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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1화

전이혁이 말했다.“그건 아니죠. 할머니께서 그러셨어요.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건 결혼이라고요. 사업보다 인생사가 먼저라고 하시면서 제가 맡던 일들을 형제들에게 나눠 맡기셨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제 인생부터 정리하라는 뜻이죠. 물론 돈도 계속 벌고 있습니다. 결혼하려면 준비할 게 많잖아요. 결혼하고 나면 아이도 낳아야 하고 아이 키우는 데는 돈이 더 들 테고요. 돈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더 벌어 제 아내가 돈 걱정 없이 지내게 해 주고 싶어요. 제가 미래 아내에게 주고 싶은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돈, 다른 하나는 돈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죠. 그리고 저희 전씨 그룹이 해성에서 진행 중인 사업도 요즘 투자를 늘리고 있어요. 여전히 제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하죠.”전이혁은 고개를 돌려 김태경을 바라봤다.“태경 형은 저랑 아영 씨보다 나이도 많으시잖아요. 이제 서른도 훌쩍 넘으셨는데 집안에서 결혼 얘기 안 나오세요?”전이혁의 질문에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김태경과 최하임이 요즘 애매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먼저 은근히 심기를 건드린 쪽이 김태경이었으니 전이혁도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그저 받은 만큼 돌려주었을 뿐이다.도아영은 전이혁을 한 번 흘겨보았지만 굳이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사실 도아영 역시 김태경이 하루빨리 결혼 문제를 정리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양쪽 어른들이 더는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을 테니까.그녀는 김태경과 함께 지낸 시간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마음도 없었다.김태경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형, 술 마실래요? 제가 형이랑 몇 잔 함께 마실게요.”취하면 도아영에게 기대어 그녀에게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할 속셈이었다.김태경과 함께 마시겠다고 한 것도 김태경이 먼저 나서서 자신을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할까 봐 미리 막아 두려는 생각이었다.원래 기분이 좋았던 김태경은 결혼 얘기가 나오자 단숨에 기분이 가라앉았다.그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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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2화

결과는 뻔했다. 김태경은 결국 만취했고 전이혁은 살짝 취한 정도였다.도아영은 김태경의 비서에게 그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김태경은 원래 도아영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이틀 만에 회사에서 제공한 아파트로 옮겨갔다. 회사 근처라 출퇴근이 편하다는 이유를 댔지만 사실 더 이상 도씨 집안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괜히 도아영의 부모가 김태경이 도씨 저택에 머무는 동안 도아영과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게 하면 안 되니까.자기 부모 쪽 기대가 일방적이라는 것은 김태경도 잘 알고 있었다.도씨 가문이 결혼 이야기를 딱 잘라 거절하지 않은 것도, 황서진이 옛정을 생각한 데다 전이혁이 도아영을 더 소중히 여기도록 마음을 다잡게 하려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실제로 도씨 가문에서는 이미 전이혁을 사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황서진 부부가 겉으로는 전이혁을 까다롭게 대하는 듯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치레에 불과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아영의 마음이었다.김태경은 귀국하던 날 도아영에게 직접 물었는데 그녀는 숨기지 않고 인정했다.자신은 전이혁을 사랑한다고 말이다.김태경에게는 애초에 기회가 없었다.도아영은 전이혁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술에 취한 그를 부축해 내려오면서도 그녀는 내내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운전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도 왜 마셔요. 오빠는 원래 기분이 괜찮았는데 이혁 씨가 괜히 그런 이야기를 꺼내서 기분을 망쳐 놓았잖아요. 그러니까 오빠가 술을 저렇게 많이 마셨죠. 제가 모를 줄 알아요? 결국 제가 데려다주게 하려고 그런 거잖아요.”도아영은 전이혁을 부축하며 호텔 밖으로 나왔다.그 모습을 본 경비원이 급히 다가와 함께 전이혁을 도아영의 차에 태워 주었다.도아영은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몸을 숙여 차 안으로 들어가 전이혁의 안전벨트를 채워 주고는 그의 얼굴을 꼬집었다.“정말 취한 거예요?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전이혁은 약간 취기는 있었지만 혼자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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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3화

전태윤은 전이혁 부부의 뜻을 먼저 확인한 뒤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집사 한 명을 보내 주기로 했는데 도착하려면 아무래도 2, 3일은 더 걸릴 듯했다.그 시각 전이혁의 별장은 사람 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불도 켜지지 않아 집 안은 온통 어둠뿐이었다.도아영은 별장 앞에 차를 세운 뒤 몸을 기울여 전이혁의 바지 주머니를 더듬었다.양쪽을 모두 확인한 끝에 오른쪽 주머니에서 열쇠 묶음을 찾아냈다.그녀는 열쇠를 들고 차에서 내려 먼저 대문을 열었고 집 안으로 들어가 불부터 켰다.불이 환히 밝혀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다시 밖으로 나왔다.그리고 다시 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가 집 문 앞에 차를 세워두었다. 전이혁을 부축하여 집안으로 들이기 수월하도록 일부러 가까이 세운 것이다.전이혁은 깊이 잠든 사람처럼 내내 눈을 뜨지 않았다.차를 세우는 동안에도, 집 앞으로 들어오는 동안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술을 가장 많이 마신 쪽은 김태경이었고 전이혁은 몇 잔밖에 마시지 않았다.그런데도 저렇게 취해 있는 모습이 도아영에게는 어딘가 미심쩍었다.어쩌면 연기일지도 모른다.다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디가 수상한지 짚어 내기가 어려웠을 뿐이었다.전이혁은 손님들을 만나며 술자리를 수없이 치르는 사람인데 주량이 이렇게 약할 리가 있겠는가.“전이혁 씨, 일어나세요. 집이에요.”도아영은 그를 바로 부축해 내리지 않고 몸을 숙여 그의 얼굴을 흔들어 보며 깨우려 했다.몇 번이고 흔든 뒤에야 전이혁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아영 씨.”눈을 뜨자마자 그는 도아영의 손을 붙잡았다.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아영 씨, 저 당신을 너무 사랑해요. 이렇게 꿈에서도 보다니 너무 행복하네요.”“아영 씨, 사랑해요. 정말 많이 사랑해요.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있든, 얼마나 많은 얼굴을 숨기고 있든 상관없어요. 전부 당신이니까. ‘여우’여도 좋고, 도아영이라도 좋고 민지영이어도 좋아요. 전부 당신이잖아요.”그 사실을 알고 난 뒤로 전이혁에게는 이름이나 겉모습의 차이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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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4화

“태경 형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셨어요?”“전이혁 씨가 모셔다드린 건 아닐 테고요. 다들 운전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결국 마셨네요.”도아영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전이혁을 타박했다.“평소에는 주량도 괜찮으면서 오늘은 두 잔밖에 안 마셔 놓고 그렇게 취한 척을 하다니...”전이혁이 히죽 웃으며 변명하듯 말했다.“도수가 센 걸 마셨잖아요. 맛은 괜찮은데 금방 취하더라고요. 뒤끝도 있고. 오는 길에 차에서 잠깐 잤더니 이제야 좀 나아졌어요. 태경 형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길래 함께 한 잔 마셨어요. 형은요? 많이 취했어요?”“당신보다 훨씬 취했죠. 이제 들어가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도아영은 그가 정신이 많이 맑아지고 걸음도 더 이상 휘청거리지 않는 모습을 확인한 뒤 돌아가려 했다.“아영 씨.”전이혁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여기까지 온 김에 끝까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집 앞까지 데려다주셨는데 차라리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모처럼 저의 집에 오셨는데 물 한 잔도 안 드시고 가시면 너무하잖아요.”그는 곧 한층 힘 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완전히 취한 건 아니지만 속이 좀 안 좋아요. 토할 수도 있고 목도 너무 마르고요. 혹시라도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무도 모를 것 같아요.”도아영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했다.“물 한 잔도 못 따를 정도로 취한 건 아니잖아요.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애초에 그렇게 술을 마시자고 한 사람이 누구인데요. 저는 여기서 사람 돌볼 시간 없어요. 저는 내일 출근도 해야 해요. 당신처럼 하루 종일 한가하지 않아요.”전이혁의 하루는 대부분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그녀가 접대 자리에 나가면 멀찍이 따라붙었다.직접 나서서 방해하지는 않았지만 그럴수록 도아영은 누군가의 시선이 늘 따라붙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이 남자는 한번 들러붙으면 쉽게 놓아주지 않는 자였다.“아영 씨.”전이혁은 애처로운 기색으로 그녀를 바라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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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5화

“아영 씨에게 괜한 경쟁자들을 붙이고 싶지 않아요. 설령 그 여자들이 아영 씨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다 해도 질투하고 들러붙어 귀찮게 굴 텐데 저는 그런 거 싫어요. 저는 당신 한 사람만의 남자입니다. 평생, 한평생 오직 당신에게만 빠져있을 거예요. 제발 저를 다른 사람에게 떠밀지 마세요.”도아영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그를 부축해 집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힌 뒤에야 도아영이 입을 열었다.“그럼 오히려 제가 전이혁 씨에게 경쟁자를 몇 명 만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도 꼭 당신뿐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집갈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전이혁이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영 씨, 저는 아영 씨를 사랑해요. 영원히. 설령 저에게 경쟁자가 아주 많이 생긴다 해도 저는 두렵지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진심이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니까. 우리는 가장 잘 맞는 사람이에요.”도아영은 손을 빼냈지만 또 참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한 번 꼬집었다.“정말 뻔뻔하시네요.”“형이 저희 동생들에게 아내를 붙잡는 법을 가르쳐 줬거든요. 첫째는 뻔뻔해지는 거, 둘째는 끝까지 버티는 거요. 그 정도는 해야 성공한다고 했어요.”전태윤이 그렇게 말했을 리가 있겠는가.도아영이 말을 이었다.“또 형한테 뒤집어씌우시네요. 전 대표님이랑 예정 언니는 깜짝 결혼했잖아요. 바로 혼인신고부터 했지, 언니를 따르는 과정이 없었잖아요.”“형이랑 형수님도 크게 싸워서 한동안 서로 말조차 섞지 않은 때가 있었어요. 형수님이 이혼 이야기까지 꺼내는 바람에 형이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때 형은 정말 이성을 잃어서 형수님을 집에 붙잡아 두기까지 했거든요. 체면까지 내려놓고 용서해 달라고 매달렸는데 그게 형수님에게 애정 공세를 펼친 거 아닌가요?”그 시기에는 그들 모두가 전태윤을 찾아가 말려 보기도 하며 그가 정신을 차리도록 붙잡고 설득하기도 했다.하예정의 가족들과 친구들 역시 하예정을 찾아가 설득하며 한참을 달랬다.서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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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6화

“더 열심히 할게요. 사람들이 우리 두 사람을 떠올리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재능도 외모도 딱 맞는 천생연분이라고 말하게요.”이런 달콤한 말을 엮어 내는 데 능숙한 전이혁을 보며 도아영은 굳이 하나하나 받아칠 마음이 없었다.입은 전이혁에게 달렸는데 무슨 수로 막겠는가.도아영은 몇 마디 더 당부한 뒤 집을 나섰다.전이혁은 밖까지 따라 나오며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도아영은 그가 술에 취해 있다는 것을 콕 집어 말했다.“지금 취해 놓고 운전하려고요?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그 한마디에 전이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도아영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그대로 떠나는 모습을 서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날 밤은 더는 연락이 없었다.다음날, 전이혁은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도아영 퇴근 시간에 맞추어 기다리려고 도씨 그룹으로 갔지만 도아영은 이미 출장을 떠났다는 소식만 받았다.이틀 뒤에 간다고 했으면서 오늘 바로 떠났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 주지 않았다.전이혁은 순간 맥이 풀렸다.그래도 도아영이 출장한 것뿐이지 해성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그녀가 없는 동안 전이혁은 할 수 없이 제대로 일하기 시작했다.그리고 멀리 A시 예진 리조트에 머물고 있던 전씨 할머니 일행에게도 심효진이 이미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전씨 할머니는 짐을 챙겨 곧바로 관성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심효진이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자 곧 마음을 바꾸었다. 아이가 한 달이 되면 그때 보러 가겠다며 전씨 할머니는 예진 리조트에 그대로 머물렀다.그녀는 예지연을 안고 놀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듯 태연하게 시간을 보냈다.그런데 사흘 뒤, 예진 리조트에 뜻밖의 방문객들이 나타났다.그중에서도 진짜 손님이라 할 만한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원림성 A시 선우씨 가문의 큰딸 선우민아였다.예씨 가문 사람들은 이 귀한 손님을 보더니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선우씨 가문과는 지금껏 별다른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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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7화

“선우씨 아가씨는 어느 손주랑 붙여 볼 생각이에요? 듣자 하니 그쪽은 큰딸이 대표라고 하던데. 언니네 셋째 손주며느리랑은 결이 다르잖아요. 고씨 가문의 그 아가씨는 본인이 원해서 남장하고 맏이 노릇을 한 거고요. 선우씨 가문은 딸이 많고 아들은 적다더니 그래서 큰딸이 가문을 맡은 거겠죠. 그런 사람이면 장손이랑도 잘 맞겠다 싶긴 한데 언니 장손은 이제 곧 아버지가 될 판이잖아요.”전씨 할머니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여섯째예요. 큰애는 안 돼요. 큰애는 결혼한 지도 오래됐고 나는 예정이도 아주 마음에 들거든요. 장손 며느리를 바꿀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요. 창빈은 태윤의 친동생이에요. 태윤이랑 같은 어머니를 둔 친형제죠. 여러모로 선우민아 씨랑 어울려요. 내가 고른 손주며느리는 전부 친손녀처럼 아껴줄 거예요. 누구도 서운하게 하면 안 되죠.”전씨 할머니는 자기 손주들은 하나같이 훌륭하게 키워냈기에 어느 가문의 아가씨와 짝을 이뤄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만약 손주들이 뛰어나지 못하다면 애초에 남의 집 귀한 딸을 넘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자기 집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남의 집 아이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예씨 할머니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창빈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언니 손주 중에 이름이 알려진 건 첫째부터 셋째잖아요. 그 아래 동생들은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죠.”“조용한 편이죠. 관성 쪽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고요.”전씨 할머니는 손주들이 눈에 띄지 않게 지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다들 능력까지 갖춘 채 너무 나서기만 하면 장손 전태윤이 부담을 느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특히 장손 며느리 하예정이 느낄 부담이 신경 쓰였다.하예정의 친정은 다른 며느리들의 집안과 비교하면 형편이 가장 낮았다.“창빈은 요리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주방을 자주 들락거렸고 지금 하는 일도 외식업이에요. 난 아이들 모두가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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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8화

전씨 할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몇 번 만난 적은 있어요. 다만 그때마다 제가 있던 위치도 달랐고 모습도 조금씩 바꿨죠. 민아 씨가 워낙 바쁘게 지내시니 저를 기억하지 못하셔도 이상해할 것도 없죠.”겉으로 마주친 건 그 정도였지만 전씨 할머니는 선우민아를 훨씬 더 오래 지켜봐 왔다. 선우민아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할머니는 얼마나 그녀를 살펴보았는지 모른다.손자에게 어울릴 사람을 고르는 일이니 알아보고 확인하는 과정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자기 손자가 과연 선우민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도 냉정하게 따져봐야 했다.선우민아는 잠시 말을 잃었다.자신에게 이 할머니가 낯설게 느껴졌던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갔다.예씨 할머니는 예지연을 도우미에게 넘기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오빠들과 놀게 하라고 했다.아이들은 워낙 가만있지를 못해 집 안에 오래 두는 법이 없었다.배부르게 먹고 푹 자고 나면 곧장 밖으로 뛰어나가 해 질 때까지 놀아댔고 억지로 붙잡아 두면 금방 집을 뒤집어 놓곤 했다.아이 하나만 있어도 집이 난장판이 되는데 여럿이면 말할 것도 없었다.집사는 차를 올려두었고 선우민아의 경호원들은 준비해 온 선물들을 차탁 위에 내려놓았다.선우민아가 예씨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할머니, 오늘은 제가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해요.”예씨 할머니가 웃으며 받았다.“괜찮아요. 앞으로도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세요. 예진 리조트는 늘 민아 씨를 환영하니까. 다만 다음에는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제 마음이에요.”선우민아가 겸손하게 답했다.두 분 할머니를 마주하고 있으니 선우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두 어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유난히 자애로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두 할머니가 젊은 시절 얼마나 이름을 날렸는지, 또 지금도 A시와 관성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선우민아는 잘 알고 있었다.할머니들은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영향력이 크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존재였다.서로 인사말을 몇 마디 나눈 뒤 선우민아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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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9화

선우민아를 바라보며 전씨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그럼요. 마침 잘됐네요. 그럼 예진 리조트를 한 바퀴 둘러볼까요.”그러고는 곁에 있던 예씨 할머니에게 말했다.“내가 민아 씨랑 잠깐 바깥바람 좀 쐬고 올게요.”예씨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민아 씨를 잘 부탁드릴게요.”선우민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씨 할머니를 부축하려 하자 할머니가 손사래를 쳤다.“괜찮아요. 나이가 들긴 했어도 걷는 데까지 사람 손을 빌릴 정도는 아니에요. 아직 여기저기 다닐 힘은 남아 있답니다.”그래도 선우민아는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팔을 받쳐주었고 전씨 할머니는 그 배려가 마음에 든 듯했다.할머니께서 점찍어 두신 손주며느리는 신분이나 위치보다 인품을 우선으로 삼았다.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애초에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것이다.두 사람은 함께 본채를 나섰다.선우민아가 뒤에 서 있던 경호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에서 기다려 주세요. 따라오지 않으셔도 돼요.”네 명의 경호원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는 전씨 할머니와 선우민아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이제 봄이 와서 꽃이 한창이에요. 예진 리조트는 이맘때 풍경이 참 좋아요.”전씨 할머니는 선우민아와 함께 예진 리조트를 거닐었다.선우민아가 주변을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참 좋네요.”그러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은 아니라고 여겼다.아마도 선우씨 가문의 저택 역시 정원 꾸밈이 워낙 훌륭해서 자연스레 기준이 높아진 탓일 것이다.선우민아가 말을 꺼냈다.“창빈 씨에게 들었어요. 창빈 씨 어머니랑 여러 작은 어머니들도 함께 예진 리조트에 와 계신다고요.”시어머니가 며느리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을 나와 열흘이나 보름씩 집을 비운다는 건 그만큼 사이가 좋다는 뜻이었다.“네. 집에만 있자니 다들 답답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바람이나 쐬게 해 주겠다면서 다 같이 따라나섰어요. 지금은 밖에 나가 구경하고 있는데 저녁쯤이면 돌아올 거예요. 민아 씨, 오늘 저녁 여기서 식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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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0화

선우민아는 전씨 할머니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반박하지도 않았다.대신 할머니와 함께 정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꽃이 가득 심겨 있었는데 마침 제철이라 아름다운 빛으로 채워져 있었다.그리고 한가운데에는 작은 정자가 서 있었다.전씨 할머니가 먼저 제안했다.“민아 씨, 저기 정자에 가서 잠깐 앉아 있을까요? 봄 풍경도 좀 볼 겸요.”선우민아는 할머니와 나란히 정자로 향했다. 할머니가 앉으려는 순간 그녀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팔을 받쳤다.선우민아는 평소에 차가운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어른을 대할 때만큼은 늘 세심하고 배려 깊었다.게다가 전씨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궁금해하던 인물이기도 했고 전창빈에게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온 덕분에 그녀에 대한 존경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할머니가 자리를 잡은 뒤에야 선우민아는 맞은편에 앉았다.선우민아는 한참을 전씨 할머니를 바라보더니 그제야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할머니, 저는 시간이 정말 없어요. 이번에 이틀을 시간 낸 것도 겨우 짜낸 거예요. 그래도 이렇게 온 건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니까 숨기지 말아 주세요. 아까 하신 말씀은 저는 믿지 않아요. 창빈 씨가 직접 말했거든요. 저희 쪽으로 온 이유가 단순히 요리사로 지원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여자분이 계셔서 그분을 만나러 왔다고 했어요. 1년 안에 그분 마음을 얻고 결혼하라고 했는데 창빈 씨가 온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만나는 모습은 보지 못했어요. 다른 젊은 여성과 어울리는 일도 없었고요.”전창빈이 접촉한 젊은 여성이라고는 선우민아의 집안 사람들뿐이었다.그마저도 그녀의 여동생을 대할 때조차 예의는 지키되 선을 분명히 그었다.최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태도가 분명했다.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늘 오해가 생길까 조심했지만 선우민아에게만큼은 달랐다.마음을 숨기지도 않고 괜한 말이 돌까 봐 거리 두는 모습도 없었다.어쩌면 속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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