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대강, 드라마 기획안, 방송국에 제출하는 작품 제안서까지...이미숙은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키보드를 붙잡고 글을 쓰곤 했다.기진맥진할 때까지 쓰고 나서야 손을 멈춰야 직성이 풀렸다.그럴 때면 정리는커녕 저장만 해둔 채로 그대로 손을 놔버렸다.세월이 쌓이니 원고들은 한 폴더에 뒤섞여 있거나, 아예 여러 개의 파일과 외장 하드에 흩어져 버렸다.정리하려면 결국 내용을 일일이 다시 읽어야 했다....밤, 거실.정은은 이미숙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TV에서는 요즘 인기라는 연애 예능이 틀어져 있었다.“엄마, 팩하는 거예요?”“그래. 너도 하나 붙일래?”“아니요. 됐어요.”정은은 손사래를 쳤다.“어쩐지, 우리 엄마 점점 더 어려지더라니까...”이미숙은 계획적이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피부 관리에 쏟는 꾸준함과 집념은 글을 쓰는 집념 못지않았다.가장 단순한 예로, 얼굴에 붙이는 팩만 해도 일주일에 세 번은 반드시 했다.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예전에 형편이 넉넉지 않을 때도 이미숙은 오이를 얇게 썰어 얼굴에 붙이고, 랩 씌운 뒤 바셀린을 발랐다.조금 여유가 생기자 그녀는 유명 브랜드 팩으로 바꾸더니, 요즘은 아예 맞춤형 피부 관리 제품까지 쓰고 있었다.결국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다.이미숙을 움직이는 건 ‘하고 싶다, 하기 싫다’는 자기 마음뿐이었다.이 점은 정은도 엄마를 닮았다.“엄마, 원고들 제가 정리했어요. 다섯 개 폴더로 나눴거든요. 소설, 드라마, 영상 자료 이런 식으로요.”“시간 날 때 한 번 살펴보세요. 혹시 문서 찾기 힘들면 바로 나한테 물어보고요.”“그리고, ‘소재’ 폴더엔 최근 5년 동안 전국에서 일어난 미제 사건, 특이 사건들 중심으로 정리해놨어요. 여론화된 케이스도 꽤 많아요.”이미숙은 놀란 눈으로 딸을 바라봤다.“우리 딸, 이런 자료를 왜 모은 거야?”정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엄마가 요즘 사건 자료 보는 거, 나도 다 봤어요. 드라마에 녹여내려고 하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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