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죽기 전엔 못 놔줘: Bab 2031 - Bab 2040

2074 Bab

제2031화

유지욱은 허공에 머물던 손을 내리지도 못한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현진아, 현우야... 나야, 할아버지야.”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박현우는 안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오히려 몸을 틀어 그를 피했고 그 순간 그의 손끝엔 공허만이 남았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고영란은 입꼬리를 비웃듯 올리며 말했다.“애들 자라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봐준 적 있어요? 이젠 안아보겠다고요? 너무 늦었어요. 당신은 그 애들 눈에 그냥 낯선 사람일 뿐이에요.”유지욱은 무릎을 굽힌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숙였다.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던 그는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남자인 내가... 두 아이를 어떻게 돌봐...”그의 목소리는 작고 한없이 쓸쓸했다.“고작 그거예요?”고영란은 허탈한 듯 코웃음을 쳤다.“그래서 여자는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는 거예요? 당신이 아이들 보기가 싫었다면 적어도 아버지로서의 책임은 졌어야죠. 남준이도, 남우도 다 제가 키웠어요. 유앤케이? 그 회사도 내가 버티지 않았으면 이미 무너졌어요.”그녀의 말은 점점 날카로워졌고 유지욱은 더는 듣기 힘들다는 듯 말을 돌렸다.“...그만하자.”그는 피곤한 듯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내가 아이들한테 연락해볼게. 당신도... 함께하고 싶으면 와.”그렇게 말한 뒤, 그는 등을 돌려 자리를 떴다.그 뒷모습을 보며 고영란은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이젠 모든 걸 놓고 그가 직접 부딪히게 둘 생각이었다.집으로 돌아온 유지욱은 가장 먼저 유남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남우는 요즘 옛 저택에 발길을 끊었고 연락도 거의 없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전화는 곧 연결됐다.“아버지, 무슨 일이세요?”유남우의 목소리엔 짜증이 배어 있었다.“남우야, 곧 새해잖니. 우리 가족이 모인 지도 오래됐고... 잠깐이라도 시간 되면 집에 좀 들러라.”짧은 침묵 끝에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죄송한데 새해에도 일이 있어서요. 시간 안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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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2화

“그래. 우리 가족끼리는 자주 연락하면서 지내야지. 너무 멀어지면 안 되잖아.”유지욱은 당연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번엔 남준이랑 진심으로 얘기해보고... 사과도 꼭 하고 싶어.”유석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가족끼린 원래 그런 거야. 형이 남준이한테 큰아버지잖아. 옛일은 그냥 털어버리고 이제라도 잘 지내면 그걸로 된 거지.”늘 둥글둥글한 성격인 유지욱은 형이 과거에 무슨 잘못을 했든 지금은 오로지 가족이 화목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남준이도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네...”유석진은 한숨을 내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신경 쓰던 유지욱이 조심스레 물었다.“형, 무슨 일 있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 같은데.”“별일 아니야. 요즘 회사 일이 좀 꼬였을 뿐이야. 그래도 걱정하지 마. 아직 이 정도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어.”유석진은 태연한 척 웃었지만 그 웃음 끝에는 미세한 떨림이 서려 있었다.하지만 유지욱은 쉽게 넘기지 않았다.“형, 무슨 일인데 그래? 우리 가족끼리는 솔직하게 말해야지. 그래야 함께 해결책도 찾을 수 있잖아.”유석진은 한참 말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최근 회사 상황이 좋지 않고 어쩌면 유남준 쪽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유지욱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남준이는 그런 애 아니야. 형이 큰아버지인 걸 알면서 설마 일부러 형을 겨냥하겠어?”“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 근데... 남준이 밑에 있는 누군가가 그랬을 수도 있잖아.”유석진은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지만 말끝에는 미묘한 의심이 묻어 있었다. “그럼 이번 새해에 기회 되면 남준이한테 슬쩍 물어볼게.”유지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부탁한다. 괜히 내가 나서서 트집 잡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난 그냥 가족끼리 잘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야.”유석진은 마치 대의를 품은 어른처럼 말을 맺었다.유지욱은 그런 형의 말을 의심 없이 믿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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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3화

“둘째할아버지, 감사합니다!”장난감을 손에 꼭 쥔 채 활짝 웃는 유지훈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가정부를 힐끔 보더니, 유지욱에게도 밝게 인사를 건넸다.“괜찮아.”유지욱은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보며 대답했지만 그 순간 막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유남준 가족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유남준과 박민정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뜻밖의 광경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유석진 가족이 이 자리에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마침 막 들어오던 박윤우와 박예찬도 거실의 상황을 목격했다.‘할아버지가 우리한테 사줬다는 장난감을 왜 다른 아이한테 주는 거야?’유씨 가문으로 돌아온 이후 고영란은 박윤우와 박예찬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챙겨주었고 박윤우는 이혼을 당한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래서 일부러 투정을 부리며 유지훈 앞으로 달려갔다.“안 돼! 이 장난감은 내 거야!”박윤우가 단숨에 장난감을 낚아채자 유지훈은 당황해 멍하니 서 있었다.“윤우야, 할아버지가 나중에 새로 사줄게. 이건 지훈이한테 한 번만 양보하자. 알겠지?”유지욱이 조심스레 아이를 달랬지만 박윤우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할아버지, 이 장난감은 저랑 형한테 사준 거잖아요. 이미 우리 거라고요. 왜 다른 사람한테 줘요?”어린 나이지만 또렷하고 당당한 말투에 유지욱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박윤우가 다시 덧붙였다.“할아버지, 앞으로는 체면 때문에 선심 쓰지 마세요. 그럼 저랑 형이 할아버지 싫어할지도 몰라요.”유지욱은 아이의 말에 표정이 어색해졌다.그때 유지훈의 눈은 여전히 박윤우가 들고 있는 장난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둘째할아버지가 아까 나한테 준 거야. 돌려줘!”그가 손을 뻗어 장난감을 다시 빼앗으려 했지만 병이 다 나았다고 해도 박윤우는 몸이 약했기에 한 발짝 물러섰다.그 순간, 박예찬이 앞을 막아섰다.“유지훈! 뭐 하는 거야?”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유지훈은 움츠러들었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아이들 사이의 실랑이에 어른들 모두 난처한 분위기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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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4화

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이런 상황에선 제가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그는 바로 유석진을 바라보며 덧붙였다.“큰아버지, 사업은 사업입니다.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회사 이익을 무시할 순 없죠.”유석진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쳤다.그는 급히 술잔을 들이켠 뒤, 몇 번 헛기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남준이 말이 맞다. 지욱아, 괜히 남준이 곤란하게 만들지 마. 가족이라 해도 형제 간에도 분명한 계산은 있어야지.”유지욱은 아들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반박할 줄은 몰랐다.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집안 어른으로서 다시 유남준에게 말했다.“남준아, 어찌 됐든 우린 한 피를 나눈 식구다. 큰아버지 사업이 기울어 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니.”유남준은 아버지가 늘 중재만 하려는 성격임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답했다.“아버지, 저도 무정한 사람은 아닙니다. 제 회사에 유능한 부장이 한 명 있어요. 그 사람을 큰아버지 회사에 보내 도우면 어떨까요?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 같습니다.”그 말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순간 말문이 막혔다.특히 유석진 일가는 얼굴이 굳어졌다.‘유남준 쪽 사람이 우리 회사에 들어온다고?’그건 감시자를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게다가 그 부장이 실력 있고 욕심까지 있다면?뒤에서 유남준이 버티고 있으니 지금껏 어렵게 유지해온 모든 걸 빼앗길 수도 있었다.“그건...”유석진은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모르는 사람을 회사 경영에 끌어들이는 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큰아버지, 방금 가족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유남준은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제가 친조카인데 설마 큰아버지를 해칠 리 있겠습니까? 아니면 저를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그 말에 분위기는 다시 싸늘해졌다.모든 책임이 유석진 쪽으로 넘어갔고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한편 유성혁은 밥만 묵묵히 퍼먹을 뿐 아버지를 돕는 데는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유남준과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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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5화

최현아는 그 말에 얼굴이 금세 굳어졌고 더 이상 유성혁에게 반찬을 집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그녀의 시선은 무심결에 박민정과 유남준 쪽으로 향했다.박민정 앞에 놓인 음식도 유남준은 틈틈이 집어 주고 있었고 박민정이 어느 한 접시를 바라보기만 해도 유남준은 곧바로 그녀의 그릇에 음식을 담았다.최현아는 마음 한켠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왜 내 남편은 능력도 없고 다른 남자들처럼 배려심도 없는 걸까.’그녀는 유성혁에 대한 불만이 점점 쌓여만 갔다.지금 당장이라도 이혼하고 싶었지만 그의 재산은 모두 시아버지 유석진의 손에 있었고, 이혼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동서는 정말 복도 많네.”박민정은 웃으며 최현아를 바라봤다. “형님은 행복하지 않으세요? 아주버님이 잘 못 대해서 그런 건 아니죠?”두 가지 질문에 최현아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마침 유석진도 그쪽을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현아야, 성혁이가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니?”최현아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그냥... 별말 아니었어요.”최현아는 차분히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서, 오해하지 마. 난 동서가 행복해 보여서 그런 말 한 거고 내가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었어.”박민정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 그런 뜻이었군요. 방금 형님 말만 듣고는 형님이 힘들게 사시는 줄 알았어요.”최현아는 손에 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한 마디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었다.그녀는 유성혁이 무언가 말해주길 바라며 그의 팔을 슬쩍 건드렸지만 유성혁은 모른 척하며 오히려 되물었다.“왜? 나 건드려서 뭐 어쩌라는 거야?”최현아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인 채 밥만 퍼먹었다. 눈앞에 진수성찬이 있었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때, 식사 중간쯤 입구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족끼리 밥 먹는다고 했는데 왜 날 빼고 시작한 거야?”모두가 고개를 돌린 그곳엔 고영란이 서 있었다.유지욱은 그녀가 아예 오지 않을 줄 알았기에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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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6화

“남준이는 내 아들이에요. 당신은 아무렇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엄마니까 마음이 아파요. 유석진 같은 늙은 여우랑 자꾸 어울리다간 결국 다치는 건 그 애라고요.”고영란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아직 유남준과 박민정이 자리에 있었기에 유지욱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알았어. 애들도 있는데 그만 좀 하지.”유지욱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고는 기어이 한마디를 덧붙였다.“넌 예전엔 이러지 않았어. 요즘은 점점 말도 안 통하는 미친 여자 같아.”그 말에 고영란의 온몸이 굳었다.아들과 며느리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당장 그를 박살냈을 것이다.그때, 말없이 듣고 있던 유남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아버지, 어머니 말씀이 틀린 건 아니에요. 다음부터 큰아버지 댁이랑 함께하는 자리에 저희는 안 불러주셨으면 합니다.”유지욱은 그 말을 듣고 한순간 말을 잃었다. 아들까지 고영란 편에 설 줄은 몰랐다.뭔가 더 말하려는 찰나, 유남준이 단호하게 덧붙였다.“그리고 두 분은 이미 이혼하셨잖아요. 어머니한테 말 조심 좀 해주세요.”아들의 말에 고영란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마음 깊은 곳에 뜨거운 울림이 밀려오며 그동안 아들을 키워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반면 유지욱은 얼굴이 굳어졌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버지, 어머니, 저희는 먼저 일어날게요.”유남준이 정중히 인사했다.“그래. 얼른 가. 민정이랑 같이 장모님 곁에 있어드려.”고영란이 부드럽게 대답했고 유지욱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박윤우와 박예찬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그래, 잘 가렴.”유남준 가족이 자리를 뜨자 고영란도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녀가 문을 향해 가려던 순간, 유지욱이 불쑥 그녀를 불렀다.“영란아,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고영란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섰다.“이러고 있다니요? 무슨 뜻이에요?”“우리가 부부로 산 세월이 얼만데 네가 정말 이혼하고 싶어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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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7화

유남준과 박민정은 돌아오는 길에 자연스레 고영란과 유지욱 이야기를 꺼냈다.“아버님 말씀이 너무 심하셨어요. 어머님이 이혼하겠다는 것도 이제는 이해가 돼요.”박민정의 말에 유남준은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아버지는 분명히 후회하실 거야.”고영란이 그동안 유씨 가문을 위해 어떤 희생을 감내해왔는지,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지욱은 자신의 즐거움에만 몰두하며 아내의 존재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다.“그러게요. 아버님이 좀 더 일찍 깨달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어머님 마음에도 그게 위로가 될 텐데...”박민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도착한 곳은 박씨 가문의 옛 저택이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마당을 조심스레 걸어 들어갈 때, 그곳엔 이미 박예찬도 와 있었다. 아이가 이곳에 머무는 이유는 단 하나, 정수미 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집 안에서는 진서연이 정수미 곁에서 함께 발코니에 앉아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며칠 전보다 훨씬 기운이 올라온 듯한 정수미는 박민정을 보자 눈가에 따뜻한 빛이 번졌다.“민정아.”부드럽게 불리는 그 한마디에 박민정은 급히 다가갔다.“엄마, 왜 밖에 나와 계세요?”진서연이 재빨리 설명했다.“정 대표님이 방에만 있으니까 답답하다고 하셔서요. 오늘은 바람도 안 불고 하니까... 잠깐 나와 계신 거예요.”정수미는 박민정의 손을 꼭 잡았다.“서연 씨 탓하지 마. 내가 나가자고 했어. 그냥... 같이 눈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있었어.”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어머니 곁을 지켜주는 진서연이 고마웠다.“알아요. 근데 엄마, 감기라도 걸릴까 봐요. 의사 선생님이 바람 쐬지 말라고 하셨잖아요.”“오늘은 바람 하나도 없더라. 걱정 마.”정수미가 웃으며 대답하자 박민정은 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머니가 무균실처럼 답답한 곳에서 조금 더 오래 사는 것보다는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행복하다는 걸 그녀는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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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8화

박민정은 마치 울 줄조차 모르는 사람처럼 무너져 있었다.입술은 새파랗게 질린 채, 그저 ‘엄마’라는 단어만 중얼거리듯 반복했다.밖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의 비명을 듣고 급히 방 안으로 몰려들었고 의사는 정수미를 진찰하기 시작했다.그 사이 유남준이 그녀를 단단히 끌어안았다.박민정의 눈은 침대 위에 누운 사람에게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온몸은 끊임없이 떨고 있었다.“제발요... 빨리 우리 엄마 좀 깨워 주세요...”의사는 깊은 한숨을 내쉰 후,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환자는 이미... 사망하셨습니다.”‘이미 사망’이라는 단어가 심장을 꿰뚫고 내리꽂혔다.박민정은 마치 전신의 피가 식어버린 것처럼 얼어붙었다.그녀는 유남준의 손을 꽉 붙잡은 채 눈빛이 점점 공허해졌다. “...알겠습니다.”유남준은 조용히 의사와 간호사들을 내보냈다.방 안에는 이제 단둘만 남았다.그는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아 어깨를 토닥였다.“참지 말고 울어. 울어야... 조금은 나아질 거야.”그 한마디에 그녀는 끝내 억눌러왔던 감정을 무너뜨리고 눈물을 쏟아냈다.박민정에게 ‘엄마’란 평생 그리움이자 갈망이었다.사치처럼 멀기만 했던 그 존재를 가까스로 찾아냈고 이제야 진짜 가족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는데...하지만 정수미의 몸은 이미 한계였고 거기에 윤소현의 약물 사건까지 더해져버렸다.“남준 씨... 나 너무 힘들어요...”“응... 알아. 나도 알아...”유남준은 그녀를 꼭 껴안은 채, 한마디 말 없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방 밖에 있던 사람들도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흐느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박민정은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른 뒤 방에서 나왔다. 이제 정수미의 죽음을 세상에 알릴 차례였다.가장 먼저 연락을 받은 사람은 정호철이었다.그는 급히 달려왔지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직 정수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정 대표님...”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의를 지키며 그렇게 불렀다.그리고 이내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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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9화

만약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엄마의 병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가족이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 세상에 ‘만약’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서주에서의 나날은 유독 빠르게 흘러갔다.정수미의 장례를 마치고 묘소 앞에 선 박민정에게 조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아가씨, 정 대표님께서 생전에 남기신 유서입니다.”박민정은 말없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손끝으로 조심스레 봉인을 뜯고 편지를 펼치자 정수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민정아, 미안하다. 엄마가 너랑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해서. 어쩌면 이건 엄마가 받아야 할 벌일지도 모르겠구나. 돈과 권력을 손에 넣은 뒤로 엄마는 점점 본모습을 잃었고,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 지금 돌이켜보면 너랑 예찬이를 해칠 뻔했던 그 일들이 가슴 깊이 후회되고 미안해. ‘네 말이 맞아. 네가 내 딸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끝까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조차 몰랐을 거야.’ ‘미안해, 우리 딸. 정말로 미안해.’유서의 대부분은 사과로 가득했다.정수미는 끝내 자신이 딸에게 준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민정아, 엄마는 속죄하고 싶은 마음으로 네 호철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여러 지역에 고아들을 위한 자선기관을 세웠어. 하늘이 있다면 엄마랑 호철 아저씨의 죄를 조금이나마 용서해주고 너랑 손주들이 평안하길... 엄마는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란다.’박민정은 유서를 다 읽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손끝으로 어머니의 글씨를 천천히 쓸어내리다가 마음 한켠이 무너져내리는 듯 아파왔다.“엄마... 결국 마음속 깊이 죄책감을 놓지 못하셨네요.”아이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그 아이를 다치게 할 뻔했다면 누구라도 스스로를 용서하긴 어려웠을 것이다.그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박민정은 유서를 조심스럽게 접어 품에 넣고 묘소에 새겨진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엄마, 이제 그만 자책하세요. 저 이미 엄마 용서했어요. 예찬이도 그래요. 우린 더 이상 엄마를 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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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0화

유남준도 서둘러 떠나지 않았다.그는 박민정과 함께 지엔 그룹 일을 마무리한 뒤에야 함께 자리를 떠났다.진주시 공항.진서연은 이미 일찍 공항에 나와 있었다.“보스!”멀리서 손을 흔드는 진서연의 모습이 보이자 박민정은 잠시 유남준의 손을 놓고 재빠르게 그녀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남준은 허전해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두 사람의 다정한 포옹을 보며 괜히 질투심이 올라왔다.“회사에 혼자 있을 때 괜찮았어?”박민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진서연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나름 괜찮았어요.”“다행이네.”진서연은 박민정의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걸었다.“근데 보스가 없으니까 시간 진짜 안 가는 것 같아요...”그건 단지 박민정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사실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정민기였다.박민정도 진서연의 눈빛에서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그녀는 차에 올라탄 뒤 조심스레 물었다.“요즘 민기 씨랑 연락하고 있어?”그 이름을 듣자 진서연은 잠시 눈빛이 흔들렸고 손을 꼭 쥔 뒤에야 어렵게 대답했다.“처음엔 연락됐었는데... 요 며칠 동안은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해도 답이 없어요.”“그게 무슨 말이야?”박민정도 놀라서 얼굴이 굳었다.“보스, 혹시 민기 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요?”진서연의 손바닥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배어 있었고 며칠째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민기 씨는 워낙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분명 괜찮을 거야.”“그게 문제예요. 사람들한테 너무 원한을 산 건 아닐까 싶어서요.”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알았어. 내가 사람들 시켜서 알아볼게.”“고마워요, 보스.”박민정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쉬지 않고 바로 사람을 시켜 정민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디에서도 정민기에 대한 단 한 조각의 소식도 얻을 수 없었다.늘 곁을 지켜주던 사람이었기에 박민정도 정민기의 가족이나 배경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지금 와서야 그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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