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리아의 아버지 진균하가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남겨진 황정애는 어린 리아를 홀로 키워야 했다.1년 뒤, 황정애는 R국에서 온 재외 교포 유순구와 재혼했다.그해, 황정애와 유순구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고 이름은 유하린이라 지었다.하린은 리아보다 다섯 살 어렸지만, 둘의 우애에는 전혀 문제없었다.황정애는 벤처 투자 업계에서 ‘여장군’으로 불릴 만큼 일에 매달렸고,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건 예사였다. 한 번 출장이라도 잡히면 보름은 기본이었다.그 사이 유순구는 무역업을 하며 황정애라는 ‘금고’를 등에 업고 순풍에 돛 단 듯 장사를 이어갔다.커다란 집에는 가사도우미와 보모가 상주했지만, 결국 자매 둘만 남겨지는 날이 잦았다.그 공백 속에서 리아는 단순한 언니가 아니라 거의 엄마 같은 존재였다.그래서인지 하린이 처음 입을 뗀 말도 ‘엄마’도, ‘아빠’도 아닌, 맑고 또렷한 목소리의 ‘언니’였다.리아는 이복동생에게 질투나 경쟁심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마음 깊숙이 동생을 사랑하고 아꼈다.보통의 가족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가정이었다.부모의 빈자리가 아쉽긴 했지만, 생활은 넉넉했고 자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지냈다.그러나 변곡점은 아주 평범한 저녁에 찾아왔다.퇴근하던 황정애의 승용차가 대형 화물차와 정면충돌한 것이다.차량은 심하게 파손되었고, 황정애는 과다 출혈로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다.긴급 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고위 마비와 장기 손상, 합병증이 연이어 덮쳤다.황정애는 병원 신세를 지며 다시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황정애가 버팀목이 되지 못하자, 유순구의 사업은 순식간에 기울었다. 투자 실패로 회사 자금은 바닥났고, 거대한 빚만 남았다.유순구는 황정애 몰래 황정애의 혼전 재산까지 끌어다 빚을 메우려 했다.하지만 정애가 알게 됐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병원비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둘이 병원에서 정면으로 부딪히던 그날, 리아도 그 자리에 있었다.잠깐 따뜻한 물을 뜨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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