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Chapter 2041 - Chapter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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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1화

“유진아, 곽동현 그 사람 신경 쓰지 마.”강지혁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그 사람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더 이상 신경 쓰지 마...”그 말에 임유진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웃었다.“혁아, 또 질투하는 거야?”그러자 강지혁의 시선이 임유진에게 고정됐고 눈빛이 깊게 가라앉더니 곧 부드럽고 진심이 묻은 목소리가 흘렀다.“그래. 또 질투하면... 어쩔 건데?”‘어쩔 거냐니?’임유진의 볼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그리고 강지혁의 깊고도 맑은 그 눈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조용히 머무르고 있었다.마치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처럼.‘남자라는 건 나이를 먹어도 결국 아이 같아.’임유진은 속으로 피식 웃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강지혁의 입술을 부드럽게 맞췄다.강지혁은 심장이 잠시 멈춘 듯했고 둘 사이의 공기는 금세 달아올랐다.서로의 숨결이 뒤섞이고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모든 감정이 흘러넘쳤다.그렇게 충분히 그를 달래주고 난 뒤 임유진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혁아... 정말 내가 누구를 제일 사랑하는지 몰라서 그래?”“나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곽동현 씨는 그냥... 결혼 생활이 안타까워서 그랬던 거야. 좋은 사람이지만 불행한 결혼을 했고 결국 이혼해서 세 살짜리 딸아이랑 단둘이 산대.”임유진은 다정하게 말하며 다시 살짝 입을 맞췄다.“그런데 너 이렇게 자꾸 질투하는 거 보면 내가 표현을 덜 한 건가 싶네. 내 사랑이 부족해서 불안한 거야?”강지혁은 조용히 임유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는 임유진을 품에 안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늘 불안했다.그건... 너무 사랑했고 그녀를 잃는 건 상상조차 견딜 수 없었으니까.사실 그는 분명 알고 있었다.임유진이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여자라는 걸.그럼에도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임유진을 향한 마음은 그렇게 깊고도 집요했다.“이런 나랑 있으면... 너무 힘들지 않아?”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내가 너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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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2화

물건을 다 사고 전동 스쿠터에 짐을 실으려던 순간.탁유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얼어붙었다.“뭐야... 이게?”스쿠터의 한쪽 바퀴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심지어 누군가 분명 볼트까지 풀어 가져간 듯 바퀴는 깔끔하게 제거된 상태였다.바로 그때.근처에서 평범해 보이는 한 청년이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어이쿠! 이거 큰일이네. 바퀴가 통째로 빠졌잖아요. 이 상태로는 못 타시겠는데요?”그는 마치 도와주는 척 다정하게 웃었다.“바로 옆에 수리점이 있어요. 저희가 스쿠터 좀 옮겨드릴까요?”그 말을 듣자 탁유미의 머릿속에는 아까 시장 안에서 들었던 말이 스쳐 갔다.최근 시장 근처에서 전동차나 스쿠터의 바퀴가 자주 펑크 나거나 통째로 사라진다고 했다.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근처 수리점이 장사가 불처럼 잘됐고 수리비도 터무니없이 비쌌다고 했다.시장 상인들은 모두 그 수리점에서 한 짓이라고 짐작했고 게다가 시장 외곽 CCTV는 고장 나서 수리했다가도 며칠 지나서 또 멈췄다는 얘기도 들렸다.탁유미는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괜찮아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그러자 청년이 웃음을 거두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무슨 다른 방법이요? 수리점이 바로 옆인데. 우리도 그냥 도와드리려는 거예요. 혼자 이 짐 끌고 가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한참 걸릴 텐데.”하지만 탁유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정말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그러자 바로 옆에서 기다리던 다른 남자가 다가오며 표정이 돌변했다.“이 아줌마. 말 안 통하네?”“좋게 말할 때 들어. 이 스쿠터 우리가 수리점으로 옮겨 줄게. 가자고.”두 청년은 탁유미의 스쿠터를 억지로 밀어 옮기려 들었다.탁유미는 당황해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이 사람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경찰 부를 거예요!”“불러! 부르라니까?”청년 한 명이 코웃음을 쳤다.“스쿠터를 수리점까지 옮겨달라고 부탁하더니 갑자기 이제 와서 후회하고 소리치면 어쩌나? 그럼 수고비라도 줘야지. 1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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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3화

“몇 번만 연습하면 금방 익숙해져요. 정 안 되면... 다음에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탁유미가 말하자 곽동현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그럼... 미리 고맙습니다.”그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며 이어 말했다.“이 스쿠터 아까 그 두 놈이 일부러 바퀴를 떼 간 거예요. 그런 수법으로 장사하는 가게들이 있죠. 아주 양심이 없어서... 금방 문 닫을 겁니다. 짐도 이렇게 많은데 제가 먼저 집까지 데려다줄게요.”“그런데... 제 스쿠터는...”탁유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키만 주시면 돼요. 제 동료한테 맡겨서 바로 고쳐 놓을게요. 여기 시장 안에 제 타이어 가게가 있거든요.”곽동현은 담담하게 설명했다.“정말... 여러모로 폐만 끼치네요.”탁유미는 고민 끝에 키를 건넸다.곽동현은 동료를 불러 몇 마디 일러두고 탁유미의 짐을 자기 차에 실은 후 직접 운전해 작은 분식집까지 데려다주었다.가는 길에 탁유미는 그제야 그의 근황을 들었다.몇 해 전까지 친구와 함께 가게를 운영했지만 결국 동업을 정리하고 지금은 혼자 전기차와 각종 부품을 판매하며 틈틈이 개조 주문까지 맡고 있다고.“혼자 하는 게 더 속 편할 때가 있잖아요. 친구끼리 사업하면... 생각이 안 맞거나 욕심이 엇갈릴 때가 있으니까요.”탁유미가 조심스레 말하자 곽동현은 잠시 머뭇거리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음... 생각이 다른 문제는 아니고... 그냥 사정이 좀 있어서요.”분명 깊은 사연이 있어 보였고 탁유미는 더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가게 앞에 도착하자 곽동현은 짐을 내려주며 김수영에게도 정중히 인사했다.그러던 중 분식집 물탱크가 자주 막힌다는 말을 듣자 차에서 공구를 꺼내 들며 바로 손을 봐주었다.“정말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차도 물건도 집수리까지...”탁유미는 연신 미안해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별것도 아닌데요.”곽동현은 손을 털며 환하게 웃었다.“스쿠터는 고쳐지면 바로 연락드릴게요.”그렇게 그는 가볍게 인사하고 떠났다.곽동현의 차가 사라지자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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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4화

주말이 되자 곽동현은 차를 몰아 딸 곽연아를 데리고 분식집 앞에 도착했다.두 아이는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고 탁유미는 조수석에 탔다.놀이공원에 가는 내내 탁윤은 어른스럽게 곽연아를 챙기며 앉아 있었고 어린이 보호 좌석에 앉은 곽연아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최근에 본 애니메이션부터 자기가 그린 그림 그리고 언제 유치원에 갈 수 있냐는 이야기까지.“유치원 재밌어? 윤이 오빠?”작은 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하지만 탁윤은 순식간에 눈빛이 어두워졌다.그에게 유치원은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었으니까.탁유미의 누명이 풀리기 전 그는 유치원에서 종종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조롱과 욕설을 들었었다.어렸던 그는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어른들 사이의 원한과 이 사회의 불공평함을.탁유미의 누명이 벗겨졌다 해도 그의 청각 장애는 여전히 사람들의 편견을 불렀고 얼마나 뛰어나고 얼마나 잘해도 사람들은 결국 그를 ‘장애인’으로만 보았다.“윤이 오빠?”곽연아가 다시 부르자 탁윤은 그제야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유치원 재미있어. 친구들이랑 게임도 많이 하고.”“그럼 나 윤이 오빠랑 같은 유치원 다닐래!”곽연아가 기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이제 초등학생이야. 연아는 유치원 졸업하고 나면 그때 초등학교에 올 수 있어.”탁윤은 차근차근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잠시 후 차가 놀이공원에 도착했고 곽동현이 차를 세운 뒤 네 사람은 함께 입장했다.탁윤은 곽연아의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진짜 ‘든든한 오빠’처럼 챙겼고 그 모습을 바라본 곽동현이 감탄하듯 말했다.“윤이... 정말 많이 컸구나.”탁윤은 내내 곽연아가 할 수 있는 놀이만 골랐고 키 제한 때문에 곽연아가 못 타는 건 아예 같이 타지도 않았다.탁유미는 내내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탁윤의 배려는 사진 속에도 고스란히 묻어있었다.게다가 탁윤이 이렇게 환하게 웃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잠시 후 네 사람은 놀이공원 안 실내 놀이 구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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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5화

탁유미는 잠시 멍해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친구요...? 혹시 사업 같이 하던 그분...?”망설이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맞아요.”곽동현은 씁쓸하게 고개를 떨구었다.“그래서 제가 떠났어요. 그들을 더 이상 마주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가게를 다시 차린 것도 그 때문이에요.”“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동현 씨 친구 아니었어요.”그러자 탁유미가 단호히 말했다.“진짜 친구라면... 그런 배신은 절대 안 해요. 그래도 그 덕에 사람을 정확히 알게 되어서 다행이네요.”그 말에 곽동현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렇죠. 적어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유미 씨는요? 그동안... 윤이 아빠와는 어떻게 지냈어요? 그 사람은 왜 여전히 두 사람을 이렇게 작은 분식집 하나로 버티게 두는 거예요?”곽동현 역시 알고 있었다. 탁윤의 아버지가 바로 이강 그룹의 후계자, 이경빈이라는 것을.그리고 그 남자가 탁유미를 위해 간을 이식해 줬던 사실도.그래서 그는 지금껏 탁유미가 이경빈 곁에서 풍족하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녀는 작은 분식집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나는 나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이에요.”탁유미가 담담하게 답했다.“작은 가게여도 내 힘으로 먹고사는 거... 전 만족해요.”“미안해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곽동현이 허둥지둥 손을 저으며 해명하려 애썼다.“괜찮아요.”탁유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랑 윤이 아빠는 처음부터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앞으로도 만나지 않는 게... 우리에겐 가장 좋은 일일 거예요.”그런데 그때였다.실내 놀이 구역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터졌고 또래보다 더 어린 남자아이들이 탁윤와 곽연아를 둘러싸고 있었다.“우와... 얘 귀머거리래!”“맞아, 이거! 이거 귀먹은 애들이 쓰는 거라던데?”아이 한 명이 탁윤의 보청기를 가리키며 외쳤다.또 다른 아이는 곽연아의 귀에 손가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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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6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귀로 바로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보청기 없으면... 그냥 귀머거리야.”탁윤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리고 그 말 속에 담긴 차갑고 체념한 감정이 탁유미의 가슴을 깊고 날카롭게 찔렀다.세상이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 작은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래서 자기 자신을 그렇게 잔인하게 정의하고 있었다.“그럼 나도 귀머거리 할래! 그래야 윤이 오빠랑 똑같잖아!”곽연아가 울먹이며 말하자 탁윤은 깜짝 놀라며 바라보았다.곽연아의 반짝이는 큰 눈이 눈물에 젖은 채 흔들리고 있었고 그 얼굴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자국이 번져 있었다.하지만 그 꼬마 아이의 눈빛은 세상 그 무엇보다 진지했다.그 순간 탁윤은 심장이 쿵 하고 가라앉는 기분이었다.마치 가슴 깊은 곳 어딘가가 세게 건드려진 것처럼.곽연아는 겨우 세 살이고 듣지 못한다는 게 무엇인지 그 아이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보청기를 떼어내는 순간 세상은 온통 침묵뿐이라는 것.그 침묵이 사람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차갑고 끝없는 고독만이 남는다는 것.그런 걸 이 아이는 아직 몰랐다.그런데도 자신과 같아지겠다고 말해준다니... 탁윤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숨이 벅차올랐다.“너는... 나처럼 되지 마.”탁윤은 차오르는 감정을 가다듬으며 차분히 말했다.“나처럼 되면... 너도 무시당할 거야.”“난 안 무서워! 누가 윤이 오빠 괴롭히면 내가 다 패버릴 거야!”콧물과 울음이 뒤섞였인 그 말에는 이상하리만큼 용감한 위세가 담겨 있었고 모순된 두 감정이었지만 곽연아의 결심은 분명했다.그 덕분일까. 탁윤의 눈빛 속에 고여 있던 자조와 얼어붙은 어둠이 서서히 녹아내렸고 탁유미는 울컥하는 감정을 삼키며 곽연아를 바라보았다.이 작은 아이가 마치 곽동현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곽동현이 옆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윤이는 아주 뛰어난 아이예요.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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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7화

그 따뜻한 눈빛... 그녀는 알고 있을까.그가 얼마나 애타게 갈망해 왔는지.그 온기란 바로 그때...그가 아직 탁유미와 결별하지 않았고 그녀가 공수진을 해친 오해도 없던 시절에만 그녀가 그를 향해 보였던 것이었다.그 뒤로 그녀가 그를 바라볼 때 남은 것은 오직 차가운 기색뿐이었다.이경빈은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들어 사진 속 탁유미의 얼굴을 살며시 쓸었다.“우린 서로 깔끔하게 청산했다고 했지. 더는 빚도 인연도 없다고. 그런데 왜...”그의 입술이 떨렸다.“왜 나는... 아직도 너를 아직도 놓지 못하는 거야?”사진 속 탁유미의 눈빛은 부드럽고 따뜻했다.하지만 그 온기는 이제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며칠 뒤 작은 분식집.놀이방 사건 이후 곽동현은 딸 곽연아를 데리고 종종 분식집을 찾아오곤 했다.매번 곽연아가 탁윤을 보러 가겠다고 조르니 자연스레 들르게 된 것이었다.“참 이상해요. 연아가 윤이를 그렇게 좋아할 줄은... 맨날 오빠 보러 간다고 난리예요. 자꾸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곽동현이 멋쩍게 말했다.“죄송할 게 뭐가 있어.”“윤이도 연아 참 좋아해. 아이들끼리 잘 맞는 건 그냥 인연인걸.”탁유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탁유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그 사이 안쪽에서는 탁윤이 곽연아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있었다.가르치는 글자는 딱 두 개의 이름.곽연아 그리고... 탁윤.원래 탁윤은 곽연아 이름만 알려주려 했지만 곽연아가 억지로 탁윤의 이름까지 외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그래서 탁윤은 자신의 이름도 써서 같이 가르쳐 주었다.“탁윤. 윤이. 윤이 오빠...”곽연아는 그 이름들을 쉬지 않고 되뇌었다.자기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더 열심히 반복하더니 마침내 탁윤에게 다짐하듯 말했다.“나 윤이 오빠 이름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어디서 봐도 바로 알아볼 거야!”그 모습에 탁윤은 살며시 웃었다.“그래. 다음에 보면 오빠가 시험해 볼 거야. 진짜 기억했는지.”탁유미는 아들이 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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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8화

탁유미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너 연아 많이 좋아해?”“응. 연아 진짜 귀여워. 현이 만큼 귀여워.”탁윤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다음에 연아랑 현이 만나면 아마 둘도 친한 친구가 될 거야.”“그럴지도. 그런데 너 숙제 아직 안 했지? 얼른 방에 들어가서 해.”탁유미가 다정하게 재촉했다.탁윤이 방으로 들어가 숙제를 시작하자 김수영이 딸 곁으로 다가와서는 은근히 말을 꺼냈다.“곽동현 씨 참 괜찮은 사람 같더라. 딸 혼자 키우기 힘들 텐데도 성실하고... 너희 둘...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어때?”“엄마, 또 중매하실 생각이죠? 그래서 오늘 일부러 식사까지 같이하자고 하신 거고?”탁유미는 바로 김수영의 의도를 눈치챘다.“감정이라는 건 부딪히고 쌓아서 생기는 거야. 얼굴 보고 말도 해보고 그래야 싹이 트지.”김수영은 그런 딸을 진지하게 설득했다.그러나 탁유미는 씁쓸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그녀에게 사랑은 ‘한눈에 빠지는’ 거였으니까.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감정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그리고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단 한 사람... 이경빈.그를 떠올리는 순간 가슴 한 켠이 저릿하게 아파왔다.‘그때 감옥에 들어갔을 때... 모든 감정이 다 타버렸는데...’“엄마, 쓰레기 버리고 올게요. 제 일은 걱정하지 말아요. 전... 곽동현 씨 그냥 친구예요.”탁유미는 그 말만 남기고 쓰레기봉투를 들어 밖으로 향했다.곧 바깥의 밤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두 뺨을 스치며 탁유미는 무의식적으로 목을 움츠렸다.그리고 김수영이 왜 그러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훗날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딸이 혼자 탁윤을 키우며 얼마나 힘들지... 그게 두려운 것이었다.하지만 탁유미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한 남자와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니...사랑에 관한 모든 감정은 그녀가 감옥에 들어가던 날 이미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으니까.이제 쓰레기를 버리고 분식집 쪽으로 돌아가던 그 순간.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손목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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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9화

청명하게 터져 나온 한 대의 따귀 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이경빈은 얼굴이 옆으로 틀어졌고 탁유미의 손바닥은 뜨겁게 얼얼했다.“이경빈... 난 다 끝난 줄 알았어. 우린 서로 더 이상 간섭하지 않기로 했고 너도 동의했잖아. 그런데 너 지금 이러는 거...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뭐 하자는 거냐고?”이경빈은 자소적인 웃음을 흘렸다.“널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놓을 수가 없어서 그런다!”“난 이제 널 사랑 안 해. 이미 놓아줬어.”탁유미가 버둥거리며 몸을 빼려 했지만 이경빈의 손아귀는 여전히 그녀를 꽉 잡고 있었다.“그럼 넌 이제 곽동현이랑 함께 하겠다는 거야?”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고 탁유미는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내가 누구랑 살든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그러자 이경빈의 눈빛은 순식간에 날카로워지며 얼굴에는 냉기가 서렸다.“곽동현 같은 남자가 뭘 줄 수 있는데? 그게 네가 바라는 거야?”“그런 남자가 뭐가 어때서! 적어도 날 다치게 한 적 없었고 적어도 날 감옥에 보낸 적은 없잖아!”그 말이 떨어지자 이경빈의 얼굴빛이 창백하게 변하며 꽉 쥐었던 손의 힘이 느슨해졌다.탁유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그를 밀쳐내며 차에서 뛰어내렸다.그리고 도망치려는 그녀의 발길이 한층 빨라졌을 때.“유미야.”뒤에서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곽동현과는 안 돼.”그 말에 탁유미는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보았다.차 옆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쓸쓸함과 위혐감이 뒤섞여 있었고 그가 하는 말은 마치 결정된 사실을 선언하듯 담담히 흘러나왔다.그러나 탁유미는 이를 악물었다.“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 네가 함부로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너는 신이 아니고 나 또한 아무렇게나 짓밟혀도 되는 벌레가 아니야. 내가 누구랑 살지는 내가 선택해.”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뒤돌아 걷기 시작했고 이경빈만이 홀로 쓸쓸히 그 자리에 남겨졌다.한참 뒤 이경빈은 천천히 손을 들어 탁유미가 남긴 따끔한 손자국을 쓸어내렸다.얼얼한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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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0화

아들의 학교를 조사한 자료들 역시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거기에는 어린 아들을 상대로 한 잔혹한 현실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많은 아이들이 아들의 청각 장애를 이유로 그를 따돌리고 조롱했다.그리고 그 아이들의 부모들 대부분은 아들의 엄마가 과거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했다.비록 그 모든 것이 억울한 누명이라 재판에서 뒤집혔음에도 사람들은 진실 따위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멸시만 남겼다.그 모든 편견과 상처를 그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 비참함의 근원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까지도.“공수진은?”자료를 덮은 뒤 이경빈이 낮게 물었다.“이미 출소했고 며칠 전 S시에 들어온 게 확인됐습니다. 아직 정확한 거처는 잡지 못했지만 도시를 벗어난 흔적은 없습니다.”이경빈의 눈빛이 매섭게 서늘해졌다.“찾아내. S시 전체를 뒤집어서라도 그 여자를 찾아내.”공수진...그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이렇게까지 부서졌을까?사랑이 짓밟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겨우 5년 감옥살이 그걸로 끝이라 생각한다면 아직 멀었다.게다가 그 여자가 감히 여기까지 온 건 분명 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그래서 그는 결심했다.공수진은 끝까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었다....며칠 뒤.탁유미는 시장에서 물건을 들여온 김에 곽동현의 가게에 들렀다.곽동현은 직원들과 무언가를 논의하던 중 그녀를 보자마자 반갑게 다가왔다.“오늘도 물건 들이러 온 거예요?”그의 시선이 탁유미의 두 손 가득 든 짐으로 향했다.“네. 물건 챙겨서 나가는 길에 잠깐 들렀어요.”탁유미가 다정하게 말했다.“지난번에 스쿠터 고쳐준 건... 그 두 사람이 다시 시비 걸진 않았죠?”“아니요. 그 가게는 요즘 크게 단속받았고 시장 경비랑 관리 직원 몇 명도 경찰에 끌려갔다는 소문이 있어요. 덕분에 요즘은 함부로 설치는 놈들이 없죠.”곽동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잘됐네요.”탁유미도 웃음을 지으며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이거 연아 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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