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집착하지 않으면 강서희도 이러지 않을 테고, 그러면 이유영도 외삼촌의 말대로 자기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이혼을 한 순간부터 그녀는 강이한과의 모든 감정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강이한이 놓아주질 않으니 강서희와 한지음도 날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이유영은 조금씩 그 사람들의 추한 모습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 방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날이 밝았다. 강이한은 객실로 가기 싫었지만 이유영이 죽어도 그와 단둘이 있으려 하지 않아서 더 집착했다가는 반대 효과가 나올 것 같고, 밤까지 새워서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객실로 갔다. 이유영은 가운을 입고 손에 와인을 들고 창문 앞에 서있었는데 마치 밤의 요정 같았다. 핸드폰에는 강서희의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상대방이 불쾌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뭐야?” “너한테 통지할 일이 있어서.” “이유영?” 이유영의 목소리를 들은 강서희는 정신을 좀 차렸다. 그리고 시간을 한 눈 보더니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너 제정신이야? 이 시간에 전화하게?” 강서희는 늦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다. 원래는 9시까지 자야 하는데 날이 밝자마자 전화가 와서 아주 불쾌했다. 이유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냉소하며 말했다. “너보다는 제정신이야!” “너…….” “강서희, 나는 너와 달라. 넌 사람 뒤통수를 칠 줄밖에 모르는 어둠 속의 빈대야. 내가 전화한 목적은…….”이유영은 잠깐 멈추고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리고 계속 말했다. “너의 가면을 한 층 한 층 벗기는 것이야.” “흥, 허세는. 누가 널 믿겠어?” “그건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증거만 확실하다면 네가 강씨 가문의 사람이라 해도 별 수 없겠지.” 강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일까? 어쩌면 강이한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녀와의 집착을 통해 알 수 있듯 그 남자는 두려운 게 없고, 안중에 아무것도 없는 남자다. 하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강서희는 냉소하며 물었다. 예전엔 이유영이 자신의 앞에서 이런 표현력이 없었는데, 지금은……. 처음으로 이유영에게 그런 말을 들은 강서희는 마음이 불쾌했다. “그리고 너뿐만 아니라, 한지음도 기다리라고 해.” “그래, 기다릴게.” 강서희는 건방지게 말했다. ‘이유영이 지금의 자리에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었다면 벌써 움직였겠지. 오늘까지 기다릴 필요 있었겠어?’그러니까 강서희는 전의 흔적들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이유영이 절대로 아무것도 조사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증거들은 모두 이유영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강서희는 이유영이 발뺌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 전화를 끊은 후, 이유영의 기운이 점점 차가워졌다. 그녀는 일부러 강서희를 화나게 한 것이었다. 강서희를 자극해 목덜미를 잡으려는 거다.이유영도 그렇게까지 하기 싫었다. 하지만 돌아오면서 강이한이 한쪽으론 자기에게 집착하고 다른 한쪽으론 강서희 편을 드는 모습을 보고 결정했다. 증거들을 찾아서 강이한을 떨쳐내려고 마음먹었다. ……. 강이한은 정말 피곤했는지 하루종일 출근하러 가지 않았다. 점심을 먹을 때도 내려오지 않았다. 집사는 이유영 혼자만 있는 것을 보고 주방에 음식을 준비하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적당히 담아서 이유영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더러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이유영은 숟가락을 든 손을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 안가!” “하지만 대표님께서 사모님이 안 오시면 화내실 거라고…” 그 말이 집사의 입에서 나오니 좀 웃기긴 했지만 이유영은 그 속의 위협을 알고 있었다. ‘그 자식 정말…….’이유영은 심호흡을 하더니 테이블 위의 와인을 두 모금 마시고 화를 가라앉히고 일어났다. 그녀가 쟁반을 가지러 가려고 하자 하인이 공손하게 말했다. “사모님, 제가 할게요.” 이유영은 손을 내리고 생각했다. ‘나도 하기 싫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이유영은 쟁반을 테이블에 놓았다. 하지만 남자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물었다. “너 불만이 가득한 것 같은데?” “네 생각엔 내가 어떤 심정이어야 하는데?” “나와 재결합하면 네 생활도 좋아질 거야. 예전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면 좋잖아?” 이유영은 냉소하며 생각했다. ‘누가 들으면 예전에 그의 곁에서 엄청 행복하고 자유로웠는 줄 알겠네.’ “예전에 네 곁에서도 아무것도 못 했는데. 강이한, 너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이유영은 조롱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그녀는 분명 자기 와이프도 보호하지 못했다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강이한은 이불에서 나와 그녀에게로 다가가며 화난 말투로 물었다. “그래서, 결국은 지나갈 수 없다는 말이야?” “지금 내가 지나간 걸 물고 늘어진다는 뜻이야?” “이유영!” 이유영은 강이한의 분노한 눈빛과 마주쳤다. 원래 잠을 못 잔 데다가 방금 일어나서 그녀의 태도는 그를 도발하고 있었다. “밥 먹어!” “예전엔 미안해…….” 결국 말을 했다. 아직은 많은 일들이 조사 중이긴 하지만 그는 이유영이 자기 곁에서 멀어지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관계를 좀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유지하는 건 아무에게도 좋을 게 없으니까. “사과가 쓸모 있다면 내가 사과할 게. 미안해, 내가 널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러니까 날 놓아줘.” “너…….” 강이한은 말로 지금의 이유영을 이길 수 없었다. “이러면 너에게도 좋을 게 없어.”그의 뜻을 알아들은 이유영은 원래 안 좋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내가 프로젝트 두 개 배상해 줄 게.” 이유영은 프로젝트 두 개를 배상해 주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그와 엮이기 싫었다. “네 생각엔 우리 사이에 프로젝트밖에 없어?” “이혼할 때 나에게 준 걸 다 돌려주면 적진 않을 텐데?” “이 망할 여자가 정말!” 이유영은 말할수록 점점 심해졌다. 강이한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녀를 안고
강이한은 깊은 눈빛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일어난 일들은 모두 이유영을 가리켰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의혹들이 가득했다. 강이한은 혼란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봐?” 이유영은 강이한의 눈빛이 불편해서 불쾌한 말투로 물었다.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리고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예전의 일, 정말 너와 상관 업어?” 강이한이 물었다. 비록 전에도 이유영이 해명했었지만 지금 그는 이유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표정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유영은 그가 갑자기 이런 문제를 제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비웃으며 말했다. “상관있든 없든 너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 ‘진실이 어떻든 이 남자는 모두 나와 상관있다고 생각하는데 해명해서 뭐 해?’ “이유영!” “넌 네가 믿고 싶은 대로 믿잖아?” 강이한의 세계에선 항상 그랬다. 이유영은 그가 자신을 믿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믿는 건 오직 자신과 증거뿐이었다. 증거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 모든 증거가 이유영에게로 가리킬 때도 강이한은 더 많은 걸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많은 일이 일어난 지금에야 나에게 와서 물어본다고? 웃겨!’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자 강이한은 짜증 나서 머리를 긁었다. 어떤 일의 깊이는 조사할 수 없었다. 전에도 모든 증거가 이유영을 가리킬 때 강이한은 다른 걸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른 게 튀어나오자 모든 게 맞지 않았다. 지금도 모든 증거는 이유영을 가리키지만 그 속에 발견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었다. …….계좌이체 기록으로 봐서는 이유영에게로 가리키고 이유영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통화기록과 연결해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강이한은 협박을 통해 이유영을 홍문동에 잡아놓고 한 편으로는 과거를 조사했다. 이시욱이 홍문동에 왔다. “대표님!” “정말 아무것도 없어?” 전에 전화로 이유영이 인터넷 폭력을 당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시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없어
보기에는 강이한이 이유영을 강박하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사실 아무도 강이한 마음속의 화를 알 수 없었다. 이유영은 여전히 자신의 생활을 지냈다. 매일 출근하고 회의하고 강이한을 대응하고. ……. 이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나예요.” 전화기에서 박연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영은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돌아왔어요?” 이유영은 전화번호를 보니 강성건설이었다. “네, 같이 점심 먹을까요?” 박연준이 물었다. “…… 그래요.” 이유영은 망설이다가 승낙했다. 원래 그녀는 박연준과 만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의 그녀가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앞으로 업무상에서도 접촉을 피면 할 수 없었다. ‘강이한이 이 정도도 이해하지 않는다면…….’ 박연준의 전화를 끊고 이유영은 내부 호출 전화를 들고 말했다. “잠깐 들어와 주세요!” “네!” 전화를 끊고 지현우는 바로 들어왔다. “저 부르셨어요?” “네.” 이유영은 백지에 두 개의 번호를 적어서 지현우에게 건네주었다. 하나는 강서희가 예전에 그녀와 연락할 때 자주 사용하던 번호였고, 다른 하나는 탐정회사에서 조사해 낸 납치범의 번호였다. “이 두 번호의 통화기록을 조사해 주세요.” “언제 기록 말입니까?” 이유영은 눈을 감고 말했다. “한지음이 납치되던 전후요!” 원래는 이 일들을 탐정회사에 넘기려고 했는데, 지현우에게 맡기는 건 정국진에게 자신의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지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현우는 멈추고 이유영의 말을 기다렸다. 이유영은 진작에 잃어버린 자기의 은행카드 계좌를 적어서 건네주며 말했다. “이 계좌의 사용기록도 조사해 주세요. 어디에서 언제 사용했는지!” “이건 사장님 계좌인가요?” “네.” “잃어버렸었나요?” “네.” “그럼 왜 분실신고를 하지 않으세요?”이유영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유영도 전에 분실신고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을 겨냥하던 사람들은
“이유영!” 강이한은 화가 나서 이를 갈며 말했다. 이유영의 행동은 강이한의 인내심을 도발했다. “나와 박연준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이런 상황 빨리 적응해.” “흥.” 강이한은 코웃음을 지었다. ‘이 여자가 간덩이가 부었나.’ 하지만 이유영의 말은 확실히 그를 화나게 했다. 예전엔 고분고분 집에서 기다리던 여자가 지금은 업무량이 자기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이유영은 그의 태도를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너 우리의 일에 방해하지 마. 그렇게 하면 우리가 더 자주 만날 테니까.”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었다. 이유영이 일깨워지지 않았다면 강이한은 정말 방해하려고 했다. “어디서 먹는데?” “왜?” “가족 데려가면 안 돼?” “가족은 무슨.” 이유영은 말을 다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두 사람은 지금 서로 힘을 겨루고 있었다. 강이한이 제어하려고 할수록 이유영이 발버둥을 쳤다. 조금도 예전 같지 않았다. 강이한이 사무실에서 화를 내고 있을 때 이시욱이 들어왔다. “대표님.” 그는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여자가 출근하는 게 뭐가 좋아? 쇼핑하고 영화 보고 미용실에 가면 좋지 않아?” 강이한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이게 뭐야? 자기 아내와 밥을 먹으려고 해도 바쁜지 물어봐야 하고.’ 이시욱은 코를 만지며 말했다. “사모님께서 줄곧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그의 말은 강이한을 일깨워주었다. 전에 매달 충분한 용돈을 줘서 마음껏 쓰라고 했지만 이유영은 거의 사는 것이 없었고 명품들도 모두 강이한이 선물해 준 것이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출근하기 시작한 후부터 업무에 재미가 붙은 것 같았다. ‘이유영이 출근하는 걸 좋아했구나. 진작에 알았으면 내 밑에서 출근하라고 할걸. 인정하기 싫지만 그 여자는 확실히 인재야.” “참, 대표님. 통화기록 조사했습니다.” 이시욱은 기록을 강이한에게 건네주었다. 이시욱의 행동력은 확실히 강했다. 조
이유영과 박연준은 전에 갔었던 식당에 갔다. 박연준은 친절하게 스테이크를 썰어서 이유영의 앞에 놓았다. 이유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박연준은 앞에 놓인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이유영은 서류봉지를 박연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따가 보세요.” “급하지 않아요.” 박연준이 말했다. 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연준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유영 씨와 강이한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이유영은 마음이 철렁했다. 박연준을 보는 눈빛에도 엄숙한 빛이 스쳤다. 그녀는 박연준이 강이한을 언급하는 게 싫었다. 박연준은 날카롭고 깊은 눈빛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이유영이 어떻게 대답할지 난감해하고 있을 때 박연준이 말했다. “나에게 감출 생각하지 말아요. 그의 행동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유영은 안색이 창백해서 박연준을 바라보았다. ‘다 알고 있었어?’ 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박연준이 말했다. “유영 씨 외삼촌이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만약에 그가 안다면 강이한과 어떤 관계가 되겠어요?” ‘어떻게 될까?’공항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정국진이 세강그룹에 손을 쓴 것이었다. 그래서 로열 글로벌에게 손을 쓴 게 강이한이라는 걸 알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유영이 요즘 강이한의 주위를 맴도는 것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이유영은 박연준을 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 박연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게…” “유영 씨, 강이한에게 협박당한 거 아니죠?” 박연준이 물었다. 원래 좋지 않던 이유영의 안색은 그의 말을 듣자 더 차가워졌다. “당신도 외삼촌처럼 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할 건가요?” ‘외삼촌은 강서희와 한지음의 가면을 뜯는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전엔 나도 강이한과 이혼하는 게 끝일 거라고 생각했고.’그뿐만 아니라
이번엔 박연준이 준비가 없어서 그렇게 된 거였다. 만약 미리 방비했다면 강이한에게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이유영의 마음도 조여왔다. “연준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이유영은 매일 한 침대에서 잤던 자기도 강이한을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더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걱정되었다. 그렇게 쉽게 박연준과 로열 글로벌을 흔들었는데, 정말 화가 나면 어떻게 될지 두려웠다. “날 못 믿는 거예요? 아니면 유영 씨 외삼촌을 못 믿는 거예요?” “저…” 순간, 이유영은 박연준에게서 몰아붙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연준은 그녀가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손으로 펴주려고 다가갔는데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하지만 뒤통수가 남자의 다른 한 손에 닿았다. “이러지 마요.” “여기에 근심 걱정이 있어서는 안 돼요.” 이유영의 마음은 부드러운 박연준에 의해 약해졌다. 거절해야 하는데 산 같은 박연준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실, 연애하는 7년 동안, 이유영은 항상 강이한을 의지했다. 평생 의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그녀가 처음으로 강서희를 언급할 때 그는 차가운 태도로 그녀를 경고했다. 이유영은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강이한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평시엔 의지가 되었지만, 유독 강서희와 상관있는 일이라면 그렇지 않았다. 나중에 한지음까지 나타난 후, 강이한은 이유영의 세계에서 죽은 사람처럼 그녀 혼자 절망의 심연을 직면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는 한 번도 이유영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박연준의 손에서 전해오는 부드러움이 그녀에게 의지할 수 있는 느낌을 들게 했다. 그녀는 그런 느낌이 두려웠다.왜냐하면 이런 느낌은 빠져들기만 하면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울고 싶어요?”그녀의 촉촉한 눈시울을 보며 박연준의 말투는 더욱 부드러워졌다.이때 이유영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곁에서 떨어졌다.“이…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