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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화. 에필로그 (1)

Autor: 안나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8-31 18:01:36

태성과 연수가 오래된 공원 벤치 앞에서 서로의 평생을 약속한 뒤, 두 사람은 그다음 해 봄 결혼식을 올렸다.

화려한 재벌가의 결혼식이 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결혼식은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 조용한 예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얀 꽃잎이 바람을 타고 흩날리던 날.

태성은 신부 입장을 기다리며 몇 번이나 손을 움켜쥐었다 폈다. 수많은 임원과 기자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사람이었지만, 연수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순간만큼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길게 늘어진 베일 아래 드러난 연수의 얼굴은 맑고 평온했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를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던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피해 살아가던 희미한 그림자도 아니었다.

연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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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77화. 에필로그 (2)

    어느 늦가을 저녁이었다. 업무를 마친 태성과 연수는 태성그룹 본사 옥상 정원에 나란히 서 있었다. 재단의 지원 사업 보고를 위해 회장실을 찾았던 연수는 회의가 끝난 뒤에도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하늘은 붉은 노을과 짙은 보랏빛이 천천히 섞여 가고 있었다. 도시는 저물어 가는 햇살을 머금은 채 황금빛으로 빛났고, 하나둘 켜지는 불빛들이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태성은 말없이 재킷을 벗어 연수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안 추워요." "바람이 차." "오빠는요?" "나는 괜찮아." 연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그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태성은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고요한 침묵조차 서로에게는 편안했다. 얼마 후 연수가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여기 기억나요?" 태성은 천천히 웃었다. "잊을 수가 없지." "2년 전에도 여기였잖아요." 그날. 회장이 된다는 두려움을 처음으로 털어놓았던 사람. 그리고 그 두려움을 누구보다 담담하게 받아 주었던 사람이 연수였다. '잘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숨기지만 않으면 돼요.' 그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76화. 에필로그 (1)

    태성과 연수가 오래된 공원 벤치 앞에서 서로의 평생을 약속한 뒤, 두 사람은 그다음 해 봄 결혼식을 올렸다. 화려한 재벌가의 결혼식이 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결혼식은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 조용한 예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얀 꽃잎이 바람을 타고 흩날리던 날. 태성은 신부 입장을 기다리며 몇 번이나 손을 움켜쥐었다 폈다. 수많은 임원과 기자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사람이었지만, 연수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순간만큼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길게 늘어진 베일 아래 드러난 연수의 얼굴은 맑고 평온했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를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던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피해 살아가던 희미한 그림자도 아니었다. 연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의 얼굴로 태성을 향해 걸어왔다. 태성은 그녀 앞에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연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 사이에는 오래전 작은 카페에서 태성이 끼워주었던 반지가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하얀 꽃비가 두 사람 위로 쏟아졌다. 연수는 눈을 감은 채 환하게 웃었고, 태성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정말 내 옆에 있네.” 연수가 웃으며 눈을 떴다. “이제야 믿어요?” “아직도 가끔 꿈같아.” 연수는 그의 손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그럼 평생 확인해요.” 태성은 대답 대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75화. 가장 선명한 약속

    태성은 연수의 뺨에 남은 눈물을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손바닥이 연수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연수는 피하지 않고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연수야.” “네.” 태성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해.” 수많은 말을 나눴지만 그 한마디만큼 선명한 말은 없었다. 연수는 눈물 속에서 천천히 미소 지었다. “저도 사랑해요.” 태성은 한동안 연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그녀의 눈과 입술, 붉어진 뺨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했다. 연수는 눈을 감았다. 태성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처음에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듯 짧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 수없이 엇갈렸던 시간이 그 짧은 순간 안에 조용히 녹아들었다. 태성이 천천히 물러나려 하자 연수가 그의 코트 자락을 살며시 붙잡았다. 태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연수는 눈물을 머금은 채 그를 올려다봤다. “이번에는 제가 놓지 않을게요.” 태성은 연수를 다시 품에 안았다. 다친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스러웠지만,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한 포옹이었다. 연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그 소리는 두 사람이 모든 위기를 지나 마침내 같은 자리에 도착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태성은 연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연수가 다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74화. 희미하지 않은 사람

    태성그룹의 새로운 체제가 자리 잡기 시작한 뒤, 태성과 연수는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태성은 그룹의 신뢰를 다시 세우기 위해 연일 회의를 이어갔고, 연수는 새롭게 출범할 사회공헌재단의 운영안을 준비했다. 같은 건물 안에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좀처럼 긴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성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저녁 시간 비워둬. —무슨 일인데요? —중요한 일. 약속 장소는 화려한 호텔도,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레스토랑도 아니었다. 태성이 연수를 데려간 곳은 두 사람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오래된 공원 근처의 작은 카페였다. 공원 한쪽에는 어린 시절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벤치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여기였어요?” 연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시간이 처음 시작된 곳이니까.” 카페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 창가의 작은 테이블 위에는 소박한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한쪽에는 낯익은 포장지의 초콜릿이 놓여 있었다. 연수는 초콜릿을 발견하고 잠시 숨을 멈췄다. 아주 오래전, 혼자 파티장 구석에 있을때 서진 오빠에게 받았던 그 초콜릿이었다. 여기 공원에서 연수가 전해 주었던 그 초콜릿, 파티장에서 다시 만났을때 전해 주던 그 초콜릿, “이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요?” 태성은 초콜릿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잊은 적 없어.” “그렇게 오래전 일인데도요?” “나한테는 오래전 일이 아니었어.” 태성은 힘들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73화. 새로운 주인

    넓고 무거운 책상 너머로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강 회장은 저 자리가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앉고 보니 태성은 조금도 높은 곳에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의 삶과 회사의 미래가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온 듯했다. 화려한 권력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이었다. 태성은 다친 오른쪽 어깨를 천천히 움직였다.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둔하게 욱신거렸다. 폐공장에서 연수를 감싸 안던 순간이 떠올랐다. 장부가 불타던 모습. 이민우의 광기 어린 얼굴. 그리고 피 묻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살아달라고 울던 연수. 태성은 책상 위에 놓인 재단 설립 계획서를 바라봤다. 잠시 후 회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연수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수정된 재단 운영안이 들려 있었다. “첫날부터 너무 심각한 얼굴인데요?” 태성이 그녀를 바라봤다. “회장실에 앉으면 원래 이런 얼굴이 되는 건가 봐.” 연수는 천천히 회장실 안을 둘러봤다. 벽에 걸려 있던 사진들이 모두 내려간 탓에 공간이 조금 휑해 보였다. “사진은 왜 다 내렸어요?” “권력을 물려받았다는 느낌이 싫어서.” 연수는 벽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72화.다시 일어설 사람들을 위해

    “이게 뭐예요?” “새로 설립할 사회공헌재단 계획서.” 연수는 서류의 첫 장을 펼쳤다. 재단 설립 목적과 지원 대상, 운영 방식이 상세히 정리돼 있었다. 자금난에 처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 부당한 계약이나 대기업의 횡포로 피해를 입은 기업을 위한 법률 지원. 기업 비리 제보자 보호와 긴급 생계 지원. 도산 위기에 몰린 기업의 회생 프로그램까지. 연수의 눈빛이 깊어졌다. “정우산업과 같은 일을 겪는 기업을 돕기 위한 거군요.” “그래.” 태성은 그녀를 바라봤다. “재단 이사장을 네가 맡아줬으면 해.” 연수의 손이 서류 위에서 멈췄다. “제가요?” “이 재단은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곳이면 안 돼.” 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수 곁으로 다가왔다. “과거 우리 아버지들처럼 권력과 자금 앞에서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해.” 연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어줬으면 해.” 태성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네가 그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잖아.” 연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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