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Chapter 1621 - Chapter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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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1화

고은지는 량천옥의 걱정을 알면서도 무표정으로 말했다.“상대의 목적이 뭐든 전 무조건 갈 거예요.”량천옥은 말을 잇지 못했다.이게 바로 자식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앞길이 아무리 어둡고 캄캄해 보일지라도 반드시 나아가야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인 듯했다. 그녀가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량의가 계속해서 그녀에게 딸을 찾으면 어떤 영향이 있을지 말했음에도 계속 몰래 딸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말이다. 딸을 찾게 되면 포기해야 할 것들까지도 마음속으로 정해두었었다.겉으로는 배항준이 그녀를 버린 것 같았지만 사실 그녀는 언제든 배항준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알겠어.”량천옥이 고개를 끄덕였다.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어 보였다. 순간, 분위기는 다소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잠시 후, 량천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이번엔 같이 가지 않을게.”만약 희주가 정말 이 세상에 살아 있다면 고은지가 해외로 떠나 딸을 찾는 이 시간 동안, 그녀는 나태현과의 응어리를 반드시 처리해야 했다.비록 그와 고은지에게 미래가 없더라도 량천옥은 고은지가 이런 골칫거리를 떠맡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은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알겠어요.”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량천옥도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음에도 고은지가 여전히 가겠다고 고집했기에 량천옥은 그녀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웅웅’하는 진동 소리가 두 사람의 답답한 분위기를 깼다.발신자 번호를 보니 나태현이었다. 별로 받고 싶지 않았지만 앞으로 더 이상 엮일 일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은 복잡해졌고 그녀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와.”전화 너머로 나태현의 낮고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은지가 물었다.“뭐예요?”“일단 나와.”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전화를 받은 것만 해도 꽤 양보한 셈인데 밖으로 나오라고 하다니.고은지는 본능적으로 밖의 날씨를 바라보았다.원래 비가 내리던 하늘에서 어느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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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2화

전에 희주는 TV에서 스키 타는 프로그램을 보더니 말했다.“엄마, 저도 스키 타러 가보고 싶어요.”하지만 그때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그런 소박한 소원조차도 고은지는 들어주지 못하고 그저 웃어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만약 희주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걸 직접 봤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희주를 떠올리자 고은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나태현이 흘낏 그녀를 바라보고는 그녀가 옷깃을 꼭 움켜쥐고 있는 걸 보곤 차창을 조금 올렸다. 완전히 닫지는 않았지만 찬바람이 확실히 덜 들어오는 건 사실이었다.그는 담배를 꺼내 들더니 깊게 들이마시며 연거푸 피워댔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숨결엔 무겁고 침울한 기운만 가득했다.나태현이 끝내 입을 열지 않자 고은지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담배 연기는 흩날리는 눈 사이로 섞여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그의 이마 사이 깊은 주름에서 고은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말하려다 순간 깨달았다. 그녀와 나태현 사이에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 주제도 없다는 걸 말이다. 둘 사이엔 더 이상 나눌 말이 없었다.시간이 흘러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눈발은 가로등 불빛에 비쳐 더욱 차가워 보였다.“대체 무슨 일인데요?”고은지가 물었다. 그제야 나태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어두웠지만 그 안엔 전에 없던 복잡함이 얽혀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맞닿았고 고은지는 눈썹을 찌푸렸다.그때,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두 사람 모두 멈칫했고 고은지는 민망한 듯 숨을 조용히 고르며 시선을 피했다.나태현은 담배를 꺼버리면서 말했다.“먼저 들어가.”‘겨우겨우 숨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라니... 한 시간이나 차 안에서 추위에 떨게 해놓고 아무 말도 없이?’불쾌하고 화가 났지만 고은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차에서 내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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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3화

양지호가 도착했을 때, 나태현은 어두운 방 안에서 담배를 손에 쥔 채 앉아 있었다. 그 작은 불꽃 하나가 이 공간에서 유독 선명하게 빛났다.양지호가 불을 켜자 나태현의 얼굴은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양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복잡했다. 그가 들고 온 서류를 본 나태현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찾았어?”양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줘 봐.”그의 말투는 담담했다. 마치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다.양지호가 앞으로 다가가 서류를 건넸고 나태현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바로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거기에는 량천옥이 처음 강성에 도착했을 때의 사소한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었다.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나태범과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었다.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때, 나태현은 그날 량천옥이 나씨 가문에서 겪은 일과 어머니가 죽게 된 진실을 알게 되었다.순간, 그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얼굴빛은 순식간에 새까매졌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서류를 세게 덮어버렸다.양지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침묵 속에서 입술만 살짝 달싹일 뿐 완전히 굳어 있는 듯했다.나태현은 눈을 감았다. 찰나의 순간, 그의 눈빛 속에 스친 건 실망, 그리고 서늘한 위험이었다.주위는 어느새 완전히 얼어붙은 것처럼 싸늘해졌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먼저 가 봐.”“네.”양지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몸을 돌렸다.그는 이 결과가 나태현에게 얼마나 큰 충격일지 잘 알고 있었다. 나태현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존경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진실이 이토록 참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양지호가 떠나고 그 공간엔 오직 나태현 혼자만 남았다. 그는 급하게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고 한 모금, 또 한 모금, 깊고 거칠게 들이마셨다. 지어는 불을 붙이는 손마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려 했으나 연거푸 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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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4화

게다가 나태현이 고은지랑 그렇게까지 틀어진 상황이라면...고은지는 고은영이랑 함께 자라온 언니였고 진정훈이 워낙 편을 드는 성격이라 설령 고은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도 고은영 때문에 어느 정도는 고은지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요즘 나태현이 하는 짓은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기에진정훈은 더더욱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내가 지금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래. 대신 좀 가봐.”진윤이 말했다.진윤 입장에선 나태현이 이번에 고은지 일을 어떻게 처리했든 간에 그를 너무 오래 봐 왔기에 알 수 있었다. 나태현이 저렇게까지 변했다는 건, 마음속에 뭔가 큰일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은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상황과 마주하면 그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량천옥은 수년간 그의 마음속에 큰 응어리로 자리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고은지는 그런 여자의 딸이었기에 나태현이 그녀 앞에서 좋은 얼굴을 할 리가 없었다.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나태현은 절대 진윤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었다. 방금 통화에서도 진윤은 느꼈던 것이다. 그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말이다.진정훈은 짜증 섞인 어조로 말했다.“알았어, 내가 가볼게.”정말로 가고 싶진 않았지만 하필 형이 부탁한 거라 마지못해 이 일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어딘데?”“위치 보낼게.”진윤은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진정훈은 그 끊긴 전화음을 들으며 두통이 밀려오는 듯한 느낌에 머리를 짚었다.“진짜... 왜 내가 이 짓을 하고 있는지.”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진동했다. 진윤이 보낸 위치였다.‘모른 척하면 안 된다고? 그러는 형은 뭐 하고 있길래 바쁜 거지? 윤설이 때문인가? 역시 커플은 다르긴 다르네.’진정훈은 짜증 섞인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같았으면 그는 오늘같이 추운 날, 집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렇게 도착한 나태현의 별장 문을 열자마자 진정훈은 코끝에 확 퍼지는 술 냄새에 인상을 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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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5화

“진정훈이 도착했을 때, 나태현은 이미 와인 두 병을 더 비운 상태였다.뭘 물어봐도 말이 없었고 그는 그저 계속해서 술만 들이켰다.진정훈은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형, 진짜 할 말 있으면 좀 하세요. 우리 형이 가보라고 해서 온 건데 뭐라도 털어놓으시든가요.”그는 나태현 앞에 쌓인 술병들을 한 번 쓱 훑어봤다. 이러다 정말 술에 빠져 죽는 거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다.이미 정신이 흐릿해진 나태현은 마지막 잔을 목에 털어 넣은 뒤, 그대로 소파에 쓰러졌다.진정훈은 그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씰룩였다.“아니, 진짜...”“고은지, 은지야...”나태현의 입에서 흐느적거리듯 그녀의 이름이 나왔다.“뭐?”진정훈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그동안은 죽일 듯한 눈빛으로 고은지를 바라보더니 이제 와서 이런 감정 어린 목소리로 고은지 이름을 부른다고? 대체 무슨 의미지?’“고은지, 고은지...”진정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진짜 이 집안 사람들은 표현 방식이 특이해도 너무 특이해.”나태웅이 안지영한테 했던 짓도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을 꼭 망가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듯싶었다. 이런 방식은 웬만한 사람은 절대 감당 못 할 것이었다.나태현은 여전히 고은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진정훈은 원래 그냥 가버리려고 했지만 저 상태로 그냥 놔두고 가기엔 찝찝해서 입을 열었다.“됐고요. 지금 고은지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죠?”“은지야...”“하아...”진정훈은 이마를 짚었다.‘진짜 이쪽 집안은 왜 이럴까. 좋으면 좋다고 말하지, 꼭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고 나서야 애타게 찾아? 나태웅도 똑같이 저러다가 장선명한테 뺏긴 꼴이잖아. 도대체 왜 형제끼리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데? 그렇게 부드럽고 착했던 고은지였는데 완전히 날이 서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이름을 부른다고 뭐가 달라지냐고...’...한편, 고은지는 오늘 저녁도 꽤 많이 먹었다.고은영에게도 전화해서 같이 먹자고 했지만 오늘은 진윤의 아내인 윤설이 출산하는 날이라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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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6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뚜뚜’ 소리에 진정훈은 입꼬리를 씰룩였다.나태현이라는 이름을 꺼낸 순간, 고은지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변한 걸 그는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도 소파에 비틀거리며 여전히 고은지 이름만 중얼거리는 나태현을 보며 진정훈은 혀를 찼다.“술에 취해서야 진심을 보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비록 자기 형과 절친한 친구라지만 진정훈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못 참겠다는 듯 쓴소리를 뱉었다.“진짜 자업자득이지.”아까 고은지가 보인 태도는 그저 차가운 수준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 나태현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세웠을까 궁금할 정도였다.진정훈은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진 않았지만 이렇게 만취한 상태로 둬도 될까 싶어 결국 자리를 뜨지 못했다....그날 밤, 강성은 거센 눈보라 속에 뒤덮였고 나태현과 지신혜의 결혼 소식은 마치 폭탄마냥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다음 날 아침, 고은지가 회외로 가는 날이라 량천옥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정성스레 아침을 준비했다.“정말 맛있어요.”죽 한 숟갈을 먹은 고은지는 부드럽게 말했다.“마음에 들면 더 먹어. 반찬도 많고 만두도 좀 쪄놨어.”그녀는 이 순간만큼은 딸을 바라보는 평범한 엄마처럼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녀가 배고플까 봐,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이제 곧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고은지는 더없이 따뜻한 눈길로 량천옥을 바라봤다.“그동안 신경 많이 쓰게 했네요.”지내는 내내 말수가 많지 않았던 고은지였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의 마음속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고은지의 말을 듣고 량천옥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여기 일만 마무리되면 나도 곧 갈게. 그리고 다시는 이 도시에 안 돌아올 거야.”“좋아요.”고은지의 그 한마디에 량천옥의 마음속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는 듯하 느낌이었다.비록 엄마라는 말은 끝내 듣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보다 더한 따뜻한 감정을 느꼈기에 그 한마디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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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7화

고은지의 차가 골목을 돌아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량천옥은 매서운 눈빛을 머금은 채 찬바람 속에 서 있었다. 그 눈빛 속엔 수많은 위험이 번뜩이고 있었다.그녀는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나태범의 번호를 눌렀다.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량천옥이 입을 열었다.“보아하니 아직도 후회가 안 되나 보네.”단어들을 뱉을 때마다 량천옥의 목소리는 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대신에 나태범의 숨소리는 아주 무거웠다.“너 때문에 태현이가 의심을 품기 시작했어. 뭘 더 하려는 거야?”“테현이가 똑바로 알게 해야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대체 어떤 인간들인지.”량천옥은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나태현이 직접 진실을 파헤치게 두는 것보다 그녀가 직접 정확하게, 그리고 단숨에 끝내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제 고은지도 떠났으니 량천옥은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물러설 이유도 없었다....전화를 끊고 량천옥은 눈보라 속에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 순간, 그녀는 결국 외면해 왔던 과거 한 조각과 마주하고야 말았다.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그날을 떠올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왔고 의식적으로 외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그 기억은 선명히 떠오르며 그녀의 눈가를 붉히게 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휴대폰이 진동하며 울렸다.량천옥은 전화를 집어 들고 받았다.“여보세요.”“결정한 거야?”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매우 진지했다. 그녀의 어머니, 량의였다.량천옥은 눈을 감고 숨을 삼킨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땐 제가 너무 어렸어요. 그런 일을 당하니까 너무 무서웠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그래서 믿을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는데... 결국 엄마가 저를 더 깊은 나락으로 끌고 들어갔죠. 엄마, 저도 당신을 존경한 적은 있지만 지금은 미워하는 게 더 큰 것 같아요.”아이를 버렸던 그날 이후로 그녀는 정말로 날아오르며 잘 살 수 있었던 걸까? 아니었다. 그녀는 줄곧 어머니라는 이름의 손에 끌려다녔다.삶은 순탄치 않았고 결혼 또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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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8화

량의는 줄곧 그 영향이 너한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생각하라고 말해왔다. 량천옥은 그녀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놀라웠다.“천옥아, 나도 알아. 나씨 가문이 좀 지나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네가 지금 갖고 있는 걸 좀 생각해 보면...”“그만하세요!”량천옥의 날카로운 외침에 량의의 말은 중간에서 뚝 끊겼다.지금 가진 모든 것들은 딸과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을 포기해서야 갖게 된 것들이었다. 만약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같은 선택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젠 진짜 지긋지긋해요.”량천옥은 한 글자 한 글자 날을 세우듯 말한 뒤,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파고들었지만 그보다도 그녀를 더욱 숨 막히게 한 건 수년간 벗어나지 못했던 량의의 ‘굴레’였다.고은지의 엄마로서, 배항준의 아내로서, 천락 그룹 안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입지를 가진 여자로서 모두가 그녀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함 속에서 그녀는 온몸을 찌르는 가시투성이 갑옷을 입고 버텨왔던 것이다. 그 가시는 남을 찌르기도 했지만 가장 깊게 베인 건 결국 그녀 자신이었다.끝없이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그녀는 한참을 서 있었다.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어 나태현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창문이 절반쯤 내려가고 그 안에서 나태현의 차가운 얼굴이 드러났다. 숙취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전보다 창백했다. 량천옥은 손에 든 휴대폰을 더 힘주어 쥐었다.“은지는 어딨어요?”차가운 목소리로 묻는 그와 동시에 량천옥이 입을 열었다.“마침 널 찾으려던 참이었어.”나태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왜요?”“너희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야.”량천옥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태현의 눈빛에 싸늘한 빛이 번뜩였다. 평소였으면 이 말을 들은 즉시 격렬하게 반응했을 것이다.어머니라는 단어는 그의 아버지가 입에 올려도 그의 분노를 자극할 만큼의 금기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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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9화

그 시절, 량의와 량천옥에게 10억 원은 말 그대로 꿈에서만 받을 수 있는 액수의돈이었다.량천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태현의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그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미 다 알면서 누구를 원망하겠어요.”“하지만 너희 할아버지 말이야. 처음엔...”“저희 할아버지도 괜찮은 사람은 아니에요.”나태현은 량천옥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도 아니고요.”량천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녀 역시 결백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일에서는 자신이 피해자였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나태현이 찾아낸 자료를 보면 량천옥과 량의의 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그 사건에 관여된 모두가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순진한 척하지 마세요.”나태현은 한 글자씩 칼로 베듯이 말했다.“그날의 그 자리가 당신한테 무슨 의미였는지 제일 잘 알잖아요.”량천옥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나태현은 깜빡이도 안 켜고 그녀의 가장 깊은 곳을 찔러왔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도 내가 결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그날 있었던 일이 다 내 책임은 아니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랐을 뿐이야. 그리고 너희 어머니의 죽음은 나랑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것도.”그녀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하려 한 적 없었다. 오히려 홀로 이 과거를 끌어안고 편견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왔다.하지만 이젠 달랐다. 고은지가 나태현과 깊은 인연을 맺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 어떤 추악한 기억이더라도 이제는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했다.량천옥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나태현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나한테 그런 짓을 하는 걸 네 어머니가 보셨거든. 그래서...”“그만하세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태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말했잖아요. 이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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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0화

고은지는 강성을 떠났다. 숨 막히고 온통 가시투성이였던 이 도시에서 벗어났다.“어디로 갔는데요?”나태현이 물었다.“그건 말해줄 수 없어.”량천옥은 냉소적으로 말했다.과거의 일들이 다 밝혀졌으니 이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인연도 남아선 안 됐다. 고은지도 분명 그걸 원할 것이었다. 이젠 나태현도 그녀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니 그녀를 찾을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나태현의 눈빛이 더 싸늘해졌다.“그럼 강성을 떠났다는 거예요?”“태현아, 나랑 너희 할아버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너랑 은지가 왜 이어져서는 안 되는지 너도 알았겠지.”량천옥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가 자꾸 고은지의 행방을 묻는 걸 보며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지하고 있었다.나태현은 전부터 고은지에게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증오 때문에 그 감정을 억눌러왔던 것이다. 이제 진실이 밝혀졌기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전처럼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대체 어디로 간 거예요?”나태현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 량천옥의 호흡이 깊어졌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도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이제 다 밝혀졌어. 그렇게 오래 짓눌러온 과거의 진실이 드디어...’그녀 자신도 이제야 비로소 모든 걸 인정했고 딸의 앞날이 부디 평온하길 바랐다. 량천옥은 드디어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나태현의 증오를 낳았던 그 끔찍한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고은지도 이제는 나태현, 그리고 그 가문과의 인연을 끊어야 했다....그 시각, 나태현은 차에 올라타 담배를 껐다. 그리고 앞좌석에 있는 양지호에게 말했다.“공항으로 가.”“네, 알겠습니다.”양지호의 대답과 함께 차는 단지를 빠져나갔다.2층 창가에 선 량천옥은 그 차가 멀어지는 걸 끝까지 바라봤다.그녀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당당히 마주하려 했지만 그래도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그날의 일을 고백하는 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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