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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죽기 전엔 못 놔줘: Chapter 2091 - Chapter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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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1화

최상철은 금세 기운 넘치는 척하며 말했다.“나랑 네 엄마 요즘 점점 좋아지고 있어. 이번 설 연휴 때 집에 다녀오면 다시는 입원 안 해도 될 것 같아.”최민아는 부모님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두 분이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거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따뜻한 순간에 굳이 진실을 들추고 싶지는 않았다.“네, 정말 다행이에요.”바로 그때 최상철은 박민호의 정체를 물어보려 했다.최민아가 일어나 말했다.“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이야기해요. 여기는 좁고 쉴 데도 없어요. 돌아가면 제가 밥해 드릴 테니, 그때 천천히 민호 씨랑 이야기하세요.”“그래, 그래.”두 어른이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두 사람은 원래도 얼른 나가고 싶었고, 더는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병이 심각해 병원을 오래 떠나면 위험할 수 있었다.최민아도 그걸 잘 알았기에, 시간이 날 때면 부모님을 잠깐씩 모시고 나가 한숨 돌리게 해 드리고는 했다.밖에 나오니 박민호가 배려심 깊게 기사 딸린 밴을 불러 두었다.먼저 탑승한 뒤, 최민아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제가 택시 불렀잖아요.”“택시는 좁아서 우리 네 명이 타면 불편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좀 더 큰 차로 바꿨어요.”박민호가 설명했다.“고마워요.”최민아가 진심으로 말했다.“우리 친구잖아요. 그렇게까지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박민호가 웃으며 답했다.최민아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의 고마움은 더욱 커졌다.민박집에 도착하자, 최상철과 안순자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조용한 풍경을 보며 한시름 놓였다.“여기 정말 좋다.”안순자가 진심으로 말했다.최민아는 부모님께 자신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보여 드리고 싶었다.“네, 아빠, 엄마, 병만 완전히 나으면 우리 다 같이 여기서 살아요.”하지만 최상철은 손사래를 쳤다.“여긴 너랑 민호 집이잖아. 우리 병 나으면 시골로 돌아가서 돼지 두 마리랑 닭, 오리 좀 키우고, 채소도 심을 거다. 설에 너희가 오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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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2화

최상철과 안순자는 박민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민호야, 네 부모님 그렇게 나이도 많지 않았을 텐데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안순자가 물었다.박민호가 담담히 설명했다.“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어요.”그 말을 들은 안순자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참 딱하기도 하지. 슬퍼하지 마라. 앞으로 우리가 네 가족이 되어 줄 거야.”박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옆에 서 있던 최민아는 박민호가 부모님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마치 자신과 그가 정말 연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아빠, 엄마,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전 가서 밥 준비할게요.”박민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민아 씨, 제가 도와줄게요. 아버님, 어머님은 편히 쉬세요.”“그래, 그래.”두 어른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최민아와 박민호가 부엌으로 가자 안순자가 감탄했다.“민호는 정말 괜찮은 아이예요. 잘생겼고, 사람도 좋고, 착하고 효심도 있어요.”“그래. 근데 지금 하는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지. 남자 말은 믿을 수 없으니까 행동을 봐야 해.”최상철이 말했다.안순자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당신도 참...”최상철은 자신이 괜한 의심을 품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로서 딸을 위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부엌에서 최민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민호 씨 부모님 이야기는 몰랐어요. 죄송해요.”그의 부모님이 세상을 뜬 건 들어서 알았지만 어떻게 세상을 떴는지는 오늘 처음 알았다.“사과할 필요 없어요. 오래전 일이라 이미 다 털어냈어요.”박민호가 고개를 저었다.부모님이 돌아간 다음 사실 그는 크게 슬프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근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지 부모님이 계셨던 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떠올리고 있었다.“앞으로 가족이 그리우면 제가 함께 있어 줄게요.”최민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돈이 없었으니 이런 식으로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박민호도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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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3화

“그럼 네 누나는 결혼했니?”안순자가 화제를 이어받으며 물었다.대부분의 여자들은 앞으로 시댁에 무섭게 구는 새언니가 있을까 봐 걱정한다.“벌써 결혼했고, 아이도 몇 명 있어요.”박민호가 사실대로 대답했다.“그럼 잘됐네.”안순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최상철에게 옮겨갔다.최상철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민호야,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처음 봤을 때부터 네가 참 마음에 들었어. 다만 네가 우리 민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민호가 곧바로 받았다.“저는 민아 씨를 정말 좋아해요. 앞으로 꼭 잘해줄 거예요.”최민아는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밥만 먹었다.모두가 미리 정해 둔 대사라는 걸 알면서도, 한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 잘해주겠다고 말하니 얼굴이 괜히 뜨거워졌다.최민아의 이런 모습에 최상철과 안순자는 그녀가 박민호를 무척 좋아한다는 확신이 더 굳어졌다.“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 궁금해지네. 언제 우리 민아를 데려갈 생각이니?”“풉!”최민아는 입안의 물을 거의 식탁에 뿜을 뻔했다.그녀는 연달아 기침을 하며 가슴을 두드렸다.“엄마, 아빠, 그런 말씀 그만해요. 저랑 민호 씨는 이제 사귄 지 얼마 안 됐어요. 결혼 이야기는 너무 빨라요.”“빠르다니? 옆집 아주머니 딸은 맞선 본 지 한 달 만에 약혼하고, 두 달째에 결혼하더니 바로 임신했는데?”최민아는 다시 기침이 터졌다.부모님은 매일 병원에 계시면서 어떻게 고향 소식에 그렇게 빠삭한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엄마, 아빠, 저희는 그렇게 일찍 결혼할 생각 없어요.”“너도 이제 스물다섯, 스물여섯이잖아. 계속 미루다 보면 나중에 아이 갖기 힘들어.”안순자가 경험자로서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다.역시 전 세계 부모님이 다 식탁에서 결혼과 출산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최민아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만 숙였다.그때 박민호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아버님, 어머님, 두 분이 민아 씨를 저한테 맡겨도 괜찮다고 생각하신다면, 결혼 날짜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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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4화

식사를 마치고 나서, 모두가 다시 모여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밤에 잠자리에 들 즈음, 최민아와 박민호는 원래 따로 방을 쓰려고 했다.그런데 안순자는 뜻밖에도 너그럽게 말했다.“너희 둘은 어차피 결혼할 사이잖아. 한방에서 자도 괜찮아.”“정말 그래도 돼요?”최민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예전에 안순자는 늘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며, 결혼 전에는 절대로 관계를 갖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 엄마가 먼저 함께 자라고 권하다니 말이다.“당연하지. 요즘 세상은 예전이랑 다르잖아.”안순자가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고, 본인과 남편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으니, 딸이 박민호와 같이 좋은 사람을 꼭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래도...”최민아는 여전히 망설이며 부모님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안순자는 딸의 등을 툭툭 밀어 박민호 방 쪽으로 보냈다.“얼른 가. 나랑 네 아빠는 손주 볼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까.”그 말에 최민아는 더욱 어안이 벙벙했다.등 떠밀려 들어간 방 안에서는 마침 샤워를 마친 박민호가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몸에는 수건 하나만 두르고 있었다.솔직히 인정하자면, 박민호의 몸매는 균형 잡힌 역삼각형에 근육도 단단했다.머리를 수건으로 문지르던 박민호는 그녀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무슨 일이에요?”최민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엄마가 같은 방에서 자래요.”“민아 씨가 전에 아버님, 어머님은 보수적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한방에서 자는 걸 허락한 거예요?”“저도 몰라요.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근데 방에 침대가 하나뿐인데요.”“괜찮아요. 저는 소파에서 자면 돼요.”이미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더는 폐를 끼칠 수 없었다.“여자가 어떻게 소파에서 자요?”박민호는 침대에서 이불을 집어 들더니 스스로 소파에 누웠다.“제가 소파에서 잘게요.”그 모습을 보니 최민아는 더욱 미안해졌다.“안 돼요, 민호 씨가 침대에서 자요. 제가 소파에서 잘게요.”그녀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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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5화

설날이 곧 다가왔다.박민정은 새해맞이 선물을 잔뜩 준비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 먼저 일부를 부쳤고, 나머지는 집에 두었다.섣달그믐날.박민정과 유남준은 아이들을 데리고 본가로 돌아왔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는 네 명의 아이들 덕분에 아주 북적였다. 다만 식탁에서 고영란과 유지욱의 사이가 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얼굴을 굳힌 유지욱이 말했다.“남준아, 남우한테 연락 좀 해. 오늘 밤에는 꼭 들어오라고.”유남우는 한동안 이 집에 오지 않았다. 유지욱이 몇 번이고 연락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었다.“아버지, 남우도 어린애가 아니에요. 오고 싶으면 오고, 싫다면 내버려두는 게 맞아요.”유남준이 또박또박 대답했다.“그게 무슨 소리냐? 섣달그믐 밤에는 다 같이 있어야지, 남우만 없는데 말이 돼?”유지욱이 꾸짖었다.그때 고영란이 작은 숟가락으로 박현우에게 이유식을 먹이며 차갑게 말했다.“아버지인 당신도 못 데려오는 아들을, 인 유남준이 어떻게 데려오겠어요?”예상치 못한 일침에 유지욱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색한 기류가 돌았지만, 곧 두 꼬마가 재잘거리며 밥을 먹는 소리에 분위기가 풀어졌다.박현우와 박현진은 수다쟁이라 말도 제대로 못 뗀 채 사람들과 계속 떠들어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그 모습을 보던 박윤우가 박예찬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당겼다.“형, 우리는 이제 귀엽지 않은 거지?”“난 원래 안 귀여워.”박예찬이 진지하게 대꾸했다. 그는 귀엽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에휴...”박윤우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배부르게 먹고 잠시 쉰 뒤, 모두 제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박민정이 막 누웠을 때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박민호였다,[누나, 설 잘 보내.]박민정은 속으로 뭔가 꿍꿍이가 있나 싶었지만 일단 답장을 보냈다.[응, 너도 잘 보내.]이후 박민호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고, 박민정도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에 들었다.샤워를 마친 유남준이 눕기 직전 또다시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민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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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6화

최민아는 최상철과 안순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는 설이 오면 모두 시골로 내려가 친척이나 이웃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며 얼마나 즐거웠던가.하지만 지금은 병세가 언제 악화할지 몰라, 응급실과 먼 시골 대신 도시에 머물러야 했다.“아빠, 엄마, 그럼 이번 상까지만 보고 주무세요.”최민아가 아이 달래듯 두 사람을 달랬다.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옆에서 박민호가 TV 화면을 가리키며 요즘 연예인들을 설명해 드렸다.“요즘 프로그램은 예전만 못해. 설도 옛날처럼 북적이지 않고 말이야.”최상철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시골도 다를 바 없다는 걸 안다. 다들 휴대폰만 보느라 대화가 줄어들었다.“내년 고향에 내려가면 틀림없이 활기찰 거예요.”최민아가 환하게 웃었으나, 두 사람의 얼굴에는 쓴웃음만 스쳤다.그들은 알고 있었다. 내년 설까지 기다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설령 내려간다 해도 예전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병이 찾아온 뒤로 가장 가까운 친척들조차 연락을 끊어 버렸으니까.웃음기 없는 시상 하나가 끝나자 그들은 흥미를 잃고 방으로 향했다.“이만 자자.”“그래요.”박민호가 황급히 일어섰다.“아버님, 어머님, 방까지 모셔다드릴게요.”“그래, 마침 우리도 너한테 할 말이 좀 있거든.”안순자가 말했다.“엄마, 무슨 일이에요? 저 몰래 얘기하려고요?”최민아가 따라붙자 안순자가 눈을 흘겼다.“너는 얼른 씻고 쉬어. 공연히 궁금해하지 마. 우리 둘이 네 험담하는 거 아니니까.”딸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나자 세 사람은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문을 닫고 나서야 안순자가 입을 열었다.“민호야, 너 정말 민아를 좋아하니?”“네, 민아 씨를 진심으로 좋아해요.”박민호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보다시피 우리는 몸이 좋지 않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그때 민아 혼자 남겨지면, 네가 잘 돌봐줄 수 있겠니? 평생 서운하게 하지 말아 줘.”시간이 없다는 걸 알기에, 안순자는 말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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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7화

인생은 늘 예측할 수 없다.박민호는 희미한 불빛 너머로 앉아 있는 최민아를 바라보다가, 지금처럼 소소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문득 스쳤다.그는 눈을 감고 곧장 꿈속으로 빠져들었다.설날 아침, 사방이 들뜬 기운으로 가득했다.박민정은 박현우, 박현진, 박윤우, 박예찬과 함께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유남준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한 가족이 모이니 더없이 화목해 보였다.그때 집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멈춰 섰다.절제된 호화로움이 느껴지는 차 안에 유남우가 앉아 있었다. 그는 멀리서 눈사람을 만드는 가족을 바라보다가 묘하게 마음이 씁쓸해졌다.그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유남우가 내리는 순간 박민정도 그를 발견했다.불과 한두 달 사이에 그는 야위어서 얼굴에 살이 사라져 있었다.원래 유남준과는 쌍둥이라 똑같이 생겼지만 이제는 한눈에 구분될 정도였다.시선이 마주치자 박민정은 곧바로 눈길을 거두고 아이들과 눈놀이를 이어갔다.그 모습을 본 유남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쪽으로 걸어왔다.집 안에서 유지욱이 나오다가 그를 발견하고 말했다.“남우야, 이제야 왔니?”“요즘 너무 바빴어요. 그래서 지금 와서야 인사드려요.”“뭐가 그렇게 바빠서 섣달그믐도 잊어? 앞으로는 자주 얼굴 좀 보여라.”예전 같으면 고개를 끄덕였을 텐데, 유남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예전에는 아버지도 집에 잘 안 오셨잖아요.”유지욱이 순간 말문이 막힌 사이 고영란이 나왔다.“남우야, 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투야?”유남우는 입을 다물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지욱이 중얼거렸다.“얘가 정말 달라졌네.”고영란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한 거예요? 애가 변한 걸 이제야 알았어요?”다시 말문이 막힌 유지욱은 물었다.“어떻게 남우를 데려온 거야?”“안 알려줄 거예요.”고영란은 그를 힐끗 노려보고는 유남우를 따라갔다. 유지욱은 혼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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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8화

“아버지, 정말 바꾸고 싶으시면 먼저 어머니한테 잘해줘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유남준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예전에 민정이랑 제가 이혼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저더러 후회할 거라고 하신 거 기억하시죠? 아버지는 후회하세요?”또렷한 물음에 유지욱의 얼굴이 굳었다.감정 문제는 늘 제삼자가 더 잘 보는 법이다. 예전부터 그는 박민정이 좋은 며느리라는 걸 알아봤고, 만약 유남준이 그녀와 헤어지면 두 번 다시 그런 사람을 만나기 힘들 거라 여겼다.이제는 그 아들이 거꾸로 아버지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하, 나랑 네 엄마는 나이가 들었잖아. 너희 때와는 달라. 넌 몰라.”자존심 탓에 그는 여전히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다.유남준도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그래, 큰아버지 회사는 요즘 어때? 전에 네가 사람을 보내서 관리 좀 도와줬잖아?”유지욱이 화제를 돌렸다.그 말에 유남준은 할 말이 많아졌다.“아버지, 큰아버지가 진짜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무슨 뜻이냐?”“아버지 입 빌려 제가 회사를 특별히 챙기게 하려는 거예요.”유남준이 단번에 본심을 짚었다.“제가 보낸 그 매니저는 큰아버지가 억지를 써서 이미 잘라 버렸어요.”“그럴 리가!”믿기 힘들다는 듯한 유지욱을 보며 유남준은 더 얘기하지 않았다.“어쨌든 앞으로는 저더러 도우라고 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은 고마워할 줄 몰라요.”그렇게 말한 뒤, 그는 박민정과 아이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유남준의 말대로, 큰아버지 유석진은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려는 게 아니라 친척이라는 이유로 IM그룹을 이용하려고 했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그는 오후에 곧장 찾아왔다.유지훈도 함께였다. 지난번 쇼핑몰에서 박예찬과 다투고 몰래 도망쳤던 그는 지금 돼지 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었다.유석진이 웃으며 말했다.“남준아, 지난번 일은 다 들었다. 내가 지훈이를 데려와서 사과시키려고 왔다. 이 가면은 예찬이가 사 준 건데 일부러 쓰게 했어.”“할아버지, 이렇게 못생긴 가면 쓰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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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9화

유지욱이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형, 당연하지.”말을 마친 그는 늘 그렇듯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 유지훈의 앞으로 다가갔다.“지훈아, 이 가면 쓰기 싫으면 안 써도 돼.”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도 않은 채, 그는 박예찬 대신 유지훈을 단번에 용서해 주었다.박예찬도 자기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전혀 화내지 않았다.유지훈은 얼굴에 쓴 못생긴 돼지 가면을 잽싸게 벗어 던졌다.그가 갖고 싶은 건 손오공 가면이지, 이런 돼지 가면이 아니었다.유석진이 일부러 눈을 흘겼다.“지훈아, 둘째 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해야지.”“둘째 할아버지, 고마워요.”“별거 아니다, 괜찮아.”유지욱이 껄껄 웃었다.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진 걸 본 유석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남준아, 우리 다 식구니까 돌려 말하지 않을게. IM그룹 해외 프로젝트에 파트너 회사를 고른다던데, 우리 회사 어때?”큰아버지가 속내가 있어 찾아왔음을 이미 짐작했던 유남준은 담담히 답했다.“협력사는 전부 대외부서에서 선정해요. 큰아버지도 원하시면 제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적합한지는 그쪽에서 판단할 겁니다.”딱 봐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연줄 없이는 프로젝트를 따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유석진이 다시 설득에 나섰다.“남준아, 말이 너무 서운하네. 내가 네 큰아버지인데 같이 하면 손해 보게 하겠니?”그러나 유남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이익을 주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우리 협력사 경쟁 절차를 통과하실 수 있겠죠.”“...”유석진은 아들이 듣지 않자 시선을 유지욱에게 돌렸다.“지욱아, 우리 두 회사가 손잡으면 어때?”예전에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유남준 일가가 늘 큰집에 눌려 지냈다. 하지만 유남준이 회사를 키운 뒤에는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이 일은 남준이가 결정할 문제야. 나는 손 놓고 사는 사람이거든.”유지욱이 멋쩍게 웃었다.바로 그때 유지훈이 불쑥 끼어들었다.“둘째 할아버지는 삼촌 아빠잖아요. 왜 이런 결정도 못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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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0화

유남우가 집을 나설 때 거실을 지나며 유석진과 유지욱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이제 막 왔는데 또 나가냐?”유지욱이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네.”유남우는 짧게 대답했다.“가지 말고 집에서 밥이나 먹고 가.”아버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유남우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순식간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유석진이 모르는 척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태연하게 한마디 덧붙였다.“애가 크면 반항하기도 하지. 우리 집 성혁이도 자꾸 나를 속 썩여.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니까.”“그래야지.”유지욱이 고개를 끄덕였다.유석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우리는 먼저 갈게. IM그룹 해외 프로젝트 건은 남준이랑 한 번만 더 잘 얘기해 줘.”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서 말했다.“네가 남준이 아버지고 집안 어른이잖아.”“형, 걱정하지 마.”유지욱이 따라 나와 그를 배웅했다.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유석진은 올 때마다 속셈이 있다는 걸 말이다.그래도 평생 명예나 돈에는 큰 욕심이 없었고, 형제 사이 정만을 믿고 살아온 그였다.잠시 뒤, 그는 유남준을 불러 따로 이야기를 꺼냈다.“남준아, 네 큰아버지가 지난 한 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야. 가능하면 그 해외 협력 건 좀 넘겨줘. 친척끼리 돕는 셈 치지, 뭐. 한 번만 도와주면 나중에라도 계속 고맙게 생각할 거야.”유남준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버지, 사업은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이번에 예외를 만들면 임원들도 전부 사사로이 부탁 들고 올걸요?”“딱 이번 한 번이야.”유남준이 또 고개를 저으려 하자, 유지욱이 한마디 더 했다.“아버지가 부탁하는데 이것도 못 들어줘?”“...알겠어요. 한 번은 도와드릴게요.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입니다.”유남준이 서재를 나가자마자 고영란이 문가에 나타났다.“정말 대단하시네요. 남의 일 돕겠다고 아들 손해까지 감수하고.”“남이라니, 내 친형이야.”“그래요, 그 친형이 당신 등골 어떻게 빼먹는지 두고 봐요.”고영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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