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아이를 돌려줘...”장소월은 울면서 잠꼬대를 했다.남자는 그녀를 응시하면서 의아해서 물었다.“무슨 아이를 말하는 거야?”“제발, 송시아, 부탁이야... 전연우에게 내 아이를 돌려달라고 해줘. 아이는 죽으면 안 돼.”송시아?전연우는 묵묵히 그 이름을 기억했다.그는 새 회사 일을 처리하면서 의식을 잃은 장소월을 돌봤다.백윤서가 왔을 때, 그는 아주 초췌한 모습이었다.그녀는 어떻게 전연우를 상대해야 할지 몰랐고, 차가운 눈으로 장소월을 바라봤다.“계속 소월이 돌봐줄 생각이에요?”전연우는 손에 있는 서류들을 보며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미 많이 화가 나 있었다.“어젯밤에 어디 갔었어? 성은이가 너 어젯밤에 아파트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하던데?”“오빠 마음에 아직도 제가 있기는 해요? 제가 어디 가서 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잖아요.”“...”전연우는 하던 일을 멈추더니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심리치료가 너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 것 같군.”요즘 백윤서가 밖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제외하고, 상담소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었다.만만치 않은 상담비용이었지만, 전연우는 그녀에게 돈을 아끼지 않았다.“내 병이 낫기를 바라면서, 한 번도 나랑 병원에 간 적 없잖아요. 내가 이렇게 된 건 전부 오빠 때문이라는 거 뻔히 알면서. 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요.”“윤서야, 오빠는 너에게 뭐든 제일 좋은 것을 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물질적인 것 빼고, 오빠가 줄 수 있는 건 없어.”“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요. 소월이만 없으면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예요?”전연우는 노트를 덮고, 소파에서 일어났다.“방에 가서 쉬어. 소월이 지금 아파.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집에 하인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 오빠가 돌봐줘요? 그리고... 오빠... 소월이만 아픈 게 아니라 나도 아프잖아요...”전연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방에서 끌어냈다.“너 일단 진정하고 다시 얘기해.”
악몽은 계속되었다. 꿈에서 그녀는 전생에 있었던 모든 일을 다시 한번 완전히 경험하게 되었다.온몸이 땀범벅이었고, 잠옷을 흠뻑 적셨다. 전연우는 해열용 알코올로 그녀의 몸을 계속 닦아줬고, 잠옷도 몇 벌이나 바꿨는지 모른다.서울에서 이보다 더 연약하고 보살피기 어려운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전연우는 한 번 또 한 번 장소월의 입에서 아이를 지운다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키워드를 종합해보면, 그녀가 꿈에서 그들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그녀는 울면서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전연우는 차분히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웠지만, 마음속의 우울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장소월은 그렇게 아이를 원할까?하지만 전연우는 아무리 그녀의 몸을 탐해도, 심지어 그녀의 몸속에 자신의 씨앗을 남겨도, 장소월은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설사 아이가 생겼다 해도, 전연우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왜냐하면... 이 아이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직접 심은 열매는 반드시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법이다.메일함에서 알림음이 울리고, 도착한 메일을 확인해보니 장소월의 입에서 존재한 송시아라는 사람에 관한 정보였다.뒤이어 기성은이 전화를 걸어왔다.“구체적인 정보는 못 알아냈어요. 전국에 송시아라는 동명 인물만 300명 이상입니다. 그 사람들의 모든 자료는 이미 메일로 보냈습니다만 대표님께서 찾으시는 분이 그 안에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전연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됐어. 급하지 않아. 새 회사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분부하신 대로 진행 중이고, 남천 그룹의 적지 않은 고참직원들도 합류하고 싶어 해요. 대표님만 돌아오시면 됩니다.”“알겠어.”전연우는 다른 일들을 분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그가 메일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지훈이 메시지를 보냈다.「윤서 씨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지금 병원에서 응급수술 중입니다.」메시지를 확인한 전연우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차를 몰고 별장을 떠났다.오귀화에게
“저를 용서하지 않더라도, 묵묵히 아가씨 곁에 있고 싶어요. 아가씨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것도 지켜봐야, 제가 죽어도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아가씨 깨나면 바로 드시게 제가 가서 죽을 데워 올게요.”조용한 방에서 문을 닫는 소리가 나자, 장소월은 눈을 떴다. 사실 전연우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깨어났다. 장소월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아버지의 악행을 들은 것이다.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사실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그녀는 잘못하지 않았지만, 장씨 성을 가진 이상 그 보복들은 그녀에게도 가해질 것이다.그래서, 장해진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억울하게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다.남을 탓할 자격은 더더욱 없었다.그렇다고 해서 오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한 모든 행동을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다.죽을 데워서 방으로 가져오려던 오 아주머니는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묵묵히 문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돌아서더니 다른 하인에게 죽을 방으로 들여보내도록 했다.“아가씨... 하루종일 아프셨는데 좀 드세요.”“주세요.”하인이 빈 그릇을 들고 방을 나오는 것을 보자, 오 아주머니는 흡족하게 방으로 돌아갔다.장소월은 밤새도록 생각했지만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그녀는 몰래 짐을 싸서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갔다.경호원은 장소월을 보자마자 말했다.“아가씨, 큰 도련님께서 아가씨 전화를 받지 못하셔서 걱정하고 계세요.”장소월은 덤덤하게 대답하고 병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를 내보내고 아버지와 단둘이 병실에 남았다.장해진은 이미 깨어났지만 아직 말도 못 하고, 거동도 불편했다.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용기를 내어 말하려 했지만 모두 가슴에 막히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영수와 결혼 취소할 생각이라고 말하러 왔어요.
장소월은 택시를 타고 강가의 본가로 향했다.오늘 날씨는 그 어느 때보다 흐렸다.변덕스러운 날씨에 더욱 우울해졌다.본가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서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렸고, 강영수는 우산을 들고 와서 그녀를 안으로 데려갔다.“추워? 가서 옷 가져올게.”장소월은 현관에서 거실을 훑어보았다. 눈썰미가 좋은 그녀는 소파 밑에 있는 어린이 블록을 확인하고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다.하인이 담요를 가져왔고, 강영수는 그녀의 몸에 둘러주었다.“고마워.”그는 항상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어 무엇이든 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결혼하면 분명 좋은 남편이 될 것이라는 걸 장소월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장소월의 남자가 아니다.“소월아!”박순옥의 목소리가 입구에서 울렸고 오 집사도 같이 왔다.어르신은 장소월의 옆에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더니 말했다.“왔으면 할머니한테 전화 좀 하지. 안 그래도 영수 보고 널 집에 데려와 식사하려던 참이었어. 네가 갑자기 귀국했다는 소식은 영수가 말해줬어. 우리가 반드시 더 좋은 의사를 찾아 네 아버지를 치료할 테니,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장소월은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말했다.“저는 오늘... 파혼하러 왔어요.”“죄송해요, 며칠 동안 고민했지만 역시나 안 되겠어요.”낙엽처럼 가벼운 그녀의 목소리가 듣는 이의 귀에는 쩌렁쩌렁 울렸다.거실의 하인조차 귀가 솔깃했다.오부연은 진작 장소월이 오늘 찾아온 목적을 예상하고, 하인들에게 흩어지라고 눈짓했다.강영수의 눈빛은 어두웠고, 차디찬 목소리로 거절했다.“난 동의할 수 없어.”박순옥은 그에게 침착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부드럽게 말했다.“소월아... 파혼이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바깥사람들은 모두 네가 미래의 강씨 며느리라는 걸 아는데, 이제와서 파혼이라니?”그들이 사실을 애써 숨길수록, 장소월은 더욱 슬퍼졌다.“나 알고 있어. 그날 통화 내용 다 들었어...”장소월은 평온한 눈빛으로 강영수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그저께... 아이랑 김남주와 함께 쇼핑몰에 들어가는
박순옥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소월아, 그 아이는 확실히 영수 잘못이 맞아. 영수가 그 아이를 받아들인 건 이 할미 생각이지 절대 영수가 원한 게 아니야. 내가 받아들이라고 부탁했어...”“네가 임신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내가 영수한테 아이의 양육권을 쟁취해 네 곁에 남겨, 엄마가 될 수 없는 네 한을 풀어주라고 했어.”“그래도 강씨 집안의 핏줄인 그 아이를 밖에서 김남주와 고생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소월아, 넌 착한 애잖아. 강씨 가문의 대가 끊기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있어? 이 할미 좀 이해해주면 안 되겠냐?”김남주는 구석에 몰래 숨어서 그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다.오부연도 말을 보탰다.“소월 아가씨, 이 아이는 두 분의 관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강씨 가문 사모님 자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만약 진짜 화나신다면 다른 여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되죠.”“아가씨는 똑똑한 분이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잘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장소월은 일어서더니 박순옥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죄송합니다, 할머니. 제 선택은 여전히 파혼입니다. 제 선택으로 인해 불쾌하게 만든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말을 마친 장소월은 강영수가 직접 쓴 약혼서와 그녀에게 준 카드를 꺼냈다.“나머지 물건은 아버지께서 병이 나으신 후에 속속 강가에 돌려드리겠습니다.”“영수야... 그냥 이렇게 하자.”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강영수는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 그녀의 손을 잡았다.“난 동의할 수 없다고 했잖아.”“우리 차근차근 얘기해.”“파혼만 아니라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 수 있어. 만약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강씨 가문에서 안 보이게 할게. 난 너만 원해.”박순옥은 얼굴빛이 흐려지더니 말했다.“그 아이는 반드시 강씨 가문에 남아야 해!”장소월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바로 이때 위층에서 다급한 소리가 났다.“작은 도련님, 내려가시면 안 돼요. 큰 도련님께서 소월 아가씨와 얘기 중이세
“떠난다고 해도 넌 강씨 가문 예비 며느리 신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어.”“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지켜야 할 건 우리의 약혼이 아니라, 남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이야. 우린 정말 안 맞는구나.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장소월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약혼반지 잃어버렸어. 돈은 내가 천천히 갚을게.”“미안... 나 이제 가야겠어.”“안돼. 소월아!”강영수는 한 발 내디딘 순간, 두 다리에서 저릿하게 전해져오는 고통 때문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도련님...”“영수야.”쓰러진 강영수의 모습을 목격한 김남주도 걸어 나왔다.“아빠!”모든 사람들이 놀라 강영수의 주위를 에워쌌지만 장소월만은 단호히 몸을 돌리고 발걸음을 뗐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것이 장소월의 영원한 안녕이 될 거라는 걸 말이다.하지만 이제 강씨 집안 사람들에게 장소월은 안중에도 없었다.장소월은 곧바로 파리행 길에 올랐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그녀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한편 교통사고를 당했던 백윤서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다만 다리에 경미한 골절이 생겨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아침 아홉 시, 전연우가 장소월이 남원별장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검은색 아우디 차량이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전연우는 한 번, 또 한 번 연이어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수신 거부였다가 마지막엔 핸드폰 전원이 꺼져있다는 신호음이 들려왔다.전연우가 직원에게 물었다.“파리로 가는 제일 빠른 비행기가 몇 시죠?”“2분 전 비행기 한 대가 이미 떠났기 때문에 오전 비행기는 이제 없습니다. 가장 빠른 비행기는 오후 한 시 반에 출발합니다.”만약 강영수와 함께 하는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녀와 전연우의 사이를 개변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면... 이번 기회에 다시 해보면 된다.장소월의 출국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아무도 그녀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방학이
호숫가 조각상 아래, 곧 졸업할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소월아, 너 이 그림 콩쿠르에 나가면 분명 1등 할 거야.”가을바람이 어깨 위 짧은 머리카락을 휘날렸고 눈 부신 햇살이 하얗고 투명한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백조처럼 매끈히 뻗은 목에 걸려있는 은색 목걸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장소월이 붓을 들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고마워.”4년이 지나 22살이 된 장소월은 18세 소녀의 앳됨을 벗고 어느덧 성숙함이 깃들어 있었다. 한번 미소를 지을 때마다 여자의 향기가 듬뿍 새어 나왔다.옆에 있던 금발의 여자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나 올해 졸업 작품 완성 못 할 것 같아. 나한테 실망감까지 들어. 허 교수님은 너 같은 학생이 있어서 참 좋으시겠어. 나와는 달리 이렇게나 많은 상을 땄으니...”장소월이 풀이 죽어있는 그녀를 북돋아 주었다.“새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분명 할 수 있을 거야.”오후 학교에 돌아온 뒤, 장소월은 졸업 작품으로 제출할 가장 만족스러운 다섯 장의 그림을 꺼냈다. 좋은 작품은 상을 받게 된다.1등은 두둑한 상금뿐만 아니라 괜찮은 직장까지 얻는다고 한다.졸업식이 끝나고 난 뒤, 급히 직장을 찾는 건보단 커피숍에 돌아가 아르바이트를 했다.앞치마를 입고 있을 때, 함께 일하던 리사가 신문을 들고 흥분한 얼굴로 장소월을 향해 달려왔다. 손님으로부터 많은 팁을 받았을 때에만 보이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소월아, 이 남자 봐. 파리 글로벌 잡지에 처음 이름을 올린 한국 남자야.”장소월은 리사가 소문난 얼빠라는 걸 잘 알고 있다.대체 얼마나 잘 생겼길래 저토록 흥분해있는 걸까?장소월은 오랫동안 국내 소식을 찾아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소식은 모두 다른 사람의 입에서 전해 들었었다.“그래? 축하한다고 전해줘.”“소월아, 너 너무 냉정해. 얼굴 한 번만 보면 너도 반할 거야.”“리사야, 남자한테 기대선 안 돼. 이제 그만 보고 일해.”장소월이 머리를 묶으며 쟁반을 들었다. 리사는 포기하지 않고
세계 무수한 기업들이 파산하자, 전연우는 대량의 해외 회사를 매입했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그 행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각종 신문과 TV에 보도되었다.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전연우는 세상의 관심을 받는 인물로 떠올랐고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장소월은 그 모든 것이 우연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그녀가 알고 있는 바로는 전연우가 매입한 곧 파산할 기업들은 향후 5년 내 전 세계 500위 안에 들어갈 회사들이다.전연우의 행동은 처음엔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전연우가 부자 랭킹 순위권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그가 그리 간단한 인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의 이름은 악마의 주문과도 같이 장소월의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고 줄곧 맴돌았다.아무리 먼 곳으로 도망쳐도 그에게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몇 년간 그의 변화에 대해 장소월은 이런 추측을 했었다.전생의 전연우가..혹시 그도 돌아온 게 아닐까.만약 정말 그렇다면...가을바람이 바짓자락을 스치자 그녀는 소름이 돋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했기를 간절히 바랐다.오후 직원 교육 시간, 카페 매니저가 말했다.“다음 주 저녁 8시, 크리스탈호 크루즈에서 큰 파티가 열려요. 본사에 일손이 부족해 소월, 리사... 5명이 가서 도와야겠어요. 일당은 평소의 3배, 그리고 만족할만한 포상금도 챙겨줄게요. 운이 좋으면 손님이 준 팁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장소월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한데 저 다음 주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여는 전시회에 가봐야 해서요.”매니저는 장소월의 선생님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저명한 화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팬이기도 했기에 장소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회의가 끝나자 리사가 조금 실망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소월아, 너 없으면 나 분명 외로울 거야.”장소월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전시회가 끝나고 시간 되면 나도 곧바로 가서 도울게.”허 교수님의
한참 고민하던 소현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천효연의 납작한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그럼 아가씨도 강지훈 씨의 아기를 가져요. 그럼 자꾸 나한테 와서 자지 않을 거잖아요!”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녀는 은빛 치아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주변 도우미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바보가 이토록 충격적인 말을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주인님과 효연 아가씨의 잠자리 빈도를 생각하면, 주인님이 허락만 하셨다면 그들의 아이는 이미 몇 명은 됐을 것이다. 이 바보는 입만 열면 효연 아가씨의 급소를 찌르곤 한다! 규영과 미진도 소현아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천효연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자 규영이 황급히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했다. “효연 아가씨, 저희 현아 아가씨는 어린아이와 같은 분이라 이런 걸 잘 모르십니다. 부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소현아는 긴장감에 옷자락을 꽉 말아 쥐며 말했다.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나요?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좀 멍청해서 그래요. 혹시 제 말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말해주세요. 사과할게요.” 그녀는 자신이 조금 떨어지는 지능 때문에 자주 말실수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이것 때문에 자주 괴롭힘을 당했었다. 한때는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상황을 알아차린 엄마가 말해주셨다. 마음속에 말을 담아두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니 그냥 용감하게 말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릇된 말을 했을 땐 제대로 사과해서 용서를 빌면 된다고도 하셨다. “맛있는 거 줄게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네?” 한참을 기다려도 천효연이 대답하지 않자, 소현아는 탁자 위의 간식을 집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천효연의 불쾌한 향수 냄새가 또다시 코를 찔렀다.소현아는 즉시 코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또다시 천효연을 화나게 할까 봐 최선을 다해 참아냈다. 천효연은 자신 앞에 내밀
잔뜩 일그러지는 소현아의 얼굴을 본 천효연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 바보가 먼저 선수를 친다고? 천효연은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소현아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배를 만지려 했다. “현아 씨, 아기 태어나려면 몇 달 남았어요? 나도 아이 정말 좋아해요. 전에 현아 씨가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강지훈 씨가 그랬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나더러 맡아 키우라고요.” 농담하듯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소현아를 쳐다보는 그 눈동자엔 독사 같은 살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소현아는 불시에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고 생각한 천효연은 득의양양하게 아래턱을 들어 올렸다. 소현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커다란 눈동자를 사방으로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불안하고 다급한 표정이었다. “현아 아가씨!” 규영과 미진이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애처롭게 서 있는 소현아를 본 그들은 급히 달려왔다. 소현아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규영은 곧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화장실로 모셔다드릴게요.” 그녀는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소현아를 1층 화장실로 데려갔다. 화장실 안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효연 아가씨, 죄송합니다. 요즘 현아 아가씨의 입덧이 좀 심해요. 임산부라 요즘 많이 예민하십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현아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주인님 성격 아시죠?” 미진은 느긋하게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으며 경고를 담아 공손하게 말했다. 천효연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고작 도우미 주제에 감히 내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고 해?” 미진은 겁을 먹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천효연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잠시 뒤, 화장실에서 구역질 소리가 멈췄다.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