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461 - Chapter 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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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1화

“그래...”서준이 입술을 씰룩였다.“지금 네가 고민해야 할 건 잠시 후에 있을 질의응답이야. 교수님들의 질문이 좀 날카로우면 어떻게 대답할 건지 말이지.”“아, 아... 설마 교수님들 그렇게 까다롭게 물으시진 않겠지?”서준의 눈가가 미묘하게 떨렸다.“눈 크게 뜨고 잘 봐. 생명과학대학, 물리학부, 수리과학부, 화학·분자공학부의 유명한 교수님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질문받는 거야.”민지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교수, 교수님들이 왜 이렇게까지 총출동하신 거야?”서준의 시선이 잠깐 정은을 스치더니 다시 돌아왔다.“문 앞에 몰려 있던 학생들만 경쟁자가 아니야. 교수들끼리의 세력 과시, 실력대결, 그게 진짜 신들의 싸움이지.”학부의 졸업논문 발표는 대개 형식적인 자리일 뿐, 진지하게 발표를 듣는 사람은 드물었다.교수들은 석사 논문 발표쯤 되어야 연구의 뼈대가 보인다 싶어 약간의 관심을 보인다.박사 논문 발표쯤 되면 비로소 교수들이 허리를 펴고 앉아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학문적 예의를 지키는 차원이었다.“그럼 저분들은 어느 쪽이야?” 민지가 조심스레 물었다.“어느 쪽에도 안 속해.”“뭐?”“상대 연구 발표를 들을 땐 끝까지 집중해서 듣고, 허점이 보이면 바로 질문으로 찔러야 하거든.”민지는 눈을 크게 떴다.“잠깐, 정은 언니가 왜 갑자기 그 대상이 되는 거야?”“생각해봐. 작년에 우리 실험실에서 낸 SCI 논문 수, 특허, 연구비 규모까지 합치면 이 자리 교수님들 실적이랑 비교해도 안 밀려. 그 정도면 이미 충분히 견제 대상이 될 만하지.”민지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세상에... 정은 언니 완전 RPG 게임 주인공 아니야? 보스 레이드 혼자 들어갔다가 길드 전체한테 포위당하는 그 느낌인데...”서준의 입꼬리가 씰룩였다.“너 뭔가 착각하는 거 아냐? 너랑 나도 똑같이 무한 실험실 소속이잖아. 정은 누나랑 한 팀이라고.”“그, 그러니까...?”서준이 얄미운 듯 웃었다.“그러니까, 교수님들이 우리를 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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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2화

졸업논문 발표 장소.민지가 서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야, 봐봐! 조재석 교수님이 오셨어! ...어? 근데 왜 물건 다 챙겨 들고 또 나가시지? 교수님이 심사위원 아니셨어?”재석은 다른 교수 몇과 짧게 말을 나눈 뒤, 미련 없는 걸음으로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그 뒷모습에는 아쉬움보다는 단호함이 묻어났다.곧 교수 중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을 들어 좌중의 웅성거림을 제지했다.“여러분, 조금만 진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재석 교수님께서 방금 교무처의 긴급 요청으로 이번 논문 발표의 심사위원을 맡지 않게 되었습니다.”“이 자리를 대신할 교수님이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10분쯤 지나자 대체 심사위원이 숨을 고르며 발표실로 들어섰다.드디어 졸업논문 발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첫 번째 발표자는 정은이었다.그녀는 PPT 파일을 띄우고 미소를 머금은 채 교수들과 학생들을 바라보았다.“안녕하세요, 생명과학대학 석사과정 3년차 소정은입니다. 오늘 발표할 제 논문 제목은 《MIDAS를 통한 단일 세포 다중 모달 데이터의 모자이크식 통합 및 지식 전달》입니다. 이 내용을 네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겠습니다...”30분 후.“이상으로 제 졸업논문 발표를 마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정은은 반 발짝 물러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순간, 강의실은 마치 주문이 풀린 듯 고요함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곧 폭발하듯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와... 정은 선배님 진짜 대박이다. 난 거의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선배님이 우리 생각해서 우리말로 발표해 주신 거야. 논문 원본은 영어로 썼다던데.”“못 알아들은 게 정상이지. 우리가 다 이해할 정도면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나가겠냐?”“그래도 이건 진짜 인정. 선배님은 논리도 깔끔하고 전달하는 힘도 장난 아니야.”“이제 질의응답 들어가는 거지? 심사위원 자리에서 벌써 화약 냄새 나는 것 같은데...”“...”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생명과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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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3화

뒤이어 질문한 사람은 화학·분자공학부의 민수무 교수였다.“이 새로운 알고리즘이 기존 방법과 비교했을 때 어떤 두드러진 장점이 있습니까?”질문은 크고 포괄적이었다. 사실상 어떤 논문 발표에 붙여도 무난한 ‘만능형 질문’에 가까웠다.그럼에도 정은은 잠시 생각을 고르고, 성심껏 답을 이어갔다.“MIDAS는 각 세포의 다중 모달 관측값이 두 개의 모달과 무관하며 서로 분리된 잠재 변수를 통해 심층 신경망에서 생성된다고 가정합니다.”“입력은 서로 다른 단일 세포 샘플, 즉 서로 다른 뱃치(batch)의 발현 행렬과 뱃치 번호 벡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따라서 기술적 잡음, 모달 조합, 관측 특성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MIDAS의 출력은 생물학적 상태와 기술적 잡음을 나타내는 두 가지 저차원 표현 행렬, 그리고 결측된 모달과 특성을 보완하고 뱃치 효과를 제거한 발현 행렬을 포함합니다.”민수무 교수는 설명을 다 들은 뒤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음... 저는 더 물을 게 없네요. 다음은 이 교수님?”이번엔 수리과학부의 이조화 교수가 질문을 이어갔다.곧이어 임시로 심사위원석에 합류한 왕병호 교수도 말을 보탰다.모든 심사위원의 질문이 끝났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그렇게 정은의 졸업논문 발표는 완전히 마무리되었다.정은은 다시 한번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하고, 천천히 단상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그 순간에도 정은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단상 위에 서 있던 내내, 발표실 뒷문에서 한 시선이 묵묵히 그녀를 지켰다는 것을.재석은 정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조용히 서 있었다.단정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자신감 넘치게 발표를 이어가는 그녀가 눈부셨다.‘그래, 이게 내가 사랑하는 정은이지.’‘너무나 빛나고, 너무나 눈부신 사람.’그 눈빛엔 말로 담기 힘든 온기와 연모가 서려 있었다.“아니, 아까 간다더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몰래 훔쳐보기라도 하냐?”뒤늦게 도착한 한중기가 이 장면을 보곤 장난스레 한마디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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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4화

민지는 단상에 오르자마자 청중을 향해 잠깐 미소를 지었다.무슨 말을 하든, 시작 전에 한번 웃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발표를 시작했다.처음에 밀려드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정자세로 꼿꼿이 앉아 경청하는 교수들의 시선이 온전히 자신에게 꽂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덜덜 떨렸다.하지만 민지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이미 올라온 이상 물러설 수 없어. 게다가 후배들도 다 지켜보고 있잖아.’‘무한 실험실의 체면을 내가 구길 수는 없어.’그렇게 결심하자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더는 떨리지 않았고, 다리의 힘도 다시 돌아왔다.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몰입했고, 입에서 말이 술술 풀려나왔으며 머릿속은 놀라울 만큼 또렷했다.‘와... 지금 이정도라면 세상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물론, 딱 그 순간만큼은.“이상으로 제 논문 발표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교수 여섯 명이 차례로 질문을 이어갔다. 단 한 명도 건너뛰는 이는 없었다.하지만 민지는 모두 막힘없이 대답했다.게다가 발표 내용을 전달하는 힘도 꽤 좋았다. 최소한 여섯 명 중 네 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였다.물론, 나머지 두 사람은... 애초에 그런 표정을 잘 안 짓는 교수일지도 몰랐다.어쨌든 민지의 졸업논문 발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끝났다.단상에서 내려오자마자 민지는 곧장 서준 곁으로 달려가 속삭였다.“나, 어땠어?”서준은 반짝이는 민지의 눈과 마주쳤다. 얼굴에 ‘칭찬해 달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쓰여 있는 듯했다.그는 애써 그녀의 볼을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한 글자씩 또렷하게 말했다.“진짜 최고였어.”“헤헤! 나는 내가 잘 해낼 줄 알았다니까!”민지는 눈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했다.“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근데 말이야, 너 오늘 칭찬이 너무 달달한데? 집에 가면 쓴 채소라도 좀 먹여서 균형 좀 맞춰야겠다.”서준은 단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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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5화

졸업논문 발표가 끝나자, 곧바로 졸업식이 이어졌다.대강당 안에는 교가가 울려 퍼졌고, 모든 학생과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창했다.이어 사회자가 내빈과 학교 관계자들을 소개하고, 총장과 학장의 축사가 차례로 진행됐다.그리고 마침내, 졸업생 대표로 정은이 단상에 올랐다.객석 한쪽에는 이미숙과 소진헌이 앉아 있었다.학부모 대표로 초청받아 자리한 두 사람은, 수많은 부모 속에서 눈가가 이미 붉어져 있었다.너무 세게 박수를 치다 보니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여보, 정은이가 올라갔어! 우리 딸 좀 빨리 봐!”아내의 손을 덥석 잡는 소진헌의 목소리가 떨렸다.“내가 졸업할 때도 단과대학에 대표로 연설하게 해 달라고 얼마나 들이댔는데... 결국 못 올랐잖아.”이미숙은 곧장 말을 잘랐다.“그건 정은이가 당신보다 낫다는 거죠.”“그럼, 당연하지! 옛말에도 있잖아. 그 아버지에 그 딸, 청출어람 청어람이라고...”“뭐라고요? 당신 닮아서 그렇다고?”“허허, 말은 맞잖아. 딸이 나보다 잘나서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고, 그저 기쁘기만 하지.”이미숙은 어느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렌즈를 정은 쪽으로 향했다.“여보, 당신도 얼른 꺼내. 아침에 우리 부모님이 뭐라고 당부하셨는지 벌써 잊은 거예요?”본래 이춘재와 봉수진도 현장에 오고 싶어 했지만, 참석인원이 한정돼 있었고 두 사람은 일부러 특혜처럼 비칠까 염려해 신청하지 않았다.혹여 정은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는 않을까 염려했다.그래서 결국 집에서 SNS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방송 화면은 개별 학생의 얼굴까지 또렷하게 잡아주지는 못했다.그렇기에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두 사람은 이미숙과 소진헌에게 수차례 당부했다.“사진이랑 영상 많이 찍어서 바로 보내라.”이미숙은 녹화를 켜자마자 곧장 실시간으로 영상을 전송했다.단상 위에 선 정은은 마이크를 손에 쥐고 차분히 객석을 둘러보았다.그리고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존경하는 학교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교수님과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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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6화

강서원은 재석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은 싸늘했고, 오랜 병원 생활 탓인지 몰라도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파란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 환자복은 강서원의 어깨와 팔에 헐렁하게 걸려 있었고, 움푹 팬 볼과 도드라진 광대뼈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그리고 형광등 불빛 아래서 그 창백한 얼굴은 더 창백해 보였다.강서원의 시선은 재석이 쥐고 있는 핸드폰에 꽂혀 있었다.“허, 또 소정은 보고 있었구나?”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대답은 담담했고, 눈빛은 한 점 흐림이 없었다.강서원은 냉소를 흘렸다.“헤어졌다며. 그런데도 아직?”재석은 어머니를 똑바로 마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헤어졌으니까... 정은의 졸업식을 직접 갈 수 없어서 핸드폰으로라도 보는 겁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너...!”“어머니, 다시 말씀드리지만, 몸은 어머니 거예요. 제일 위험한 고비도 넘기셨잖아요. 그렇다면 누구보다 자기 삶을 소중히 하셔야죠.”강서원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자식이 되어서 부모를 가르치는 건 도리가 아니지.”“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아들로서 드리는 당부이자 부탁이에요.”재석은 숨을 고르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어머니가 늘 말했잖아요. 제가 정은이를 사랑하는 만큼 정은이가 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그런데 저는, 그런 정은이가 좋아요. 왜인지 아세요?”강서원의 미간이 좁아졌다.“사람은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어요.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도 있고요.”“정은이는 자존심도 있고, 자기를 존중할 줄 알고, 또 자신감도 있는 좋은 사람이에요. 그게 바로 제가 정은이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재석의 눈빛은 단단히 고여 있었다.“그리고 제가 바랐던 건 정은이가 저를 똑같이 사랑해 주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저로 인해 정은이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게 전부였습니다.”잠시 뜸을 들인 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그래서 지금, 우리가 결국 헤어지게 됐어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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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7화

그리고 드디어 졸업식의 하이라이트, 석사모 술 넘겨주는 시간!송영한은 붉은 학위복을 차려입고 네모난 석사모를 눌러쓴 채, 노란 술이 흔들리도록 환하게 웃는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었다.졸업생들이 차례대로 단상에 올라오면, 그는 직접 오른쪽에 있던 술을 왼쪽으로 넘겨주었다. ‘이제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진짜 사회로 나아간다’라는 의미를 담은 순간이었다.하지만 분위기는 곧 유쾌한 장난으로 가득 찼다.두 살배기 아들을 안은 채 올라온 석사 졸업생 엄마는, 아기 머리에 씌운 미니 석사모까지 술을 넘겨 달라고 했다.또 어떤 학생은 석사 과정 동안 받은 상장과 인증서를 전부 하나로 이어 붙여 커다란 플래카드로 만들어와, 한쪽은 본인이 다른 한쪽은 송영한이 붙잡고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었다.심지어 학위복 속에 군복을 입은 채 올라왔다가, 술을 넘긴 직후 학위복을 벗고 빳빳한 제복 차림으로 송영한에게 거수경례를 붙인 학생도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입대, 안정적인 ‘취직자리 확보’였다.또 강아지를 데리고 올라와 술을 넘기게 하거나, 억지로 송영한을 잡아끌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려는 학생까지 있었다.송영한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래, 오늘은 내가 그냥 너희 졸업 이벤트의 일부구나.’사실 애초에 그게 맞았다.민지는 원래 이런 장난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들 분위기를 즐기는데, 혼자 무덤덤하게 내려가려니 손끝이 근질거렸다.술을 넘기고 돌아서기 직전, 그녀는 불쑥 한 손을 볼에 대고 반쪽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송영한을 향해 눈짓했다.“어?”송영한은 순간 멍해졌다.민지는 바로 조용히 말했다.“총장님, 얼른요, 저처럼요...”그제야 눈치챈 송영한은 어색하게 따라 했지만, 손 방향이 반대였다.민지도 다시 한번 말했다.“반대쪽 손이에요, 총장님!”“아, 아하!”부랴부랴 손을 바꿔 들자, 이번엔 제대로 된 하트가 완성됐다.송영한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민지가 내려가자, 이번엔 서준 차례였다. 두 사람이 스치듯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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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8화

민지는 손발이 버벅거리고 말까지 더듬었다.서준은 민지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진지하게, 그리고 미소 띤 눈빛으로 민지를 바라볼 뿐이었다.민지가 겨우 말을 마치자, 그제야 서준이 입을 열었다.“립스틱 안 발라도 돼. 넌 원래 예쁘니까.”“석사모도 바르게 잘 쓰고 있어. 걱정 마. 지금 정말 아름다워.”민지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눈가엔 이미 눈물이 고였다.무대 위 조명이 그 눈빛을 반짝이게 했다.“서준아.”서준은 민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리고 송영한이 건네준 마이크를 받아, 또박또박 전했다.“그러니까, 하민지 씨. 저랑 결혼해 줄래요?”민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단호히 마이크를 낚아채서 모든 사람 앞에서 외쳤다.“네! 결혼할게요!”순간, 서준은 반지를 끼워주고 민지를 힘껏 끌어안았다.강당은 폭발하는 환호와 함성,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그, 그런데...”민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하지만 서준의 품이 너무 단단해, 마이크도 내려놓지 못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음향을 타고 울려 퍼졌다.순간, 박수 소리가 멎었다.서준도 순간 멈칫했다.“무슨... 아직 고민되는 거 있어?”“나야 좋은데... 우리 부모님이 뭐라 하실지 모르잖아...”그때, 우렁찬 남자의 목소리가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허락한다! 우린 찬성이야!”이어서 여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그래, 엄마도 동의한다!”민지는 눈을 크게 떴다. 믿기지 않은 듯 고개를 돌리자 눈을 깜빡였다.“아빠! 엄마...!” ‘내가 잘못 본 건가?’“비행기 연착돼서 시간 안에 못 온다고 하셨잖아요?!”하정남은 미소 지으며 서준을 한번 흘겨봤다.“안 그랬으면 어떻게 깜짝이벤트가 되겠냐?”민지는 화들짝 서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이거 다... 네가 준비한 거야?!”“응.”서준은 민지의 손을 꼭 잡았다.“넌 방금 내 청혼에 대답했어. 아버님, 어머님도 동의하셨고. 반지를 낀 순간부터 넌 내 약혼자야.”민지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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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9화

“여보, 왜 그랬어요?”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임수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하정남은 순간 얼어붙더니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내가 뭘? 착각했겠지.”“여보. 몇십 년을 같이 산 부부인데, 내가 당신을 모를 줄 알아요? 눈빛만 봐도 다 알아요. 괜히 오기 부리지 마요.”“하아.”임수인이 가만히 남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우리 딸 멀리 시집보내기 아쉬운 거죠?”하정남은 아내를 흘깃 보더니 낮게 대꾸했다.“당신은 안 아쉬워?”“우리 민지가 내 뱃속에서 나온 친딸인데, 안 아쉽겠어요?”임수인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민지도 언젠가 자라서 자기 삶을 찾아야죠. 민지가 직접 선택한 게 서준이잖아요. 그 아이 성품도 반듯하고, 능력도 있고... 난 아쉽긴 해도, 솔직히 너무 기뻐요.”그러다 문득 기억이 스쳤는지, 표정이 잠시 굳었다.“그리고... 서준이 같은 아이라면, 임씨 집안이 뒤에 버티고 있으니, 앞으로는 누가 감히 우리 집 건드릴 수 있겠어요?”그 말에 하정남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임수인이 조용히 덧붙였다.“내가 당신한테 아들 못 낳아준 건 미안하죠. 그렇다고 다른 여자한테 가라고 해도, 당신이 끝내 가지 않았잖아요.”“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우리 나이가 몇 살인데.”하정남은 단호히 잘라냈다.임수인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그냥 해본 말이에요. 괜히 흥분하기는... 왜, 지금이라도 다른 여자한테 가고 싶어요? 내 앞에서 그러면 절대 못 나간다?”하정남은 황당한 듯 손사래를 쳤다.“내가 감히 그런 말을 어떻게 입에 올리겠어?”차 안에 잠시 고요가 흘렀다.묘하게 아쉬움도 안도감이 섞인 정적이었다....졸업장을 받은 날, 민지와 서준은 곧장 구청으로 향했다.졸업과 동시에 혼인신고.단 하루 만에 인생의 두 큰 챕터를 동시에 완성한 셈이었다.하정남과 임수인, 임정식과 장인화.양가 부모 모두가 그 자리에 함께했다.정은, 진일, 재민도 무한 실험실 대표로 자리를 지켰다.정은은 창구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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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0화

‘작지만 따뜻한 우리 집... 이 정도면 충분해.’민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활짝 웃었다.민지의 태도를 확인한 뒤에야 서준의 어머니 장인화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그날 저녁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 임정식에게 이야기를 꺼냈다.“우리 새아가는, 알뜰하고 자기 주관도 뚜렷한 아이예요. 집안이 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물 쓰듯 낭비하는 것도 아니고. 명품 가방, 명품 시계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라고요.”“그럼 그렇지! 당신도 알잖아. 우리 아들 성격이 보통 깐깐한 게 아닌데, 그런 애 눈에 차는 사람이 보통이겠어? 내가 볼 땐 딱 맞는 사람 잘 고른 거야.”장인화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가볍게 한숨을 흘렸다.“괜히 한숨은 쉬고 그래?”“한숨 아니에요. 그냥... 감탄한 거죠.”“무슨 감탄?”잠시 머뭇거리던 장인화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사실 처음엔 조금 망설였어요. 오해하지 마요, 나도 무슨 집안 따지고 정략적인 결혼 같은 건 절대 싫어해요.”“다만 새아가네가 재개발 보상으로 갑자기 형편이 나아진 집안이라고 들었을 때, 혹시... 예의범절이나 생활 태도에서 허술한 데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됐던 거죠.”“보통 집안에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버릇들이, 우리 같은 집안에서는 큰 흠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쓸데없는 과시라든가, 돈 자랑이라든가, 권력에 기대는 태도 같은 거요.”임정식은 아내의 속내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다행히 사돈댁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새아가도 마찬가지고.”“맞아. 내가 확인해 봤는데, 예전에 서준이가 자기 집안을 슬쩍 밝힌 적이 있었거든? 그 뒤로 하 씨 집안 어른이 아주 단호하게 일가친척들한테 경고했대.”“절대 그걸 빌미로 으스대지도 말고, 자랑삼아 떠벌리지도 말고, 권세에 기대지도 말라고. 특히 젊은 애들한테는 더 엄하게 주지시켰다고 하더라.”장인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그럼 정말 괜찮은 집안이네요.”임정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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