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쯤 지나자, 배달원이 점심을 가져왔다.역시나 팔진식당의 김치찜, 금옥식당의 족발, 소금게장이 있었고, 그 외에도 신선한 야채볶음 몇 가지와 담백한 죽 한 그릇까지 세심하게 챙겨져 있었다.이때, 백림에게서 전화가 왔다.[야채 많이 먹고, 나머지는 맛만 봐.]유정은 아까 백림의 농담이 떠올라 아직도 살짝 기분이 상해 있었기에, 말없이 한 마디만 내뱉었다.“응.”백림은 웃으며 말했다.[아직도 화났어?]유정은 짧게 대답했다. “아니.”절대, 양심의 가책 따윈 없었고, 백림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사실 난 정말 좋았어.]그 목소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유정은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오후, 낮잠을 자고 일어난 유정은 딱히 할 일도 없어, 창가에 앉아 스케치북을 펼쳤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유정은 별생각 없이 펜을 들었다. 창밖으로 지는 햇살의 마지막 한 줄기를 그 종이 위에 남겼다.그러다 문득 아래쪽 거리로 시선을 옮겼을 때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차에서 내린 키 큰 남자가 검은색 코트를 입은 채로 곧은 자세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의 손엔 붉은 장미꽃다발이 들려 있었고, 황혼 속에서 그 모습만은 유독 또렷하게 빛났다.유정은 한참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다시 스케치북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고는 붉은 색을 조심스레 종이 위에 덧그렸다.백림이 집 안으로 들어오며 꽃을 내밀었다.“집에만 있으면 지루하잖아. 꽃이라도 있으면 기분 나아질까 해서.”유정은 장미를 품에 안으며 생각했다.‘얘,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잘해주면 정말 치명적이겠네.’“꽃은 나중에 꽂고, 먼저 약부터 바르자.”백림은 외투를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몇 분 후, 약이 들어있는 통을 들고 돌아온 남자는 유정의 얼굴 상처를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또한 백림의 시선은 오로지 유정의 상처에 집중되어 있었다.“당분간은 얼굴에 물 닿지 않게 조심해. 오늘 밤 세수할 때도 안 닿게 하고.”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응.”백림의 손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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