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죽기 전엔 못 놔줘: Bab 2051 - Bab 2060

2074 Bab

제2051화

물론 박민정도 부잣집이긴 하지만 아무리 부자라도 며느리부터 아이들을 챙겨야 했다.마치 고영런처럼 언제나 아이 둘을 곁에 두고 살뜰히 돌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졌다.‘내가 아들만 넷인데 며느리도 넷이면... 거기서 아이 둘씩만 낳아도 여덟 명이잖아...’박민정은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혹시 나중에 재산 문제로 싸우기라도 하면 어쩌지?’그런 그녀 곁에서 박윤우도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나는 커서 다혜처럼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랑 결혼해야지. 그래야 우리 가족이 전부 행복할 거야.’엄마와 아들, 둘은 현관 앞에서 멍하니 서서 각자의 미래를 그렸다.그러다 언제 왔는지도 모를 유남준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둘이서 왜 문 앞에 서 있어? 밖에 춥잖아.”“괜찮아요, 안 추워요.”박민정이 얼른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 한켠엔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었다.그때 박윤우가 한숨 섞인 말투로 툭 내뱉었다.“근데 난 마음이 더 추워요. 엄마, 다혜 언제 또 놀러 오게 할 거예요?”바로 그 순간, 서재 문이 열리더니 박예찬이 나왔다.“뭘 놀아?”서재에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던 박예찬은 거실 쪽 이야기를 듣고 나온 모양이었다.박윤우는 형이 나오자 왠지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아, 아니야. 그냥... 아무 얘기 아니야.”박윤우는 자신이 형보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형에게 유다혜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박예찬은 그 말이 거짓말이란 걸 금방 알아챘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박윤우는 늘 먹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라 숨기는 비밀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두 아이는 저마다 마음속에 감춰둔 생각이 있었지만 박민정은 그저 두 아이가 귀엽기만 했다.아이들이 방으로 돌아가자 박민정은 유남준을 붙잡고 소파에 앉혔다.“남준 씨, 방금 문득 생각난 게 있어요.”“뭔데?”유남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우리 아들 넷 다 크면... 집은 어떻게 나눠줘야 할까요? 그리고 며느리들까지 생기면 그때는 또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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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2화

박민정이 병원을 나서자 변호사 장명철이 조용히 뒤를 따랐다.“장 변호사, 아저씨가 가볍게 처벌받을 수 있게 양해서 하나만 써 줘.”“알겠어.”장명철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박민정은 조용히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피로가 몰려왔고 잠시나마 눈을 붙이고 싶었다.얼마나 지났을까.핸드폰 벨소리가 조용한 차 안을 울렸다. 박민정은 눈을 뜨고 화면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정신과 병원의 최 원장이었다.“여보세요, 원장님. 무슨 일이시죠?”“박 대표님, 이지원 환자가 꼭 대표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박민정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그렸다.“그 여자, 아직도 정신병자 행세 중인가요?”“지금은 많이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연기 같진 않습니다.”최 원장의 목소리는 신중했다.“그래요.”박민정은 짧게 응답하고 전화를 끊었다.솔직히 말해 그녀는 이지원이 더 오래 버틸 줄 알았다. 그렇게 집요하게 정신병자처럼 굴던 사람이 이렇게 빨리 포기할 줄은 몰랐다. ‘결국 미친 척하면서 사는 것도 지옥은 지옥인가 보다.’박민정은 앞좌석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정신과 병원으로 가요.”그녀는 직접 이지원을 보고 싶었다.수년간 얽혀 있었지만 박민정에게 이지원은 사실 아무 의미 없는 존재였다.하지만 그 여자가 저지른 짓들만큼은 잊지 않았다.‘윤소현도 벌을 받았는데 이지원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되지.’정신과 병원 접견실.이지원은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채,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입술은 잔뜩 말라 있었고 두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녀 앞에는 최 원장과 간호사가 서 있었다.“박민정... 아직 안 왔어요?”이지원이 힘겹게 물었다.최 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조금만 기다리면 오신다고 했어요.”‘박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오르내리는 걸 들은 이지원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박민정은 잘 살고 있네.”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처음에는 여기서 계속 버틸 생각이었다. 미친 척만 잘하면 세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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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3화

박민정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떨고 있는 이지원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그 순간, 이지원의 얼굴이 민정의 시야에 완전히 들어왔다.긁힌 자국이 뒤엉켜 있는 몰골은 예전의 단정하고 청초하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이제 남은 건 마치 들고양이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섬뜩할 정도로 상처투성이인 얼굴뿐이었다. 분명 병원 안에서 당한 짓이었다.박민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지원아, 나한테 친구라고 했지?”차가운 눈빛이 이지원의 얼굴을 꿰뚫었다.“친구 남편을 뺏는 것도 친구가 할 짓이야? 친구가 이룬 걸 가로채고 친구의 아이까지 다치게 하는 게?”이지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미안해... 민정아. 아니, 박 대표님... 내가 잘못했어. 정말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어.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줘.”이곳에 끌려온 뒤로 이지원은 여러 번 도망치려 했지만 그때마다 붙잡혀 돌아왔다.지금은 완전히 망가진 몰골로 박민정 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박민정은 그 모습이 오히려 통쾌했다.그녀는 차갑게 고개를 돌리고 이지원의 턱을 툭 내던졌다.“내가 보기엔... 네 병, 아직 멀었어. 계속 치료받는 게 좋겠네.”그 한마디가 이지원의 귀에 천둥처럼 꽂혔고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안 돼, 안 돼! 민정아, 제발 이러지 마. 나 정말 못 견디겠어. 여기 사람들 다 이상해. 날 괴롭힌단 말이야. 다들 미쳤다고!”예전 같았으면 박민정도 흔들렸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알았다.자기를 짓밟은 사람에게 연민을 베푸는 건, 그때의 자신을 또다시 버리는 일이라는 걸.박민정은 이지원의 절규를 외면한 채 병원장에게 돌아섰다.“원장님, 이지원 환자는 아직 상태가 좋지 않아요. 계속 입원 치료 부탁드립니다. 비용은 제가 부담할게요.”최 원장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 순간, 이지원은 공포에 질려 박민정의 다리에 매달렸다.“민정아, 제발! 너 예전엔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제발...”그러자 박민정은 눈빛 하나를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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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4화

“아이고, 눈이 침침해서 착각했구나. 다시 두자꾸나.”김훈이 서둘러 바둑판을 엎으며 웃었다.조하랑은 한숨을 쉬었다.“할아버지, 그건 좀 반칙 아닌가요?”“아이고, 늙으면 다 그렇단다. 나랑 예찬이랑 둘 땐 항상 이랬어.”능청스럽게 웃는 김훈을 보며 조하랑은 조금 당황했다.이렇게 아이처럼 구는 어른일 줄은 몰랐다.그나마 이 할아버지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건 박예찬뿐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지금 집에 돌아가고 없었다.그때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김인우가 두 사람의 말다툼 소리에 고개를 내밀었다.“할아버지, 하랑 씨 지금 임신 중이에요. 좀 봐주세요.”김훈은 그제야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다. 이놈의 건망증 좀 봐라.”“하랑아, 이번 판은 네가 이긴 걸로 하자꾸나.”김훈은 민망했는지 급히 말을 덧붙였다.사실 그는 진짜로 깜빡한 거였다.나이를 먹으면서 기억력은 부쩍 줄었고 방금 전까지 기억하던 것도 금세 잊어버리기 일쑤였다.조하랑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그냥 할아버지랑 놀고 있었어요.”“놀더라도 할아버지는 봐드려야죠. 어르신인데.”김인우가 장난스럽게 받아치자 김훈은 흐뭇하게 웃었다.“그래. 할아버지가 이제부터 하랑이 잘 봐줄게.”“그럼 전 다시 요리하러 갈게요.”김인우가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자 조하랑은 바둑을 다시 두려다 문득 부엌 옆에 둔 김인우의 핸드폰이 연신 울리는 걸 보았다.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전화기를 집어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인우 씨, 전화 왔어요.”김인우는 팬을 돌리느라 손을 쓸 수 없었다.“좀 받아줘요. 무슨 일인지 봐줘요.”“알겠어요.”조하랑은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대표님, 그... 환자 중에 이지원이라는 분이 계신데요. 자꾸 대표님을 꼭 만나야 한다고 해서요...”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인우가 일하는 정신과 병원의 최 원장이었다.사실 그는 이 전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지원은 과거 김인우와 가까웠다며 자신을 도와주면 대표님도 고마워하고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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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5화

김인우는 ‘이지원’이라는 이름에 순간 멈칫했다.‘그 여자, 미친 거 아니였나? 또 연기였단 말이네.’“알겠어.”그는 조용히 대답하고 핸드폰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먼저 식사하세요. 금방 돌아올게요.”그가 웃으며 말하고 식당을 나가자 조하랑은 김훈을 부축해 식탁에 다시 앉히며 투덜거렸다.“집에서도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나가서 받아야 하는지...”김훈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그 이지원이라는 여자는 대체 왜 이렇게 우리 인우한테 집착하는 거야?”그는 이지원 같은 스타일을 원래도 좋아하지 않았다.조하랑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할아버지도 이지원 씨 아세요?”“알다마다. 몇 년 전엔 그 여자 때문에 인우 정신이 완전히 나갈 뻔했어. 그때 겨우 정신 차려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인우 인생은 벌써 엉망 됐을 거다.”김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도 또 연락을 하다니... 진짜 한 번 맛 좀 보여줘야겠어.”그는 단단히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조하랑은 그의 진지함에 잠시 눈을 감추었다가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훈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지, 곧바로 다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하랑아, 마음 쓰지 마. 너 혼자 몸도 아닌데 그런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어. 어떤 일이 있어도 할아버지는 네 편이야.”“그 여자가 또 인우에게 매달리면... 내가 어떻게든 처리할 거야. 너는 걱정하지 마.”김훈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 눈빛에서 농담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말에 조하랑은 놀라 눈을 크게 뜨곤 황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할아버지, 그런 말씀은... 그건 범죄예요!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말이에요. 저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 아니에요.”사실 조하랑은 김인우와 깊은 정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가 아직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해도 굳이 화낼 이유는 없었다. 괜히 속 끓였다가 뱃속 아이에게 해가 될까 싶어 애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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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6화

“오래 걸렸어요?”김인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물었다. ‘전화를 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아무리 길어도 십 분 남짓일 텐데...’“네가 보기엔? 내 눈엔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보이는데.”김훈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싸늘했다.그제야 김인우는 할아버지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조용히 조하랑을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무슨 일이야? 왜 이러시는 건데?’하지만 조하랑은 그의 시선을 일부러 외면한 채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할아버지, 오늘 반찬 정말 맛있네요.”“맛있으면 많이 먹어라.”김훈의 말투는 딴사람 같았다. 김인우에게 했던 차가운 말투는 온데간데없고 조하랑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했다.할 수 없이 김인우도 자리에 앉아 밥을 뜨기 시작했다.“요즘 요리 공부 열심히 했어요. 벌써 팔대 요리 다 마스터했는걸요. 제가 만든 음식 어때요?”하지만 허공에 대고 말한 것 같았다. 식탁 위에는 어색한 정적만 가득했다.대답은커녕 둘 다 아무 말 없이 밥만 먹고 있었다.김인우는 혹시 못 들었나 싶어 이번엔 고기를 집어 김훈에게 내밀었다.“할아버지, 기름기 적은 고기예요. 건강 생각해서...”그 순간이었다.김훈은 눈을 치켜뜨더니, 김인우가 건넨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그 일련의 행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김인우는 아직 젓가락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할아버지, 설마 저... 더럽다고 느끼시는 거예요?”김훈은 대답 대신 그를 쏘아보며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다.그제야 김인우는 확실히 깨달았다.이 두 사람, 단단히 오해하고 화가 나 있었다.“할아버지, 하랑 씨. 화났으면 적어도 이유는 말해줘야죠. 대체 왜요?”그제야 김훈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그 여자한테 또 연락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냐?”김인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그 여자요? 설마 이지원 말씀하시는 거예요? 연락한 적 없어요.”“됐어, 변명하지 마. 나도 남자야. 너보다 밥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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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7화

김인우는 슬며시 조하랑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진짜예요?”그는 조하랑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근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개요?”조하랑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황급히 그에게 등을 돌렸다.“아마도... 좀 더워서요. 실내 난방이 너무 세게 돼 있어서... 조절 좀 하고 올게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난방 조절기로 걸어갔다.김인우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부드럽게 말했다.“조심해요. 천천히 가도 돼요. 뭐가 급하다고요.”조하랑은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뭔가 마음도 허둥지둥했다.“...안 급하거든요.”괜히 말끝을 세우며 대꾸했지만 김인우는 다 안다는 듯 웃기만 했다.그의 시선을 의식하자 조하랑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온도를 조금 낮추고는 돌아섰다.“됐어요. 피곤하네요. 자고 싶어요.”두 사람은 지금 같은 방을 쓰고 있었지만 침대는 따로였다.조하랑은 빠르게 자기 침대로 가서 외투를 벗고 이불 속에 쏙 들어가 버렸다.김인우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조용히 자기 자리에 누웠다.아직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었고 조하랑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뒤척이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더 크게 울렸다.“잠 안 와요?”그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렸다.그도 아직 자지 않았다는 걸 몰랐던 조하랑은 잠시 머뭇이다가 작게 대답했다.“...조금?”“그럼 얘기 좀 해요.”김인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가 듣기로는 지금이 임신 중기라 그나마 편한 시기래요. 막달 가면 더 잠 못 자고 힘들다던데.”조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어떡하죠?”“조금만 참아요. 아기 낳고 나면 좀 나아질 거예요.”위로라고 하기엔 투박했지만 김인우는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밥 챙기고 잠 챙기고 말 대신 행동으로라도.“...네.”조하랑은 그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는지 조금 마음이 풀렸다.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근데... 아까 말했던 이지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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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8화

조하랑은 굳이 김훈에게 찾아가 따져 묻고 싶지도 않았다.그런 일로 따지자면 어차피 할아버지는 김인우 편을 들며 뻔히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그럼 병원에 가서 정식으로 검사라도 해봐요. 병이면 고쳐야지. 다음에도 이런 식이면, 진짜로 가만 안 둘 거예요.”조하랑은 싸늘하게 말을 던지고는 일어나 자리를 떴다.그녀가 더 이상 따지지 않자 김인우는 안도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그가 방을 나서자 조하랑은 서둘러 자신의 몸부터 확인했다.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아 그제야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이른 아침, 김훈은 이미 모습을 감췄다.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이지원이 입원해 있는 정신과 병원이었다.“어르신, 환자는 이 방에 있습니다.”최 원장이 공손히 안내하자 김훈은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텅 빈 눈동자, 흐트러진 머리칼, 예전의 당당하고 교활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이제 그녀는 무너진 인간 그 자체였다.“정말 인우가 데려온 거라고?” 김훈이 낮게 물었다.“예. 확실합니다.”김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곧바로 최 원장을 따로 불러냈다.“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해봐. 인우가 뭐라고 했고 이 여자가 여기서 어떻게 지냈는지까지.”최 원장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보고했다.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김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번엔 제대로 했구먼.”김훈은 확신했다.김인우는 이미 조하랑을 선택했고 더 이상 이지원에게 마음이 없었다.“어르신, 그럼... 이 환자는 퇴원 조치할까요?”최 원장이 조심스레 물었지만 돌아온 건 냉혹한 비웃음뿐이었다.“퇴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저 지경 된 게 오히려 덜 당한 거다.”그 말에 최 원장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이 어르신이 이렇게까지 말하다니... 저 여자, 진짜 보통 악질은 아니었나 보군.’“알겠습니다. 절대 함부로 퇴원시키지 않겠습니다.”김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문 앞까지 가서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병실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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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9화

시간은 어느새 흘러 아이들은 방학에 들어갔다.박민정은 두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곧장 유씨 가문의 옛 저택으로 향했다.요즘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이곳에 들렀다. 어린 두 아들을 보기 위해서였고 가족들과 얼굴을 맞대기 위해서이기도 했다.아이들이 방학에 들어가자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외지에 나가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고향으로 돌아오는 시기.그리고 바로 그날, 박민정은 마침내 연지석에게서 전화를 받았다.“민정아, 민기 소식이 확인됐어.”“정말? 지금... 지금 괜찮은 거야?”정민기가 사라진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그동안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던 박민정은 목소리부터 다급해졌다.“응. 괜찮아.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당장은 연락이 어려울 것 같아. 여자친구한테도.”연지석이 조심스레 말했다.“병원에 있다고?”박민정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무슨 일이야? 자세히 말해줘.”“구체적인 얘기는 민기한테서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연지석의 말에 그녀는 더는 묻지 않았다.“알겠어.”전화를 끊은 뒤, 그녀는 곧장 진서연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요즘 진서연은 몹시 불안정했다.마음이 붕 떠 있었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실수도 잦았다.“진짜예요? 민기 씨, 정말 무사한 거예요?”진서연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정말이야. 지석이 말로는 지금은 연락이 어렵지만 조만간 너한테 꼭 연락할 거래.”박민정은 괜히 불안만 키울까 봐 병원 얘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진서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속을 달랬다.“...무사하다니 다행이에요.”요즘 진서연은 거의 매일 악몽을 꿨다.꿈속에서 정민기가 자신을 떠나는 장면, 혹은 온몸이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장면이 나왔다. 그 꿈들은 너무도 생생해서 아침이면 눈가가 젖어 있는 일이 많았다....한편, 다른 쪽에선 홍주영이 새 직장에서 퇴근한 후 집에 도착했다.현관문을 여는 순간, 갑작스레 안쪽에서 튀어나온 팔이 그녀를 끌어당겼다.“꺄악!”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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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0화

홍주영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아, 아니에요...”그녀가 겨우 입을 열기도 전에 하민재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정말 보고 싶었어요. 한 달 동안... 주영 씨는 나 안 보고 싶었어요?”그 물음에 홍주영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한 달 동안 두 사람은 거의 연락이 없었다. 가끔 안부만 묻는 메시지가 오갈 뿐 그 이상은 없었다.조금 머뭇거리던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럭저럭요.”하민재는 그녀의 말에 잠시 시선을 떨구더니, 방 안의 스탠드 조명을 켰다.부드러운 불빛 아래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봤다.그 눈빛이 닿는 순간, 홍주영의 가슴이 괜히 복잡해졌다.그가 다시 그녀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는 찰나, 홍주영은 그의 품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언제 왔어요? 밥은 먹었어요?”그녀는 당황한 듯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하민재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방금 도착했어요. 밥은 아직 안 먹었고요. 주영 씨는요?”“나도 방금 퇴근했어요.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제가 밥 해드릴게요.”“그래요. 같이 해요.”하민재는 그녀의 뒤를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홍주영은 자신이 왜 이리도 어색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공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냉장고에서 야채와 고기를 꺼내는 그녀 옆에서 하민재는 조용히 야채를 고르고 씻으며 도왔다.둘은 예전부터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할머니는 결혼할 사이면 당연히 같이 살아야 한다고 했고 그 말에 따라 홍주영은 하민재의 집으로 들어왔다.하지만 함께 산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가 약혼자처럼 자연스럽지도 연인처럼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민재 씨, 방금 왔는데 좀 쉬세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그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히 숨이 막혀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괜찮아요. 피곤하지 않아요.”하민재는 여유 있게 웃었지만 주방 안에는 금세 정적이 내려앉았다.그 정적을 못 견딘 하민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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