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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1장

시후의 말에 스티브 로스차일드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선생님, 헬레나는 노르웨이 여왕입니다. 캐나다 방문은 엄연한 정치 일정입니다. 이런 외교 일정은 수개월 전부터 조율되지요. 원래 방문 예정일은 다음 주 금요일, 지금으로부터 9일 뒤입니다. 갑자기 앞당긴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시후는 담담히 말했다.“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그러니 내 질문에만 답해.”스티브 로스차일드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아버지가 로이스와 헬레나 여왕과의 접촉을 바란 건 사실입니다. 캐나다 방문 시 로이스가 가문을 대표해 먼저 인사를 나누고, 가능하면 혼인 가능성까지 타진하길 원했습니다. 만약 기존의 계획대로라면 헬레나 여왕이 캐나다에 도착하면 로이스를 보내셨을 겁니다. 다만 지금은 특수 상황이라… 생각을 바꾸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시후는 고개를 저었다.“나는 바꾸지 않을 거라 보는데... 헬레나 여왕의 캐나다 방문은 철저히 별개의 사건이야. 사방보당과 연결 지을 이유가 없지. 게다가 일정이 갑자기 변경된다 해도, 로이스를 보내는 건 단지 인력 하나를 잠시 빼는 것뿐. 사방보당이 미국을 벗어날 위험이 커진다고 판단하진 않을 거라서. 오히려 득이 있지 않겠나?”시후는 말을 이었다.“게다가 지금 로스차일드 가문은 여론 압박이 심해. 안팎으로 추문이 잇달아 터지고 있으니까. 이럴 때 노르웨이 여왕과의 교류 이슈가 터지면,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을 텐데.”스티브 로스차일드는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그렇다 해도 저희가 노르웨이 왕실과 직접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계획대로라면 다음 주 방문이고,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며칠 더 필요합니다…”스티브는 속으로 초조했다. 시후와 사방보당이 미국에 남아 있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방보당이 미국에 남아 있는 한, 그것은 시한폭탄과 같았다. 사방보당이 미국에 남아 있고 자신의 손에 없다면 그는 끊임없이 위협 받을 것이다.게다가 지금 자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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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2장

“은… 은서준이라고요?!”스티브 로스차일드는 경악하며 외쳤다.“20년 전, 로스차일드 가문조차 손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은서준 말입니까?! 그럼… 그럼 어머니는 혹시 Samson 그룹의 안예선이신 겁니까?!”시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스티브 로스차일드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어쩐지!!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LCS 그룹 산하의 숏폼 플랫폼이 로스차일드 가문 관련 스캔들 영상을 끝까지 내리지 않았던 거군요. 은서준의 아들이셨다니…”그러다 그는 문득 깨달은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렇다면… 브루스 웨인스타인이 브루클린 교도소와 피터 주, 그리고 매트 로스차일드의 불륜 영상을 폭로한 것도… 모두 선생님의 계획이셨습니까?”시후는 태연하게 답했다.“맞아. 내 지시였어.”“하…”스티브 로스차일드는 충격에 휩싸였다.“역시 은서준 상무의 아들이십니다. 몇 번의 연속 타격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을 완전히 궁지에 몰아넣으셨습니다. 선친의 수법이 그대로 느껴집니다…”시후는 무심하게 말했다.“우린 다 어른인데, 그런 아첨은 필요 없지 않나.”시후는 셔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몇 번 터치했다.“아, 하나 빼먹었군. 내가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휴대전화는 계속 녹화 중이야. 우리가 나눈 대화 전부가 기록돼 있지.”스티브 로스차일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은시후 선생님, 그럴 필요까지 있었습니까? 저를 못 믿으십니까?”시후는 미소 지었다.“이곳에 로스차일드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 있으니, 혹시 몰라 기록을 남겨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스티브 로스차일드의 어깨가 눈에 띄게 처졌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시후와 협력하기로 합의한 과정 자체가 영상으로 남았다면, 그건 명백한 약점이 될 것이라는 걸 말이다. 이건 시후가 자신을 협박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었다.일단 시후가 사방보당을 미국 밖으로 반출하게 되면, 스티브 로스차일드 본인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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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3장

결국,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하지만 스티브도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다.그는 빠르게 상황의 득실을 따졌다.시후와 협력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한크 길버트가 자신과 아들을 쏴버릴 수도 있었다. 한크 길버트는 이미 완전히 시후의 통제 아래 들어간 것 같았다. 그러니 방아쇠를 당겨도 책임을 질 사람은 없다. 심지어 그 사실조차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반대로 시후와 협력한다면 상황은 훨씬 명확하게 변할 것이다.적어도 목숨은 건질 수 있지 않은가?게다가 자신이 시후를 도와 사방보당을 미국 밖으로 빼낸다면, 상속 서열도 지킬 수 있다. 상속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세월이 흘러 늙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문을 이어받는 것이다.이렇게 많은 이득을 생각하면, 약점 하나쯤 시후의 손에 잡힌들 무엇이 대수이겠는가?더구나 그 약점은 영원히 치명적인 것도 아니었다.이 전략을 사용할 최적의 시기는 아버지인 하워드 로스차일드가 살아 있는 동안이다.지금은 황태자 신분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처지였다. 그러니 지금의 약점이 공개되면 지위는 물론, 가문에서 완전히 밀려날 수도 있었다.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이 정식으로 회장직에 오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그때는 설령 영상이 공개되더라도 도덕적 비난 정도에 그칠 뿐일 것이기에. 자리만 굳히면 욕 몇 마디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스티브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시후 선생님, 제 목숨을 걸고라도 사방보당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시후는 능글맞게 웃으며 일부러 물었다.“스티브,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까지 움직이게 하지? 가문을 거스르면서까지 이런 결단을 내리다니.”“정의입니다!”스티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당당했다.“당연히 제 마음속에 있는 정의입니다! 시후 선생님, 저는 양심 있는 사람입니다! 사방보당은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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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4장

스티브의 속마음은 따로 있었다.훗날 자신이 무사히 회장직에 오른다면, LCS 그룹 같은 보잘것없는 그룹은 안중에도 두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시후의 손에 붙잡힌 처지지만, 이 위기를 넘기고 로스차일드 가문을 물려받는 순간 시후가 아무리 애를 써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때가 되면, LCS 그룹이 무슨 대수겠는가?물론 그는 이런 생각은 속으로만 삼키고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그래서 그는 겉으로는 억지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시후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훗날 두 집안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시후 역시 속으로는 냉소를 지었다. 스티브가 연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맞춰주고 있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휴대전화는 여전히 녹화 중이었다. 지금처럼 충성스럽게 굴수록, 이 영상은 훗날 더 강력한 족쇄가 될 것이다.그래서 시후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하워드 로스차일드는 올해 여든이 넘었지?”“예. 올해 여든넷입니다.”“여든넷이라고?”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여든넷이면 좋은 나이군.”스티브는 의아하게 물었다.“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시후는 웃으며 말했다.“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어. ‘일흔셋, 여든넷은 큰 고비’라는 속설이지. 꼭 그런 해에는 병이 많고, 재난도 많고, 세상을 떠날 확률도 높다고들 하지. 올해가 벌써 4분기 아닌가? 운이 좋으면 당신 아버지도 올해를 넘기지 못할 수도 있겠군.”“그렇습니까?”스티브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억누르려 했지만, 기대 섞인 흥미가 스쳤다.“시후 선생님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입니까?”시후는 손을 저었다.“그냥 민간 속설이지. 과학적 근거는 없어. 다만, 당신 입장에선… 아니, 우리 입장에선 기대해볼 만한 이야기 아닌가?”스티브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사실 재벌가에서 황태자의 자리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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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5장

말을 마친 시후는 영상 촬영을 종료하고 곧바로 노르웨이 여왕인 헬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노르웨이와 뉴욕 사이에는 6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더 동쪽에 위치한 노르웨이가 뉴욕보다 여섯 시간 빠르기 때문에, 뉴욕은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었지만 노르웨이는 이미 오전 시간이었다.헬레나는 왕실 집사와 함께 앞으로 며칠간의 일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후의 전화가 걸려오자, 그녀는 순간 놀라 온몸이 굳는 듯했다.헬레나는 서둘러 집사를 물러나게 한 뒤, 설렘을 감추지 못한 채 전화를 받았다. 막 사랑을 시작한 소녀처럼 들뜬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은시후 씨, 안녕하세요!”그녀의 다소 흥분된 음성을 들은 시후도 마음 한구석이 잔잔히 흔들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헬레나, 요즘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잘 지내고 있어요.” 헬레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다만 왕실 사람들 때문에 조금 피곤할 뿐이에요. 사소한 문제지만요.”시후가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이미 여왕인데, 누가 감히 함부로 간섭하죠?”헬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은시후 씨, 실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여왕이라 해도 많은 일은 여전히 왕실 전통을 따라야 하니까요. 사람들은 마치 의회 의원들처럼 매일 사소한 문제를 들고 와요.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간섭한다니까요. 가장 성가신 건 제 결혼 문제예요. 틈만 나면 귀에 대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고요. 정말 지긋지긋해요.”시후가 웃으며 물었다.“여왕도 강제로 혼인을 권유 받습니까?”“그 정도가 아니에요.” 헬레나는 불평하듯 말했다. “지금은 아예 다른 나라 왕실의 왕자를 납치해 와서라도 저와 결혼시키고 싶어 하는 분위기예요. 왕실 혈통이 단절될까 봐 가장 걱정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후계자가 없다면, 차라리 제가 세상을 떠난 뒤 노르웨이 상·하원이 입헌군주제를 폐지하도록 해도 상관없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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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6장

헬레나가 지닌 첫 번째 강점은 단연 압도적인 외모였다. 유럽 왕실 전체를 통틀어도 그에 필적할 인물은 없었고, 할리우드 역대 최고 미녀 배우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두 번째 강점은 젊음과 넘치는 긍정 에너지, 그리고 건강하고 밝은 성격이었다.유럽과 미국의 엘리트층을 살펴보면, 크고 작은 흑역사 하나 없는 인물을 찾기 어렵다. 마약을 한 사람, 불륜을 저지른 사람, 방탕한 생활을 한 사람, 폭력을 행사한 사람, 수감 이력이 있는 사람, 심지어 범죄 조직과 연루된 사람까지 존재한다. 전체가 썩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온갖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러나 헬레나는 달랐다.왕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철저한 귀족 교육을 받았고, 또래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방황하던 시기에는 부모를 연이어 잃었다. 그런 이유로 헬레나는 잔혹한 왕실 내부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조심스럽고 절제된 삶을 살아야 했다.그 결과, 그녀에게는 사춘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다른 공주들이 연애를 하고, 클럽을 드나들고, 담배를 피우거나 심지어 마약에 손을 대던 시기에도 헬레나는 어떤 나쁜 습관에도 물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이처럼 결점 없는 긍정적 이미지는 보수적인 도덕주의자들의 엄격한 시선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했다.이런 인물은 왕실 안에서도 드물고, 유럽 상류 사회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바로 그 때문에 그녀는 모든 연령대의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젊은 층이 헬레나를 좋아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중·장년층 역시 그녀를 좋게 평가했다. 딸을 낳는다면 마땅히 저렇게 당당하고, 흠결 없으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모습이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들 또한 말할 것도 없었다. 모든 아이들은 왕자님이나 공주님을 꿈꾸었고, 헬레나를 좋아하는 것은 엘사를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더구나 아이들이 헬레나를 좋아하면 부모들 역시 크게 만족했다. 지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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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7장

헬레나의 일정은 몇 시간 후 공식 발표될 예정이었다. 이제 관건은 하워드 로스차일드가 과연 장손 로이스 로스차일드를 캐나다로 보낼 것인지 여부였다.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시후는 스티브 로스차일드의 헬리콥터를 타고 로이스 로스차일드와 함께 캐나다로 향할 수 있었다.어차피 이 두 사람은 이미 시후에게 사실상 묶여 있는 처지였다. 그러니 비밀이 새어 나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번 협력을 빌미로 두 사람을 계속 쥐고 흔들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최면을 거는 것보다 훨씬 실속 있는 수단이었다.최면은 언젠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간파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미묘하지만 효과적인 구속은 달랐다. 상대가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더 깊이 얽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스티브 로스차일드와 로이스 로스차일드는 시후가 헬레나와 통화를 마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노르웨이 여왕 헬레나는 각국 총리와 대통령조차 줄을 서서 방문 일정을 잡아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시후의 한 통화에 즉각 움직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시후는 두 사람의 놀란 눈빛을 보며 로이스를 가리키고 스티브 로스차일드에게 말했다.“헬레나가 캐나다 방문을 앞당긴다는 소식이 나갔는데도 하워드 로스차일드가 당신 아들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스티브 로스차일드는 황급히 말했다.“은 선생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일에 관해서는 아버지가 저보다 더 신경 쓰고 계시니까요.”그는 이어 말했다.“저희 로스차일드 가문은 지난 2~300년 동안 유럽 왕실과의 혼인을 숙원으로 삼아왔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헬레나 여왕은 명성이 대단하지만, 노르웨이 왕실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고 인적 기반도 약합니다. 마치 유명하지만 소속사에 얹혀 사는 인기 인플루언서와 비슷하지요. 인기는 높지만 실질적인 자산은 많지 않아서 집을 살 때 사장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아버지는 이런 상황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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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8장

그 소리는 피터 주의 저택을 감시하던 인원들을 단번에 긴장하게 만들었다. 곧바로 한크 길버트의 무전기에서 흥분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피터 주의 저택에서 움직임이 있습니다!”한크 길버트는 즉시 외쳤다.“젠장 큰일이다! 피터 주의 저택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 통로로 사람들이 돌아왔을 가능성이 커! 어서! 사방보당을 빼돌리기 전에 먼저 잡아라! 전원 즉시 돌입! 일당을 잡으면 천만 달러, 사방보당을 찾으면 일억 달러 보상이다!”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숨어 있던 인원들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기세로 튀어나왔다. 마치 사냥감을 본 사냥개처럼 피터 주의 저택 안으로 몰려들었다.비록 그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을 위해 일하고 있었지만, 연봉이 수십만 달러 수준에 불과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직책은 연봉이 십만 달러에 그치기도 했다. 그런데 눈앞에 갑자기 천만 달러, 심지어 일억 달러라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더구나 이는 무단 행동이 아니라 한크 길버트의 지시였다. 그렇다면 속도는 생명이었다. 먼저 뛰어드는 사람이 가장 유리했고 늦으면 남이 돈을 세는 모습을 구경하는 처지가 될 뿐이었다!사람들이 미친 듯이 피터 주의 저택 안으로 돌진하는 사이, 시후는 몸을 돌려 한크 길버트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두 사람을 철저히 감시해. 누구도 창밖을 보게 해서는 안 돼.”한크 길버트는 즉시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선생님!”그는 권총을 들어 스티브 로스차일드와 로이스 로스차일드 부자를 겨누었다.그 틈을 타 시후는 창문을 넘어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고 군중의 뒤를 따라 피터 주의 저택 쪽으로 달려갔다.그러나 시후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소란은 저택 내부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중앙 본관을 향해 몰려갔다.시후만이 피터 주의 저택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그는 영기를 두 갈래로 나누어 퍼뜨렸다. 한 갈래는 주변을 훑어 자신에게 시선이 쏠려 있지 않음을 확인했고, 다른 한 갈래는 대문 양옆에 놓인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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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9장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해, 시후는 자단목 상자를 즉시 열지 않았다.그는 영기로 내부를 한 차례 훑었고, 곧 두 가지 물건의 존재를 감지했다.하나는 두툼한 서책이었다. 시후는 그것이 『구현경서』의 영인본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금속으로 제작된, 불탑과 유사한 형상의 물건이었다.이상 없음을 확인한 시후는 즉시 영적 의식을 거두고 물건을 챙겨 피터 주의 저택을 빠져나가려 했다.그러나 시후의 영기가 금속 탑을 스치는 순간, 탑은 마치 그의 존재를 감지한 듯 반응했다. 곧이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시후의 영기가 강제로 끌려들어 갔다.시후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자신이 나누어 보낸 그 한 줄기 영기가 영적 의식으로 조종된 것이었기 때문에 곧 영적 의식의 보이지 않는 연장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기가 불탑에 빨려 들어가던 순간, 흡수하는 힘은 단지 영기만을 끌어간 것이 아니었다. 시후의 영해(靈海) 깊은 곳에서조차 미세한 영적 의식을 강제로 떼어내 함께 끌고 가버렸다는 사실이었다!찰나에, 시후의 시야가 순식간에 혼돈으로 뒤덮였다. 눈앞은 회색의 안개로 가득 찼고, 오직 정면 어딘가에서 희미한 빛만이 어른거렸다. 이 혼돈 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숨을 죄는 듯한 압박감이 짙게 감돌았다.곧이어 굉음이 울려 퍼졌고, 대지가 뒤흔들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땅이 갈라지며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고, 틈 사이로 눈부신 황금빛이 분출했다.그 순간, 세계가 요동쳤다. 그리고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균열 속에서 황금빛 사방보당이 솟아오른 것이다.탑은 온통 찬란한 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땅 위로 드러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빛은 더욱 눈부셔졌다. 시후는 처음에는 탑의 꼭대기를 내려다보는 시점에 있었다. 그러나 탑은 점점 높아졌고, 어느새 그는 탑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탑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솟았다.위엄과 장중함이 극에 달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경외심을 품게 했다.시후가 놀라움에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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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0장

이 탑이 어딘가 낯익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낯설게 느껴졌던 까닭은, 황룡사 구층목탑이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축을 거치며 외형과 구조, 심지어 층수의 세부 양식까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황룡사 목탑의 개축은 이미 수백 년 전의 일이다. 후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여러 차례 보수와 변형을 거친 뒤 전해 내려온 모습뿐, 처음 세워졌을 당시의 원형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시후가 방금 본 장면에 대해 ‘어딘가 익숙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을 느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시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그렇다면, 방금 내가 본 그 고승은… 혹시 신라의 대덕 국사였던 건가…?”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시후의 시야는 번성하던 옛 경주 도성을 스치듯 지나 남쪽 산자락으로 향했다.지형을 내려다본 시후는 이곳이 토함산 북쪽 기슭임을 직감했다. 산문에 걸린 현판에는 ‘선도원(仙道院)’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이는 신라 도가(道家)의 중심지이자, 당대 선도 수련자들이 모여 수행하던 성지였다.이곳은 우리나라 도가 사상의 발원지로 전해지는 성지였다. 예로부터 도를 깨우친 선인들이 머물며 경전을 강론하고 수련을 이어 오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시기에는 왕실이 도가 사상을 후원하면서 그 위상이 더욱 높아졌고, 국왕의 명으로 사찰의 이름을 새롭게 내려 나라의 도맥을 상징하는 성지로 삼았다.그곳의 넓은 단 위에는 푸른 도포를 입고 상투를 튼 수행자들이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마른 체구의 그들은 허공을 향해 일정한 수인을 맺으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기운을 운용하고 있었다.시후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들 모두가 영적 의식을 다루는 수련자들이었다. 그들이 맺는 수인 하나하나에는 거대한 기운이 실려 있었고, 수십 명의 기운이 하나로 모여 거대한 진법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 앞의 허공에는, 순금으로 제작된 사방 보당 하나가 천천히 회전하며 떠 있었다는 것이다.그 보당은, 방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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