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는커녕, 냉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제가 틀린 말 한 건 없잖아요. 표 몇 장 때문에 사과까지 해야 한다면, 숙모는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아니면 본인을 내려치시는 건가요?”유정은 신화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저녁은 조씨 저택에서 먹고 왔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식사 자리는 오늘은 함께 못 할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갈게요.”그렇게 말한 뒤 유정은 거실을 등지고 돌아섰다. 허리를 곧게 편 채, 느긋하지만 힘 있는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조엄화는 빨갛다 못해 자칫 터질 것만 같은 얼굴로 서은혜를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방금 저 말 무슨 뜻이에요? 조씨 집안 믿고 나를 겁주겠단 거예요? 그래요, 조씨 집안이 있으니 유정이 저렇게 기고만장하죠.”“그러니 나같은 숙모쯤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죠.”서은혜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유정이 그냥 밥 먹고 왔다는 말 한 마디 한 거야. 매번 그렇게 과하게 해석할 필요 없잖아. 동서.”“내가 과해요?”조엄화는 헛웃음을 터뜨리자, 신화선이 중간에서 나섰다.“됐어. 어차피 다 한집안 식구인데, 계속 이러면 말싸움만 길어져. 어찌 됐든 표는 신희가 알아봐 줘야지”그 말에 신희는 곧장 부드럽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표는 이미 언니 몫으로 챙겨놨어요.”하지만 조엄화는 싸늘한 눈빛으로 신희를 쏘아보며 쐐기를 박았다.“굳이 네가 준비할 필요 있니? 지금 유정이는 회사까지 맡아서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얼마나 잘났는데.”“그깟 전시회 표쯤이야 너 도움 없어도 혼자 알아서 할 수 있겠지. 괜히 정성 들여봤자, 네 마음만 상한다.”뒤끝이 긴 조엄화에 서은혜가 인상을 찌푸렸다.“동서, 신희는 아직 애잖아요. 그런 말은 좀...”조엄화 앞에선 기가 눌린 듯 신희는 고개를 숙였다가 조심스레 서은혜에게 말했다.“큰엄마, 언니더러 우리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하면 돼요. 저희 엄마도 어쨌든 어른이잖아요.”신희는 조엄화와는 달리 항상 말투가 부드럽고 얌전했고, 서은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