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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1장

시후가 말했다.“장인어른, 급한 일 있으시면 먼저 다녀오십시오. 유나 씨는 제가 혼자 나가서 데려와도 괜찮습니다.”윤우선이 곧바로 말을 끊었다.“안 돼! 유나가 이렇게 오래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는데, 당연히 다 같이 공항 나가야지!”김상곤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아까 말한 대로 하자. 내가 협회 잠깐 다녀왔다가, 오후 세네 시쯤 와서 같이 나가면 되잖아.”윤우선이 발끈했다.“김상곤, 말이 안 통하는 거야 지금? 그 협회 오늘 꼭 가야 돼? 그렇게 가고 싶으면 나도 같이 가. 당신 부회장이지? 곧 회장이 될 사람이라면서? 그럼 나는 부회장 부인이고, 곧 회장 사모님인데 같이 가서 구경 좀 하는 게 뭐가 문제야?”김상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윤우선 같은 사람이 협회까지 따라가서 소란이라도 피우면 체면이 완전히 무너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 분명히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대며 ‘어떻게 저렇게 점잖은 사람이 저런 여자랑 결혼했냐’라고 할 것이다.이런 생각을 한 그는 결국 급히 말을 바꿨다.“됐다, 됐어! 안 가면 되잖아! 안 가면 되지! 우리 셋이 그냥 집에 있다가, 오후 4시쯤 공항 가면 되겠지?”윤우선이 팔짱을 끼고 되물었다.“왜? 나 데리고 가는 게 그렇게 싫어? 내가 그렇게 창피한 사람이야?”김상곤은 결국 폭발했다.“아니, 왜 아침부터 자꾸 시비를 걸어! 집에 있자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으면 된 거 아니야?”윤우선이 싸늘하게 말했다.“지금 나한테 짜증 내는 거야? 이제 회장 자리 눈앞에 보이니까 내가 눈에 안 들어오는 거지? 옛날처럼 시어머니랑 형네 식구들한테 눌려 살던 때랑 다르다 이거야? 이제는 나 같은 아내가 발목 잡는다고 생각하는 거고?”김상곤은 당황해서 말했다.“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 다 당신이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윤우선이 몰아붙였다.“그럼 당신 뜻은 뭔데?”김상곤은 머리가 핑 도는 듯 비틀거리며 말했다.“협회 안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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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2장

김상곤과 윤우선 같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사는 일은, 시후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해도, 막상 한복판에 들어가면 정신적으로 꽤 피곤했고, 심지어 몸까지 지칠 정도였다.그래서 시후에게는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샹젤리 온천으로 가기엔 거리가 꽤 멀어, 왕복 시간을 생각하면 애매했다.잠시 고민하던 중, 문득 릴리가 떠올랐다. 시후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은 릴리가 웃으며 말했다.“선비님, 점심시간에 웬일이십니까? 혹시 저 불러내서 밥 사주시려는 건 아니죠?”시후도 웃으며 답했다.“나도 지금 밥 먹을 데가 없어. 이렇게 된 김에 같이 점심이나 할까?”릴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럴 바엔 차라리 이쪽으로 오시죠. 날씨도 쌀쌀해져서, 마당에서 전골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선비님 오시면 식기 하나 더 놓고 재료 조금 더 준비하면 되니까요.”“좋아.” 시후가 바로 답했다.“마침 지난번에 빌린 차도 돌려줄 겸 가야겠어. 곧 도착해.”전화를 끊은 시후는, 별장에서 가져온 롤스로이스를 몰고 집을 나섰다.릴리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재료를 내려놓고 나가려던 한숙현이 시후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은 선생님, 오셨습니까.”시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 키를 건넸다.“집사님, 차는 입구 주차장에 세워뒀습니다. 키 받아주십시오.”한숙현이 말했다.“필요하시면 계속 사용하셔도 됩니다. 굳이 돌려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시후는 웃으며 답했다.“이렇게 비싼 차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너무 눈에 띄어서요.”한숙현은 더 말하지 않고 키를 받아들였다.“식사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방해되지 않도록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감사합니다.”한숙현이 자리를 떠난 뒤, 시후는 마당을 둘러봤다. 작은 원목 식탁과 황화리 의자 두 개, 그리고 정갈하게 준비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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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3장

유나가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릴리의 마음에는 아주 미묘한 아쉬움이 스쳤다.앞으로 시후가 이곳에 오는 횟수는 분명 줄어들 것이고, 그렇다면 자연스레 둘이 만날 기회도 크게 줄어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릴리는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담담하게 물었다.“선비님, 샹젤리 온천 쪽은 요즘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수련생들의 수련 속도는 만족스러우신가요?”시후는 차분히 답했다.“대부분은 정상적인 속도로 수련하고 있어.”그러다 문득 이토 나나코가 떠올라 말을 이었다.“아, 한 가지 아직 말을 못 한 게 있는데. 릴리는 나나코를 알지?”릴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죠. 선비님과 함께 하는 일본 여성 분 말씀하시는 거죠? 무슨 일 있으신가요?”시후가 말했다.“나나코가 며칠 전에 깨달음을 얻었어.”“깨달음이요?” 릴리는 잠시 멈칫했다가 물었다.“선비님께서 말씀하시는 깨달음이… 무술의 경지인가요, 아니면 영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무술은 진기를 다루는 단계이고, 영기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진정한 수련의 영역이었다.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입문 단계에서는 모두 ‘깨달음을 얻는다’고 표현하는 공통점이 있다.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나코가 이미 영기를 다루기 시작했어.”릴리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영기라니… 정말요?”시후는 확신하며 말했다.“사실이야.”릴리는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 나이에 그런 재능이라니… 게다가 일본인이라는 점도 의외군요.”그리고 다시 물었다.“그 깨달음은 선비님께서 도와주신 건가요?”시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관음사에 있었던 한 고승께서 계기를 만들어주셨다고 하던데. 우연한 인연으로 그분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어.”“관음사의 고승…”릴리는 그 말을 듣자, 이전에 두 번 마주쳤던 그 ‘가짜 비구니’을 떠올렸다.순간 시후에게 그 사실을 말해줄까 고민했지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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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4장

가짜 비구니의 진짜 정체를 추적하는 일은 릴리가 마음 깊숙이 숨겨둔 생각이었다. 그래서 시후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나나코 씨가 그런 기회를 얻은 건, 그분에게도 복이지만 선비님께도 행운이겠죠. 선비님 곁에는 그동안 깨달음을 얻고 영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이번에 나나코 씨가 길을 열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시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난 나나코가 뭘 해주길 기대하는 건 아니야. 그냥… 혼자 어두운 숲을 걷다가, 동반자가 한 명 생긴 느낌이랄까.”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중얼거렸다.“저도… 선비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말을 마친 릴리의 눈빛에 잠깐 쓸쓸함이 스쳤다.시후를 만나기 전까지, 릴리는 깨달음에 대해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았다. 예전에는 언젠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시연을 죽이겠다는 야망을 더 이상 품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긴 삶을 무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하지만 시후를 만난 이후, 마음 깊은 곳에서 은근한 기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다만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영춘단조차 아무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했으니, 이 생에서 깨달음을 얻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일까, 마음 한켠이 더 허전해졌다.릴리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선비님, 노르웨이 쪽 AI 모델 진행 상황은 어떠세요?”시후가 말했다.“하워드 회장이 그래픽카드랑 데이터센터 문제는 다 해결했어. 지금 헬레나가 엔비디아 최신 칩 관련해서 협의 중인데, 잘 되면 이번 모델은 업계 최고 성능으로 갈 가능성이 커.”릴리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모델이 완성되면 저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실 수 있나요? 계산해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시후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당연하지. 가장 먼저 쓸 수 있게 해줄게.”릴리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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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5장

다행히 두 사람의 말다툼은 서로 비꼬는 수준에서 그쳤고, 더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윤우선이 조금 더 우세했지만, 김상곤도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김상곤은 식사를 마치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은 서방이 메시지 보냈어. 유나 비행기가 3시 도착이래. 2시에 나가자.”윤우선이 투덜거리듯 말했다.“뭘 그렇게 일찍 나가. 해외에서 오는 건데 입국 심사도 하고 시간 오래 걸려. 3시 반은 돼야 나올 거야. 나 좀 더 잘래. 2시 반에 나가.”윤우선은 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서 올라가 버렸다.“내 거 남은 것도 같이 치워.”김상곤은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윤우선의 음식까지 정리해 쓰레기통에 넣었다.혼자 남은 김상곤은 소파에 앉았다. 술기운은 점점 가셨지만, 기분은 오히려 더 가라앉았다.어젯밤 술자리에서의 환대는 잠깐의 기쁨일 뿐이었다. 마음속에 두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다.김상곤은 한숨을 내쉬며 과거를 떠올렸다. 한미정이 막 한국에 돌아왔을 때, 윤우선이 사라졌던 그 시기. 공항에 나가 한미정을 마중 나가기도 했고, 같이 식사도 하고, 동창 모임도 가고, 학교도 함께 찾았다. 심지어 집까지 초대해 밥을 먹기도 했다.그때 두 사람의 분위기는 분명 남달랐다. 아이들만 없었더라면, 그날 주방은 전혀 다른 의미의 공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김상곤은 무릎을 손등으로 두드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속이 쓰린 듯한 표정이었다.2시 반이 되었을 때, 낮잠을 자고 내려온 윤우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김상곤을 보자마자 말했다.“당신, 아직도 준비 안 했어? 유나 데리러 가야지.”김상곤이 힘없이 말했다.“그냥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꾸며.”윤우선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왜 이래? 완전 기운 빠진 사람처럼. 밖에서 이상한 짓이라도 하는 거 아냐?”김상곤이 바로 반박했다.“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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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6장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뒤로 갈수록 기억이 흐릿해졌다.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였고, 오 과장이 한미정의 결혼식 청첩장을 전달해줬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래서 김상곤은 별다른 생각 없이 핸들에 있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기 너머로 오 과장의 아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부회장님, 저 오 과장입니다! 오늘 왜 협회 안 나오셨어요?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드신 거 아니십니까?”김상곤은 툴툴거리며 힘없이 말했다.“어제 좀 많이 마셨지…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 왜, 협회에 무슨 일 있어?”“아닙니다!” 오 과장이 재빨리 말했다.“혹시 몸이 안 좋으실까 봐 연락드린 거예요. 오늘 운전하시기 불편하시면 언제든 말씀만 주세요. 제가 바로 모시겠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다시 덧붙였다.“아, 그리고요 부회장님! 저희 집사람이 한약 쪽을 좀 아는데, 숙취 풀어주는 탕약이랑 간에 좋은 처방이 있거든요. 부회장님처럼 술 자주 드시는 분은 간 관리가 중요합니다. 괜찮으시면 집에서 달여서 가져다드릴게요!”오 과장은 어젯밤 술자리에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김상곤과 협회장이 취한 채 나눈 대화를 차로 모시며 전부 들은 상태였다.둘은 술에 취해 거리낌 없이 속내를 털어놓았고, 형님 아우 하며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다.그 대화 속에서 오 과장은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협회장이 승진을 추진 중이고, 김상곤이 차기 회장으로 유력하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협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고 있으니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게다가 어젯밤 김상곤을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그가 최고급 아파트인 청년재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기에 재력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서화협회는 어디까지나 취미 단체에 가까워, 회장을 뽑을 때 경력이나 실력보다 인맥과 재력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협회 운영비도 늘 빠듯하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이 회장을 맡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유리했다.그러니 당연 이런 상황에서 김상곤의 회장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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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7장

오 과장이 한미정 교수의 청첩장을 언급하는 순간, 김상곤의 머릿속이 ‘웅—’ 하고 울리며 터져버린 것 같았다.원래도 마음이 찔리던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아,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확인할게. 끊는다!”그는 서둘러 통화를 끊어버렸다.옆에 있던 윤우선이 곧바로 물었다.“한 교수? 무슨 한 교수?”이럴 때 김상곤이 평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노인대학 동료다’ 한마디로 넘겼을 상황이었다.하지만 김상곤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멘탈이 약하고, 급하면 바로 티가 나는 스타일이었다.윤우선이 그저 가볍게 한 번 질문을 했을 뿐인데, 이미 김상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그는 슬쩍 눈치를 보며 더듬거리듯 말했다.“아… 아무것도 아니야…”윤우선의 눈이 가늘어졌다.“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한 교수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아니다’라는 건 무슨 말이야? 누구야? 청첩장은 또 뭐고? 왜 당신에게 보내?”그녀는 김상곤의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을 보자마자 확신했다.“김상곤, 왜 이렇게 긴장해?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김상곤은 속이 타들어갔지만, 억지로 버텼다.“진짜 없어… 내가 너한테 뭘 숨겨…”윤우선은 눈을 떼지 않고 김상곤을 노려봤다. 하지만 김상곤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앞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윤우선이 차갑게 말했다.“김상곤, 너 얼굴에 다 써 있어. 뭔가 꾸미고 있는 거 확실해.”윤우선은 곧장 수납함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김상곤은 깜짝 놀랐다. 청첩장을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한미정’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을 게 뻔했다. 그걸 윤우선이 보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이었다!김상곤은 필사적으로 팔꿈치로 수납함을 눌러 윤우선이 못 열도록 막았다.하지만 그럴수록 윤우선의 의심은 더 커졌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김상곤, 경고하는데 지금 당장 팔 치워!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어! 안 그러면 오늘 가만히 안 놔둔다!!”김상곤은 식은땀을 흘리며 버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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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8장

김상곤은 놀라서 급히 핸들을 바로잡았다. 차는 다시 원래 차선으로 돌아갔다. 그는 반사적으로 욕을 내뱉었다.“미쳤어?! 여기 고속도로인 거 안 보여?! 죽고 싶어?!”하지만 윤우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틈을 타 바로 팔걸이 수납함을 열어, 안에 들어 있던 청첩장을 꺼냈다.그녀는 청첩장을 펼치며 중얼거렸다.“진짜 결혼식 청첩장이네… 와 김상곤 진짜 별거 아닌 걸로 호들갑 떨고 있어. 남이 청첩장 하나 보냈다고 뭘 그렇게 숨겨? 나는 당신이 신부랑 바람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 아까 그 긴장한 꼴은 또 뭐야!”말을 마친 뒤 윤우선은 청첩장을 펼쳤다.윤우선은 이런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청첩장을 보면 먼저 맨 아래 이름부터 확인하는 타입이었다. 본문 내용이야 뻔한 인사말이고, 중요한 건 신랑 신부의 이름이었다. 윤우선은 한 교수라는 사람이 왜 김상곤을 그토록 불안하게 만드는지 궁금할 뿐이었다.청첩장을 펼친 지 단 1초, 윤우선의 눈에 두 개의 이름이 들어왔다. 하나는 ‘변태섭’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미정’이었다!한미정?!그 세 글자를 보는 순간 윤우선은 마치 날카로운 칼 세 자루가 눈을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와 동시에 김상곤도 상황이 급박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윤우선이 청첩장을 본 지 1~2초 사이 그는 뱀처럼 재빠르게 손을 뻗어 청첩장을 낚아챘다. 그리고 곧바로 운전석 창문을 내린 뒤 망설임 없이 밖으로 던져버렸다.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던 차량에서 튕겨나간 청첩장은 순식간에 도로 위 어딘가로 사라졌다.김상곤은 속으로 생각했다. ‘봤을 리 없어… 그 짧은 순간에 못 봤을 거야.’이미 청접장을 창밖으로 던져버렸으니 이제 물증도 사라졌다.하지만 윤우선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렸다. 김상곤이 청첩장을 이미 버린 것을 본 윤우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김상곤, 진짜 웃긴다 너. 청첩장 하나 가지고 왜 그렇게 난리를 쳐? 남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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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9장

게다가 윤우선의 성격을 생각하면, 정말 이혼이라도 하게 되는 순간 자신은 짐 싸서 쫓겨날 게 뻔했다. 그러면 당장 갈 데도 없어진다.혹시라도 윤우선이 앙심을 품고 협회까지 찾아가 난동이라도 부리면, 자신의 체면은 완전히 끝장이다.그래서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 이혼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설령 윤우선이 먼저 동의하더라도, 자신이 거절해야 할 판이었다.그때 윤우선이 비웃듯 말했다.“어머, 김상곤. 이제는 이혼을 안 하시겠다?”김상곤은 얼른 맞장구쳤다.“우리가 뭐 이제 와서 이혼을 해. 이 나이에 그러면 사람들한테 웃음거리나 되지.”윤우선이 비꼬듯 말했다.“그래? 그럼 한미정은 뭐야? 나이 먹고 이혼하고 재혼하는 건 괜찮고, 걔는 안 웃기나?”김상곤이 무심코 말했다.“아니, 미정이는 남편이...”말을 꺼내자마자, 김상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막 내려놓았던 긴장이 다시 목까지 차올랐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아… 아니… 갑자기 왜 미정이 얘기는 왜 꺼내…?”윤우선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분노가 폭발했다.“김상곤, 너 진짜 웃긴다. 아직도 나한테 모르는 척이야? 아까 그 청첩장에 이름 떡하니 써 있던 거 내가 못 봤을 줄 알아?!”김상곤의 심장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아… 아니… 내가 설명할게…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 괜히 기분 상할까 봐...”그 때 윤우선의 손이 날아와 김상곤의 뺨을 세게 때렸다.“지금 무슨 헛소리야?! 기분 상할까 봐? 내가 그걸 믿을 것 같아?!”그렇게 말한 뒤 윤우선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몰아붙였다.“말해! 한미정 언제 한국 들어왔어?! 너네 언제 다시 붙어먹은 거야?!”김상곤은 뺨을 맞고도 화를 내지 못했다. 딸도, 시후도 없는 상황에서 말릴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운전 중이었다. 여기서 맞대응했다가는 윤우선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억지로 참고 말했다.“아니… 아까도 봤잖아… 결혼 청첩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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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0장

윤우선은 평생을 거칠고 강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강함 뒤에는, 누구보다도 깊은 열등감과 예민함이 숨어 있었다.그녀는 늘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무엇보다 배신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중심에는 항상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한미정.학창 시절, 한미정은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윤우선은 그 옆에 붙어 다니며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 관심의 진짜 목적은 늘 한미정이었다.그때 윤우선은 시골 출신에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늘 무시를 당하며 살았다. 그래서 윤우선은 이런 상황 속에서, 늘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그 열등감은 마음속 깊이 쌓였고, 결국 ‘이기고 싶다’는 집착으로 변했다.그리고 윤우선이 인생에서 가장 크게 이겼다고 믿었던 것은 바로 김상곤을 한미정에게서 빼앗았을 때였다.윤우선은 그때만큼은 자신이 승자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결혼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한미정을 들먹이며 윤우선을 깎아내렸다. 몸으로 남자를 빼앗은 여자라는 모욕, 한미정 발톱만도 못하다는 비교, 심지어 김상곤 인생을 망쳤다는 비난까지 그 모든 말들이 쌓이고 쌓여, 한미정이라는 존재는 윤우선에게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되는 상처가 되었다.그런데 미국에 간 지 30년이 넘은 그 여자가, 자신도 모르게 한국에 돌아와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분노가 폭발할 판인데 자기 남편은 그걸 알고도 숨기고 있었다.그 순간, 윤우선의 이성이 완전히 끊어졌다.지금이 고속도로 한복판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녀는 미친듯이 두 팔을 휘두르며 김상곤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김상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그는 사고를 막기 위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그대로 고속도로 1차선에 세워버렸다. 그리고 몸을 피하며 소리쳤다.“윤우선, 제발 좀 진정해! 여긴 고속도로야! 죽고 싶어?!”하지만 윤우선은 이미 눈이 뒤집힌 상태였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죽어?! 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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