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연회장 내부는 이제 어느 정도 다시 평정을 찾은 듯 보였지만,
그 평정은 진짜 고요가 아니었다.
잔을 부딪히는 소리, 테이블마다 들리는 가벼운 웃음,
웅성임이 적당히 섞인 공기…
겉으로 보기엔 화기애애했지만
모두가 조금씩 다른 의도를 품고 있었다.
민영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잔 옆에 놓인 냅킨을 괜히 접었다 폈다.
손가락 끝에는 아직 떨림이 남아 있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떨리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아까… 그 말.
“제가 있습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단순히 보안팀 직원의 멘트일 뿐인데,
아직도 가슴 안쪽이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안 돼… 이런 감정 가지면 안 돼.
나는 지금… 그런 위치가 아니야.
민영은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다잡으려 했지만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열감은 쉽게 식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조용히, 그러나 흐름을 바꾸는 기척이 다가왔다.
“정 사원님.”
테이블 옆에 서서
자연스레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는 남자.
강산.
그의 셔츠 소매는 정확히 손목에서 반 마디 위에 걸쳐 있었고,
수트 어깨선은 딱 맞아서 구김 하나 없었다.
매 순간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그러나 더 돋보이는 건 그의 눈빛이었다.
조용히 샴페인을 들고 있으면서도
눈만큼은 무언가를 계속 추적하는 듯했다.
“아까 놀라셨죠?”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와인병이 떨어지는 바람에 여기저기 소동이 많아서.”
민영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당황했어요.”
“보통 이렇게 큰 행사에서
사람들이 흥분하면 사고가 자주 납니다.”
강산은 잔을 살짝 기울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서 마실 때나 이동할 때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는 마치 본인이 직접 챙기겠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었지만
또한 ‘누군가가 이미 당신을 챙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한
미묘한 색도 섞여 있었다.
민영은 그 미묘함을 정확히 느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떨어졌다.
그러나 진짜 감정은 한 층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그 순간. 강산의 시선이 조용히 왼쪽으로 향했다.
민영이 언뜻 돌아보니 다른 테이블 바로 뒤쪽,
조명을 한 톤 비껴서 서 있는 남자 하나.
최강.
민영은 놀라지도 않았다.
그가 있을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의 자세는 완벽히 중립적이었지만
그 시선은 확실히 민영 쪽을 향해 있었다.
누가 봐도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민영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민영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강산이 잔을 낮게 들며 말했다.
“혹시… 밖에서 쉬고 계실 때 보안팀 직원이랑
같이 있었던 건가요?”
민영은 숨을 멈추었다.
“…네? 아… 그냥… 지나가다가”
“아까 보안팀 직원이 정 사원 있는 방향을
자주 확인하던데요.”
강산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은근한 뉘앙스가 있었다.
“제가 보기엔… 좀 특별해 보이던데.”
“특별…?”
민영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 떨림을 강산이 놓칠 리 없었다.
“네.”
그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었다.
“보안팀 직원이 특정 직원을 그렇게 자주 확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민영은 입술을 아주 살짝 깨물었다.
그 자그마한 움직임조차 강산은 놓치지 않았다.
“정 사원님.”
그는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저는 사람 관찰을 꽤 오래 해봤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보안팀 직원… 정 사원님에게
아주 관심이 있어 보이던데요.”
민영의 심장이 순간 흔들렸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건 그냥… 경호였을 뿐.
그러나 민영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강산은 민영의 침묵을 또 하나의 단서처럼 삼았다.
“그렇다고 놀랄 필요는 없어요.
정 사원님이면… 누구라도 관심 가질 수 있으니까.”
그 말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어딘가 달랐다.
그는 민영의 눈 속 움직임을 계속해서 읽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강산의 시선이 다시
민영 → 최강 → 민영 이렇게 흐르자,
민영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어졌다.
강산은 그것조차 놓치지 않았다.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 특별한 관계이신가 보네요?”
그 말은 민영에게서 숨을 뺏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에요.”
민영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저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나 목소리가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처럼 떨렸다.
강산은 그 떨림을 듣고 조용히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하하… 정 사원님은
숨길 수 있는 타입은 아닌 것 같네요.”
그는 비난도 아니고 조롱도 아니었다.
단지, ‘알겠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알겠다’는 눈빛이 민영에겐 훨씬 더 위험했다.
그 순간
탁.
민영의 옆자리로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림자처럼 다가온 존재.
최강.
“정 사원님.”
그는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리 괜찮으십니까.”
그는 강산을 잠시 바라보았다.
표정도, 눈빛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확실한 ‘경계’가 있었다.
강산도 그 눈빛을 정확히 읽었다.
그리고 아주 느린 속도로 미소 지었다.
무언가 도전하듯이.
“아. 보안팀 직원 분.”
그는 나긋하게 말했다.
“정 사원님이랑… 좀 잘 아시는 사이인가 보죠?”
최강의 눈빛이 아주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업무상 필요한 범위에서 알고 지냅니다.”
그 말은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감정을 숨기려는 사람의 답처럼 들렸다.
강산의 눈이 조용히 빛났다.
“그렇군요. 하필이면…
정 사원님 쪽만 유독 자주 확인하시길래
궁금했습니다.”
“정 사원님이 불편해하시는 상황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저희 역할입니다.”
“흠…”
강산은 천천히 잔을 들어 샴페인 한 모금을 마셨다.
“그렇게까지 신경 써야 할 정도의 직원인가,
그게 좀 궁금해서요.”
강산의 태도는 겉으로는 부드러웠지만
그 내부는 날카롭게 칼날이 서 있었다.
민영은 둘의 분위기가 부딪히기 직전의 유리잔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두 분…”
민영은 조심스럽게 두 사람 사이에 목소리를 넣었다.
“그냥… 오해 없는 방향으로…
말씀하시면 좋겠어요.”
그러나 그 말은 이미 너무 늦은 늦은 순간에 떨어졌다.
강산의 눈빛이 한층 더 묘해졌다.
“알겠습니다.”
그는 부드럽게 말하며 자리를 떴다.
“정 사원님. 나중에 행사 끝나고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민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공기가 조용히 식었다.
최강은 아주 잠시 민영을 바라보다 말했다.
“…불편하셨습니까.”
민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여전히 잔 옆에서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저… 때문에 두 분이… 괜히…”
“정 사원님 때문이 아닙니다.”
최강은 단호했지만 목소리는 따뜻했다.
“저는… 정 사원님이 안전한지
그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민영은 그 말에 가슴 깊은 곳이
서늘하게 따뜻해지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저… 안전해요.”
“아닙니다.”
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
“아까부터… 정 사원님을 향한
의도된 시선이 많습니다.”
민영은 숨을 멈췄다.
최강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보호 본능이 들어 있었다.
“…아무 일 없습니다.”
그는 한 번 더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제가 보고 있습니다.”
민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은 아까보다 더 깊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모르는 사이.
멀리서 강산은 조용히 세 사람을 모두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보안팀 직원이 저 정도 면밀하게 행동하는 건
정 사원이… 그냥 신입 사원이 아니라는 뜻이다.
강산의 눈빛이 어둡고 깊게 변했다.
당신… 대체 누구인 거지, 정 사원.
그리고 그 의심은 조직 뒤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본능이 되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도 끝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처럼 밝은 조명이 내려앉아 있었지만오늘 민영에게 그 길은 어딘가 깊고 조용한 숲속을 걷는 것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둠을 품고 있는 듯했다.그 어둠은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똑같이 쓰고,그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열어젖히고,그 이름을 빌려 회사 안 어디선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그 사실은 민영의 발끝을 한층 더 조심스럽고 떨리게 만들었다.최강은 민영을 한 발 앞에서 이끌고 있었다.그의 등은 하나의 벽처럼 단단했고,민영은 그 뒤를 따르는 동안 자꾸만 심장이 가벼운 떨림과 무거운 압박 사이에서 흔들렸다.“…대리님.”그녀가 조심스레 불렀다.최강은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말씀하십시오.”“…저… 정말… 저 때문인가요? 제가 뭘 잘못해서…”그 말은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만이 내뱉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저항 같은 목소리였다.최강은 걸음을 멈추었다.민영도 함께 멈춰섰다.그가 고개를 돌려 민영을 바라본 순간,민영은 그의 눈빛 속에서 폭풍 같은 경계심과 말하지 못한 마음의 미묘한 온도를 동시에 느꼈다.“정 사원. 이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그 말이 너무 단단해서 민영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잊었다.“당신을 노린 겁니다.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을.”그 말은 민영의 심장을 서서히 조여오던 비명을 조용히 풀어내는 듯했다.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누군가에게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더 큰 공포를 느꼈다.“…누가… 그런 짓을…”“그걸 밝히는 것이 저희의 일입니다.”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법무팀 빈 회의실.문도 닫지 못한 채 나연은 홀로 앉아 있었다.손끝이 떨려 물병마저 제대로 잡지 못했고,목으로 삼킨 물은 식도에서 거칠게 내려가는 느낌만 남겼다.‘이제…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지,혹은 이 모든 걸 털어놓고 비난을 견딜 수 있는지 생각하려 했지만,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경쟁사에서의 메시지였다.
전사 보안등급 B로 상향된 이후 라오네트 본사 건물의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으로 점점 조여들고 있었다.엘리베이터는 더 느리게 움직이는 듯했고,직원들의 대화는 평소보다 낮아졌으며,모두가 무언가 ‘말하지 않은 진실’을 감지하는 듯한 하루.그 중심에서 민영은 자신의 이름이 계속해서 모니터 화면에 떠오르는 장면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왜…왜 자꾸 제 이름이…그녀의 눈동자에는 혼란과 공포와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법무팀 긴급 소집“정민영 씨. 이쪽으로 와주세요.”팀장 박지현이 급히 민영을 불렀다.법무팀 회의실. 전원이 모인 자리에 이미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민영이 문을 열자 여러 시선이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그 시선들 속엔 걱정, 동정, 불신, 혼란 등 서로 다른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앉아요, 민영 씨.”민영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회색 조명 아래서 그녀의 긴 속눈썹이 떨리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만큼 선명했다.팀장이 말을 꺼냈다.“정민영 씨 계정에서 몇 분 전 또 외부 접근 시도가 있었습니다.그 중 한 번은 거의 실시간으로 내부 파일을 열려고 시도했어요.”민영은 숨을 놓쳤다.“…방금이요?”“네. 그래서 지금 더 이상 정 민영 씨 개인 문제로 볼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회의실 분위기는 민영의 심장 박동만큼 빠르게 굳어가고 있었다.“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보안팀과 법무팀이 합동으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똑~회의실 벽면 모니터가 갑자기 켜졌다.[실시간 경고]ID: Legal-23내부 문서 ‘계약 4-17’ 열람 시도사용자 위치: 불명접속 중…민영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저… 저 지금 아무것도 안 했어요…”그 말이 겁에 찬 속삭임처럼 새어 나왔다.그러자 박 팀장이 바로 말했다.“우리가 압니다. 그래서 지금 그게 더 문제예요.”민영은 자신이 발화하지 않은 말들이자기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처음 보았다.‘나는… 누군가의 손에 잡혀서 움직이고 있는 걸
법무팀의 공기는 평소보다 훨씬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마치 사람들 사이의 거리마다 투명한 장막이 내려앉아 시간마저 조용히 주저앉은 듯한 분위기.그리고 그 장막의 중심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강산. 그리고 유나연.나연은 민영의 책상 앞에서 아직 손을 완전히 내리지도 못한 채 굳어 있었다.마치 그 손끝이 자신의 모든 잘못을 증명하는 증거라도 되는 듯 움직일 수 없었다.“…강…산 대리님…”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가늘고자신도 듣기 어려울 만큼 떨려 있었다. 강산은 그 떨림을 정확히 들었다.고개를 살짝 기울인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오히려 조용히, 너무나 조용히 말을 꺼냈다.“무엇을 하고 계신 겁니까. 정민영 사원 자리에서.”질문은 짧았지만 그 뒤에 붙은 수많은 의심과 분석은 이미 그의 계산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나연은 손에 쥔 작은 USB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손바닥 안에 감추었다.“…아… 그냥… 정민영 씨 서류… 어제 좀 떨어뜨렸길래… 대신 정리해주려고…”거짓말.본인도 믿지 못하는 얇고 삐걱거리는 이유였다.강산은 그 거짓의 결을 한 번에 읽었다.그의 시선이 나연의 손끝으로 천천히 이동했다.“손을… 책상 위로 잠시 올려주시겠습니까.”“…네?”“부탁드립니다.”그 말투는 유난히 공손했지만 그 공손함이 더 무서웠다.나연은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을 올리려 했지만그때. 문이 열렸다.“나연 씨. 뭐 하세요?”문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목소리. 민영이었다.민영은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다시 들어오는 길이었다.그리고, 자신의 자리 앞에서 강산과 나연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췄다.“…두 분… 무슨 일이에요?”민영의 눈에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어제 저녁부터 이어진 불안의 잔향이 담겨 있었다.그 잔향은 아주 조용한 공기 속에서도 늘 민영을 흔들어놓았다.‘또… 내 자리에서…’강산은 민영의 출현을 예상했던 듯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정 사원님, 좋은
본사 18층 복도에는 어느 때보다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아무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그 침묵 자체가 사람들을 조용히 긴장시키는 듯한 순간.민영은 최강의 안내를 따라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그의 걸음은 빠르게 서두르지 않았지만한 걸음 한 걸음마다 ‘지켜주겠다’는 의지가 단단히 묻어 있었다.민영은 그가 반 발짝 앞서 걷는 등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지 못한 채 속으로 이렇게 중얼렀다.‘이 모든 게… 정말 나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이용하고 있는 걸까…’그 두 문장은 서로 다른 감정이었지만 결국 같은 무게로 민영의 가슴을 눌렀다.나연은 엉겁결에 강산의 뒤를 따라 보안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발걸음은 제대로 힘을 받지 못했고 말을 하려 해도 목 안쪽이 마르는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저… 정말… 오해하시는 것 같아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강산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오해라면 금방 풀 수 있습니다.”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투명한 검처럼 그녀의 마음을 베는 말이었다.‘오해면 금방 풀릴 것이다… 그러면… 내가 오해가 아니라는 건…’나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그리고 바로 그 순간, 자신의 휴대폰이 손 안에서 희미하게 진동했다.작고 은밀한 진동.나연은 몰래 화면을 살짝 확인했다.[익명]Step 6.내부 보안 강화 예상됨.상황 악화 시 ‘다른 대상’ 활용 가능.보고 바람.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나연의 눈동자는 절망과 혼란으로 크게 흔들렸다.‘다른 대상…? 그게 뭐야… 정민영 씨 말하는 거야? 아니면… 나?’휴대폰을 움켜쥐는 손에 미세한 땀이 스며들었다.그녀는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와중에도 자신을 무너뜨리는 문장을 깨닫고 있었다.‘이제… 내가 빠질 수도 있다는 뜻이야'… 나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뜻…’그 생각은 두려움보다 더 깊은 공허를 만들었다.최강과 민영은 보안팀 복도 끝에 도착했다.문 앞에서 최강은 멈춰 서서 민영을 돌아보았다.그의 표정에는 싸
다음 날 아침의 라오네트는 눈부신 겨울 햇빛과는 다르게 공기 속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을 품고 있었다.평소와 같은 출근 풍경,평소와 같은 인사,평소와 같은 복도 소리.그러나 민영은 그 익숙함이 더는 편안하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사원증을 찍고 18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민영은 조용히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어제… 정확히 무엇이… 시작된 걸까…’그 감각은 과장된 공포가 아니라 현실이 그녀를 향해 조용히 틈을 벌리며 다가오는 ‘전조’에 가까웠다.사무실 문을 열자 여느 때처럼 직원들의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민영을 스칠 때 아주 잠시 멈추었다.어제 민영의 계정이 잠금 조치를 당했고보안팀으로 긴급 호출됐다는 소문은 벌써 팀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정민영 씨… 어제 괜찮았어요?”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업무 파트의 대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민영은 어깨를 가볍게 굳히며 미소 지었다.“…네. 보안팀에서 확인해주셨어요. 문제는 제가 아니라… 시스템 쪽이라고…”그 말은 정확한 사실이었지만 그 말투에는 자신도 모르게 얇은 흔들림이 스며 있었다.그 흔들림을 바로 옆자리에서 느낀 사람이 있었다.유나연.나연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민영의 목소리 끝을 귀로 분석하듯 훑었다.‘흔들렸어. 확실히 흔들렸어. 그렇다면…’나연은 책상 아래에서 몰래 휴대폰을 쥐었다. 그 순간 화면이 즉시 켜졌다.[익명]Step 5.기존 경로 차단.새로운 접근 필요.가능 여부 회신 바람.나연은 손끝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또…? 이대로면… 나… 정말로…’눈앞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민영도, 최강도 나연의 깊은 동요를 보지 못했다.오전 9시 40분. 보안팀.강산은 어제 새벽부터 이어진 패킷 자료를 밤새 정리한 보고서로 묶어 다시 시스템에 돌려보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정리된 40여 개의 접속 로그.그리고, 그 중 17개가 정민영 계정으로 향한 이상 접근이었다.“……이건 이제 우연이 아니군요.”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의 라오네트는평소보다 조금 더 무거운 공기로 직원들을 맞이했다.복도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와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의 인사 나눔은언뜻 보면 평온했지만,그 속에서 민영이 느끼는 결은 확실히 달랐다.민영은 어제 밤의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 채사원증을 찍고 사무실로 들어왔다.책상에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민영의 모니터가 ‘툭’ 하고 켜졌다.그리고..[경고]사용자 계정: Legal-23자동 잠금 조치됨보안팀 문의 요망“…뭐…?”민영은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리가 잠시 하얘졌다.곧이어 옆자리 직원이 놀란 듯 말했다.“어, 정민영 씨. 로그인 안 되는데요?”그러자 다른 직원까지 고개를 들어 말했다.“법무팀 서버가… 일부 계정 잠금 걸렸다는 메시지 떴어요. 민영 씨 이름도 있던데?”순식간에 주변의 시선들이 민영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민영의 손끝이 살짝 얼어붙었다.“…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그 말은 순간적으로 사무실 공기 안에 맴돌았다.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그 침묵은 어떤 말보다 더 무거웠다.‘…정말로 나를 노리는 누군가가…내 이름을 계속 쓰고 있어…’그때 법무팀 문이 열리며리더인 팀장이 급히 들어왔다.“정민영 씨!”민영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네…!”“보안팀에서 당신 계정 때문에 긴급 확인 요청 들어왔어요. 지금 당장 내려가야 합니다.”사무실 안의 시선이 민영을 향해 일제히 쏠렸다.누군가는 호기심을,누군가는 걱정을,누군가는 은근한 의심을 담은 눈으로.그리고, 나연은 그 순간만큼은 숨조차 고를 수 없었다.‘들켰어? 아니야… 아직… 아직 아니야…’하지만, 그녀의 손끝은 명백하게 떨리고 있었다.보안팀 – USB 최초 감지“정 사원님, 이쪽으로.”강산이 직접 문 앞에서 그녀를 맞았다.민영은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잘못은 아직 없습니다.”강산이 단정히 말했다.“그러나 누군가가 정 사원님의 계정을반복적으로 사용하려 하는 건 사실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