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심수정 아니에요?”장소월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그녀의 추측이 맞았다.요가 강사는 난처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코너 쪽 CCTV는 원래 고장으로 영상이 나오지 않았었는데, 측문에 언제 설치됐는지 모를 카메라가 있었다.전연우는 눈썹을 찌푸렸다. 장소월이 반지를 찾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사람을 시켜 CCTV 영상을 가져왔다.“하지만 요즘엔 요가관에서 심수정 못 봤어.”장소월의 시선이 전연우에게로 향했다.지난번 사진 사건으로 둘은 일주일 동안 틀어져 있다가 이제 겨우 화해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또 전연우와 관련 있는 듯했다.전연우가 없는 틈을 타 요가 강사에게 물었지만 답은 부정적이었다.“그럴 리가요?”장소월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반지를 찾긴 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께름칙했다.똑같은 반지 두 개가 생겼다. 하나를 잃어버려도 또 하나가 남아 있게 된다. 대체 가능한 물건은 오히려 그 소중함이 떨어진다... 그 생각에 장소월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도 전연우에게 그런 존재일까?“왜 그래? 음식이 입에 안 맞아?”전연우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장소월의 약지에 손을 얹었다.반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포크에 반사돼 유난히 눈부셨다.장소월은 고개를 저으며 과일을 깨작거렸다. 잡다한 생각을 떨쳐내려 해도 머릿속엔 자꾸만 그 장면들이 떠올랐다.약지의 반지는 전연우의 독보적인 애정을 담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야는 흐릿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심수정은 그 후로 자취를 감췄다. 장소월은 요가관에 갈 때마다 그녀의 아름답지만 날카로운 얼굴이 떠올라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왜 반지 안 꼈어?”전연우의 질문에 장소월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두 개 있잖아.”전연우의 의문 담긴 눈빛에 장소월은 불편해졌다. ‘반지를 안 낀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그런 장소월의 태도에 전연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반지를 안 꼈다는 건 그의 아내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 아
반지 사건은 장소월의 마음에서 도무지 지워지지가 않았다. CCTV를 확인해보니 그 시간대에 탈의실에 들어간 건 심수정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찾아갔을 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포에 이상한 물건이 있을까 두려웠던 탓에 장소월은 전연우가 데리러 올 때까지 열지 않았다. 예상 밖으로 택배 안에는 낯익은 서류 봉투가 들어 있었다.가벼운 것 같았지만 꽤나 묵직한 봉투였다. 열어보니 사진 여러 장이 들어 있었다.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흐릿한 술집 조명 아래 익숙한 두 사람이 보였다. 이우림과 전연우였다.장소월은 머릿속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반면 전연우는 너무나 태연한 얼굴이었다.어느새 장소월의 눈가는 눈물로 젖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전연우는 방금 전까지 업무 생각에 빠져있다가 기초적인 구상이 끝난 뒤에야 장소월에게 주의를 돌렸다. 그녀의 이상함을 느낀 그가 급히 물었다.“왜 그래?”장소월은 말없이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전연우의 눈길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날 밤 술집에서 이우림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던 순간이 찍혀 있었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이를 이용해 장소월을 괴롭히려 한 것이다.“너랑 우림 씨 도대체 무슨 관계야?”장소월의 머릿속에 수많은 추측이 떠올랐다. 이우림의 정신적 혼란, 갑작스러운 해외행,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전연우는 순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곧바로 장소월의 어깨를 붙잡았다.“날 믿으면 돼.”지금의 장소월에게 그 말은 아무런 의미도 되어줄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명확한 설명이지, 믿음이라는 두 글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남원 별장으로 돌아왔다. 별이는 메이린과 대회에 참가하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던지라 집엔 둘뿐이었다.침묵을 안고 침실로 돌아온 장소월은 사진을 다시 꺼냈다.사진에 포토샵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실제 상황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느 날 밤 전연우가 어디에 갔는지 말하지 않고 늦게
요가관에서 심수정을 자주 마주쳤지만, 장소월은 그녀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인가 보다.“장소월 씨, 이 사물함은 내 거예요.”심수정이 장소월의 사물함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했다.장소월은 전연우를 만나러 급히 나가야 했기에 사물함에서 핸드백을 꺼내 들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차에 오른 뒤에야 핸드백에서 반지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몇 번이나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심수정이 떠올랐다.“차 돌려요!”급히 운전 기사에게 지시하며 핸드백을 다시 뒤졌다.“뭐 잃어버렸어?”전연우가 다가오며 말했다.“다시 사면 돼.”장소월이 어이없다는 듯 흘끗 그를 쳐다보았다. 새로 사는 거로 해결되지 않는 물건도 있는 법이다. 그 반지는 전연우가 운무 마을에서 청혼할 때 준 것이었다!요가관 탈의실로 돌아와 보니 사물함은 텅 비어 있었고 반지의 흔적 또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요가 강사에게 물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전연우가 통화를 끝내고 도와주러 가려 한 순간 장소월은 씩씩거리며 요가 교실에 들어가고 있었다.“소월아.”전연우가 따라가 보니 장소월은 요가 매트 아래를 뒤지고 있었다.“도대체 뭘 잃어버린 거야?”장소월은 본래 전연우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맥없이 요가 매트에 주저앉았다.“반지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가 수업 전, 장소월은 늘 액세서리를 벗곤 했었다.그녀가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탓할 수는 없었다.“괜찮아.”그 말에 장소월은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얼마나 아끼는 반지였는데!전연우의 말에 따라 장소월은 요가관을 나섰다. 떠나기 전 요가 강사에게 간절히 부탁했다.“선생님, 번거롭겠지만 제발 좀 찾아봐 주세요.”그 반지는 대체 불가능한 물건이었다. 찾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찾지 못한다면 마음에 크나큰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돌아가는 길, 전연우는 계속 그녀를 위로했다.“반지 잃어버렸으면 다시 사면 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장소월은 말없이 내일
얼마가 지났을까, 한수희는 더 이상 한숨을 쉬지 않고 간절한 눈빛으로 전연우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벌떡 일어나 전연우를 붙잡았다.장소월도 그녀의 부탁이 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전연우가 이우림을 도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돕는단 말인가?곧이어 한수희의 입에서 나온 부탁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의견을 내기도 전에 전연우가 단칼에 거절했다.“안 돼요. 저한텐 가정이 있어요.”한수희는 절망에 빠져 울먹거렸다.“연우야, 내가 널 키우다시피 했잖아. 지금 우림이 상태가 너무 심각해. 조금만 도와줄 수...”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연우는 다시 한번 선을 그었다.“안 됩니다.”전연우는 이 집안사람들에게 늘 존중의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장소월과 관련된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너무나 단호한 전연우의 태도에 한수희는 즉시 방향을 바꿔 장소월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엔 은은한 혐오가 담겨 있었다. ‘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우림이가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텐데...’“우림이 좀 도와줘, 제발!”한수희는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장소월은 어머니의 절망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인다면 장소월이 희생을 감내야 한다!한수희의 끊임없는 집착을 피해 전연우는 인사도 없이 장소월을 데리고 나갔다. 차에 오르자마자 비서에게 전화했다.“정신과 최고 의사를 찾아.”약물치료로 이우림의 마음을 달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전문적인 진단으로 가족을 안심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장소월은 오랜 고민 끝에 이우림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예전엔 둘도 없는 사이였는 데다 별이도 그녀를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전연우에게 어떻게 말하느냐였다.별이의 입에서 이우림을 도와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전연우는 즉시 곁에서 태연히 화보를 보고 있는 장소월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른 척 회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장소월은 억지로 침
“저 여자 우림 씨 닮지 않았어?”병실을 나왔을 때부터 장소월은 계속 그 생각에 잠겨 있었다.사실 전연우는 그 여자를 처음 봤을 때 단번에 이우림임을 알아챘었다.남자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장소월은 걸음을 멈췄다.“알고 있었던 거야?”장소월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우림은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집안일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 걸까?’“생각 그만해.”전연우는 이제 이용재에게 전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번 이우림에게 분명히 말했었건만, 이번 일로 또 원치 않게 얽히게 되었다.장소월은 속으로 실망하고 있었다. 전연우에게 원했던 건 명확한 답이었지, 그녀의 질문을 차단하는 게 아니었다.그녀는 전연우를 흘끗 쳐다보고는 조용히 조수석 문으로 들어갔다.이우림은 간병인이 보살피는 처음 이틀은 조용히 누워 있었다. 하지만 이틀 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방문하자 극도로 불안해하기 시작했다.장소월은 고민 끝에 이우림을 보러 가기로 했다. 병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사과 몇 개가 굴러 나왔고 동시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우림이 물건을 내던지는 것 같았다.장소월은 몇 초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병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바나나를 밟아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옆의 캐비닛을 붙잡았다.장소월의 등장에 이우림의 감정은 더 격앙됐다. 그녀는 꽃병을 집어 장소월에게 내던졌다.“우림아, 이게 뭐 하는 짓이야!”이우림의 어머니 한수희가 급히 이우림을 붙잡았지만, 그녀는 어머니를 힘껏 밀쳐내 버렸다.미처 피하지 못한 장소월은 꽃병에 이마가 스치고 말았다.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을 타고 밀려왔다.이우림은 허리에 손을 얹고 이미지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한수희는 옆에서 조용히 흐느끼며 장소월을 걱정스레 살펴보고 있었다.장소월은 휴지로 상처를 누르고 있다가 전연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자 급히 병실을 나섰다.“병원 가지 말라고 했잖아.”원망하는 듯한 전연우의 목소리에 장소월은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전화를 끊
일상을 더 충실하고 풍성하게 살기 위해 장소월은 요가 수업에 등록했다. 매일 오후 4시는 그녀의 수업 시간이었고, 그때마다 전연우가 데려다주었다.수업이 끝나자 장소월은 상쾌함을 느끼며 어깨를 풀고 있었다. 그때 옆에 가느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선생님, 저도 스트레칭 도와주세요.”그 달콤한 목소리는 장소월에게 너무 익숙했다. 하지만 심수정이 언제 저렇게 공손해졌단 말인가?요가 강사는 미안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죄송하지만 여긴 개인 레슨이라...”“돈 드릴게요.”여자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장소월은 그제야 상대가 심수정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요가 강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거절하려던 찰나, 문가에 또 다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순간 강사의 눈빛이 반짝였다.세 사람은 동시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전연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소월이 천천히 일어나려고 할 때, 심수정은 참지 못하고 이미 그에게 다가가 있었다.“전 대표님, 오랜만이네요.”전연우는 앞에서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이 여자가 누군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그는 심수정을 지나쳐 장소월에게 말했다.“문 앞에서 기다릴게.”장소월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옷 갈아입고 갈게.”심수정이 아랑곳하지 않고 전연우를 따라가자 장소월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탈의실로 향했다.요가관을 나와 보니 의외로 심수정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전연우만 차에 기대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장소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아끼는 물건을 감상하는 듯한 눈빛이었다.요가 수업은 늘 그녀의 몸과 마음에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이토록 좋은 기분에 심수정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전연우, 우리 마트 갈까?”마트 얘기에 전연우는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 또 요리 솜씨를 뽐낼 모양이다.마트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지만 퇴근 시간이라 적잖이 혼잡했다. 전연우가 상대적으로 막히지 않는 길을 선택해 천천히 달리던 도중 갑자기 맞은편에서 누군가 달려들었다.여자 한 명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차창 유리를 붙잡았다.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