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에 진영숙은 마음이 아프다 못해 화가 날 정도였다.“네가 가지 않으면 내가 찾으러 가마.”진영숙은 강이한의 어머니로서, 자기 아들이 홀로 늙어 죽는 모습을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예전의 진영숙은 이유영을 집 밖으로 내쫓지 못해 안달이었지만, 지금의 진영숙은 이유영이 제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이한이 얘기했다.“그런 거라면 다시는 이 집에 돌아오지 마요.”그 말을 들은 진영숙이 그대로 멈춰 섰다.고개를 돌려 강이한을 쳐다보았다. 강이한의 차가운 눈은 그의 굳은 결심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강이한!”“그만 놓아줘요... 네?”“...”놓아주라니.진영숙은 강이한이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그동안 이유영이 사라진 뒤, 강이한은 많은 생각을 했다.이유영에게 강이한은 뭘까.왜 두 번째 삶에서도 이유영을 데려올 수 없는 걸까.그건 아마도 이유영이 수많은 절망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강이한이 아무리 매달려도 이유영이 돌아보려 하지 않은 것이다.그래서 파리에서 단역시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강이한은 이유영을 놓아주기로 결심했다.계속 집착해 봤자 이유영이 도망치며 숨어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그런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이 싫었다.그래서 이제는 이유영을 포기하려고 한다.진영숙은 가슴 아파하며 강이한을 쳐다보았다.“강이한!”‘정말 이대로 이유영을 포기하는 거야? 포기가 아니라... 놓아주는 거라고?’하지만 그런 강이한의 슬픔은 누가 다독여줄 수 있는가.강이한이 감내하고 있는 고통은 얼마나 큰 고통인가.그 생각에 진영숙은 가슴이 아팠다.“그만 하세요.”“너는 어떻게 하려고!”진영숙이 거의 울부짖다시피 물었다.“...”마음이 무거워졌다.저번 생의 강이한은 미친 듯이 기도하며 이유영이 행복하기를 빌었다. 그리고 지금 이유영은 아주 행복했다.강이한은 그거면 되었다.딸칵.라이터에 불을 붙인 강이한이 이어서 얘기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이유영을
“예전에는 제가 유영이를 찾으러 가는 걸 제일 싫어하셨잖아요.”그 말을 들은 진영숙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리고 화가 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꼭 나랑 싸워야겠어?”예전의 진영숙은 정말 강이한이 이유영을 찾아가는 것을 싫어했다.이유영이 돈도 없으면서 강이한에게 매달리는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때 진영숙은 이유영을 뼛속까지 싫어했다.게다가 강이한이 이유영 때문에 다른 여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결혼도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진영숙은 모든 화를 이유영에게 돌려버렸다.하지만 지금, 몇 년의 시간 동안, 진영숙은 강이한이 이유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게 되었다.게다가 소월이가 생긴 뒤, 진영숙은 이유영의 임신을 막으려고 했던 시절이 후회스러웠다.할머니로서, 친손녀를 미워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진영숙은 소월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소월이가 유치원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얼른 하원하는 소월이를 데려오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진영숙이 어떻게 해도 그 아이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그 사실이 가장 마음 아팠다.“...”그 말을 들은 강이한이 입을 다물었다.“너, 뭐 하자는 거야? 말이라도 좀 해봐!”강이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진영숙이 화를 냈다.“앞으로 유영이를 만나러 가지 않을 겁니다.”“너...”진영숙은 자기 귀를 의심할 뻔했다.이온유를 보낸 것이, 이유영을 데려오기 위함이 아니었나? 가뜩이나 화가 나 있었던 진영숙은 강이한의 말에 속이 더욱 답답했다.“소월이도 파리로 왔대!”그 아이만 떠올리면 진영숙은 마음이 이상했다. 당장 그 아이를 본인 곁에 데려오고 싶은 생각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진영숙은 아이가 본인을 싫어할까 봐 억지로 끌고 오지도 못했다.그 말을 들은 강이한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진영숙은 강이한이 이소월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윽고 강이한이 얘기했다.“앞으로 이소월의 아버지는 엔데스 신우예요.”“...”그
앞으로 소은지가 파리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눈에 훤했다. 아마 양쪽으로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겠지.소은지가 이어서 한 말이 더욱 소름 끼쳤다.소은지는 이유영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이 사건은 엔데스 명우뿐만이 아니라 엔데스 현우까지 알고 있다고. 그래서 엔데스 현우가 죽어도 그 자리를 주지 않는 것이라는 것도!그 말을 들은 이유영은 한참이나 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어서 숨을 꾹 참았다.이윽고 이유영이 얘기했다.“떠나자, 은지야.”떠난다면 이 모든 것을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이유영이 봤을 때 이곳은 완전히 엉터리인, 최악인 늪이었다.“엔데스 현우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고?”“응.”“...”원래도 최악이었는데, 이제는 탈출할 곳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엔데스 명우와 엔데스 현우는 다 소은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소은지를 죽도록 미워하면서 죽이고 싶어 할 것이다.“유영아.”“은지야, 엔데스 현우는 마지막까지 너한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거야. 더 복잡한 일이 남아있을 거라고.”“...”더 복잡한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뭐가 더 힘들겠는가.아무리 힘들어도 소은지는...이유영은 궁지에 몰린 소은지가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소은지는 항상 휘황찬란한 삶을 살아왔으니까 말이다.그래서 이유영은 그런 소은지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지금 소은지의 모습을 보면...“너도 잘 알잖아. 엔데스 현우가 너한테 복수하기 위해서 죽어도 알려주지 않을 거란 걸.”그게 중요한 것이었다. 지금 모든 문제는 엔데스 현우에게 있다.“그렇지.”그렇게 말하는 소은지의 말투에서 고통이 묻어났다.“은지야!”“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그 말에 이유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유영도 가족이 없었던 사람이니까 말이다.임소미를 만난 후에야 어머니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지금의 소은지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게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말만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3일 뒤에 연회가 있어요. 연이를 도와줘요.”하선희가 화제를 돌려버렸다.“그래.”할리 민상이 고개를 끄덕였다.3일 뒤, 어르신의 생신 연회가 있을 것이다. 엔데스 현우는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이유영이 돌아왔다.정국진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잠적해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이 어디서 돌아온 것인지 몰랐다.이유영은 돌아오자마자 엔데스 저택으로 왔다. 이유영을 본 소은지는 심경이 복잡해서 이유영을 품에 안은 뒤 얘기했다.“돌아오지 말라고 했잖아.”말은 그렇게 해도 소은지는 아직도 이유영이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강이한이 얼마나 집착이 심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네가 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어!”그 말을 듣는 순간 소은지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사실 소은지도 알고 있었다. 소은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이유영은 소은지가 파리에서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 지를...“강이한이 네가 돌아온 것을 안다면 또 집착할 거야.”“그래도 강이한 때문에 평생을 숨어서 살 수는 없잖아.”편하고 조용한 삶은 좋지만, 이유영이 뭔가를 잘못한 사람도 아닌데, 왜 피해야 하는 간 말이다.소은지는 이유영의 말을 듣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걸 보니 다행이네.”“네 어머니는...”거기까지 얘기한 이유영이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어머니라는 건 대체 어떤 존재기에 소은지가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소은지가 어머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았을 때, 소은지는 그런 어머니를 포기해서라도 엔데스 명우의 협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또 결국 떠나지 않고 여기 남게 되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을 보면서 얘기했다.“나는 많은 일을 잊어버렸어.”“...”그 말을 들은 이유영이 약간 멍해했다.“그게 무슨 뜻이야?”“나도 모르겠어.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을 잊어버렸는데..
그렇게 되다 보니 할리 가문은 엔데스 현우가 정말 소문처럼 변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그 생각에 하선희의 얼굴이 더욱 차갑게 식어버렸다.“알겠어요!”할리 연은 하선희 앞에서 반박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양딸이다 보니 하선희가 말하는 것에 모두 따르게 되었다.하지만 속으로는...할리 연은 자기만의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들어보니 오늘 준비했다던데...”할리 연은 그 교통사고를 떠올리며 하선희를 쳐다보았다.“이렇게 경고해도 물러나지 않는 걸 보니 간단한 녀석이 아니야.”“...”“그러니까 네가 해야 하는 일이 더욱 힘들고 고될 거야.”하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오늘 사건이 그저 경고라고?’할리 연은 그 생각에 이를 꽉 깨물었다.왜 소은지를 바로 죽이지 않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선희는 할리 연을 보면서 얘기했다.“연이야, 나한테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러니 죽기 전에 너희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어머니, 그런 말은...”하선희의 말을 듣는 할리 연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할리 가문에서 하선희는 아주 지위가 높다. 그리고 할리 연이 엔데스 현우와 결혼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선희를 제외하면 할리 연을 도와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는... 버림받을 수도 있다. 할리 연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오래오래 정정하셔야죠.”“그래...”할리 연의 말을 들으면서 하선희는 씁쓸하게 웃었다.“하늘이 나에게 내린 벌일지도 모르지.”한숨 섞인 그 말은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하선희는 무리해서라도 할리 연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치워버릴 것이다.“어머니.”“그래, 이제 돌아가.”할리 연이 뭐라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하선희는 들어줄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그저 손을 흔들 뿐이었다.할리 연은 그저 하선희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그래야 얻을 수 있는 게 많았으니까 말이다.하선희가 쇠약해진 후, 감정마저 불안정해져서 지금 하선
정말 그러할까?만약 엔데스 현우의 말이 그런 뜻이라면... 파리의 귀족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울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이런 방법으로 나한테 복수하는 거예요?”확실한 명분도 주지 않고 소은지를 곁에 둔다면, 소은지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소은지는 숨이 턱 막혔다.엔데스 현우는 의미심장하게 소은지를 쳐다보더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엔데스 현우가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소은지가 물었다.“알고 있는 거예요?”엔데스 명우가 소은지를 협박하고 있다는 것.그리고 더 나아가 엔데스 명우가 약점으로 쥐고 있는 ‘그 사람’의 정체까지.소은지에게 왕비의 자리를 내주지 않겠다는 것은, 엔데스 명우한테서 ‘그 사람’의 소식을 얻지 못한다는 것과 같았다.엔데스 현우는 정말 악독한 사람이었다.이런 방법으로 소은지에게 복수하다니...소은지는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아렸다.엔데스 현우가 소은지를 보면서 말했다.“알죠.”“그 사람이 누구인지도요?”그 사람은 바로 소은지의 어머니였다.소은지가 엔데스 명우한테서 원하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정보라는 걸, 엔데스 현우도 알고 있는 걸까?엔데스 현우는 소은지를 바라보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얘기했다.“알아요.”“...”그 순간 세계가 조용해졌다.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하지만... 소은지는 두 사람의 손바닥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조사하지 마요. 그렇다면 살아서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그 말을 끝으로, 엔데스 현우가 떠났다.소은지는 거의 바닥에 쓰러지듯 풀썩 앉아버렸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엔데스 현우도 알고, 엔데스 명우도 안다.그런데 하필 그 두 사람은... 소은지를 극도로 증오하는 사람이 아닌가.엔데스 현우가 이 소식을 알려준 것은 소은지에게 희망을 포기하라는 것과도 같았다.엔데스 현우가 말하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엔데스 명우에게 약점을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소은지에게는 설상가상이었다. ...할리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