었다. 괜히 얄미워서 해경이 그의 손을 치웠다.
“그건 제가 해요. 배우님은 대본 보세요.”
“방금은 각자 하자면서요.”
“이건 제 일이에요.”
“아, 경계선이 거기구나.”
소담이 브러시를 들고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점심 전에 홍보팀이 사과하러 왔다. 원본을 잘못 올린 직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해경은 짧게 물었다.
“공식 계정 외에 어디로 보냈어요?”
“내부 확인방이요. 외부에는 안 나갔습니다.”
“원본은 거기에서도 지워주세요. 다음엔 제 동의 없이 제 얼굴 쓰지 마시고요.”
그때 한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직원은 그를 보자 더 굳었다.
“제 계정으로 찍는 건 제 허락 받으셨죠?”
“네, 배우님.”
“류 실장님 허락은 안 받았고.”
“죄송합니다.”
“그럼 다음엔 제 얼굴만 찍어요. 제 얼굴로 조회수 부족하면 그때 말하고.”
말은 재수 없었다. 직원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한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대본을 들었다. 해경은 그가 자신을 대신해 사과를 받으려 든 게 아니라, 허락받은 사람과 아닌 사람을 정확히 구분한 걸 알았다.
“그 말, 평소에도 좀 하시지.”
해경이 작게 말했다.
“어떤 거요? 제 얼굴로 조회수 부족하다는 거?”
“허락받으라는 거요.”
한별이 그녀를 봤다. 해경은 먼저 시선을 돌렸다. 잘생긴 얼굴로 당연한 말을 하니까, 당연한 게 잠깐 특별해 보였다. 짜증 났다.
촬영이 시작되자 해경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니트 소매가 화면에 걸릴 때만 다가가 접었다. 한별은 더 이상 영상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세린과 대사를 맞추다 그녀의 장난에 웃었다. 해경은 조명 뒤에서 물을 마셨다. 어제부터 자신이 그의 표정을 몇 번이나 세고 있는지 깨닫자 컵을 내려놓았다. 저 얼굴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오후에 프로듀서가 그녀를 따로 불렀다.
“영상 때문에 문의가 계속 와요. 내일 메이킹 찍을 때 실장님도 짧게 나오실래요? 의상팀이라고 소개하면 추측은 끝날 텐데.”
“제 얼굴을 공개하면 끝난다고요?”
“어제 화면이랑 지금 모습이 달라서, 오히려 화제가 될 수도 있고요.”
해경은 프로듀서가 내민 콘티를 봤다. 첫 줄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한별과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보는 장면이 적혀 있었다.
‘변신 전후를 보여주는 스타일리스트.’
해경이 고개를 들었다.
“이거 누가 정했어요?”
“대기실이 하나라고요?”한별보다 승재가 먼저 물었다. 차유리는 일정표의 장소를 짚었다.“넓은 방입니다. 환복 공간은 가림막으로 나눌 거예요.”“두 분 소속사와는 어디까지 협의됐나요?”서진이 묻자 차유리는 출연 조건은 합의됐고 현장 세부 사항을 확인할 차례라고 했다.해경은 일정표를 받아 서진 옆에 섰다.“의상은 각자 담당하고, 같이 서는 장면만 색을 맞추면 될까요?”“그렇게 부탁드립니다.”서진이 해경에게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이제 우리끼리 싸우면 되겠네. 누가 밝은 옷 입힐지.”“제가 먼저 골라도 돼요?”“먼저 보여줘 봐.”해경이 웃으며 사진을 찾는데 한별이 컵을 내밀었다.“식겠어요.”해경은 그제야 그가 돌아온 걸 알아챘다.“감사해요. 십 분 안 넘었죠?”“딱 구 분. 승재가 뛰었어요.”“형이 길 잘못 들었잖아.”승재의 지적에 한별은 컵을 놓고 제 촬영장으로 갔다.해경이 뚜껑을 열었다. 얼음이 가득했다.‘식긴 뭘 식어.’그래도 늦게 받은 커피부터 마셨다.한별이 문 안으로 사라지기 전에 해경이 컵을 들어 보였다. 그가 손을 흔들려다 옆을 지나가는 직원에게 인사하는 척했다.‘누가 보면 손 흔들어 달라고 한 줄 알겠네.’해경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서진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다음 날 공동 대기실에는 화장대 두
해경은 전날 고른 자주색 립을 발랐다. 지우고 평소 색으로 바꿀까 하다가 그대로 나왔다.촬영장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한별과 마주쳤다. 그가 인사보다 먼저 해경의 얼굴을 봤다.“오늘은 안 피곤해 보여요.”“어제는 피곤해 보였어요?”“어제는 회의했잖아요.”칭찬인지 아닌지 따지기 전에 그가 한마디를 보탰다.“그 색 잘 어울려요.”해경은 무심히 대답하려다가 가방 지퍼를 두 번 닫았다.‘엄마도 못 알아본 걸 어떻게 봤지?’“배우님 의상은 안쪽에 걸어뒀어요. 첫 장면부터 확인하시죠.”“네. 또 일 얘기.”한별이 앞서 걷는데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해경 씨!”강도윤이었다. 한 손에는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바로 옆에는 서진이 촬영표를 보며 걸어왔다.“어제 여기서 찍는다고 들었어요. 커피 하나 더 샀는데.”“감사해요. 제 걸 어떻게 아시고요?”“몰랐죠. 두 잔 다 제가 마시려고 했어요.”해경이 웃으며 컵을 받자 한별이 돌아왔다.“그럼 도윤 형 거 뺏은 거예요?”“커피 가지고 배우끼리 싸우지 마세요.”서진이 둘을 번갈아 보고 웃었다. 해경에게는 따로 말했다.“어제 연락 고마웠어. 오늘 일은 나도 내가 맡을게. 우리 촬영장은 저쪽.”두 스튜디오 문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서진은 오전 내내 바쁠 테지만 눈이 마주치면 인사할 수 있는 거리였다.
화면에 뜬 서진의 이름을 보고 해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잠깐 통화하고 오겠습니다.”복도로 나오자마자 전화를 받았다.“해경 씨, 지금 바빠요?”“회의 중이에요.”“그럼 짧게 물을게요. 제작팀에서 국내 촬영 의상 지원을 맡을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어. 혹시 해경 씨 일인가?”서진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해경은 닫힌 회의실 문을 봤다.“제가 계속 맡을 예정인 일이에요.”“그렇게 얘기하더라. 그런데 다른 사람을 찾길래.”“누가 제가 빠질 수도 있다고 했어요?”“그런 말은 못 들었어. 국내 촬영에 인력이 필요하다고만 했지.”해경은 휴대폰을 반대쪽 귀로 옮겼다.'모르면 먼저 물어볼 수도 있잖아.'서진이 먼저 연락한 지금, 그 말을 하기에는 자신도 답을 알고 있었다.“지난번에 제가 서진 실장님 일을 못 받는다고 했잖아요. 그 촬영 때문에요.”“알아. 그래서 지금 이상한 거야. 네가 이미 맡은 작품인데 왜 새 사람을 찾는지.”해경은 안도했다가 민망해졌다. 조금 전엔 서진을 의심했으니까.“서진 실장님은 하실 거예요?”“일단 어떤 일인지 들어봐야지. 해경 씨 자리를 대신하라는 거면 네 계약부터 확인해야 하고.”선뜻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그래요. 전 지금 그 계약 얘기하러 왔어요.”“알았어. 네가 하는 일이라고는 제작팀에 말할게. 그리고 내가 들은 제안도 보내줄게.”
“제 일에는 문제 없었다고 발표했잖아요.”해경이 화면을 돌리자 제작팀 책임자가 그 문장을 읽었다.“소속사에서 보낸 안입니다. 아직 결정한 건 없어요.”“그럼 왜 인계까지 적혀 있어요?”“광고주가 국내 촬영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걸 걱정합니다. 촬영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대안을 달라고 했어요.”해경은 의상 가방이 놓인 쪽을 봤다. 옷마다 자신이 정한 수정 위치가 표시돼 있었다.'사람만 바꾸면 끝나는 줄 아나.'“대안이 필요하면 저도 같이 얘기하죠. 내일 회의에 제가 직접 갈게요.”“그렇게 하시죠. 기록은 제가 전달하겠습니다.”“보류를 결정한 사람은 아직 없는 거죠?”“네. 검토안이에요.”그제야 해경은 파일을 닫았다. 말 한 줄을 확인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공항으로 가는 차에서는 재하가 옆에 앉았다.“네 가방, 내가 위에 올릴까?”“내가 해. 너 카메라부터 챙겨.”재하가 두 손을 거뒀다.“이런 날에도 일은 잘 시키네.”“그럼 좀 도와줄래? 저 작은 상자만.”“말 바꾸는 속도가 빠르다.”그가 상자를 들었다. 해경은 웃다가 다시 휴대폰을 봤다. 기사 아래 새 댓글은 읽지 않았다.“내일 회의 있어.”“알아. 촬영 사진 필요하면 말해. 네가 현장에 있던 시간도 남아 있으니까.”“응. 고마워.”
“국내 촬영 전에 소속사랑 같이 만나야겠습니다.”제작팀 책임자의 말에 해경은 의자에 앉았다.“어떤 내용을 확인하시려고요?”“현장에 영향이 없도록 대응을 맞추자는 겁니다. 광고주 쪽에서도 연락이 왔고요.”“제가 일을 하지 않았다는 글도 확인하셨어요?”“네. 촬영표와 의상팀 인계 기록부터 정리하겠습니다.”해경은 그제야 가방에서 일정표를 꺼냈다.그날 마지막 옷을 반납한 시간, 보조들과 다음 촬영 준비를 마친 시간. 모두 적혀 있었다.사람들이 본 건 퇴근한 뒤의 몇 초였다.'이렇게 길게 일했는데.'그녀는 필요한 기록을 보냈다. 입장문에 자기 이름을 다시 적어 신원을 더 퍼뜨리지는 말아달라고 덧붙였다.책임자는 귀국 다음 날 오전에 만나자고 했다.통화를 마친 해경은 침대에 누웠다.잠들려고 눈을 감았는데 꽃 머리끈이 떠올랐다.그걸 고르며 웃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게 싫었다.그날은 좋았다. 누가 이상하게 붙여놓은 말 때문에 그 기억까지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다음 날 아침, 한별은 입국장을 나오기 전에 메시지를 확인했다.해경이 보낸 링크를 열었다. 승재는 옆에서 소속사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국내 홍보 담당자가 전화 너머로 사실관계 확인 내용을 설명했다.“연인 관계가 아니라는 입장부터 내겠습니다. 두 분은 업무로만 접촉한 사이로…….”한별은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그건 아니죠.”“배우님, 일단 추측을 차단해야 해서요.”“같이 나간 건 맞아요
“끊기는 싫은데.”해경은 이불 끝을 만지던 손을 놓았다.“그럼 일 말고 다른 얘기 하세요.”“실장님은 뭐 하고 있었어요?”“사진 봤어요.”말해놓고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뗐다. 굳이 어떤 사진인지 해명하지는 않았다.한별이 물었다.“내 얼굴 늘려놓고 보는 건 아니죠?”“배우님 얼굴보다 제 얼굴이 더 작게 나와서요.”“작은 게 아니라 뒤에 숨었잖아요.”“키가 작으면 숨어도 되거든요.”그가 웃었다. 해경은 침대에 등을 기댔다.“도착하면 주무세요. 또 일 얘기하지 마시고요.”“실장님도 자요.”“네.”그런데 둘 다 바로 끊지 않았다.한별이 먼저 낮게 웃었다.“전화 끊는 건 실장님이 더 못하네.”“배우님이 끊기 싫다면서요.”그때 승재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가야 돼요. 도착하면 연락할게요.”통화가 끝났다.혼자 있는 방이 아까보다 덜 낯설었다.세린에게 전화가 온 건 십 분쯤 뒤였다.“실장님, 지금 혼자 있어요?”“네. 왜요?”“제가 보내는 거 먼저 봐요. 단체방에는 올리지 말고.”해경은 메시지의 링크를 열었다.시장 골목에서 찍힌 짧은 영상이었다.한별이 과자 봉투를 들고 있었고, 자신은 커다란 꽃 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