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보호해 준다고?’소은지는 냉소를 지었다.어릴 때부터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녀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보호를 받은 적이 없었다.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단지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신을 잘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뿐이었다.엔데스 명우를 만나기 전까지 소은지는 자신을 완벽하게 지켜왔지만 그를 만난 후 그녀의 단단한 가면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그런데 엔데스 현우가 그녀를 보호해 준다니?’“유영아, 정말 웃기는 농담이야.”왠지 모르게 엔데스 명우를 떠난 이후로 소은지는 누군가에게 보호받기를 원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엔데스 현우를 만난 것은 또 다른 시련과 고통에 빠진 것이었다.“은지야...”“엔데스 현우의 조건은 내가 어머니를 잊고, 엔데스 명우와도 더 이상 어떤 교류도 하지 않는 거야.”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아무 말도 이을 수 없었다.소은지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이건 엔데스 현우가 나에게 하는 또 다른 보복일 뿐이야.”이유영은 할 말을 잃었다. 만약 이것이 정말 엔데스 현우의 보복이었다면, 소은지의 쓴웃음과 고통 어린 눈빛만으로도 그의 목적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 분명했다.그리하여 그녀가 혼수 상태에 빠진 후, 엔데스 명우와 엔데스 현우 사이에 생긴 변화에 관해서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엔데스 현우는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자였다. 그는 의사를 거의 죽기 직전까지 심문한 뒤 할리 가문에 내던졌다.이를 발견한 할리 가문 사람들은 그 의미를 즉시 파악했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특히 하선희와 할리 연은 의사가 할리 가문에 던져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할리 민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선희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당신은 참...”더 말하려 했으나 이미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결국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떠났다.할
하지만 이렇게 흉흉하게 들이닥칠 줄은 전혀 몰랐다.엔데스 명우뿐만이 아니라, 이유영마저 소은지를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됐어. 난 괜찮아.”이유영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은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얘기했다.괜찮다고 말하지만 소은지의 속은 아주 복잡했다.엔데스 현우가 바닥에서 약을 집어 남기에게 건넸다.“이게 뭔지 알아봐요. 그리고...”엔데스 현우가 소은지를 쳐다보았다.“얘기 나눠요. 난 밖에서 기다릴게요.”엔데스 현우가 소은지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이유영이 소은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준 뒤 자리를 비워주었다.남기는 그 약을 갖고 이유영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병실에는 소은지와 엔데스 현우만이 남았다.소은지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엔데스 현우는 의자를 가져다 소은지 병상 옆에 놓고 앉았다. 그리고 소은지가 마셨던 물을 몇 입 마셨다.이어서 얘기했다.“왕비의 자리를 내어줄게요.”“...”그 말에 방 안의 분위기가 차갑게 굳어버렸다.소은지는 엔데스 현우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기 위한 날카로운 눈빛이었다.엔데스 현우가 진심을 너무 깊이 감춘 것인지, 아니면 소은지의 눈빛이 그렇게 예리하지 못했던 것인지. 소은지는 결국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깊은 늪 같은 엔데스 현우의 눈을 보면서 소은지는 엔데스 현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소은지는 엔데스 현우가 소은지에게 왕비 자리를 왜 주지 않으려 하는지 잘 알았다.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말을, 왜 왕비 자리를 내어주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소은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엔데스 현우가 말을 이었다.“그 대신 어머니에 관한 건 모두 잊어요.”“...”그 말을 들은 소은지는 심장이 약간 아팠다.엔데스 현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왕비의 자리를 손에 넣는다면 엔데스 명우한테서 어머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가 엔데스 현우를 바라보면서 물었다.“그게 조건이
이 순간, 이유영은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의 눈을 바라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이유영의 태도는 아주 강경했다.이유영의 뒤에는 남기, 그리고 엔데스 현우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러니 오늘 소은지를 억지로 데려간다는 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다.게다가 엔데스 현우가 지금 돌아오고 있었다.결국 엔데스 명우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면서 돌아가 버렸다.엔데스 명우가 문을 나서는 그 순간, 이유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엔데스 현우가 돌아오자 남기가 다가가서 공손하게 인사했다.“돌아오셨군요.”“어떻게 됐습니까.”“유영 아가씨가 막아 나섰습니다.”남기의 말에 엔데스 현우는 한숨을 돌렸다. 이유영을 쳐다보자 이유영이 차갑게 얘기했다.“당신을 위한 일이 아니에요. 은지 때문에 그런 거니까.”소은지 때문이었다.지금 그들이 이곳에서 머무르는 건 일단 엔데스 명우와 엔데스 현우를 진정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몰래 소은지의 어머니를 찾아내려는 속셈이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어머니가 바로 파리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어쩌면 명문가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려고 할 때, 의료실에서 소식이 들려왔다.소은지가 깨어났다는 소식이었다.이유영과 엔데스 현우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바로 의료실로 뛰쳐 들어갔다.주용선이 소은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소은지는 온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수건처럼 겨우 몸을 가누었다.주용선이 얼른 의사를 불러왔다. 하지만 소은지의 곁에서 절대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이었다.의사가 소은지에게 주사를 놓아주려고 할 때, 주용선이 갑자기 막아 나섰다.“잠시만요.”순간 덜컥 겁이 났다.소은지는 미간을 찌푸리고 주용선을 쳐다보았다.주용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를 쳐다보았다.“이건 무슨 약이죠?”“...”의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용선은 의사의 마스크를 확 잡아 내렸다. 그 얼굴은 전에 봐왔던 의사가 아닌, 낯선 얼
그렇게 생각하는 하선희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소은지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일주일이 지나갔다.그 일주일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나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소은지였다.이유영은 그런 소은지의 곁을 지켰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멀리 떠나지 않았다.일주일이 지난 뒤, 엔데스 명우는 결국 인내심이 닳았다.“이러시면 안 됩니다!”엔데스 현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쳐들어오려는 엔데스 명우를 보고 남기가 그를 막아 나섰다. 말투는 공손했으나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함이 가득했다.엔데스 명우는 위험한 기운을 내뿜으며 얘기했다.“우리 사이에 이러지 맙시다. 비켜요!”“저희를 난감하게 만들지 마세요!”남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물러서지 않았다.그 순간 엔데스 명우의 눈에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이유영은 그 소식을 전해 듣고 걸어 나왔다.당장이라도 몸싸움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엔데스 현우도 이 소식을 들었으니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엔데스 명우 씨.”“비켜.”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을 보고도 강경하게 얘기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남기한테 얘기했다.“아저씨, 먼저 내려가 계세요.”남기는 약간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유영을 보더니 뒤로 물러났다. 다만 엔데스 명우가 소은지를 데리고 도망갈 것을 대비해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이유영은 엔데스 명우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은지를 데려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봤어요?”“할리 가문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엔데스 명우가 이유영을 보면서 차갑게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이유영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그렇다면 이곳에 할리 가문의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이곳에는 더 추가된 인원이 없어요.””추가된 인원만이 할리 가문의 사람이라는 건 너무 편협한 생각 아니야?”엔데스 명우의 날카로운 질문에 이유영은 바로 눈치를 챘다. 아무리 평화로운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이유
그동안 하선희는 고용인들도 그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 방의 모든 물건은 모두 하선희가 정리한 것이다.청소도 하선희가 직접 한 것이었다.그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그 아이를 되찾아오는 것을 생각하면서 방을 꾸몄던 것이다.자초지종을 모르는 사람이어도 그 방을 보기만 하면 그곳에 사랑과 정성이 가득 묻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앞으로 그러지 않을게요.”할리 연이 고개를 숙인 채 얘기했다. 하지만 속에서는 분노가 들끓었다.아무리 할리 연이 옆에서 하선희를 모시고 잘해주어도 하선희는 결국 그 아이를 잊지 못했다.“나한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지금 소은지는 혼수 상태라고 하니 난 소은지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만들 거야. 그러니 너도 얼른 준비해. 적어도 내가 죽기 전에...”“어머니!”하선희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할리 연이 말을 끊었다.하선희의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선희를 걱정하는 척은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할리 연은 하선희의 손을 꼭 잡고 얘기했다.“적어도 여동생이 돌아오는 것은 보고 가셔야죠.”그 아이가 돌아오는 것...그 생각에 하선희는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한숨을 내쉰 하선희가 얘기했다.“기다리지 못할 것 같아.”하선희의 몸은 이제 버틸 수 없는 정도까지 무너졌다.그 아이를 기다리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찾지 못한 것을 보면 어쩌면 운명이자 하늘의 뜻일지도 몰랐다.이제 하선희의 몸은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아무리 기다리고 싶어도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어머니!”할리 연이 더 무거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하선희가 얘기했다.“내 몸은 내가 잘 알아. 그동안 그 아이를 찾지 못한 걸 보면 아마 정말 못 찾는 것이겠지.”그렇게 말하는 하선희의 말투에는 고통과 슬픔이 묻어났다.그리고 조금의 절망까지 느껴졌다.“어머니...”“걱정하지 마. 내가 죽기 전에는 널 꼭 그 자리에 앉힐 테니까.”이제는 정말 생명의 끝에 다다를 때가 왔다.하선희는 동정심 가득한
“저를 그렇게 밀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저택에서 온 힘을 다해 소은지 씨의 목숨을 지키는 건 저 뿐이니까요.”그 말에 이유영이 미간을 약간 찌푸린 채 주용선을 쳐다보았다.차가운 눈빛이 지금은 날카롭게 번뜩이는 것 같았다.“할리 가문에서 사모님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이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그 말을 들은 이유영은 숨이 턱 막혔다.할리 가문에서 소은지가 얼마나 많은 일을 당했는지를 떠올리면 이유영은 참을 수가 없었다.“만약 시간이 되신다면 사모님이 깨어나기 전까지 곁에 계셔줬으면 합니다. 이건 여섯째 도련님의 얘기입니다.”“엔데스 명우가요?”“네.”“그렇게 착한 척하지 않아도 돼요.”할리 가문이 이 시점에 소은지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엔데스 현우의 곁에 선다는 건 이토록 위험한 것이다.엔데스 명우가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소은지를 엔데스 현우 곁에 붙이는 것이 바로 복수가 아니겠는가.그러면서 이제 와서 소은지를 걱정하는 모습이라니.이유영은 주용선의 말을 믿지 않았다.“여긴 내가 있으니 이만 물러가요.”이유영이 짜증스레 얘기했다. 전에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아주 증오했다.그러니 엔데스 명우의 사람도 마찬가지로 싫어할 것이다. 이유영은 주용선을 얼른 방에서 내쫓았다.주용선은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유영이 성격이 급하고 고집이 세다. 그렇기에 주용선이 더 버텨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결국 주용선이 방에서 나갔다.방에 이유영과 소은지만이 남았을 때, 이유영이 소은지의 손을 잡았다.차가운 소은지의 손을 느끼며 이유영은 이불을 덮어주었다.“은지야, 제발 눈 좀 떠봐...”이유영은 걱정 가득한 말투로 중얼거렸다.이유영이 왜 이곳에 남게 된 것인가.주용선의 말이 맞았다.만약 할리 가문에서 소은지의 상황을 알고, 소은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혹은 소은지를 아예 치워버리기 위해 기회를 노린다면...이유영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할리 가문에서 손을 쓰기 가장 좋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