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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잿빛은하수
채원은 은하의 단호한 말에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웃었다.

“언니는 진짜... 후훗...”

그리고 일부러 말을 흐리며 은하의 반응을 기다렸다.

‘봐, 또 욱하겠지? 예전처럼 나서지도 못하고 입 꾹 다물겠지.’

하지만, 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흥미도 없는 눈빛으로 채원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뭐야, 왜 아무 반응이 없어?’

채원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곧 억지로 화제를 돌렸다.

“아, 언니. 이 가방 진짜 예쁘지 않아요? 경울시에선 여기에만 들어온 한정판이에요. 형부 어머님 선물로 딱 일 것 같은데, 언니 생각은 어때요?”

은하는 대충 쓱 보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별로야.”

채원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잠시 입꼬리를 다물었다가, 마치 기회를 잡은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언니, 그건 언니가 좀 가볍게 본 거예요. 이 가방 디자인, 작년에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에서 금상 받은 소피 디자이너님 작품을 오마주한 거예요.”

“겉에 들어간 이 패턴도 그냥 무늬가 아니고, 북두칠성 별자리 구조를 정밀하게 배치한 거라니까요? 이런 디테일, 아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은하는 그 말을 들으며, 표정이 잠시 흐트러졌다.

‘이건, 내가 한 건데?’

채원은 은하의 미세한 반응을 자기 말에 당한 거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더 우쭐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요즘 이런 상징성과 예술성의 조화를 브랜드에 녹이는 게 트렌드예요. 언니도 알면 좋을 것 같아서요.”

‘진짜... 들을수록 민망하네.’

은하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가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 디자인에 네가 말한 고상한 의미 같은 건 없어. 그건 단순하고 직관적인 의도로 만든 거야. 퀄리티를 지키면서도, 소비자가 자신의 매력을 쉽게 인식하게끔. 그게 전부야.”

채원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언니... 언니가 요즘 ‘전업주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거, 충분히 이해해요.”

“근데 그렇게 아무 근거 없이 디자이너의 의도를 곡해하는 건 조금 아니죠. 혹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런 얘기 했다가, 언니 수준 오해받으면 어쩌려고요?”

‘와... 대놓고 비웃네. 내가 만든 디자인 앞에서, 나한테 강의하는 건 또 처음 본다.’

은하는 잠깐 채원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 아닌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말을 안 하려고 했다.

그때, 김영미 대표가 돌아왔다.

그리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선생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우리 재무팀에서 입금 완료됐다고 하네요. 여기 확인증이에요.”

은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소로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확인증을 조심스럽게 받아 든 은하가 가방에 넣고 자리를 뜨려던 찰나, 채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잠깐만요!”

은하가 아무렇지 않게 돈을 받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듯하다.

“왜 대표님한테 돈을 받아요? 설마 형부가 준 물건 들고나와서 판 건 아니죠? 그건 형부의 진심이 담긴 선물인데, 그렇게 함부로 처리하면 안 되지 않아요?”

은하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눈빛은 차가웠고, 말투는 더더욱 무심했다.

“망상은 병이야. 치료받아.”

그 한마디를 남기고, 조용히 매장을 빠져나갔다.

‘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진짜 제정신이 아니야.’

채원이 당황해하며 은하를 따라 나가려는 순간, 김영미가 그녀를 붙잡았다.

“저기... 혹시 은하 디자이너님의 가족분이세요? 조금 오해하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요, 은하 디자이너님은 저희 매장에 아무것도 팔지 않았어요.”

“제가 드린 건 정당한 디자인료예요. 저분은 저희 브랜드의 정식 외주 디자이너시거든요. 매 분기 새로운 디자인을 납품해주고 계세요.”

“네?”

채원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남은하가... 디자인을요?”

김영미는 미소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요즘 저희 매장에서 제일 잘 나가는 ‘별의 바다’ 시리즈랑 ‘심연’ 시리즈 아시죠? 다 은하 디자이너님의 작품이에요. 실력이 진짜 좋아요.”

채원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건 나도 엄청나게 좋아했던 라인인데? 그걸 만든 사람이 남은하라고?’

...

매장을 떠난 은하는 도로에 서서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조용히 자조했다.

‘시어머니 생신 선물...’

‘내가 왜 아직도 그런 걸 고민했을까? 진짜 우스워...’

석진이 은하를 하대하며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다면, 정후는 그저 방관자였고, 정후의 어머니, 진양숙은 그 모든 무시와 냉대를 처음부터 만든 ‘장본인’이었다.

진양숙은 처음부터 은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석진은 유씨 가문의 유일한 손자라, 그녀는 석진이 세 살 때부터 식사를 함께하도록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반복하다 보니, 은하랑 석진 사이의 끈도 서서히 닳아 없어졌다.

결국, 아들의 마음도 은하에게서 멀어졌다.

이제 곧 정후랑 이혼할 처지인데, 진양숙의 기분을 위해 은하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선물을 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진양숙의 생일잔칫날.

회갑 같은 큰 잔치는 아니었지만, 유씨 가문의 가까운 친척들과 주요 인맥들이 전부 모여 상당히 화려한 분위기였다.

크고 번쩍이는 샹들리에 아래, 금빛으로 꾸며진 연회장엔 따뜻한 웃음과 말소리가 가득했다.

진양숙은 백옥 빛 드레스를 차려입고, 남편 유일재와 함께 주석에 앉아 가족들과 미소를 띠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형수님이 방금 막 정후랑 석진 이야기를 꺼내시던 참이었어요.”

“석진이 전보다 훨씬 의젓해졌네요. 정후가 애를 잘 키웠어요, 정말.”

“정후도 정말 효자죠. 매년 형수님 생신 선물 사 오는 거 보면 하나같이 기가 막히게 고급스럽잖아요. 올해는 뭘 준비했는지 궁금하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슬슬 풀어보셔야죠?”

“...”

정후가 요즘 유씨 가문의 실질적인 후계자로 입지를 다졌기에, 모두가 정후와 석진을 중심으로 분위기를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선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 뭐야? 올해는 안 가져왔나?’

‘설마... 준비 안 된 건가?’

‘...’

칭찬이 점점 의문으로 바뀌고 있었다.

정후랑 석진은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생신 축하 인사를 드렸다.

사실 예전엔 늘 이 역할을 은하가 맡았던 지라, 정후는 따로 비서를 시켜 선물을 준비하는 습관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정후는 미리 은하에게 문자까지 보냈다.

‘그 정도 말했으면 챙기는 게 예의 아닌가?’

하지만 은하는 오지도 않았다.

진양숙은 아들과 손자의 어색한 표정을 단번에 읽어냈고, 잔뜩 체면이 구겨진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은하가 뭔가 준비하다 늦은 모양이네. 선물은 그 애가 들고 오고 있을 테지?”

“할머니, 그게 아니고...”

곁에 있던 석진이 입을 열려던 찰나, 정후가 잽싸게 막아섰다.

“맞아요. 석진이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해서 저희 먼저 왔어요. 은하 씨는 지금 오는 중입니다. 제가 전화해 볼게요.”

“전화 안 해도 돼요. 왔으니까.”

입구 쪽에서 또렷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울리자, 정후는 몸을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순간 그쪽으로 쏠렸고, 그곳엔 편안한 티셔츠에 슬랙스를 입고, 두 손 빈 채 당당히 걸어오는 은하가 있었다.

‘선물? 웃기고 있네. 이 집안에 며느리로 남을 생각도 없는데, 무슨 선물이야.’

은하는 굳이 꾸미지 않은 차림으로 그 어떤 격식도 따르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에 섰다.

정후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진양숙의 표정에는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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