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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작가: 양순이
last update 게시일: 2026-03-20 06:22:36

미옥은 숨을 쉬는 법조차 잊은 채 굳어버렸다. 대장군도, 고위 귀족도 아니었다. 자신을 품에 안고 짐승처럼 헐떡이던 이 사내가, 제국의 황제였다.

연호가 먼저 가마에서 내렸다. 그가 바닥을 딛자마자 주위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는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연호가 가마 안을 향해 오만한 손을 내밀었다.

“나오너라.”

미옥은 그의 손을 잡는 대신, 가마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뱉어냈다.

“저…… 저기, 대인…… 아니, 폐하.”

어설픈 호칭에 연호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주변에 듣는 귀가 많건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마 안으로 상체를 깊숙이 밀어 넣으며 미옥의 턱을 잡아 올렸다.

“밤새 내 무릎 사이에서 뜨겁게 얽혀놓고, 이제 와 호칭조차 갈피를 못 잡는 것인가.”

연호의 나른한 조롱에 미옥의 뺨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그때, 연호의 곁으로 다급히 달려온 내관들과 어의(御醫)의 무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잠행 중에 황제가 상처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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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관의 비   53화

    농밀했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하륜은 제 처소로 돌아와 창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땀에 젖어 흐트러진 망건을 풀어 내리고,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의 달을 바라보는 사내의 입술 끝이 아주 살짝 올라가 있었다.‘이래서 사내들이 그토록 춘정(春情)에 목을 매는 것이었나.’처음으로 여인을, 미옥을 제 아래에 두고 온전히 품어본 충격은 지독할 만큼 맹렬했다.아직도 콧가에 그녀의 비릿하고 달콤한 살 냄새가 맴도는 듯했다.파르르 떨리던 여린 내벽이 제 것을 꽉 조여 물던 감각을 떠올리자, 이내 가라앉았던 아랫도리가 다시금 뻐근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어쩌나, 미옥아. 나는 이제 매일 밤 네가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데.’항상 어둠 속에서 하륜의 등 뒤를 지키던 묵직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망국의 무사이자, 어린 하륜을 단련시켜 이 지옥 같은 황궁으로 밀어 넣었던 유일한 심복.사혁이었다.“어쩐지…… 좋아 보이십니다.”“나쁠 것도 없지. 하나씩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냉혹한 말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이상하게도 물기가 배어 있었다.붉어져 있는 뺨, 흐트러진 옷 매무새.가만히 하륜의 모양새를 지켜보던 사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순정도 주고, 처음도 주시고…… 그것도 계획의 일부입니까?”쿵.처소 안의 공기가 일순간 굳어졌다.“……사혁.”“그것이 정녕…… 복수를 위한 지략이라면, 일이 틀어지는 제 새끼조차 순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계획의 일부가 아니라면.”하륜의 목소리가 신음처럼 낮게 긁혔다.“어찌할 작정이냐, 사혁. 내 칼날이 향해야 할 적에게 가기 전에…… 그 아이에게 먼저 꽂혀버렸다면.”당사자에게는 차마 말로 뱉지 못한 고백이었다.하지만 그 애틋한 고백 앞에서도 사혁의 눈빛에는 일말의 동요조차 없었다.도리어 춘정에 허우적대는 주군의 환상을 깨부수려는 듯, 무감하고 건조한 질책이 돌아왔다.“너무 앞서나가십니다.”“…….”“남녀의 정이란 먹고 버려지기도 하는 것인데.”“미옥은 나를

  • 환관의 비   52화

    “윽…….”단단하게 억눌렀던 신음이 터지며, 단번에 밀고 들어가려던 하륜의 허리가 찰나의 순간 삐끗 어긋났다.매끄럽게 궤도를 타고 들어가는 대신, 좁고 뜨거운 살점이 빈틈없이 옭아매는 생경한 압박감.몸이 송두리째 녹아내릴 듯한 맹렬한 자극에 하륜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키며 멈칫했다.수없이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던 이론 따위는, 처음 겪어보는 열기 앞에서 단숨에 타버린 지 오래였다.‘이토록…… 지독하게 뜨거웠단 말인가.’하륜의 멈칫거림에, 당황한 미옥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본 순간이었다.숨이 턱 막혔다.늘 서늘하고 정갈하던 주인의 얼굴이, 짙은 정욕에 물들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단정하게 동여맸던 망건이 미세하게 흐트러져 내리고, 땀방울이 맺힌 턱선 위로 반쯤 감긴 두 눈이 오롯이 미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평소의 그 냉철하던 안광은 흔적조차 없었다. 오직 눈앞의 여인을 온전히 헤집어 삼키고 싶다는, 눅진하고도 노골적인 색기만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이었다.‘저런 표정을…… 지으실 수 있는 분이었던가.’너무도 낯설고, 소름 끼치도록 관능적인 사내의 얼굴.그 색향에 미옥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단전에서부터 뭉클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며, 그녀의 여린 내벽이 하륜의 거대한 상징을 본능적으로 꽉 조여 물었다.“……하아.”여인이 저를 탐욕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순간.거친 숨을 토해낸 하륜의 턱관절이 무섭게 도드라졌다. 짧았던 머뭇거림은 그것으로 끝이었다.이번에는 주저함도, 어긋남도 없었다.하륜은 미옥의 좁은 내벽을 단숨에 자비 없이 끝까지 밀고 들어갔다.“아앗! 하아, 읏……!”끝을 모르고 깊숙이 파고드는 거대한 부피감에 미옥이 자지러지며 허리를 튕겼다. 하륜은 펄떡이는 미옥의 허리를 단단히 옭아매며, 곧바로 묵직하고도 맹렬한 허리놀림을 시작했다.처음의 헤맴이 온데간데없었다. 어디를 어떻게 찔러야 이 여인이 제 밑에서 정신을 놓는지 수 년을 맞춰온 사람처럼 본능적이고 정교했다.“아, 아윽! 주인, 님…… 하으!”

  • 환관의 비   51화

    미옥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지금 이 남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수 년을 제국 최고의 내관장으로 살아온 사내였다.환관의 아이라니.귓가를 때린 그 서늘하고도 기막힌 선언에 미옥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네……? 방금, 누구의 아이라 하셨습니까?”대답 대신, 미옥을 짓누르고 있던 하륜의 하반신이 더욱 바짝 밀착해 왔다.겹겹이 쌓인 비단옷을 뚫고,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묵직하게 파고드는 낯설고도 압도적인 열기.도저히 거세된 환관의 것이라 볼 수 없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팽팽하게 날이 선 온전한 사내의 상징이었다.“흐읍……!”순간 미옥은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듯한 충격에 숨을 들이켰다.경악으로 굳어버린 그녀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을 헤매다 이내 하륜을 향해 커졌다.가짜였다.그가 십수 년간 뒤집어쓰고 있던 완벽한 거세의 껍데기도, 서늘했던 금욕의 시간들도 모두 기만이었다.경직된 미옥의 허벅지 사이로 뜨겁고 거대한 덩어리가 기분 좋은 위협처럼 뭉근하게 문질러졌다.하륜은 하얗게 질린 미옥의 귓가에 입술을 묻으며, 낮고 나른하게 속삭였다.“이제 너도 내 가장 치명적인 목줄을 쥐었으니.”그가 살짝 허리를 퉁기듯 압박해 오자 미옥의 어깨가 파르르 튀어 올랐다.“이제 누가 누구의 주인인지 알 수 없겠구나.”위험하고도 달콤한 선언 끝에, 하륜이 불쑥 물었다.“싫으냐. 내 아이는.”오만하기 그지없는 사내의 물음이었으나, 미옥은 그 서늘한 눈동자 너머에 숨겨진 기묘한 긴장감을 읽어냈다.평생을 완벽한 지략가로 살아온 그가, 지금 이순간만큼은 제 발밑의 노비에게 선택을 구하고 있었다.미세하게 굳어있는 그의 턱관절이 보였다.그녀의 손목을 옭아맨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펄떡이는 맥박.그것은 두려움일까, 아니면 저와 같은 열망일까.미옥은 대답 대신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머릿속이 새하얘졌다.주르륵-.미옥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베갯잇으로 흘러내렸다.슬픔이나 두려움이 아니었다.끝내 닿지 못할 거라

  • 환관의 비   50화

    어둠이 내려앉은 황제의 침전.지밀상궁이 숨을 죽인 채, 붉은 융단이 깔린 은쟁반을 연호의 눈앞으로 조심스레 밀어 올렸다.쟁반 위에는 오늘 밤 황제의 수청을 들 후궁들의 이름이 적힌 합궁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연호의 시선은 은쟁반 위를 느릿하게 훑었다.아니, 훑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낮에 보았던 오색실을 엮던 가녀린 손가락과, 제 어깨에 기대었을 때 파르르 떨리던 까만 속눈썹만이 맴돌고 있었으니까.연호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그러나 그가 무 숙원, 미옥의 이름이 적힌 패를 집어 들려는 찰나였다.“……어찌 된 일이냐.”연호의 미간이 서늘하게 좁혀졌다.미옥의 합궁패는 다른 후궁들의 것과 달리, 붉은 칠이 된 뒷면을 보인 채 뒤집혀 있었다.지밀상궁이 황급히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했다.“송구하옵니다, 폐하. 무 숙원께서는 금일 경수(經水)가 비치시어, 옥체를 모실 수 없는 상태이옵니다. 하오니 오늘 밤은 부디 다른 이를…….”여인의 달거리.내명부의 엄격한 법도상 황제의 밤을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이유였다.하지만 연호는 불쾌하다는 듯 쯧, 하고 혀를 찼다.“상관없다. 안지 않으면 그만이야. 그저 얼굴을 보며 차나 한잔 나눌 참이니, 채비를 하라.”낮에 채 완성하지 못했던 그 장명루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저 얌전히 앉아 바느질을 하던 그 평화로운 광경을 한 번 더 눈에 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것은 사내로서의 욕정보다 앞선, 그의 인생 최초의 순수한 갈증이었다.그러나 지밀상궁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연호를 만류했다.“불가하옵니다, 폐하. 제왕의 지존하신 옥체에 부정한 피의 기운이 닿는 것 자체가 크게 흉하고 불길한 일이옵니다. 부디 법도를 지키시어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짐이 언제부터 그런 잔법도를 따지며 살았다고.”상궁의 결사적인 만류에도 연호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피가 불길하다고?나는 이미 형제들의 피를 웅덩이

  • 환관의 비   49화

    미옥이 황급히 오색실을 소매 아래로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려 했다.그러나 연호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꾹 눌러 앉혔다. 그의 시선이 미옥의 손끝에 들린, 채 완성되지 못한 장명루에 가닿았다.“장명루라. 짐의 무병장수라도 기원하려던 참이었나?”입가에 짙은 호선을 그리는 연호의 가슴 언저리가 묘하게 간질거렸다.뜨겁게 달궈진 살결을 탐하고, 쾌락의 끝에서 거친 숨을 내뱉는 익숙한 유희와는 달랐다.‘……이상한 기분이군.’침향각으로 향할 때는 분명 보자마자 품어보려 했는데, 지금은 그저 이 광경을 조금 더 오래 지켜보고 싶었다.“들킨 것이 부끄러운가?”연호의 목소리에서 늘 묻어있던 서슬 퍼런 위압감이 가시고, 대신 장난기 어린 온기가 배어 나왔다. 그는 미옥의 손등 위로 제 커다란 손을 툭 얹었다. 거칠고 투박한 제 손가락과, 실타래를 쥔 미옥의 하얀 손가락이 겹쳐졌다.그저 손만 맞닿았을 뿐인데, 연호는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옷을 벗기고 살을 맞댈 때보다 더 심장이 크게 뛰었다. 마치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발견한 소년처럼, 혹은 누군가에게 순수한 칭찬을 기대하는 아이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미옥의 입술은 차갑게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그를 네 발아래 엎드리게 해.’간밤, 하륜이 남기고 간 서늘한 명령이 귓전을 때렸다.차마 그 팔찌가 당신이 아닌, 제 옛 주인을 위한 것이라는 말은 뱉을 수 없었다.미옥은 저항 없이 고개를 숙인 채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깔았다.그 떨리는 속눈썹을 내려다보며 연호는 속으로 생각했다.이런 식의 기분도 나쁘지 않다고. 아니, 오히려 꽤 마음에 든다고.“……아직 미완성이라 보여드리기 민망할 뿐입니다.”겨우 내뱉은 미옥의 대답에 연호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미옥의 손에서 오색실을 부드럽게 뺏어 들며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슬쩍 미옥의 뺨을 검지로 톡 건드렸다.“제법 깜찍한 짓도 할 줄 아는구나.”그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연심을 배운 남자의 생기가 일렁였다.“어서 완성하거라.

  • 환관의 비   48화

    다음 날 점심.눈이 시리도록 화창한 햇살이 궁궐의 기와 위로 쏟아져 내렸지만, 유희의 처소인 경화전 후원의 공기는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화려하게 차려진 다과상 앞에 마주 앉은 미옥은 조용히 찻잔을 쥐었다. 같은 지아비를 모시는 처지이니 얼굴이나 보며 식사라도 하자는 유희의 갑작스러운 부름이었다.“손은 좀 괜찮은가.”차를 한 모금 머금은 유희가 불쑥 미옥의 손끝을 힐끗거리며 물었다.“그날은…… 내가 좀 과했지. 입궁 첫날, 예민해져 있던 터라 본의 아니게 험한 꼴을 보였네.”미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뺨을 내리치고 손을 짓밟던 그 서늘한 독기가 하루아침에 온정으로 바뀔 리 없었다.이 가식적인 사과의 이면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미옥은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대장군의 여식이라 한들, 뭣 하겠나.”유희가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며 화려한 비단 소매를 매만졌다. 그녀의 눈동자에 짙은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이 구중궁궐에 들어와서 폐하의 총애를 받지 못하면, 결국 저기 물을 긷는 궁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신세가 되는 것을. 안 그런가?”유희의 붉은 입술이 서글픈 듯, 혹은 비틀린 듯 호선을 그렸다.“품계가 귀인이면 무엇하고, 숙원이면 또 무엇하겠어. 결국 이곳 내명부의 서열은, 폐하와 누가 더 많은 밤을 보냈는가에 달려있는 것을 말이야.”그 뼈 있는 한탄 속에 담긴 것은 짙은 열등감이자, 황제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독기였다.미옥은 표정을 지워낸 채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유희는 잠시 침묵하던 미옥을 살피더니, 이내 시녀를 향해 손짓했다.시녀가 조심스레 은쟁반 하나를 다과상 위로 올려놓았다.쟁반 위에는 황, 청, 백, 적, 흑색의 최고급 명주실이 달빛 대신 눈부신 햇살을 받아 번드르르하게 빛나고 있었다.“곧 황자 마마의 백일이 다가오지 않나.”유희가 목소리를 다정하게 꾸며내며 본론을 꺼냈다.“이 어미의 정성으로 직접 장명루(長命縷)를 엮어드리고 싶은데, 내 워낙 바늘이나 실을 쥐어본 적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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