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의 달달한 아내 사랑: Chapter 3631 - Chapter 3640

3682 Chapters

제3631화

약혼식이 끝난 뒤, 두 집안은 호텔 입구에서 서로 인사를 나눴다.유정이 전화를 받는 사이, 서은혜는 조백림이 차에 타려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백림아!”백림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남자를 마주한 서은혜는 늘 그렇듯 예의를 갖춰 말했다.“백림아, 미안하구나.”백림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님.”서은혜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유정이가 왜 갑자기 파혼하겠다고 나선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 혹시 걔가 실수한 거라면, 어른인 내가 대신 사과할게.”백림은 시선을 거두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괜찮아요. 사과는 필요 없어요.”서은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요즘 유정이는 회사 일로 너무 바빠.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잤어.”이에 백림은 미간을 찌푸렸다. 차가운 기운이 스며든 눈빛 속엔 어딘가 억눌린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파혼하겠다면서, 더 이상 비즈니스로 엮일 일도 없겠죠. 그게 유정이 원한 거니까요.”“알아. 그래서 난 너 원망 안 해. 유정이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더라. 회사가 정말 무너지게 되면, 경성으로 간대.”이에 백림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경성이요?”서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외할아버지가 그쪽에 계시거든.”하지만 백림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경성이라, 아마 다른 목적이겠죠.”그때 그 남자, 서선혁이 그곳에 있다는 걸 백림은 알고 있었다.‘결국 그 남자를 만나러 가려는 거겠지.’‘회사 위기라는 건, 그저 그럴듯한 명분일 뿐이니, 오히려 나에게 감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백림의 눈동자엔 엄청난 분노가 일렁였고, 속에서는 자제할 수 없는 불쾌함이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유정을 붙잡고 따지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밤공기는 차가웠고, 백림의 얼굴 위에도 냉기 어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남자는 짧게 인사만 하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마자 그대로 내달렸다.한편, 유신희는 조시안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를 찾고 있었지만, 조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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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2화

반면, 다른 차량 안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유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에 기대 있었지만, 서은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계속 말했다.“내가 뭐랬니! 백림이가 신희를 선택할 리가 없다고!”서은혜는 들뜬 얼굴로 유정을 돌아봤다.“백림이 있잖아. 아직도 마음에 네가 있는 거야. 오늘 보면 확실하잖아!”유정은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맥없는 말투로 중얼거렸다.“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데요?”서은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 백림이가 가장 좋은 사람을 선택했다고 했을 때, 난 신희 얘긴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네 얘기였던 거야!”유정의 입가에 가볍게 비웃음이 번졌다.백림은 그럴싸한 말 한마디쯤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속는 사람이 바보였다.그런데, 자신이 그 바보였다는 게 너무나도 우스웠다.‘그래, 내가 바로 그 멍청한 사람이었네.’...유정은 더 이상 그 일에 매달릴 여유가 없었다.유정이 자리를 비운 사이, 부사장이 나서서 진행한 미팅은 성과 없이 끝나버렸다.처음부터 조씨그룹과의 협업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그랬기에 조씨그룹이 갑작스럽게 손을 뗀 뒤로 투자처가 흔들리며 위기를 맞았고, 이대로 무산된다면 유정의 회사는 심각한 손실을 보게 된다.새로운 파트너를 하루빨리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유정은 직접 회사를 돌아가, 협업을 고려 중이던 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은 쪽은 비서였고, 조균석 사장님은 지금 회의 중이라는 말만 했다.한 시간 후, 유정이 다시 전화를 걸자 이번엔 조균석 본인이 받았다.[막 회의가 끝났어요. 오늘 저녁에 경성으로 출장을 가야 해서요. 이틀 정도 뒤에 돌아오니, 그때 다시 연락드리죠.]유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그럼 돌아오시면 꼭 다시 연락해 주세요.”전화를 끊고 난 뒤, 유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저녁노을이 사라지고 밤이 내려앉기 시작한 도시의 풍경이,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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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3화

조백림 옆에는 빈자리가 있어 유정은 조용히 다가가 앉았다. 곧 조균석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정을 소개했다.“유씨그룹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유정 사장님이세요.”유정은 상석에 앉아있는 인사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오른쪽 전방에서 날카롭게 꽂히는 시선을 모르는 체하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이 자리에 모인 인원은 유정을 포함해 열 명이었다. 그중 절반은 강성 사람이 아니었고, 또 둘은 유정과 일면식은 없지만 그녀와 백림 사이의 관계는 익히 알고 있었다. 둘이 파혼한다는 얘기는 들은 바 있었지만, 막상 지금 백림과 유정 사이의 낯선 분위기를 보며 그 소문이 사실임을 실감했다.“유정 사장님, 그 프로젝트 제가 최근에 좀 알아봤는데 전망이 괜찮더군요. 다만 투자 규모가 크다 보니, 이건 이사회와 따로 논의가 필요하겠어요.”균석은 잔잔한 미소로 말을 꺼냈는데, 그는 서른 초반의 젊은 사업가였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머리까지 단정히 빗어 넘겼고, 겉모습은 부드러웠지만 눈빛만큼은 세상사에 단련된 노련함을 품고 있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치열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이에 유정은 잔잔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한 말씀이죠. 자료는 제가 미리 챙겨왔어요. 사장님과 귀사에서도 좀 더 정확히 파악하실 수 있도록 드릴게요.”균석은 유정에게서 자료를 받아 옆에 내려놓으며 웃었다.“좋아요. 돌아가서 꼭 꼼꼼히 보죠.”“오늘 마침 잘됐네요. 유정 사장님께 몇 분 인사도 드릴 겸해서 자리 마련한 거거든요.”“앞으로 협업할 일도 많을 테니 미리미리 관계를 다져두시죠.”사실 오늘의 자리는 백림이 주최한 것이었고, 그를 초대하기 위해 따로 세팅된 자리였다. 균석은 이 프로젝트가 원래 조씨 그룹과 진행되던 것이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유정을 일부러 불러 백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보려는 의도도 있었다.만약 백림이 이 프로젝트를 반대한다면, 균석은 결코 그와 척을 질 수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정과의 협업은 없던 일이 되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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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4화

여기까지 온 이상, 유정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살짝 돌린 채 말없이 침묵했다.잠시 적막이 흘렀고, 백림이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렇게 힘들게 버티는데, 그 남자는 나타나서 도와주지도 않잖아. 유정아, 이제 좀 정신 차려야지. 누가 널 진심으로 아끼는지 똑바로 봐야 하는 거 아냐?”유정은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며 자조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 진심으로 아낀다는 사람, 설마 본인을 지칭하는 말이야?”유정은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난, 그런 진심 필요 없어.”백림의 눈빛에 곧장 불길 같은 분노가 치솟았다. 이는 숨기려 해도 감출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위협적인 기운이었다. 백림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눈으로 유정을 노려보다가, 끝내 말없이 돌아서서 문을 세차게 닫고 나가버렸다.유정은 벽에 기댄 채 깊게 숨을 내쉬었다.그 순간, 왠지 모르게 담배가 몹시도 생각났다.강하게 들어오는 그 자극적인 향과 타는 듯한 느낌이, 어쩌면 지금의 불쾌함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술자리가 끝난 시각은 밤 열 시 반, 호텔 입구에서 유정은 조균석과 평온한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균석은 유정을 다시 한번 보며 감탄하듯 말했다.“제가 아는 여성분들 중에 사장님이 술 제일 잘 드시더라고요. 다음에 또 한 번 대결해야겠네요.”그러나 유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사장님 모르시나 봐요. 저 지금 겨우 버티고 있는 거예요. 진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서요.”이에 균석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대리운전 불러드릴까요?”유정은 조용히 웃었다.“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제 기사님 곧 도착할 거예요.”“그럼 전 이만 들어가죠.”균석은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자료는 꼭 제대로 검토할게요. 이사회에서도 최대한 잘 설득 해볼게요. 유정 사장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니까요.”유정은 정중하게 미소 지었다.“감사드려요.”그 순간, 뒤편 호텔 출입구에서 백림이 다른 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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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5화

유정은 머릿속이 혼미했다.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아 거의 잠들기 직전이었다. 본능적으로 말했다.“망강 아파트.”그러고는 곧 정신이 번쩍 들며 말을 고쳤다.“안 돼, 거긴 가지 마.”서선혁은 옆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술에 제대로 취했네. 혹시 그 남자 때문에 술로 풀고 있는 거야?”말도 안 되는 소리에 유정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말이 왜 이렇게 많아? 계속 떠들면 내리게 할 거야.”그 말에 서선혁은 눈을 부릅뜨고는 퉁명스럽게 받아쳤다.“내리긴 누가 내려. 내가 안 몰면 넌 누가 데려다줘?”유정은 고개를 돌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선혁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유정을 바라봤다.눈가에 맺힌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흔들리고 있자, 남자는 당황해하며 목소리를 낮췄다.“야, 울지 마. 나 아무 말도 안 했잖아. 너 원래 눈물 많은 스타일 아니잖아.”선혁은 과거를 떠올렸다. 그때 그렇게 힘들게 구박받고도 울지 않던 애였다.유정은 몸을 돌려 의자에 이마를 댄 채 어깨를 살짝 떨고 있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작고 여린 여자의 어깨가 자꾸만 흔들렸다.선혁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이 바보, 진짜 마음이 가긴 갔나 보네.’얼마 지나지 않아, 유정은 그대로 의자에 기댄 채 잠들어버렸다.선혁은 유정을 일단 자기 아파트로 데려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여자를 부축해 안방으로 데려가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진짜 무거워졌네. 사람들은 실연하면 살이 빠진다는데, 넌 왜 더 쪘냐?”유정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나 술 마셨잖아. 술 무게는 양심상 뺴줘야지.”선혁은 어이없어 피식 웃고는 곧 유정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실연 중이니까 특별 대우다. 안방은 네가 써. 근데 이불 걷어차지 마. 다시 덮어줄 사람 없으니까.”유정은 흐릿하게 대답하듯 소리를 흘렸다.남자는 물 한 잔을 가져와 머리맡에 놓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다음 날 아침, 조씨 저택주윤숙은 아침 식사를 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가,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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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6화

유정은 아침 여덟 시에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킨 순간, 깜짝 놀랐다가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유정은 긴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정리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두툼한 니트 차림으로 밤을 보낸 탓에 온몸이 뻐근했고, 너무 급히 일어난 바람에 머릿속이 울릴 듯 아프자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몸을 돌려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채 손등을 베고 눈을 반쯤 감았다. 잠이 깨자마자 조백림의 얼굴이 떠올랐고, 전날 밤 남자가 내뱉은 말들도 하나하나 칼날처럼 돌아와 가슴을 쿡쿡 찔렀다.이런 통증은 꽤나 아팠다. 격렬하진 않지만 마치 마약처럼 천천히 마모되고, 아팠다가를 반복해 마음을 저리게 만들었다.차분히 생각해 보니 백림이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달콤한 말들은 늘 사귀는 상대에게 똑같이 건네던 레퍼토리였고, 자신은 그것을 알면서도 차츰 마음을 준 것이었다.그래서 그날 밤, 백림이 기은미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나 백림은 애당초 유정에게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백림은 원래 그저 그런 남자였기에, 잘못을 했다면 유정이 한 것이 맞았다.애초에 큰 기대를 품지 않기로 했으면서도 백림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리라 믿어 버렸으니까.며칠을 앓고 나니 비로소 냉정을 되찾고 두 사람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분노도, 슬픔도 아주 조금씩 희미해졌다.유정은 차오르는 울음을 겨우겨우 삼켰다.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는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이었다.잠시 뒤, 유정은 욕실로 가서 간단히 씻었다. 옷매무새를 추스르고 문을 열자 마침 서선혁이 아침 식사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컨디션 좀 어때?”유정은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많이 나아졌어. 고마워, 어제 신세 많이 졌어.”선혁은 식탁으로 향했다.“어서 와서 먹어.”이에 유정은 부엌에서 그릇을 챙기며 물었다.“오늘 비행기가 몇 시라고 했지?”“열두 시 반. 아직 시간 넉넉해.”선혁은 두유를 건네며 농담을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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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7화

유정은 살짝 놀랐다.그날 밤 조백림이 그렇게 분노했던 걸 생각하면, 분명 앙심을 품고 방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도 무산될 거라 각오했었기에, 계약이 성사됐다는 사실은 예상을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이었다.그날 오후, 양측 회사는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고, 유정과 프로젝트 책임자는 그 자리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다.며칠 사이, 판매 부진을 겪던 제품들이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고, 자금도 빠르게 회수되었다.다른 프로젝트 역시 새 진전을 보이며 회사 전반에 긍정적인 흐름이 감지되었다.유정은 여전히 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여러 정황을 보면 백림이 더는 그녀를 견제하거나 회사에 손을 대는 일은 없는 듯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서로의 세계에서 사라졌고, 이젠 일말의 교차점조차 없었다.바쁜 와중에도, 간혹 잠시 숨을 고를 때면 문득 백림이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유정은 생각했다.‘어쩌면, 조백림도 마음을 정리한 걸까.’한편, 조시안은 며칠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여경이 노크 후 조심스레 방에 들어서고는, 우울한 기색이 짙은 시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유신희도 괜찮은 아이잖아. 유씨 집안에서 많이 예뻐해 주고, 지금은 갤러리에서 일하지만 소유한 부동산이랑 회사도 유정이 못지않아.”그러나 시안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전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그 말에 여경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조백림도 유정을 좋아하는 건 아닐 수도 있어. 원래 재벌가 정략결혼이란 게 다 그런 거야.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시안의 목소리는 더 깊고 낮게 가라앉았다.“정말 좋아하지 않았다면, 왜 그렇게 붙잡고 안 놓는 건데요?”뜻밖의 말에 여경은 시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너, 유정일 그렇게까지 좋아해?”시안은 쥐고 있던 펜을 꾹 움켜쥐고 낮게 대답했다.“그래요. 전 유정을 좋아해요. 다른 누구도 아니라, 유정 한 사람만 좋아해요.”이에 여경의 눈에 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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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8화

집 정리를 마친 유정은 비서를 데리고 맞은편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휴대폰으로 뉴스 페이지를 다시 확인했다.그런데 분명 전날 밤 보았던 조백림의 사진은 사라지고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그의 이름은 감쪽같이 내려가 있었다.마치 그 모든 게 꿈이거나, 단순한 착각이었던 것처럼.이때 맞은편에 앉은 비서가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사장님, 여기 살면 진짜 좋겠어요. 이 식당 찐빵이 강성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던데요?”유정은 휴대폰을 덮으며 눈을 들었다.“먹고 싶을 땐 말해요. 회사로 포장해서 보내줄 테니까.”그 말에 비서는 깜짝 놀라며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감사드려요, 사장님!”식사를 마친 후, 유정은 운전기사를 시켜 비서를 귀가시키고 혼자 위층으로 올라갔다.계속 미뤄뒀던 자료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가 훌쩍 지나 있었다.강성의 하늘은 하루 종일 잿빛이었다. 저녁 무렵이 되기도 전에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유정은 물을 마시려고 자리를 떴다가, 텅 빈 거실을 바라봤다. 넓은 공간 속엔 아무런 소리도 없었고, 발소리 하나에도 메아리가 또렷하게 울렸다.이때 유정은 문득, 이렇게 큰 집을 산 걸 후회했다. 왜냐하면 혼자 있을 때의 적막이, 유난히 선명했기 때문이었다.한밤중조백림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리자, 운전기사가 재빨리 따라 내렸다.“사장님!”그러나 백림은 흐릿한 눈으로 손을 뿌리쳤다.“괜찮아요.”그는 천천히, 묵직한 걸음으로 저택으로 향했다.찬바람은 눈발을 실어 나르며 옷 속으로 파고들었고, 남자의 미간에는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은 듯 굳어 있었다.백림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고, 검은 눈동자가 멀리 허공을 향해 멍하니 머물렀다.‘이런 날씨엔, 또 잠 못 이루겠지.’그는 혼잣말처럼 자조하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러고는 다시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욕실에서 씻고 나왔지만, 역시나 잠은 오지 않자, 남자는 발코니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지붕 없는 테라스 위로 눈이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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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9화

조시안의 눈에 스치듯 어두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유신희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신희 씨, 저 좋아해요?”돌직구에 신희는 잠시 굳어졌다. 긴 속눈썹이 떨리며 여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저 팬으로서 호감이 있었어요. 근데 조시안이란 이름을 알게 된 뒤에도 그 감정은 그대로였어요.”“내겐, 당신은 여전히 주준이거든요.”시안은 냉소를 머금은 미소를 흘렸다.“내가 사생아라는 이유로 무시한 적은 없었어요?”신희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아니요, 절대로요!”그러나 시안은 여전히 냉담했다.“흠, 저는 분명히 말하죠. 전 신희 씨한테 아무 감정 없어요. 그리고 헛된 기대도 하지 마요.”“나는 조씨 집안의 정식 후계자가 될 수 없거든요. 이 집안의 부나 권력, 다 나랑은 상관없는 거예요.”신희는 짧은 침묵 끝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내가 당신이 그걸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면요?”뜻밖의 말에 시안은 놀란 눈으로 신희를 바라봤다.“신희 씨가요?”신희는 부드럽게 웃었다.“그래요. 조백림만큼 능력이나 배경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랑 손잡는다면 불가능도 가능해질 수 있어요.”시안은 처음으로 신희를 제대로 바라봤다. 어딘가 유정과 닮은 눈매, 그러나 유정처럼 아우라는 없었다.창백한 얼굴은 오히려 신희를 연약하게 보이게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약함도 보이지 않았다.신희도 시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우리, 결국 둘 다 집안의 말에 휘둘리는 중이에요. 우리가 하는 말에 힘도 없고, 원하는 걸 선택할 수도 없죠.”“그래서 서로 손잡고 뭔가 바꿔보자는 거예요. 우리 삶, 우리가 한 번쯤 주도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요?”시안의 목소리는 잠긴 듯 낮았다.“뭘 하자는 건데요?”신희는 솔직하게 웃었다.“모르겠어요. 지금 당장 정해진 건 없어요. 다만, 우리 이익은 같잖아요. 서로 도우면 뭐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시안은 신희를 바라보며 깊은 시선으로 가늠했다.여자는 찻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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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0화

유정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조용히 말했다.“전에 네가 말했잖아. 감정 없는 관계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그 말, 맞는 것 같아서 그냥 정리했어.”장의현은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그럼, 내가 원흉인거야?”이에 유정은 웃음을 터뜨렸다.“아니, 그냥 내가 스스로 정리한 거야.”의현은 유정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근데 뭔가 계기가 있었던 거 아냐? 갑자기 그렇게 깨달을 정도면.”유정은 전방 도로를 응시했다. 형형색색 네온사인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며, 빛과 그림자가 교차했다.“사람은 어떤 순간, 문득 정신이 들 때가 있잖아.”유정의 목소리는 낮고 잔잔했고, 의현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조백림이 너한테 꽤 잘해주는 줄 알았어. 시간 지나면 정이 들겠거니 했는데.”유정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그 사람은, 모두한테 잘해.”그 말은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들렸다. 의현은 그제야 무언가를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네가 괜찮다면, 그걸로 된 거야.”유정은 의현을 향해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너만 있으면 나 아주 괜찮거든.”이에 의현도 활짝 웃었다.“이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마음 안 좋을 것 같아서 얼른 내려왔지!”유정은 콧소리로 응수했다.“그런데 너, 며칠 전만 해도 심심해서 죽겠다고 했잖아.”의현은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뻔뻔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런 말은 마음에만 담아두고 굳이 꺼내진 말자? 알았지?”유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알았어.”두 사람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고,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이곳은 강성의 구시가지, 온통 고전풍의 장식으로 꾸며진 거리였다.해가 지고 붉은 등이 일렬로 걸린 모습은 마치 용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듯 화려하고 눈부셨다.날씨는 제법 추웠지만, 거리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근처 대학교의 학생들과 젊은이들은 한복이나 개량한복을 입고 거리를 거닐고 있었고, 거리 곳곳엔 설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었다.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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