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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억만장자의 모든 챕터: 챕터 3901 - 챕터 3910

3911 챕터

제3901화

임정한은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주서인이 집에 돌아와 혼낼까 봐 꼼짝 못 했지만 주서인이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우빈과 한바탕 붙었을 것이다.그는 속으로 이를 갈며 다짐했다. 어른들이 제각기 할 일로 흩어지면 그때 꼭 우빈에게 복수하겠다고.‘고작 이틀 동안 머무는 것뿐인데 왕자처럼 대접받다니...’임정한의 눈빛에는 질투와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주서인은 곁에서 입을 열었다.“우빈아, 왜 아빠랑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한테만 선물을 준비했어? 고모는 해물을 좋아하는 거 알잖아. 네 엄마도 알 텐데... 왜 커다란 해물 세트를 안 챙겨왔을까?”주서인은 어느새 우빈의 작은 여행 가방을 마음대로 열어젖혔다. 안에는 갈아입을 옷과 몇 개의 장난감만 들어 있었다.그리고 또 세 세트의 영양제에 손대려 했지만 그 순간 주형인이 손을 탁 쳐내며 날카롭게 말했다.“그건 우빈이가 나랑 부모님께 드리려고 가져온 영양제야.”말을 마치자마자 주형인은 서둘러 영양제들을 집어 들고 자기 방으로 향했다.주서인은 기회만 생기면 무엇이든 빼앗아 가는 사람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잠시라도 거실에 두면 눈 깜짝할 새 사라질 터였다.“뭐가 대단한 영양제라고! 우빈이가 부모님께 드리라고 한 거면 부모님 몫은 내가 갖고 있어도 되잖아. 왜 네가 다 가져가!”주서인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하지만 더는 따라가지 못했다. 주형인의 눈빛은 예전 같지 않았다.그가 더는 누나라고 봐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완전히 등을 돌리게 만들면 친정에 출입하는 것조차 힘들어질 수 있었다.주형인은 누나를 본체하지도 않았다.쿵!방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거실은 잠시 조용해졌다.주경진과 김은희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주서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소파로 돌아와 우빈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팔을 벌렸다.“우빈, 고모가 안아 줄까?”하지만 우빈은 몸을 움츠리며 할아버지 품으로 파고들었다.“할아버지, 저는 고모한테 안기기 싫어요.”주경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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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2화

“우빈은 아직 어린애야. 너 같은 게 무슨 자격으로 애한테 새해 선물 내놓으라고 해? 너는 애한테 뭐 하나 해준 게 있어? 네가 먼저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 넌 딸로서 우리에게 새해 선물은 준비 했어? 예진이가 돈 좀 번다고 해도 네가 뭔데 그 집에 손 벌리냐? 예진이가 너한테 빚이라도 졌어? 아니잖아! 그런데 매번 와서 뜯어가려고만 하지? 옛날에 예진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네가 뭐 먹고 싶다 하면 비싸든 말든 다 차려줬잖아. 그 돈이 형인이가 벌어온 거지만 예진이가 그 당시 안 사고 버텼으면 어쩔 건데? 결국 예진이가 네 입맛에 맞추어 줬잖아. 그러니까 네가 지금 이렇게 된 거야. 남의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먹고 더 달라고 떼쓰고.”주경진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소리쳤다.“예진이가 네 머슴이야? 왜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줘야 해? 그리고 네가 딸이면 딸답게 굴어야지. 올 때마다 빈손으로 왔다가 나갈 땐 이 집안에 좋은 물건들을 다 쓸어가잖아. 화장지 한 롤까지도 탐내는 네 꼴을 내가 못 본 줄 알아? 넌 염치도 없는 도둑이야. 그런 네가 무슨 체면으로 이 집에 발 들여놔? 솔직히 네 엄마랑 나도 잘못이 있어. 종일 네 편만 들어주고 네가 하자는 대로 예진만 몰아세웠지. 그러니까 네가 세상 다 네 거인 줄 아는 거야. 덕분에 우리 손자까지 피해를 봤지... 예진이만 힘들었던 게 아니야. 우빈이도 같이 고생했다고. 우리가 너한테 빚졌어? 왜 이렇게 못났어?”주경진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주서인은 목이 메여 눈가가 붉어졌다.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지만 호통치시는 아버지의 앞에서 반박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잘 들어! 앞으로는 형인이가 주지 않는 한 이 집에서 단 하나라도 가져가지 마. 여긴 형인의 집이야. 이 집의 주인은 형인이야. 우리도 형인 덕에 겨우 노후를 보내는 처지인데 네가 무슨 낯짝으로 와서 긁어가려 들어? 그리고 네 엄마한테 돈 뜯어내는 짓도 그만둬! 지난번에 샤부샤부를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을 우리도 다 알아!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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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3화

주서인은 훌쩍이며 울먹였다.“예진이는 예정 씨가 늘 곁에서 도와주고 또 부잣집 이모까지 있잖아요. 게다가 원래부터 돈 많은 집안 출신이고. 저는 죽어라 발버둥 쳐도 그 사람들을 따라갈 수가 없단 말이에요. 저도 제 자식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모으고 싶었던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이에요? 예진이는 너무 쉽게 돈을 벌잖아요. 지금은 또 부잣집에 시집까지 갔고. 그 집에서 내가 얻을 게 하나도 없는데 우빈한테서 조금 얻어가면 안 돼요? 애가 어린 건 맞지만 가진 건 저보다 많잖아요. 저는 마흔이 넘어도 넉넉하게 살지 못하는데 얘는 벌써부터 금수저잖아요. 그런 애한테 고모가 좀 얻어먹으면 어디 덧나요? 그냥 예진에게 말해서 해물 선물 세트 몇 박스 보내라고 하는 게 그리 잘못이에요? 왜 그렇게 호되게 욕하세요? 저는 아빠의 친딸이고 예진이는 이제 남인데. 예진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건 우리 주씨 집안이랑 상관없는 거잖아요. 하지만 우빈은 우리 집 핏줄이에요. 우빈을 통해서라도 좀 얻는 게 왜 잘못이에요?”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주서인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주서인 같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자신을 지나치게 몰아붙이고 욕했다고 여길 뿐이다.주경진의 얼굴은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때 마침 주형인이 방에서 나오는 걸 보더니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외쳤다.“형인아, 네 누나네 식구를 전부 다 내쫓아. 다시는 이 집에 들이지 마라. 특히 네 누나! 내가 살아 있는 한 이 집 문턱도 못 밟게 해!”“아빠!”주서인이 울며 매달리듯 불렀다.김은희가 다급히 나서며 말했다.“여보, 화 좀 가라앉혀요. 서인이가 원래 좀 그런 애잖아요. 그렇게까지...”“닥쳐! 또 서인을 도와줄 거면 당신도 같이 나가서 서인이랑 살아! 당신이 돈이 없을 때 서인이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벌써 잊었어?”김은희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임수찬은 사태가 더 커질까 봐 두려워 황급히 아내를 붙잡았다.“서인아, 네가 잘못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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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4화

하예진이 챙겨준 선물은 원래 주경진 부부와 주형인의 몫이었다. 그런데 주서인은 그 선물들이 못마땅한지 우빈에게 전화를 걸어 하예진에게 자기 선물도 준비하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우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난 고모가 정말 싫어. 고모한테까지 새해 선물을 줄 마음은 없어.’“우빈아.”김은희는 문득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결국 남편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아니, 당신도 그래요. 그렇게 큰소리로 욕할 때 형인이라도 불러서 우빈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게 했어야죠. 애가 다 듣잖아요. 아직 어린애인데.”주경진이 매섭게 쏘아붙였다.“지금에야 와서 우빈이가 어린애라고? 그럼 당신이 먼저 딸을 잘 가르쳤어야지! 서인 그년! 예진의 피를 빨아먹겠다고 별짓을 다 하잖아. 우빈만 아니었으면 전태윤 씨가 가만뒀을 것 같아? 서인의 가게는 진작에 문 닫고 빚더미에 앉았을 거야. 예정 씨가 우빈을 봐서 그냥 넘어간 거지. 그런데도 서인은 고개 숙일 줄도 모르고 또 예진의 등골이나 빼먹겠다고 하니... 그게 사람으로 할 짓이냐? 염치도 없이 피만 빨아먹으려 하다니!”김은희는 더 이상 대꾸할 수 없었다.이때 주형인이 국화차 한 잔을 들고 나와 아버지의 앞에 놓았다.“아버지, 국화차 좀 드시고 화 좀 가라앉히세요. 누나는 원래 저런 성격이에요. 바뀔 일은 절대 없어요. 그냥 앞으로는 집에 적게 오게 하면 돼요. 우빈하고 마주칠 일이 없게 하는 거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주형인은 아들을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우빈아, 미안해. 겨우 이틀 집에 와 있는데 이런 꼴을 보게 해서. 네 고모 같은 사람은 다시는 보게 하지 않을게. 네가 들은 말들은 전부 쓰레기 같은 거니까 마음에 담아둘 필요 없어. 앞으로는 아빠가 네 고모를 절대 집에 들이지도 않을 거야. 다시는 네 앞에서 험한 소리 못 하게 막아버릴 거야. 그러니까 고모가 뭐라 말해도 마음에 새겨두지 마.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철이 든 우빈은 어린 목소리로 주형인의 안으며 대답했다.“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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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5화

원림성 A시의 선우씨 가문.점심 식사를 마친 뒤 선우민아는 몇몇 사촌 여동생들과 함께 정원의 정자에 앉아 있었다. 정원에서는 두 남동생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눈놀이하고 있었다.그때 전창빈이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정자에 올라서며 잘생긴 얼굴로 자연스럽게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선우씨 가문의 몇몇 따님들은 이번에 선우민아가 초대한 전속 요리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요리 솜씨가 뛰어난 건 물론 잘생긴 데다 그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온몸을 휘감던 한기마저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밖에는 눈이 흩날리는데도 이상하게 춥지가 않았다.사실 추울 리 없었다. 두툼한 옷차림이 매우 따뜻했으니까.평소에는 각자 바빠서 일하는 이는 일에 치이고 공부하는 이는 공부에 매달려 이런 여유를 가질 틈조차 없었다.오늘은 선우민아의 초대로 모처럼 다 같이 모여 눈이 내리고 있는 풍경을 즐기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모인 만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저만치에서 뛰어노는 남동생들을 보며 그녀들은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아가씨, 방금 우려낸 따뜻한 차입니다.”전창빈은 쟁반을 내려놓으며 막 끓인 차를 작은 화로 위에 올렸다. 금세 식지 않도록, 언제든 따뜻하게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또한 그녀들을 위해 준비한 디저트들도 뜨겁게 먹으면 맛있는 것들로 골라 화로 위에 올려주었다.언제 집어 먹어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맛 그대로라 차갑게 식어버릴 걱정은 없었다.만약 지금 그가 선우씨 가문의 살림을 온전히 맡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주저 없이 이 정자 사방에 두툼한 커튼을 드리우고 차가운 바람을 막아내어 선우민아가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해주었을 것이다.“네.”선우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금방 점심을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아요. 디저트를 더 준비하지 않아도 돼요. 돌아가서 좀 쉬세요. 잠시 후면 또 저녁 준비로 분주할 텐데.”전창빈이 미소를 띠며 물었다.“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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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6화

선우씨 가문의 셋째 딸 선우수아는 설령 맛없는 음식이라 해도 전창빈과 마주 앉아 먹는다면 산해진미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그녀는 철저한 외모 지상주의였다.“고맙긴. 전부 창빈 씨가 차리는 건데.”선우민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저는 아가씨의 전속 요리사라서 아가씨 말씀만 따를 겁니다.”전창빈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그의 뜻은 분명했다. 선우민아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의 요리를 맛보는 일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었다.선우민아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전창빈의 또 다른 장점이라면 바로 충성심이었다. 오직 그녀만을 위한 충성심.선우민아는 그런 전창빈을 잠시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창빈 씨, 이제 가서 좀 쉬세요. 저랑 동생들은 조금 더 있다가 민기와 민수가 놀다 지치면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네.”전창빈은 낮게 대답하며 공손하게 정자에서 물러났다. 그 뒤에도 그는 두 어린 도련님과 한참 장난을 치며 놀아준 뒤에야 숙소로 돌아갔다.선우수아는 멀어지는 전창빈의 뒷모습을 보며 선우민아에게 물었다.“언니, 창빈 씨가 너무 완벽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이 정도면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그러자 선우정아가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언니가 이미 그 사람의 신분까지 전부 조사했어. 그것도 두 번이나. 관성 출신이고 여기랑은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의 사람이잖아. 사업도 우리 쪽이랑 전혀 연관이 없고. 그러니까 요리 말고는 다른 목적 없다고 봐야지.”말을 마친 선우정아는 장난스럽게 선우민아를 흘깃 보았다.“굳이 의심할 게 있다면... 언니를 보고 마음이 바뀐 건 아닐까? 언니한테 하는 걸 보면 아무 감정도 없다고 믿기에는 좀 수상하거든.”“정아야!”선우민아가 선우정아를 노려보며 물었다.“내가 예전에 자꾸 널 놀렸던 일에 대한 보복인 거야?”선우정아는 늘 전창빈을 칭찬했다. 잘생겼다, 장래가 밝다, 멋지다며 감탄하곤 했고 그럴 때마다 선우민아는 그녀를 몇 번 장난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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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7화

“나연아.”“민아야, 이제 연휴 들어갔지?”전화기 너머로 양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응, 왜? 설마 또 동창회에 나가라고 설득하려는 건 아니지? 난 그런 데 관심 없어. 괜히 설득하려 들지 마.”선우민아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학창 시절 내내 선우민아는 조용하게 지냈기에 그녀의 집안 배경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러나 선우민아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의 능력이 부족해지자 그녀는 졸업도 마치지 못한 채 가업을 이어받아야 했다. 그제야 같은 반 친구들은 그녀가 바로 선우 가문의 큰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선우씨 가문에는 딸이 많고 아들은 적었다.선우민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대가 끊긴 가문이라며 수군댔다. 선우씨 가문의 재산을 노리며 얼마나 많은 남자가 그녀들의 곁을 맴돌던가.어린 두 자매가 집안을 이끌어야 했으니 그만큼의 압박도 컸다.그래서일까. 다가오는 남자들이 모두 그녀의 재산을 보고 접근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능력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고 경제 조건이 비슷한 금수저는 선우민아만 못했다. 그녀는 실력자를 존중했고 실력자가 아닌 금수저들은 눈에 차지 않았다.“알아, 네 성격. 내가 감히 억지로 끌고 갈 수나 있겠어? 게다가 동창회는 벌써 끝났어. 사실은 너를 짝사랑하는 그 남자 있잖아. 그 사람이 요즘 네 곁에 잘생긴 남자가 자주 보인다면서 나한테 알아봐 달라고 하네. 혹시 네가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거냐고.”선우민아는 진지하게 대답했다.“내 곁에는 잘생긴 남자 같은 건 없어. 전부 경호원들이야.”그녀의 경호원들이 아주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못생겼다고 할 수도 없었다.“경호원이 아닐 텐데. 정말 멋지고 잘생긴 남자라던데? 딱 봐도 집안 좋은 도련님과 같고 풍겨 나오는 기품이 남달라서 한눈에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던데?”선우민아는 눈살을 찌푸렸다.“나연아, 넌 내 친구 맞아? 아니면 그 사람의 친구야? 넌 그 사람은 단지 동창일 뿐이고 우리는 몇 년을 함께한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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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8화

양나연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앞으로는 오직 민아의 기분만 생각해야지. 다시는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친구한테 뭐 캐묻는 일은 없어야겠어. 민아가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니까.’선우민아는 누구보다 바쁜 여자였다. 아직 스물일곱이었기에 결혼 문제도 급하지 않았다.굳이 양나연이 나서서 걱정해 줄 이유는 없었다.세상에 잘나가는 여자들이 서른, 마흔이 넘도록 혼자 지내는 경우도 많은데 선우민아가 급해 할 것도 없지 않은가.“우리 집에서 오늘 저녁에 샤부샤부를 먹을 거야. 심심하다면 놀러 와. 대신 또 괜히 나한테 선을 봐라 어쩌라 얘기하면 혼쭐낼 거야.”양나연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알았어, 약속할게. 그런 얘기를 절대 안 해. 게다가 넌 겨우 스물일곱인데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잖아.”양나연 자신은 일찍이 가정을 꾸렸지만 선우민아는 그녀와 달랐다. 선우씨 가문의 큰딸로서 어깨에 짊어진 책임이 크고 무거웠다.학교 동창은 심지어 선우씨 가문에 장가를 들겠다며 스스로 데릴사위 자리를 자청했다.하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선우민아에게 큰 도움이 되기 어려웠다. 고작 선우민아와 아이 하나 낳는 것 말고는 별다른 쓸모가 없을 터였다.그런 사람을 선우민아가 받아들일 리 없었다.애초에 마음이 가지도 않았고 애정은커녕 어울리지도 않았다.그는 선우민아에게 어울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양나연은 속으로 자신을 나무랐다.괜히 오지랖을 부려서 동창의 진심 어린 고백 몇 마디에 홀딱 감동해 버리고는 제멋대로 중매라도 서려 했던 것이다.하마터면 선우민아와 사이만 멀어질 뻔했다.통화를 마친 선우민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오랜 친구가 아니었다면 정말 인연을 끊었을 거야.”선우정아가 언니를 달래듯 웃으며 말했다.“언니, 나연 언니는 그냥 팔랑 귀라서 쉽게 감동하는 편이라 그래요. 나쁜 마음은 없을 거예요.”“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나랑 친구가 될 수 있었겠어?”“그럼요. 우리 언니야 워낙 눈치도 빠르고 똑똑해서 그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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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9화

곧이어 선우정아까지 동생들과 어울려 정원에서 신나게 뛰놀았다.정자에 남아 있는 사람은 선우민아뿐이었다. 그녀는 따끈한 차를 홀짝이며 떠들썩하게 어울려 노는 동생들을 지켜보았다.직접 어울리지는 못해도 그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그녀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었다.전창빈이 우려낸 차는 유난히 입맛에 잘 맞았다.평소 선우민아는 차를 거의 즐기지 않았다.하루 두 잔 이상의 커피를 마셔야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커피가 생활의 일부였다. 그런데 오늘은 은근히 스며드는 차의 향이 오히려 커피보다 더 깊게 몸을 풀어주는 듯했다.그 시각 전창빈은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러나 바로 잠에 빠져들지는 않고 휴대폰을 들어 형제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그는 전우와 전유하랑 나이가 비슷하여 두 사람과 연락이 가장 잦았다.전창빈은 전유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요즘 집안은 어때? 할머니께서 또 내가 설에 안 들어왔다고 잔소리하신 건 아니지?”전유하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야. 다들 잘 계셔. 할머니는 하루 종일 웃으셔. 호영 형이 형수님이랑 같이 집으로 돌아와서 분위기가 더 좋아졌거든. 리조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엄청 기뻐하셔. 그리고 내년 이맘때는 더 시끌벅적할 거라고 하셨어. 다들 힘내서 여자 친구와 결혼하고 아기도 안으라고도 하셨고 여자 친구 없는 사람은 빨리 노력하라고 잔소리까지...”“너무하시네. 난 이렇게 멀리 보내 놓고 설에도 못 돌아가게 만들어 놓으셨는데 정작 내 생각은 안 하신단 말이지.”전창빈이 투덜대자 전유하는 껄껄 웃었다.“형이 안 돌아오는 거잖아. 정말 돌아오고 싶었으면 어떻게든 휴가를 내고 돌아왔겠지.”대화는 곧 집안의 소식으로 흘렀다.“아, 맞다. 예진 누나랑 동명 형은 혼인 신고를 마쳤고 지훈 형도 이미 결혼했어. 이제 다들 장가갔어.”“다들 결혼했다고? 그럼 할머니는 뭐라고 하셔?”전창빈의 목소리에 미묘한 떨림이 묻어났다.“별다른 말씀은 없으셔. 호영 형은 형수님이랑 함께 돌아와서 할머니가 흡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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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0화

선우씨 가문의 딸들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배우자에 대한 조건을 정해 두고 있었다.첫째는 집안 조건이 반드시 선우씨 가문과 맞먹어야 하고 둘째는 거주지는 반드시 본 시나 인근 도시여야 했다.멀리 떨어져 사는 결혼은 애초에 논할 가치조차 없었다.전창빈은 선우민아의 곁에서 일하며 그녀의 배우자 기준을 똑똑히 파악해 두었다.전씨 할머니가 직접 정해준 인연이라 쉽게 풀릴 거로 생각했지만 막상 다가가 보니 그 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고 단단했다.선우민아는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게다가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 전창빈과 그녀 사이에 가로놓인 가장 큰 장벽이었다.선우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전창빈은 잠시 고현을 떠올렸다. 그녀도 차가운 성격이었지만 유능한 쌍둥이 동생이 있어 친정의 가업을 동생에게 맡길 수 있었다.그러나 선우민아의 막내 남동생 선우민기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라 그 꼬마가 가업을 이어받으려면 최소 스무 해는 더 걸릴 터였다.전창빈은 선우민아와의 정이 좀 더 깊어져 사귀게 되면 집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전씨 가문의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서 혹시라도 선우씨 가문에서 데릴사위를 원한다면 어른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 물어봐야 했다.설령 데릴사위로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원림성에 머물며 살아야 할 것 같았다.선우민아를 그냥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요즘 용씨 성을 가진 중년 남자가 선우민아 자매에게 호시탐탐 손을 뻗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으니 더욱 떠날 수 없었다.“형,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야?”전유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던졌다.전창빈은 못마땅한 듯 콧소리를 냈다.“네 형수님 마음을 얻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냐?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인연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분들이야. 너도 곧 알게 될 거다.”“하하, 난 아직 걱정 없어. 우리 셋은 아직 어리잖아.”전유하는 자신이 적어도 4년은 편히 지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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