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 Chapter 1021 - Chapter 1030

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021 - Chapter 1030

1183 Chapters

제1021화

“놀랐어요?”시연이 슬쩍 유건을 바라보며 물었다.“응.”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잘 그리는 거, 혹시 따로 선생님한테 배운 거야? 그럼 왜 계속 안 했어?”여기서 함께 지낸 시간 동안, 유건은 조이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걸 본 적이 없었다.“아니에요, 선생님 안 붙였어요.”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어딘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가르쳤어요. 어릴 때, 우리 엄마가 피아노, 미술, 서예, 심지어 바둑까지 전부 다 시키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이것저것 조금씩은 해봤어요.”‘그 시절이... 참 오래전인데도 생생하네.’안타깝게도, 엄마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결국 그 많은 예체능 중, 시연이 제대로 익힌 건 그림 하나였다.“아, 맞다.”시연의 말을 들으며 유건도 뭔가 기억이 떠올랐다.“너 그림 그릴 줄 아는 거 나도 봤어. 예전에 네가 캐리어 끌고 나오던 날, 기억나? 내가 그거 차에 실어줬었잖아.”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캐리어가 오래돼서 지퍼가 열렸고, 안에 있던 스케치북이 튀어나왔지. 내가 그거 주우면서 무심코 봤는데... 그 안에 소년을 그린 그림이 있었어.”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기억을 더듬었다.참 이상했다. 분명 벌써 삼 년이나 흘렀고, 대단한 사건도 아니었으며, 그저 일상 속의 사소한 단편들일 뿐인데도, 그 기억은 마치 각인이라도 된 듯, 여전히 유건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한 번만 떠올리면, 유건의 기억은 언제나 눈앞에 또렷이 모습을 드러냈다.“희한하게 익숙한 얼굴이었어. 계속 보고 싶었는데... 네가 나한테서 확 뺏어갔잖아. 화도 내고. 기억나?”시연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기억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기억력이 남달랐다. 거의 사진처럼 모든 걸 기억해 냈다.“근데...”유건은 시연을 바라보며 호기심이 다시 들끓는 눈빛으로 물었다.“그 스케치북 어디 있어? 보여줄래?”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유건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또 안 보여줘? 그렇게 신비
Read more

제1022화

“오.”유건은 태연한 척했지만, 속에서는 이미 질투가 폭발 직전이었다.‘뭐야, 나 말고도 누가 있었단 말이야?’“그래서, 너희는 왜 안 된 건데? 노은범한테 밀린 거야? 혹시 너 혼자 짝사랑한 거 아냐? 너만 좋아하고, 그 애는 아니었어?”툭 던진 말이었다. 그냥 속이 좀 답답했으니까.그런데 시연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딱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뭐...?”유건은 멍해졌다.‘장난으로 한 말인데, 진짜였어?’“그때 말이죠...”시연은 옛 기억을 더듬었다.“그 애가 다시 날 찾으러 오겠다고 했었어요. 근데 결국... 안 왔죠.”오래된 기억이었다. 하지만 떠올리면 아직도 시연의 가슴 한편이 저릿했다.“헐...”유건은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부술 기세였다.“배은망덕한 자식. 너를 안 찾아? 뭐 눈깔이 삐었나? 너를 놓쳤다고? 완전 돌았지, 진짜.”시연은 순간 움찔했다.‘응? 그 소년... 진짜 눈이 안 보였던 것 같은데?’“푸하하하...”결국 시연은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왜 웃어?”유건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버림받은 기억 떠올리며 웃는 거야? 진짜 이해 불가야...’“왜 못 웃어요?”시연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다가, 고개를 저었다.“언제 적 얘긴데요. 8백 년은 지난 것 같은 일이에요. 그땐 다 애들이었잖아요. 좋아한다는 감정이 얼마나 진심이겠어요?”그 말에 유건은 더 질투가 폭발했다.“하아... 우린 왜 그렇게 늦게 만났을까?”투덜대듯 말했지만, 그 속엔 깊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우리가 더 일찍 만났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몰라.’‘결혼도, 아이도, 모든 게 달라졌겠지.’‘다른 사람들 따위 낄 틈 없이, 너랑 나, 우리 둘뿐이었을 텐데...’그야말로, 유건다운 망상이었다.“꿈 깨요.”시연은 손바닥으로 유건의 뺨을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혼자 영화 찍냐고요?”“왜, 뭐 어때서?”유건은 질긴 집착처럼 계속 말을 이어갔다.“말도
Read more

제1023화

그날, 그 마트에 몇 명의 젊은 남자들이 들어섰다.남자들이 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연은 그들의 몸에서 풍겨오는 짙은 술 냄새를 맡았다.‘기분 나쁘다. 제발 그냥 물건 사고 조용히 나가라.’하지만 그들은 손님이 아니었다.사고를 치러 온 자들이었다.입구 쪽 진열대에서 과자를 뜯어 바로 입에 털어 넣고, 맥주와 콜라는 병째 들고는 뚜껑도 안 닫은 채 이곳저곳에 흘렸다.시연은 최대한 침착하게 다가갔다.“손님들, 죄송하지만 계산 먼저 부탁드려도 될까요?”이성적으로, 공손하게 말했지만, 남자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피식 웃기 시작했다.“하하, 맞는 말이네?”남자들 전원이 동시에 시선을 시연에게 맞췄다.“외국인인가?”“글쎄, 난 그렇게 안 보여. 혼혈이야? 베이비 페이스인데.”그들은 이제 계산대로 몰려오기 시작했다.시연의 심장이 본격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조이... 조이는 안에 자고 있어. 제발, 제발 그냥 나가...’“현금이세요, 카드세요?”그녀는 손이 떨리는 걸 숨기며 물었지만, 저 남자들의 목적은 애초부터 계산이 아니었다.그중 하나가 시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순간,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었다.그리고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피하려 했지만, 그 동작조차 남자들의 흥미를 더 자극했을 뿐이었다.“외국 여자애들은 다 이렇게 예쁜가 봐?”“너무 말랐는데? 사십 킬로도 안 될 듯.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까?”“글쎄, 직접 해보면 알겠지?”“하하하하!”“...”남자들의 웃음소리는 마치 악마의 합창처럼 울려 퍼졌다.그들은 완벽히, 시연을 둘러쌌다.‘안 돼. 난 이렇게 당할 수 없어.’시연은 본능적으로 계산대 아래의 비상벨을 눌렀다.삐삐삐.경고음이 울리는 순간, 그녀는 희망을 걸었다.‘이제라도, 멈추겠지...?’하지만 악마는 이성 따위 없는 존재였다.“이 여자, 신고했어!”“경찰? 금방 안 와!”“시간은 충분해, 베이비. 오늘 밤은 길어.”“싫어... 당장 꺼져!”“...”다음 순간, 시연은 계산대 위에
Read more

제1024화

다행히도, 경찰이 제때 도착했다.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시연은 정말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구급차! 빨리 불러요!”현장을 본 경찰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떻게 여자 하나가 저 상황을 이겨낸 거지?’‘저 정도면... 고통을 느끼기나 하는 걸까?’그제야, 시연은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스파이크 배트를 놓고,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그녀는 울부짖는 조이를 끌어안고 품에 안았다.그리고 피범벅이 된 얼굴 위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몸은 피투성이였지만, 목소리는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조이야, 울지 마... 엄마가 왔어. 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어.”그렇게, 시연은 조이를 품에 안은 채로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다....“그게 다예요.”그 모든 걸 말하고 난 뒤, 시연의 표정은 잔잔하기만 했다.목소리도 담담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야기를 마친 시연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남은 건...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죠? 기록에 다 있으니까요.”“결론적으로 그놈들은 멀쩡했고, 나는 ‘난동’이란 죄목으로 구류와 보호관찰을 받았어요. 판사가 정당방위로 봐서 징역형까진 아니었지만, 보호관찰에다가... 그놈들 병원비까지 물어줬죠.”그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외국인’이라는 신분이 그 모든 걸 무력하게 했다. 현지인인 그 남자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법망을 피해 갔다.시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유건의 눈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는 심장이 쑤시고, 목이 막혔다.시연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이야기.그건 ‘이야기’가 아니었다.시연이 직접 겪은 고통이자, 상처였다.유건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조이는?”그런 상황에서, 시연이 구금되었던 동안, 조이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시연은 입술을 꾹 다물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보육원에 보냈죠.”“뭐라고?”유건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고, 곧 멍해졌다.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지켜낸 조이를, 결국엔..
Read more

제1025화

“응.”유건이 낮은 목소리로 시연에게 대답했다.“괜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마디만 할게요.”어둠 속에서 시연의 목소리가 조용하고 부드럽게 울렸다.“나는 이혼하고 떠났잖아요. 우리 이미 남남이고요. 내가 떠난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든, 그건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알겠어요?”유건은 대답하지 않았다.‘아무 상관 없다고...?’그럴 리가 없었다.만약 자신이 여러 차례 그녀를 실망시키지만 않았다면, 시연은 그렇게까지 마음이 식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자신은, 그렇게 떠난 시연을 3년 동안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나조차도 날 용서할 수 없어.’‘시연이가 날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당연해.’유건은 가슴 한가운데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스쳤다.그리고 시연을 꼭 안고, 그녀의 짧은 머리에 입을 맞췄다.“자자, 이제 자.”품 안의 여자에게서 평온한 숨결이 들려오기 시작했다.그렇게, 밤은 고요히 흘러갔다....주말이 찾아왔다.언제나처럼, 유건과 시연은 조이를 데리고 본가로 향했다.고상훈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서였다.시연이 다리를 다쳤다는 얘기를 들은 고상훈은 직접 주방에 당부해 아침부터 정성스레 사 온 재료로 하루 종일 우려낸 뽀얀 사골국을 준비했다.“자, 시연. 많이 먹어.”고상훈이 직접 국을 떠서 시연 앞에 놓아줬다.우윳빛 국물 속엔 고기가 사르르 녹아있었다.진한 뼈의 깊은 맛, 정성스러운 한 그릇.“감사합니다, 할아버지.”시연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뭘 그렇게까지 인사해. 가족끼리.”고상훈은 조이를 품에 안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직접 고기를 찢어 조이 입에 넣어주었다.그리곤 시연의 다리에 감긴 깁스를 한번 슬쩍 바라보았다.“그 다리, 진짜 괜찮은 거야? 쉬어야 하는 거 아냐?”“괜찮아요. 이제 많이 나았어요.”시연이 답했다.“애초에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고요. 며칠 있으면 깁스도 뗄 수 있을 거예요.”“고맙네, 다행이야.”고상훈이 안도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너무도
Read more

제1026화

잠시 멈칫한 유건은 너무도 씁쓸해졌다. “조이는 네 딸이지만, 내 딸이기도 해.” 이 한마디에, 시연은 놀라 굳어 버렸다. ‘뭐?’“말했잖아.”유건이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조이 몸엔 네 피가 절반이나 흘러. 그러니까 내 아이인 셈이지.” 시연은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당신...”‘저 사람, 진실을 아는 걸까?’시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차오르는 눈물을 참았다. “감정적인 말은 집어치워요. 이건 감정적으로 끝낼 일이 아니에요. 제발 이성적으로 좀 생각하라고요!”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조이는 내 아이지, 당신 아이가 아니에요!” 사실, 이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조이는 확실히 그녀 혼자만의 아이였다. 유건이 생물학적 아버지인 것은 맞지만, 그는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있는 걸 전혀 몰랐다.한마디로, 그날 밤 ‘그녀’를 책임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것.시연이 유건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놓친 것이었다. 조이를 데려간 순간부터, 시연은 조이와 유건이 상관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유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감정적인 거 아니야.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고유건 씨!”“됐어.”유건이 시연을 다독였다.“흥분하지 마. 네 마음을 돌릴 방법을 좀 더 생각해 볼 테니까.” “마음을 돌려요?”“허!”시연은 유건을 노려보았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이때까지 떠든 건, 듣지도 않은 거예요?” “네 마음은 이해해.”유건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나랑 함께 있는 게 싫겠지. 그래서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거고.” “하지만 왜 그렇게 질질 끄는 거야? 그게 질질 끌 일이야?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거라고!” 시연은 낮게 웃었다.“조이는 나랑 함께할 거예요, 언제나, 영원히!” “그래.”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너한테 네 생각이 있듯이, 나한테도 내 고집이 있어. 우린 각자 능력대로...” “끝까지 한 번 가보자. 네
Read more

제1027화

유건의 말을 듣자, 호준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고 했었지?”호준은 이 사건에 대해 들어본 적 있었지만, 직접 맡아서 처리하진 않았다.호준의 지위를 생각하면, 이런 급의 사건은 감히 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저 지하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맞아.”지하가 맞장구쳤다.“아.”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 감옥에 갔었지?” “응.”고의로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은 형사 범죄였다. “그랬죠.”유건이 말했다.“그 사건에 관련된 해외 계좌를 하나 찾았는데, 가상 계좌라서 난관에 부딪혔어요.”“그렇구나.”호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럼 지금, 와이프는 괜찮아? 다른 일은 없었고?”“네.”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기환이가 계속 보호하고 있어요. 별다른 이상을 발견한 것도 없고요.” “이상이 없는 게 아니라...”호준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 사람이 있어서 아무런 일도 없는 걸 거야.”‘뭐?’유건이 멍한 표정을 짓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유건아.”곰곰이 생각하던 호준이 말했다.“모든 사건이 네 와이프를 노리는 것 같지 않아?” ‘그건...’물론, 유건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있었다. 애초에 은범도 시연을 보호하려 했으니까. “생각해 봐.”호준은 유건과 만나기 전에 이미 사건을 정리해 뒀다. “최초의 사고는 네 장인어른이 사고를 당한 거야, 그렇지?” “네, 맞아요.”유건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지씨 가문 문제라는 의심이 들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 명만 남았잖아요. 장인어른은 이미 돌아가셨고, 장모님도 시연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조사가 어려워요.”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이상, 물어볼 데도 없었다. “와...”지하가 감탄하며 말했다.“만약 이전 세대 때문이라면, 얼마나 큰 원한이고, 원망일까?” 지씨 가문은 이미 몰락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사람들은 시연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가문 자체를 완전히 멸하려는 것 같았다. 곰곰이
Read more

제1028화

오랫동안 침묵만이 흘렀다.결국, 호준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그래, 네 걱정도 일리가 있어. 경찰은 당사자의 뜻을 존중해야 하니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유건이 사과했다.“죄송합니다.” “괜찮아.”호준은 싱긋 웃으며 유건의 어깨를 두드렸다. “훌쩍 커버린 네가 아내를 아끼는 건데, 미안할 건 없지.” 그러고는 지하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야, 유건이 좀 봐라. 딸이 벌써 세 살이야. 너, 여자 친구는 있어?” “히히.”지하는 호준을 향해 히죽거렸다. “나도 있으면 좋지. 근데 아직 걔가 받아들이질 않잖아?” 호준은 지하가 어떤 여자를 쫓아다닌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 있었다. 다만 아직도 못 사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대체 왜지?’지하는 G시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남자였다.그래서 호준은 한 마디 더 덧붙였다.“어떤 여자길래?” “에이.”지하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궁금해? 아직 사귀지도 못했다니까? 사귀기 시작하면 소개해 줄게.” “허.”한쪽에서 유건이 아주 낮게 웃었다.‘임진아 아닌가? 뭘 저렇게 꼭꼭 숨기지?’유건이 보기에, 지하의 계획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시연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사람은 ‘유유상종’인 법이었다.시연과 친자매 같은 사이라면, 분명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을 터.유건의 냉소를 들은 지하가 노려보았다.“야, 왜 웃어?” “소용없을걸? 네가 아무리 잘난 부 대표님이라 해도, 아무나 널 좋아하는 건 아닐 테니까.” “이게, 진짜!”지하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반격했다.“네가 그렇게 잘났냐? 시연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을 걸?”“허.”유건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난 이만 가볼게. 시연이가 나한테 안겨서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거든. 너는 혼자서 외로운 밤이나 보내라.” “헐...”지하가 눈을 부릅뜨고 입을 딱 벌리자, 유건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제일 비참한 사람은 아니었어. 좋은데?’호준은 바보 같은 동생들을 한 번 쳐다보더니, 무
Read more

제1029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방법은 하나뿐입니다.”의사가 말했다.“M국에서 신약이 개발됐습니다. 환자 같은 경우에 특화된 약인데요, 임상적으로 보면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이 꽤 큽니다.” “정말요?”강수희가 흐느끼며 시연의 손을 꼭 잡았다.“됐어! 시연아, 은범이 살 수 있어!” “네.”시연이 감정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확신할 순 없지만, 은범이가 깨어날 수 있는 기회야.’“하지만...”순간, 의사가 말을 돌리며 머뭇거렸다.“‘하지만’이라뇨?”“설마, 부작용이 있나요? 심각한가요? 그게 아니면, 돈이 문제예요? 엄청 비싼가요?”“아니요.”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했다.“그 약, 구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국제적으로 판매되지 않는 약이거든요.” 즉,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렵다는 것. 이것은 확실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럼 어떡하죠?”“방법을 생각해 봐야죠.”의사가 말했다. “국내 경로를 알아봐야 하는데...”“강울대병원에서 일한다고 하셨죠? 약국 쪽에 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니면, 사모님께서 노 회장님의 인맥을 통해 연결고리를 찾아봐 주실 순 있을까요?” 결국,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과 자원을 총동원해서 약을 구해야만 했다.“아...”강수희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의사가 떠나자, 강수희는 다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 은범이는 이번 고비를 꼭 넘겨야 해.” “사모님, 같이 방법을 생각해 봐요.” 시연은 그녀를 위로했다.“그 약, 반드시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실은 훨씬 잔혹했다. M국 병원에서 새로 개발한 특허 약은 임상 사용 비용이 상당히 비싸서 대량 생산되지 않았다. 시연은 강울대병원 약국으로 달려갔고, 신경외과에도 문의했다. 하지만, 담당자들은 그 신약
Read more

제1030화

‘부탁하면... 정말 들어줄까?’[시연아?]시연이 대답하지 않자, 강수희는 조급해졌다.[듣고 있어? 제발, 고 대표님한테 부탁해 봐, 응?]“사모님...”순간,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유건이 돌아온 듯했다. 시연은 급히 말을 이었다.“급한 일이 생겼어요. 우선 끊을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유건이 들어왔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쥔 시연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전화 중이었어?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아니에요.”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막 끊으려던 참이었어요.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난 먼저 내려가서 조이랑 있을게요.” “그래.”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지?’‘며칠 동안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 무슨 일을 꾸미는 것 같은데...’‘뭐길래 말을 안 하지?’시연이 말하지 않는 이상, 유건은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기환이 하루 종일 시연을 따라다니니, 그녀와 접촉한 사람들에게 조금만 물어보면 알 수 있었다.“형님.”잠시 후, 기환은 알아낸 일을 유건에게 알려주었다. “노은범 사장님께 드릴 약을 찾고 있답니다.” 그러더니 잠시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그 약을 쓰면 깨어나실 수 있을 거래요.” ‘뭐?’유건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깜짝 놀랐다.‘평생 누운 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깨어날 가능성이 있다고?’‘만약 노은범이 정말 깨어난다면...’그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입술을 꽉 다물었다. ...저녁.유건은 시연의 발을 씻겨 주었다. 깁스를 막 제거한 참이라, 한약재를 우린 물이 다리 회복에 좋을 거라 생각했다. “물 온도는 괜찮아?”“네.”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과일 그릇을 끌어안은 채 망고를 먹으며 불평했다. “망고가 달지 않네요. 오히려 신 편이에요.” 이내 고개를 숙인 채, 망고를 유건의 입 앞에 가져다 댔다. 그는 아주 의식적으로 입을 벌렸다.
Read more
PREV
1
...
101102103104105
...
11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