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훈이 도착했을 때, 나태현은 이미 와인 두 병을 더 비운 상태였다.뭘 물어봐도 말이 없었고 그는 그저 계속해서 술만 들이켰다.진정훈은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형, 진짜 할 말 있으면 좀 하세요. 우리 형이 가보라고 해서 온 건데 뭐라도 털어놓으시든가요.”그는 나태현 앞에 쌓인 술병들을 한 번 쓱 훑어봤다. 이러다 정말 술에 빠져 죽는 거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다.이미 정신이 흐릿해진 나태현은 마지막 잔을 목에 털어 넣은 뒤, 그대로 소파에 쓰러졌다.진정훈은 그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씰룩였다.“아니, 진짜...”“고은지, 은지야...”나태현의 입에서 흐느적거리듯 그녀의 이름이 나왔다.“뭐?”진정훈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그동안은 죽일 듯한 눈빛으로 고은지를 바라보더니 이제 와서 이런 감정 어린 목소리로 고은지 이름을 부른다고? 대체 무슨 의미지?’“고은지, 고은지...”진정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진짜 이 집안 사람들은 표현 방식이 특이해도 너무 특이해.”나태웅이 안지영한테 했던 짓도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을 꼭 망가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듯싶었다. 이런 방식은 웬만한 사람은 절대 감당 못 할 것이었다.나태현은 여전히 고은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진정훈은 원래 그냥 가버리려고 했지만 저 상태로 그냥 놔두고 가기엔 찝찝해서 입을 열었다.“됐고요. 지금 고은지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죠?”“은지야...”“하아...”진정훈은 이마를 짚었다.‘진짜 이쪽 집안은 왜 이럴까. 좋으면 좋다고 말하지, 꼭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고 나서야 애타게 찾아? 나태웅도 똑같이 저러다가 장선명한테 뺏긴 꼴이잖아. 도대체 왜 형제끼리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데? 그렇게 부드럽고 착했던 고은지였는데 완전히 날이 서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이름을 부른다고 뭐가 달라지냐고...’...한편, 고은지는 오늘 저녁도 꽤 많이 먹었다.고은영에게도 전화해서 같이 먹자고 했지만 오늘은 진윤의 아내인 윤설이 출산하는 날이라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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