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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맞은편 사람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8 08:52:20

해경은 배정표를 두 번 확인했다. 오타가 아니었다.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별의 방이 있었다.

“방 바꾸는 건 어렵대요.”

승재가 먼저 알아보고 왔다. 다른 층은 스태프가 다 찼고, 남은 객실은 촬영장과 한참 떨어져 있었다.

“괜찮아요. 문 닫으면 안 보이니까.”

“저도 그 생각 했어요.”

뒤에서 한별이 말했다. 해경은 카드키를 받아 들고 돌아섰다.

“생각이 통했네요. 아까는 그렇게 싫어하시더니.”

“좋아서 하는 말은 아닌데.”

“저도요.”

저녁에는 입주한 사람들끼리 간단히 밥을 먹었다. 세린은 한별 옆 의자를 빼며 지난 작품 촬영 때 그가 도시락을 세 번이나 잃어버린 얘기를 꺼냈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네가 가져갔잖아.”

“내가 먹었지. 오빠는 그날 촬영 끝날 때까지 몰랐고.”

한별이 웃었다. 해경은 물을 따르다 잠깐 그쪽을 봤다. 저렇게 웃을 줄 알면서, 자기 앞에서는 늘 한마디씩 걸고 넘어졌다. 기분 나쁜 건 웃는 얼굴이 아니라 그 차이였다.

재하에게 메시지가 왔다. 포스터 배경색 후보 두 개를 보냈으니 내일 봐달라는 내용이었다. 해경이 ‘왼쪽. 오른쪽은 당신 카메라가 살려야 함’이라고 답하자 곧바로 ‘협박으로 접수’가 돌아왔다.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휴대폰을 엎었다.

“재밌는 거 있어요?”

한별이 물었다.

“네.”

“설명은 안 해주시고?”

“안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

“물었잖아요.”

해경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까까지 세린과 잘 웃고 떠들던 사람이 왜 자기 메시지에는 시비를 거는 걸까.

“일 얘기예요. 이제 됐어요?”

“제가 뭐라고 했어요?”

그 말투가 더 얄미웠다. 해경은 대답 대신 물을 마셨다. 세린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다른 촬영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한별은 그 뒤로 말을 걸지 않았다. 바라던 대로인데 밥맛이 뚝 떨어졌다. 세린이 웃을 때마다 그 소리만 크게 들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세린이 먼저 올라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한별은 그녀에게 대본을 돌려주고 해경 옆에 섰다.

“방금 그건 뭘 그렇게 웃으면서 봤어요?”

“포스터 사진이요.”

“아까는 일 얘기라더니.”

“포스터도 일인데요.”

“나한테는 일 얘기할 때 안 웃잖아요.”

한별이 말을 마치고 먼저 입을 다물었다. 해경은 그를 올려다봤다.

“제가 왜 배우님 기분까지 맞춰가며 웃어야 해요?”

“웃으라는 뜻 아니었어요.”

마침 문이 열렸다. 둘은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닫힌 문에 비친 얼굴만 봤다.

방에 돌아온 해경은 화장을 지우고 머리를 묶었다. 내일 입을 옷을 꺼내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며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여섯 주.”

“배우들 많은 데서 일하면 좀 꾸미고 다녀. 피곤하다고 막 다니지 말고.”

해경은 거울을 봤다. 일할 때 누구보다 잘 꾸미고 다닌다는 설명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도 '피곤해 보여'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거울을 확인했다. 그 습관이 싫었다.

“내 얼굴은 내가 알아서 해.”

전화를 끊고 나니 생수가 없었다. 해경은 안경을 쓰고 복도 끝 공용 정수기로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복도 끝에서 홍보팀 막내가 휴대폰으로 입주 영상을 찍고 있었다. 해경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그가 카메라를 내렸다. 그때 맞은편 문이 열렸다. 한별이었다. 해경은 먼저 지나가려 했다.

“저녁에 화난 거예요?”

“배우님은 왜 물으세요?”

“표정이 그래서.”

해경은 발을 멈췄다. 화장을 지운 채 마주치기만 하면 한별은 꼭 얼굴 얘기를 했다. 지난번에는 누구냐고 물었고, 이번에는 화났냐고 묻는다.

“제 얼굴 보면서 기분 맞히지 마세요. 틀리니까.”

“저녁에 말 끊은 건 얼굴 보고 그런 거 아닌데요.”

한별도 목소리가 굳었다.

“방금은 얼굴 보고 그러셨잖아요.”

“그럼 묻지 말걸 그랬네요.”

“그러게요.”

한별은 그녀의 안경을 봤다가 곧 시선을 거뒀다. 해경은 그 짧은 눈길마저 거슬렸다. 왜 신경 쓰이는지도 알아서 더 화가 났다. 거울 앞에서는 남의 얼굴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면서, 자기 얼굴을 보는 눈길 하나는 견딜 수 없다니.

둘 다 자기 방 앞에 섰다. 카드키 소리까지 거의 동시에 났다.

한별이 먼저 문을 열어놓고 말했다.

“내일도 이런 식이면 피곤하겠어요.”

“지금 이미 피곤해요.”

해경은 문을 닫았다. 복도에서는 잠시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침대에 앉자 휴대폰이 울렸다. 재하였다.

“내일 배경색 확인했어?”

“왼쪽. 답장도 했는데.”

“그건 협박문이었지.”

해경이 웃자 문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곧 복도에서 캐리어 손잡이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맞은편이었다.

해경은 웃음을 멈추고 전화를 끊었다. 저쪽이 문 앞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메시지를 보냈다.

‘시끄러우면 말로 하세요. 문 두드리지 말고.’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문 안 두드렸어요. 캐리어 넘어졌어요.’

해경은 민망해져서 화면을 내려다봤다. 곧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첫날부터 소음 신고당할 줄은 몰랐네요.’

그녀가 답을 쓰기도 전에 맞은편에서 다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캐리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까지 따라왔다.

해경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문을 열어 맞은편을 향해 말했다.

“그럼 캐리어는 좀 세우세요.”

막 캐리어를 세우던 한별이 대꾸했다.

“말로 하라면서요.”

해경은 웃음이 나려는 걸 참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홍보팀 막내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실장님, 죄송해요. 아까 복도 영상이 공식 계정에 올라갔는데요.’

해경이 영상을 열었다. 한별의 입주를 알리는 짧은 영상. 카메라가 그를 따라 움직이는 순간, 안경을 쓴 해경의 얼굴과 그녀의 방문이 함께 잡혔다. 영상은 이미 퍼지고 있었다.

가장 위에 뜬 댓글을 읽자 웃음기가 싹 가셨다.

‘한별 방 맞은편에 있는 저 여자,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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